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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주인공 오기는 지도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여행 중 교통사고로 아내는 즉사하고 오기만 살아남았다. 병원에서 눈을 뜬 그는 전신마비임을 확인하고 기억을 떠올려본다. 아주 완전하진 않지만 자살한 모친 이야기, 부친에 대한 냉소, 아내와 결혼 허락을 받는 자리에서 두 사람의 조건 차이 때문에 움츠렸던 모습이 생각난다. 꽤 괜찮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오기. 무언가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헛된 꿈을 꾼다며 아내의 허영을 꼬집다가도 그것마저도 사랑스러웠다는 말엔 애처가였구나 싶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 존재였는지 잘 아는 사람은 아내라는 오기의 자조. 그로 인해 아내를 비난하는 장면에서도 반발심이 완화된다. 별 것 아닌 일을 과장하는 경향,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과하곤 했다는 아내. 허영과 편집증 그리고 감정과다의 인물로 인식되는 오기의 이름 없는 아내를 잘 보듬고 산 것은 오기 자신이었다. 소설 초반부에서 그려지는, 아주 넉넉지는 않으나 삶을 꽤 충실하게 즐기며 살고 있는 부부라는 이미지는 후반부에 가까워지며 바스러지고 만다. 아내의 목소리는 오기에 의해 선택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여자들의 사진을 올려두었던 아내의 책상. 그렇게 고집하던 고가의 책상에서 아내가 쓰던 글은 별 것 아니었다는 오기의 비평. 아내는 출판을 포기한다. 인내가 부족한 아내는 또 금세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의 정원일도, 아내의 글도 하찮게 여기는 오기. 사고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 밝혀지는 이 글의 소재와 성격은 오기의 추락과 종말을 가속화한다. 그 글은 기자 경력을 살린, 한 인간에 대한 고발문이었다. 오기라는 인간이 얼마나 얄팍하고 속물인지에 대한.
반면 독자는 오기의 서술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오기의 정신은 사고로 인해 몸에 갇혀 있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 공포로 범벅이 되어 있다. 신체에 위협을 주는 미지의 존재인 장모는 오기를 고립시키는 인물로 등장하며 장모가 변화하는 과정은 마치 이사 온 집 정원에 집착하던 아내를 연상시킨다. 예측할 수 없는 장모의 구덩이 파기는 예측할 수 없기에 두려운 것일까, 예측이 되기에 두려운 것일까. 장모의 분노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또 아내가 남긴 기록이 얼마나 자세한지에 대한 미지는 오기를 더욱 두렵게 한다.
몰랐을 땐 어려웠고 사고가 일어나고선 의지가 되었던 장모. 그녀는 사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점점 멀어진다. 우리는 누군가를 잘 모를 때 그를 더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이의 끝도 없는 밑바닥, 그 구멍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때 말이다. 바빌로니아 지도의 중앙에 뚫린 그 구멍에 끌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는 오기. 사십대는 죄를 지을 나이라며 자신의 결함 역시 어쩔 수 없다던 오기. 그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며 몸 안에서, 그리고 집 안에서 고립된다. 그가 아내의 냄새를 맡고 눈을 감았던 이유는 과연 두려움뿐이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