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나 시, 영화나 그림 같은 예술의 힘을 느낄 때는 그로 인해 내 감정이 멜랑콜리해질 때다. 대체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인데, 리뷰에 스웨덴어로 부르는 노래를 링크한답시고 켄트의 앨범을 뒤적거리는데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스웨덴과 관련된 추억들, 일상적인 과거는 시간이 덧칠되어서인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제목에 대한 질문은,

켄트 노래를 좋아하세요? 스웨덴어를 아세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까지를 어젯밤에 쓰고선 음주도 안 했는데 감정에 취했는지 두 페이지를 줄줄 써내려갔다. 역시 밤에 쓰는 글은 조심해야 한다. 일단 지우고서,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 건 좋은데 생각하기가 싫다. 게을러지는 모양, 아마도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도피처인 독서에서도 어떤 기쁨을 찾기가 힘들어지는 걸까? 슬프다.


그리고선 최근의 나의 리뷰에 대한 불만을 썼다. 붕 떠 있는 기분-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니 퀄이 하급인 것이다. 정보도 찔끔, 감상도 찔끔. 깔끔하고 말끔한 글을 쓰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그냥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감정 얘기만.




『닥터 글라스』 리뷰에서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링크한 켄트의 노래다. 마지막 장면의 글라스에게 보내는 내 위로라고 할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은 ‘글라스는 사실 단호하고 차가운 인물이다.’ 이다. 스스로의 독서가 충분치 못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재독, 삼독해도 하고싶은 표현이 두루뭉실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글라스는 ‘어떤 면에서는’ 단호하고 차가운 인물이 맞다. 의사의 의무를 들어 낙태 수술을 요청하는 여성들을 돌려보내는데, 진짜 의무를 중시한다기 보단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느낌이다. 현재의 생활에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한 물욕이나 명예욕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헬가에게는 달랐던 걸까? 헬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위’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순전한 사랑이었나? 아니면 목사에 대한 혐오가 먼저였을까?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중이라 왜곡이 있을 수 있다.)


번역 노트에서도 이 얘기가 나오는데, 리뷰에서도 썼듯이 글라스는 천성적인 낭만주의자이다. 스물 셋에 의학 학위를 따겠다는 목표 설정과 결국 이루었다는 것이 배경이 된다. ‘정상적인 길(글라스의 표현)’을 걸었던 사람과 그 길을 좀 더 일찍 걷게 된 영재의 차이는 관심사와 행위에서 드러난다. 소년의 욕구와 성인의 욕구가 같을 수는 없는 법. 성인들이 신체적 욕망과 그 해소를 얘기할 때, 소년은 막연한 사랑을 ‘꿈꾼다’. 그 꿈은 연인이 될 뻔한 여성의 사망으로 지속된다. 첫 키스와 말랑이는 심장박동을 남긴, 축제의 연인. 여기서 주인공의 비범함이 드러난다. 썸녀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짐에도 흔들리지 않고 학위를 따내는 것이다.




-이쯤에서 험버트 험버트가 떠오르지만 그 변태 싸이코랑 다른 것은, 적어도 글라스는 (여기서 밝혀진 바로는) 성인 여성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고보니 글라스는 스물 셋에 첫 키스였잖아? 험버트처럼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이었다면...? 설마요.


어쨌든 글라스가 학위를 딴 이후, 어떤 일에도 열의를 잃어버리는 것을 보면 그 죽음의 여파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늦된 연애감정의 싹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데다(그로부터 10년이 지남)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고 있기 때문에 헬가의 남자인 클라스 레케를 보고도 좀 방향이 다른 질투를 한다. 헬가의 눈길이 향하는 레케도 부럽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청춘을 누린 레케를 질투한다. 자신과 달리, 사회·신체적 발달에 따른 감정 발산을 제대로 한 것 말이다. 글라스의 경우, 성인으로서의 욕구가 뒤늦게 발현되었지만 손쉬운 해소는 거부감이 들기에 순결을 지키고 있다. 레케처럼, 이상적인 외모를 가졌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을 것이다. 그 점이 글라스의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그렇다고 글라스가 연애경험이 없다는데 열등감을 느끼느냐?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의 사회적 지위는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이며, 호감을 표시한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도 메르텐스 양이 그러한데, 그녀의 외모나 조건이 글라스가 생각해온 이상적인 여성에 가깝지만 친구 마르켈이 관심을 표하자, 그럼 니가 잘 해봐 라고 하는 것이다. (헬가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님) 마르켈이 말하길, 메르텐스 양은 너를 좋아해라고 하는데도! 그러니까 글라스는 그녀(the One)을 찾지만- 금사빠도 아니고, 연애에 안달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선택적 솔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니까 천성적인 낭만주의자라는 것이다. 사랑의 꿈을 꾸는.


헬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글라스는 헬가를 왜 사랑하게 되는가?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3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편에게 지속적인 강간(글라스의 표현)을 당한다는 것이, 그에게 기사도를 일깨운 걸까? 글쎄… 이 소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글라스에게 혐오를 주는 인상을 가진 목사와 마주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헬가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그레고리우스는 어린 글라스의 혐오 대상이었다는 얘기다. 만나서도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그냥 짜증나는 인물이다. 이 점이 살해 동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낙태를 청하는 환자들도 거절했던 글라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범죄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헬가 역시 결혼 전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길러진 탓에, 남자의 유혹을 받은 자신이 (막연하지만) 달라졌다고. 뭔가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남자가 용서를 청해도 거부했다.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그를 찾아갔지만 되돌아오는 등 안타까운 이야기… 이후로 신앙에 더 매달리게 되었고, 오래 전부터 알던 그레고리우스 목사가 부모를 통해 청혼한 것이었다. 여기엔 어느 정도 목사의 권위와 권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헬가 또한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역겨운 걸 어떡하나. 사랑과 친애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종교가 너무도 옳기에 모든 것을 의무화시키는 30살 차이의 남편과의 잠자리가 말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 자신의 욕망을 죄라고 생각했던 어리숙한 여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헬가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표현은, 성인으로서의 욕망을 깨달은 글라스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글라스는 정상인답게 이혼하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목사는 예배 중에 의무를 들어, 반복해서 그녀를 벌할 것이라고. 이혼도 안 해줄거라고 헬가가 답한다. 아무튼 문제는 목사가 신에 대한 의무를 들어, 아내에게 관계를 강요하고 아내는 그게 싫은데 응해야 하고,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헬가의 정신이 죽어가는 것이다. 글라스는 목사를 찾아,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니 잠자리를 좀 삼가라 하지만 이 말도 무시. 결국 의사는 목사의 나이와 건강을 들먹이면서 복상사 얘기를 꺼내고, 헬가는 그제서야 남편 없는 6주간의 휴가를 얻는다. 이쯤되면 독자도 목사가 역겹다.


글라스의 감정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들을 통해 증폭된다. 공상과 망상 속에서 감정의 해일에 휩쓸리는 의사는 욕망을 반영하는 묘한 꿈들을 꾼다. 그녀가 보고 싶어 목사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그러면 찾아올 테니까) 털어놓을 데 없는 목소리들은 도덕을 논했다가, 완벽한 범죄를 꿈꾸었다가, 두려워했다가, 괴로워한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짐작이라도 했던 걸까? 그가 만들어 놓은 죽음의 숨결은 적절한 장소에서 멋지게 임무를 완수한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장애물을 치워버리면 장밋빛은 아니더라도 좀 광명이 비칠 줄 알았더니- 사랑이라는 감정은 한 다리, 두 다리를 거쳐도 퇴색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사람의 일이란,


모른다는데 의의가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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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01-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이렇듯 텍스트와 관련해 씌어진 꼼꼼한 페이퍼도 좋지만)

에이바 님의- 전적으로!- 사적인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ㅎㅎ


뭐, 그렇다는 말입니다요....^^

에이바 2016-01-28 09: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얘기는 지양하는 편이지만 글쎄요,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ㅋㅋㅋ

다락방 2016-01-2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수철님 의견과 같습니다. 아, 물론 리뷰도 고퀄입니다!!

에이바 2016-01-28 09:36   좋아요 0 | URL
한수철님과 다락방님 댓글에 우쭐해집니다. 코가 길어지는 느낌!

서니데이 2016-01-2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에이바 2016-01-28 09:36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댓글이 늦었죠. 좋은 아침입니다. ^^

cyrus 2016-01-2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이나 감상문을 쓰는 데 이렇게 써야 할 규칙이 없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알라딘 이웃님들의 의견들 덕분에 그 사실을 깨달았습죠. 에이바님의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글에 대한 불만족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

에이바 2016-01-28 09:39   좋아요 0 | URL
cyrus님 감사합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글이지만, 스스로 독자이기도 하기에 제 글엔 보통 유한 평을 주는데요.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요즘은 썩 마음에 차질 않아요.

AgalmA 2016-01-27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불안감 없이 모르는 편안함은 언제 갖게 될까요...

에이바 2016-01-28 09:43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그때 제 답변은 ˝모르니까 더 좋은 거예요˝ 였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갈마님의 불안을 덜만한 방법은 비우시는 것, 저는 반대로 좀 더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저야말로 자기 반성,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