좋아하는 건 꼭 데려가야 해 - 2020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세피데 새리히 지음, 율리 푈크 그림, 남은주 옮김 / 북뱅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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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데 새리히 글 / 율리 푈크 그림 / 북뱅크

한 소녀가 있다. 소녀의 부모님은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딸에게 작은 가방 하나를 내밀고, 꼭 가져가야 될것만 챙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쩌지 ? 소녀에게는 챙겨가야 할 소중한 존재가 너무 많다. 슬픔에 잠긴 소녀는 바다로 향하고 한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가방에 넣어갈수 없다면 바닷물에 띄워 보내면 되잖아 !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소녀는 바닷가에서 자신이 띄워보낸 소중한 물건들을 기다리는데....소녀는 그 유리병 보물들을 무사히 받아볼수 있을까 ?

이 그림책은 2020 볼로냐 라가치 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물건들과 헤어지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슬픔과 상실감, 불안한 감정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은 존재들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표지를 넘기면 노란색 바탕위에 여러가지 물건들의 그림이 있고, 이 물건들은 소녀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의 단서인건가 ?. 누군가 나를 위해 손수 만들어준 선물도 특별할테고 아니면 내 나이만큼 자란 , 내가 정성껏 돌본 나무나 물고기 ? 내게 유독 친절한 미소를 보내주셨던 스쿨버스 기사아저씨 ? 항상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던 친구 ? 나에게 소중한 물건은 뭐지 ?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누가있지 ? 결국엔 나는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남겨둘수 있을까 ?

소녀는 그 해답을 '바다'라는 장소에서 찾게 되는데 근데 왜 하필 바다였을까? 그래! 드넓은 바다라면 모든걸 포용해줄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거야 ! 바다는 과거에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거고 앞으로도 쭉 존재할테니깐. 그리고 바다는 어디든 흘러흘러 또 다른 바다를 만나고 한개의 바다가 됐다 또 작은 바다도 됐다 하잖아. 바다에 소중한 것들을 맡겨두고 필요할땐 언제든 보러 오면 되는거야. ...소녀는 이런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했지만 또 누군가는 글로도 저장할테고 또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 그리울때마다 볼테고 또 누군가는 음성으로 남길수도 있겠지? 그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말야.

살면서 우리는 어떤방식으로든 누군가를 떠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사를 가기도 하고 전학을 가기도 하고 이민을 가기도 한다 . 낯선 새로운 환경에 덩그러니 놓이게 될때 어른인 나조차도 얼마나 불안해 했던지... 얘들아, 그 많은 물건들은 다 가져갈수 없어. 포기하는 방법도 배워야지. 거기가면 엄마가 더 예쁜걸로 사줄께 라고 달랬을까? 나는 이제 안다. 아이도 물건들과 작별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가 그 불편한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쭉 함께 할수 있는 방법을 찾을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줄테다. 많고 많은 소중한것들 중에서 한개만 고르라고 강요하지 말아야지. 욕심꾸러기라고 유별나다고 놀리지 말아야지.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는것도 말해주고 시간이 많이 걸릴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줘야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별의 시간을 갖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덜 외롭게 살수 있지 않을까. 덜어낸다는것은 비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덜어낼수록 어떤일에 더 잘 집중할수도 있어. 불필요한 감정들은 더 멀리 넓은 바다에 버리고 다신 주워오지 말아야지. 그런데 얼마전부터 부쩍 부실해진 나의 기억력이 걱정이다. 기록을 더 열심히 하라는 계시인건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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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온그림책 3
제임스 서버 지음, 윤주희 그림, 김서정 옮김 / 봄볕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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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 마크 서버는 마크 트웨인을 잇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로 불리고 있으며, 1961년에 세상을 떠날때까지도 계속해서 글을 썼다고 한다. 마크 서버의 작품이 내게는 처음이지만 이 한권의 짧고 간결한 문장속에서 그의 우화와 풍자를 느끼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림책을 볼때 대부분 글부터 먼저 읽는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읽기도 전에 표지그림에 반해서 또는 분위기에 반해서 무작정 책을 사기도 한다. 그림에 대해선 진짜 아는게 1도 없는 나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넋을 놓고 보게 되는지 ㅎㅎ 이 그림책 또한 처음으로 알게 된 윤주희 작가님의 그림에 홀딱 반했다 !!!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의 단순한 스토리는 깊은 밀림속 팽팽한 긴장감까지도 놓치지 않는 윤주희 작가님의 세심함 속에서 현장감을 더했다. 작가님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에서 판화작가로 ,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해오고 계셨는데,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작품들도 둘러보고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하는 과정까지 엿볼수 있어서 오전은 그야말로 후딱 지나갔다. 청록색과 주황색...단 두가지 색상만 썼는데 그림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화려하단 느낌까지 받았다. 단조로운 색때문에 제각기 생긴 동물 캐릭터들이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는데, 밀림속 전투장면을 보면 붉게 흩뿌려진 잉크의 파편들과 무고한 초록의 동물들이 대비되면서 혼돈의 아수라장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진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왕이 될 운명이라는 호랑이. 대단한 그 무엇이 되기위해 잔뜩 예민해진 호랑이는 아기 호랑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는 신경쓰지 않는다. 검은 줄무늬의 노란 달이 떠서 자신을 축하해줄거라고 철썩같이 믿는 호랑이는 뭔가 자신만의 세계에 갖힌듯 보인다. 호랑이는 새 질서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사자는 구 질서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싸움은 시작되고, 호랑이는 살아남아 바라던대로 왕이 된다.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그럴듯한 명분은 있었지만, 전쟁의 진짜 이유를 찾은 동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책 마지막 장에 교훈을 집어넣은 작가님의 유머에 피식 웃음이 난다. 작가님 너무 귀엽잖아 ㅎㅎㅎ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호랑이 같은 사람들을 향해 대놓고 한방을 날리고 싶으셨던 걸까 ?^^ ㅎㅎ 그러게 아무리 향기로운 꽃도 알아봐주는 존재 하나 없다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가 무슨 의미일까 .

개인의 사사로운 권력욕에 선택권도 없이 사지로 내몰린 약자들... 변화가 왜 필요한지, 왜 지금인지 질문하기 보다는 이 싸움의 마지막 승자가 누가될지 살피는 일이 먼저가 될까봐 두렵다.

책을 읽는 내내 시리아 내전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떠올랐다. 수없이 죽어가는 죄없는 난민들의 비참한 행렬들을 보면서 그 누가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할수 있을까 . 호랑이처럼 무력을 써서 쟁취한 권력은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는것도 아픈 경험으로 너무 잘 알고있다.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워 맹목적이 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상처뿐인 이 전쟁을 과연 봉합할수는 있을지 막막하기까지 하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식의 편가르기가 과연 전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

왕이 되길 꿈꿨던 호랑이를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방식이 아쉬울 뿐. 호랑이가 진짜 원했던것이 왕관이 아니라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왕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면 된다. 누군가를 잘 다스리는 일은 결국은 내 아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제거해주고 ,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 항상 함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거니까. 리더들이 갖추어야 될 소양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그림책이다. 추진력 있게 행동하는 호랑이도 좋지만 제임스 서버처럼 날 웃게만들어주는 호랑이라면 저절로 귀담아 듣게 되지 않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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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 북멘토 그림책 2
김지연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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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그림책 / 북멘토 출판사

삶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라고 하면 나는 선택의 결과물이거나 아니면 갈등의 연속 쯤이라고 답하겠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소소한 갈등들...새벽 독서를 할까 잠을 더 잘까...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을 살까 말까...세탁기를 돌릴까 말까..커피를 마실까 말까...산책을 할까 말까..

하루를 시작한 그림책속 한 아이의 내면을 쭈욱 따라가다보면 저거 딱 내 얘긴데 싶다 ㅎㅎ

수많은 선택지를 거쳐 어찌어찌 장대높이 뛰기 경기장 앞까지 온 주인공. 이제 제일 중요한 선택지가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모두가 나만 지켜보고 있는 상황. 나는 뛸것인가 ? 말것인가 ?

누군가의 눈에는 장대 높이가 태산보다 더 커 보일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재밌는 오락거리일수도 있겠다. 그 짧은 순간에 주인공에게 스쳤을 무수히 많은 생각들. 못 넘으면 망신을 당할수도 있겠다 싶고 한편으론 나도 누구처럼 당당하게 뛰어넘어보고 싶은 경쟁심도 일었을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친구들과 선생님께서 한마음 한뜻으로 외치는 응원소리를 듣게 되는 주인공. 안되면 말지 하는 할머니의 응원이, 두손 공손히 모은 선생님의 응원이 , 넌 할수 있어 라고 기압을 넣어주는 씩씩한 친구들의 응원이 이 주인공에게 닿았을때 마법을 부리기라도 한걸까?

주인공은 '넘어 !!!!!! ' 라는 그 짧은 외침을 듣더니 높아만 보이던 장대를 훌쩍 뛰어넘고야 만다.

기분좋은 엔딩이어서도 기쁘지만 이 그림책이 내 가슴속에 더 오래 남는 이유는 경쟁의 관계로 그려지는 많은 교실풍경과는 다른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하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열열히 응원하고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순간...무조건적이며 너와내가 하나인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고 벅차다. 무조건적인 응원이 없었다면 하겠다는 선택지를 고를수가 있었을까 ? 실패했든 성공을 했든 일단 해봤다는게 중요한게 아닐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높이뛰기는 영원히 이 아이에겐 두려움이고 공포로 남았을거다. 아이들에게 무언의 특정 선택지를 강요하고 있는건 아닌지 ...성공할수 있는 쉬운 선택지만 나부터도 고르고 있는건 아닌지 곰곰 생각해본다.

무수히 많은 경쟁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너만 뛰어나면 되 ! 라는 말보다 이 경쟁에서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를 이야기 해줄수 있는 그림책 !

장대 높이 뛰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아닌 그 과정을 기꺼이 함께 기다리고 지켜봐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보다 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걸 이야기해주는 그림책 !

나혼자서 해낸 성공이 아닌, 우리가 다 같이 이뤄낸 성공이 갖는 기쁨을 어디에 견줄수 있을까 .

살아가면서 마주해야 할 장애물들 앞에서 머뭇거리고 배회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분명 올것이다.

그때 고를 모두의 선택지가 결과에 너무 좌우되지 않길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간에 각자의 선택지를 존중해주고 응원해줄수 있길 바래본다.

실패의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때로는 논리적인 설득이나 조언보다는 진심어린 눈빛 , 따뜻한 응원의 한마디, 부담없이 툭 내뱉는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살아가는 기적을 만드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그대로 기적인거지 ㅎㅎ

마지막으로 면지에 적힌 너무나 근사한 작가님의 말을 되뇌인다. '별이 되는것은 내면에 뜨거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끌어안는 것이다. 혼자서 빛을 내고 열을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린 서로에게 필요한 가벼운 수소 한개 같은 사람들 . 너의 작은 희망이, 나의 작은 응원이 만나면 별이 된다 '

내용도 너무 아름다운 그림책이지만 일러스트에 대해서도 할말이 너무 많다 . 컬러가 얼마나 이쁜지..노랑 파랑 핫핑크, 검정 딱 네가지 색만을 썼을뿐인데도 그림책이 꽉 찬 느낌이다. 글의 희망찬 밝은 느낌을 아주 잘 살린 퍼펙트한 조합이랄까 ㅎㅎ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그림만 본대도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것만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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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개념 연구소 2 : 에너지·지구 - 교과서를 통째로 삼킨 과학 개념 연구소 2
이정아 지음, 나인완 그림, 노석구 감수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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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개념 연구소 1권 물질, 생명 편을 넘나 재밌게 아이들과 읽었기 때문에 1편을 읽으면서도 2편 3편도 쭉 나와줬으면 했더랬다. 2권 에너지, 지구 편이 나온다길래 얼마나 기다렸는지 ㅎㅎ 아이들도 언제 볼수 있냐고 매일 물었던 책을 드디어 오늘 받았다 ^^

1편도 소재나 주제가 호기심 위주로 잘 설명되 있어서 그 점이 제일 좋았는데 2편도 역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화두가 젤 맘에 든다. 그리고 첫번째로 쉽다는거 ! 과학개념은 따분하거나 어려울거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비룡소에서 나온 이 시리즈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할 정도이니 진짜 설명이 쉽다는거다. 평소 지식 정보 그림책은 멀리하는 아이들 ^^;; 1편에 이어 2편에도 멍미와 머냥이의 친근한 캐릭터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한몫한다 ㅎㅎ

면지를 보면 본격적으로 읽기전 어떤식으로 읽으면 좋을지 가이드도 잘 설명되 있는데,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화두를 던지고 2단계는 실험등으로 호기심을 해결해준다. 3단계는 관련 개념을 한번도 정확하게 설명하고 4단계 개념심화 단계를 통해 개념을 더 포괄적으로 깊이 알도록 돕는다. 5단계는 개념과 관련된 재미난 상식들을 한번더 언급!!!. 차례를 보면 알겠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가 정말 폭넓고 다양하다는걸 알수 있다.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교과 연계표를 두어 몇학년 몇학기 때 배워야 할 원리인지 짚어주기 때문에 교과와 연계해서 언제 좀더 구체적으로 지도해줄수 있는지 팁도 얻어갈수 있다. 이점도 진짜 맘에 쏙 든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원리와 개념이라는 핵심은 쉽게 이해되도록 !!! 어른인 내가 읽어도 넘나 재밌는 과학개념 연구소! 이 책 진짜 3권도 4권도 쭉쭉 나오면 좋겠다. 너무 재밌어서 다 사볼텐데 ㅎㅎㅎ

이제 돌아가면서 책 읽었으니깐 오늘 저녁 먹고 나면 quiz 타임 가질거다 ㅋㅋ 벌써부터 넘나 기대되는 시간 ㅎㅎㅎ

비룡소, 좋은 책 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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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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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했던 한 인물의 이야기가 실제와 허구의 섬세한 조합으로 재탄생하다.

조선 중기에 살았던 '허초희' 라는 한 여인의 삶이 내 심장을 후벼 파고 내 날개쭉지로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한글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글자였는지...한글이 이렇게도 슬픈 힘을 가진 글자였는지...이 작가님의 책은 처음인데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리고 처연하리만치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할수 있을까.

천재로 태어난 여류 시인...시대를 앞서 태어난 탓에 그 천재성을 속으로 삼키며 살아야 했던 여인..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난초향기가 풍겨오는듯 했다. 슬프면서도 청초하고 단아하면서도 의연한 그녀의 천상의 모습이 수백번도 내게 왔다 갔다. 원망스러움이 뼈에 사무친다면서도 그 또한 모두 내려놓고 아무런 결박도 없이 결국 초연히 떠난 젊디 젊은 스물일곱의 난설헌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단지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다는걸 알게 해준 소설이기도 했지만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이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 될수 있는 순간은 죽음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공허하고 무서웠다. 한 사회의 구조가 , 문화가 , 고리타분한 관습과 열등감이 천재 아티스트를 죽인것 같아 몸이 바르르 떨린다.

우유부단한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 열등감에 사로잡혀 모든 일의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는 시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최순치가 서자가 아니어서 난설헌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계속 이어갈수만 있었다면..이 중 단 한개라도 예외였더라면 어땠을까. 이 중 단 한개라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조금 덜 슬프고 조금덜 가슴아픈 시를 감상하고 있지 않을까.

생은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이기에,

그 긴 노정 속에서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순간,

생 그 자체가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그건 이미 생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하셨어.

조선의 아낙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악착같이 버티고 참아내야 했을까. 첩의 인생을 견뎌낸 난설헌의 어머니 김씨의 삶도 , 허봉을 사모하는 기생 수연의 삶도, 난설헌의 영혼과 너무나 닮은 영암댁의 삶도, 양반 남자에게 인생을 바친 달이나 금실이의 삶도 하나같이 마음이 간다. 그 세월 어찌 감내하며 살았을까 .

그 어느것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절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가슴속에 더 큰 칼을 품으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와 감정들의 세밀한 흐름덕에 푹 빠져 몇일을 헤어나오질 못했는데 이제는 난설헌을 의연하게 보내줄때가 온것 같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늘 자유롭기를 바랬던 그녀의 영혼을 닮고 싶다. 그녀의 삶은 시대탓으로 새드엔딩이지만 나의 삶은 조금더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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