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 ~ 5. 미국 역사에 관한 두 가지 연구: 인디언과 노예제


3장의 '전쟁'을 겨우 넘겼더니 다음장도 만만치 않구나..


폭동이나 혁명등의 소규모 분쟁은 남성의 강간 욕망을 배출할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강간 실행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때에 발생한 강간 사례는 선전선동할 때만 이용가치가 있을 뿐이었다. 역사가들은 앞서 말했듯 대개의 강간 기록들을 '일탈'행위 정도로 여기거나 더 심하게는 사후에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포그롬(19~20세기 제정 러시아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시기에는 많은 유대인 여성들이 강간 피해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자를 '자신들의' 영토처럼 여겨온 남자들의 마음속에는 더럽혀진 여자라는 관념이 심리적 지배력을 뿌리 깊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태도는 유대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강간 후 이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p. 188~189)


실망스럽게도 희생양이 된 유대인 여성들에게 랍비들도..남편들도 힘이 되어주질 못했고 오히려 그들은 외면했다.

오랫동안 다른 민족 법 아래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랍비의 법은 강제력이 없었음에도 남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여성의 '더렵혀진' 이미지를 벗어내질 못했고 결국 이 여성들과 이혼한 경우가 많았다.


오래전부터 유대인 여성을 따라다닌 고삐 풀린 듯 음탕하다는 평판은 유대인 여성이 반복해서 집단적으로 강간당해온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유대인 여성이 음탕하다는 평판은 남성의 관점에서 섹스 판타지를 여성에게 투사한 결과 생긴 것이다. 이런 면에서 유대인 여성과 흑인 여성은 공통점을 가진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여성을 따라다니는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평판 역시 유대인 여성처럼 강제로 강간당한 빈도가 굉장히 높았던 역사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p. 189)                                                                                                        


더 나아가 남자들은 비겁했다. 

오래전부터 유대인 여성과 흑인 여성에게 따라붙은 딱지는 음탕하다는 것이었다. 

근거가 있다는 것도 말도 안되겠지만 이는 어떤 근거도 없었다.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적 판타지와 맞물려 지금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 시선인 남성 카르텔의 붕괴를 막기위해 강간 피해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관점의 결과물이었다.


역사의 매 막간마다 테러 작전이나 어떤 민족을 말살하자는 목표가 남성에게 강간 면허를 부여한다. 다른 남성의 소유물을 활발히 파괴하는 행위는 집단이 상대에게 품은 증오와 경멸을 상징하는 행위가 되었으며, 이때 다른 남성의 소유물이란 가구, 가축, 그리고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집단을 이룬 강간범들은 피해자가 '매력적'이든 아니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사실은 성적 매력이 강간 행위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집단 속에서 강간은 힘과 지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남성집단 내에서 서로 인정받기 위해 여성을 거의 무생물 같은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p.190)


앞서 3장에서도 봤지만 어떤 민족을 말살하자는 목표중에는 상대방 남성의 소유물을 철저히 파괴하고 강탈하는 것이 있으며 이는 곧 남성의 소유물으로 인식하고 있는 여성을 함부로 하겠다는 의미였고 당연히 상대방 여성이 '매력적'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수잔 브라운 밀러는 집단 속에서 강간은 힘과 지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이때 여성은 남성집단 내에서 서로 인정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강간에서 '힘과 지배'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흑인이 KKK의 특별한 표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며, 흑인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특별한 학대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백인 여성을 따로 분리한 후 그들만은 KKK의 테러를 면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성적 위협이 있었으며,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성적 억압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인식에 다다를 수 있다.

(p. 201)

 

수잔 브라운 밀러는 강간피해 사건을 인종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빈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백인이라서.. 흑인이라서..라기 보다 여성이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콩고 사례에서 강간은 복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으며, 그런 정당화를 가능케 한 것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고색창연한 이데올로기적 변명을 걷어내면, 그 복수란 실은 남자들끼리 되는대로 경박하게 좋은 시간을 보낸답시고 저질러온 수많은 강간 사건 중 하나일 뿐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 213)


4장의 콩고 독립 기념 기간에 벌어진 강간 사태에서 보듯, 적국 국민이 아닌 여성도 강간을 당했으며 자기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손 쉽고도 준비된 표적인 여성에게 압제자에 대한 복수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강간이 복수로 정당화된 이유는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5장에 보여지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백인남성은 인디언 여성에게, 또 인디언 남성들도 백인 여성에게 강간을 저질렀다, 

백인'남성'들은 선전선동에 백인'여성'의 피해담을 이용하기만 하였고

반대로 인디언의 경우는 인디언'여성'이 겪은 모욕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누구에게도 증언을 남기지도 않았고 누구도 증언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


인디언 전쟁 기간의 강간은 보복성 행위로서 이루어졌다면

노예제 하에서의 강간은 폭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의 '일부분'으로서 제도화된 범죄였다. 


노예제하에서 흑인 여성에게 강제된 성적 착취는 결코 즉흥적으로 벌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생산 기관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6세 내지 8세가 되면 바로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노예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의미했다.

(……)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는 수동적인 여성 신체 -저항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했다- 가 많을수록 노예를 소유한 백인 남성은 남자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반면, 흑인 남성의 역할 개념은 축소되고 일그러졌다.

(p. 237)



가장 아래쪽의 지위를 가졌던 흑인노예 여성은 노동자이자 재생산자로서 이중의 착취를 강요당했다.

흑인 노예 여성의 모든 부분이 백인 주인의 소유였다.


그렇다면 흑인 남성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남성 노예의 일과 후 성생활은 노예와 주인 모두에게 일종의 보상처럼 여겨졌으나, 과연 여성 노예에게도 그런 일반화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노예제 연구의 권위자인 케네스 M. 스탬프는 이렇게 썼다. "노예들은 주인의 우월한 힘에 굴복했으나 서로에게는 극도로 공격적으로 굴었다." 억압이란 늘 이런식이다. 억압받는 집단 내부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학대한다.

(p. 242)


애초 노예제와 관련된 법과 언어를 노예 소유자 계급이 만들었으니, 노예를 강간한다는 개념이 법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닥 놀랍지는 않다. 이 경우 노예는 재산일 뿐이기에 자기 재산을 강간한다는 개념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소유한 노예를 다른 백인 남자가 강간하는 것은 대농장 법의 관점에서는 그저'무단침입'으로 간주되었다. 한 사람이 소유한 노예를 다른 노예가 강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범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p. 250) 


주인의 성적 특권은 차고 넘쳐 농장에 고용된 낮은 계급의 백인 남자들까지 순서가 돌아갔고 일부 흑인 남자들도 콩고물을 얻었다. 그리고 노예제하의 법이란 노예를 위한 법도 아니었으니 최하층에 있는 흑인 노예여성을 향한 '강간'이란 것이 '강간'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주인-노예 관계는 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착 환상이다.

(…)

시와 춤으로 찬미되어온 동방 지배자의 하렘 이미지부터, 피부색이 옅은 매춘부에 대한 숨 가쁜 묘사, 싸구려 역사소설의 특정 장르에서 나타나는 관습, 노예제하의 강제 성관계와 제도화된 강간 미화까지 이 모든 것이 문화유산의 일부가 되었고, 이런 유산은 남성의 자아는 키워주고 여성의 자아는 무너뜨렸다.

(p. 260~261)


이 노예제하에 보여진 힘과 관련의 특정 이미지가 남성들의 왜곡된 성적 판타지화로 미화되어 지금까지 그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다. 


5장의 부록부분에는 계량경제사학자라는 분들께서 몸소 데이터를 이리저리 이용해 노예제에서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기막힌 주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연히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빈약했다.

현대로 오면서 학계에서 계량적 방법을 통한 분석 시도가 중요해졌다.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지만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리고 당시 데이터가 그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일까?  

통계 분석, 특히 오래된 데이터를 가지고 한 통계 분석은 신중히 해야되고 섣부른 결론을 내어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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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1-25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 같이 읽어주시니 너무 좋으네요.
게다가 저랑 읽는 속도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이 부분 읽으면서 뭐야, 전쟁 끝나도 힘드네... 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지금 노예를 강간하는 부분 읽고 있는데, 흑인여성 들은 강간을 발화하고 기록할 힘조차 없었죠. 사실 이 책에서 쉬운 부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전쟁만 넘기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더라고요. 휴..

이제 1월이 얼마 안남아서, 더 열심히 읽어보려 합니다! 힘내자구요!

단발머리 2019-01-25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막 이 부분 지나왔어요. 다락방님이랑 셋이서 진도가 거의 비슷하군요.

저는 진보적인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흑인 남성을 고소하는 걸 고민했던 사건들이 인상깊더라구요.
모든 경우에 남성들이 억압자인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피해자는 여성들이니까요.
저도 힘내서 읽어볼께요. 블랙겟타님 리뷰 또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