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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절필했다 돌아온 백민석의 소설이 재출간되었습니다. 책소개는 작가의 한 마디로 대체합니다.
(…) 개정판의 작가 후기를 쓰려고 예전에 썼던 작가 후기 파일을 찾아보니, 이렇게 자진 삭제한 문장이 원본에 남아 있었다. “나는 문학이 이 사회의 진화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지간해선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사회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내가 왜 이런 문장을 삭제하고 ‘정제’된 작가 후기를 실었는지는 모르겠다. 과민하고 소심한 탓이라고 하자. 어쨌든, 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근 십오 년 만에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의 개정판을 낸다. 내 책도 나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인지, 내가 돌아오니 내 책도 돌아온다. 극소수의 책들만이 작가의 운명을 벗어나 긴 세월 동안 생명을 이어나간다. 나도 내 운명을 벗어난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 (…)
『노리스씨 기차를 갈아타다』, 『베를린이여 안녕』
톰 포드의 감각적인 영화 『싱글 맨』의 원작자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대표작 두 권입니다. 「베를린 이야기」 연작으로서 이야기들이 서로 맞물리며 1930년의 베를린을 재현했으며, 「타임」지의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되었습니다. 뮤지컬과 영화 『까바레』와 영화 『나는 카메라다』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싱글 맨』보다 앞선 시기의 이셔우드의 삶을 다룬 TV 영화로는 『Christopher and his kind』가 있습니다. 「닥터 후」시리즈가 방영될 시기 최연소, 최고령 닥터였던 맷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1930년대, 베를린에 머무르던 이셔우드의 이야기로 볼 만합니다.
『스윗 프랑세즈』
2004년 르노도상(기자들이 수여하는 문학상) 수상작. 스윗 프랑세즈(Suite francaise)는 ‘프랑스 조곡’이라는 뜻으로 바흐가 남긴 작품명이기도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이렌 네미로프스키가 남긴 기록을 고인의 딸이 발표했습니다. 이렌 네미로프스키는 30년대의 프랑수아즈 사강이라고 할 만한 인물로, 7개 국어에 능통하였던 문학가인데요. 당초 5부 1000페이지의 대작으로 구상된 이 작품은 작가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2부까지만 남아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1940년 나치의 광기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치부도 여지없이 드러냈으며,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녹여낸 작품이라는군요...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곧 개봉할텐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등 반가운 이름이 보입니다.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하는 프랑스 조곡입니다.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 the best bakery in Paris can't produce French Suites this nice
원래는 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여진 작품이지요. 알르망드 부분만...
『혼자 있기 좋은 날』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의 장편소설입니다. 수상당시 나이 만 23세, 어린 나이지만 조숙함이 느껴지는 심사평으로 반향이 일었다고 하는 군요. 보라나비 저작·번역상을 수상한 이영미 번역가의 번역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작가의 수상 소감 중 일부입니다.
이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저건 저렇게 되면 어떨까? 이런 맥없는 생각들을 종종 합니다. 대개는 의식하지 않고, 가끔은 의식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힘들어, 더 이상은 못하겠어’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벽을 맞닥뜨리는 일도 더 많아지겠지요. 도망치거나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배배 꼬인 샛길을 가는 중에 무언가 멋진 물건을 발견해 주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주운 물건을 들고 다시 벽으로 돌아가 그 벽을 당당히 마주하고 구멍을 뚫기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1월에는 흥미로운 신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5위 안에 올리지 못한 책들을 소개할게요. 먼저 현대문학 단편선에서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스』가 나왔습니다. 한국 소설로는 소설가 진보경의 첫 소설집인 『게스트 하우스』, 이청준 전집 26권 『흰옷』, 이승우 컬렉션 1권 『에리직톤의 초상』이 있습니다. 올해 문학동네작가상은 장강명 소설가가 받았죠.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최종심에 올랐던 진연주 작가의 『코케인』이 출간되었습니다. 프로필을 보고 놀란 작가 김엄지의 첫 번째 소설집인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도 나왔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요리소설, 『미식 예찬』은 일본이 자랑하는 요리 연구가 쓰지 시즈오를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일본 최대의 요리사 학교를 만든 쓰지가 미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철학을 발전시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북스피어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시대소설 『범죄자의 탄생』이 나왔고, 스티븐 킹이 스무 살 쯤 집필한 소설 『롱 워크』가 출간되었습니다. 줄거리는 『헝거 게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집필과 발표시기를 고려하면 4~50년 차이가 나지만요.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앤 타일러의 소설 『푸른 실타래』는 올해 맨 부커상 후보입니다. 닉 혼비의 신작 『벌거벗은 줄리엣』은 음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드러난 작품입니다. 또 절판되었던 뮈르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새 번역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이번엔 읽을 수 있기를...
2013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가 출간되었습니다. 형사 베르호벤, 추리소설로 유명한 대중작가의 문학상 수상작인데, 수상작 평균 판매고의 두 배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전후,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는 참전용사들의 이야기입니다. 파리 센 강 위, 『종이약국』에서는 병의 증상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데 그걸 읽으면 치유가 된다는군요. 독일, 미국 베스트셀러 1위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낸시 크레스의 SF 단편집 『허공에서 춤추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이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집이라 네뷸러 상, 휴고 상을 받은 뛰어난 작품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을유문화사에서 『휘페리온』으로 출간된 횔덜린의 소설이 새로운 번역,『그리스의 은자 히페리온』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책들을 다양한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