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자들의 밤
빅터 라발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를 엄청나게 사랑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을 두고 돌연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왜?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이를 죽이고 잠적한다. 도대체 왜?

얼핏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동시에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질문들이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한눈에 반해서 8년 만에 겨우 첫 데이트에 성공한 뒤, 오매불망 사랑해 마지않던 아내와 아이를 두고 어느 날 돌연 사라져 버리다니. 운명과도 같은 만남 뒤에 이어진 진정한 사랑을 거쳐, 마침내 남편으로 맞이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극적으로 태어난 아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아이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의 엄마가 죽여야만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고. 빅터 라발의 <엿보는 자들의 밤>은 사라져 버린 남자의 아들이자 자신의 아이를 죽인 여자의 남편인 아폴로, 주인공 아폴로가 사라져 버린 아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어떤 진실들에 관한 이야기다.

음, 다 읽고 난 뒤, 감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우선은 무척 재미있다. 소설 치고는 매우 두꺼운 데도 불구하고(600페이지), 줄거리가 흡입력 있고 문장이 매끄러워서 굉장히 잘 읽힌다. 인물들의 캐릭터도 살아있고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처음에 읽을 때는 엄청 흥분했다. 오오 이런 엄청난 소설을 또 발견했다!! 하고 기뻐 날뛸 뻔하다가..... 500페이지 넘어가면서 급 시무룩... 해져버렸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떡밥은 엄청나게 많이 뿌렸는데 회수가 잘 안 되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사실 떡밥들이 아예 회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름 다 회수를 하긴 하는데, 그걸 논리 정연하게, 납득 가능하게 수습하는 게 아니라 판타지스러운 어떤 설정으로 퉁쳐버린다. 그러니까 500페이지 정도까지는 현대물, 리얼 물이었다가 갑자기 비밀이 해결되는 지점부터 스티븐 킹의 환상소설 같은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르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저냥 받아들일 수도 있긴 한데, 이 전환이 도무지 부자연스럽다는 것도 문제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뭐 미국에서 여러 가지 상을 휩쓸고 엄청난 찬사를 많이 받았다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운 전환을 감수할 정도로 앞의 500페이지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읽으면서는 굉장히 즐거웠다. 이전에 읽었던 책,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베스트셀러들의 공통점이 설명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 또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었다. 전개가 빠르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느낄만한 낯설지만 친숙한 이야기가 세세하게 소개된다는 점, 주인공이 이방인이자 이단아로서의 기질을 갖춘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점, 등등.

결말에서 너무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 외에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도 있다. 싱글맘, 여성문제, 직장 내 성적 위계, 육아의 부담감, 현대 기술의 위협, 인종문제 등등등. 작가인 빅터 라발은 어느 날 페이스북에 습관적으로 올리던 아이 사진의 좋아요 리스트를 살펴보던 중,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백 명이 자기가 직접 알지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만약 그들 중 누군가가 혹 자신의 아이를 해하려고 할 때는 과연 어떡해야 하나 하는 공포심을 느끼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그러므로 소설은 인터넷과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위협을 굉장히 과장되게 그려내고 있는데, 그 부분도 좀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인터넷에 매우 능숙한 인물이 나오는데 뭐 해킹해서 남의 계좌에서 돈도 마음대로 넣었다 뺏다 하고 남의 집에 카메라도 자유자재로 설치하고 별 짓 다한다. 근데 그러면서도 엄청 가난뱅이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 참.... 뭐랄까. 아무튼.

그러나, 그렇게 구멍이 많고 뭔가 미흡한 구석들이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재미있는 소설임은 부정할 수 없다. 500페이지까지는 거의 뭐 우와 우와 하면서 봤을 정도니까. 그리고 또 하나, 그와 별개로 이 소설의 매우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 자신이 흑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주인공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흑인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뭐 흑인 캐릭터가 이제껏 한둘이었냐 그게 뭐가 흥미롭냐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읽으면서 인물들이 ‘흑인’이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 분위기, 행동, 생각, 말투, 등등. 그렇다고 백인으로 느껴진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아예 흑인이든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어떤 인종으로서의 색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그런 와중에 중간중간 흑인 어쩌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 걸 보고 아 맞다 이 사람 흑인이었지,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가 그동안 얼마나 흑인의 스테레오 타입에 젖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느꼈다. 그동안 어떤 전형성을 갖춘 흑인 캐릭터만 접하다가 막상 그렇지 않은 흑인을 보니 흑인이라는 게 쉽사리 연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의 인어공주 흑인 배우 캐스팅 논란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가 어떤 캐릭터나 이야기를 생각할 때 인종, 성별, 직업, 외모 등에 있어서 얼마나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특히나 그 정치적 올바름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강하게 이야기되었고, 그로 인해 비판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정치적 올바름이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거나, 예술의 지평을 좁힌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인어공주를 앞으로 영원히 흑인 배우만 해라, 제임스 본드는 앞으로 무조건 여성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겠으나, 여성 제임스 본드, 흑인 인어공주, 남성 신데렐라 등등, 얼마나 매혹적이고 재미있는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전복시키는 과정을 거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다양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 이 소설 역시 흑인 작가가 썼기에 이런 흑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런 ‘평범한’ 흑인, ‘평범한’ 아시아인 등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여간 뭐, 여러모로 흥미롭고 즐겁게 읽은 소설이지만 후반부 100페이지 때문에 뭐라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 그래도 앞으로 더 알아보고, 읽어보고 싶은 그런 작가였다. 스티븐 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대략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모리스 샌닥의 동화와, 북유럽 신화와, 천재 해커와, 아이 돌보기의 고됨과, 중고책 상인의 애환과, 빛나는 사랑이야기와 기타 등등. 여러 가지가 엄청나게 버무려진 즐거운 소설이었다. 그중 몇 가지는 좀 빼도 되지 싶은, 아니 빼는 게 더 나았지 싶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소설의 신기원, 고마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리와 분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3
윌리엄 포크너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벽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보고 싶다. “인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제각기의 매력으로 호감을 사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 닮아있다.”

문자 그대로, 남들의 사랑을 받는 이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각자 다른 매력을 뽐내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놀랄 만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인간관계에 미숙하여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있는 동시에, 시기와 질투심이 심하며, 센스가 없고 눈치가 부족한 사람들. 개인적인 호오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특징들이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정 부분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두기 마련인 어두운 면들이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한 두 명쯤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반에서, 혹은 학교에서 늘 혼자 다니던 아이들. 드러내 놓고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그런 저열한 의욕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아이들. 지저분하고, 촌스럽고, 주눅 들어 쭈뼛거리고, 무엇을 하든 서툴고, 늘 교실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아이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꾸는지 아무도 물어본 적 없이 그렇게 잊힌 아이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 <아일린>은 모두가 자라면서 한두 번쯤 스쳐 지나갔을 법한, 그러나 결코 눈여겨보거나, 깊게 생각한 적이 없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보스턴 외곽의 소년원에서 일하는 아일린은 겉으론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스스로를 비롯하여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똘똘 뭉쳐있는 인물이다. 유일한 식구인 아버지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곤 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이 일상인 알코올 중독자이다.

두 식구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 아일린은 살면서 단 한 명의 친구도 가져본 적 없으며, 이웃들은 아일린의 가정을 마을의 골칫거리로 여기고 기피한다.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교도소에서 루틴한 일을 하며 매일을 무력하게 보내는 아일린이 유일하게 기쁨을 느끼는 때는 바로 아버지를 버리고 탈출하는 공상을 하는 순간.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죽일 만큼 혐오하면서도 거기에서 끝내 도망치지 못한다.

나는 이제껏 책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비호감인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다. 모든 주인공이 영웅일 필요는 없지만(사실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기인인 경우보다 태생적으로 외톨이와 이단아의 성격을 띠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모두 나름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특정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반항적이지만 영리하다든지, 가난하지만 현명하다든지. 그러나 아일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단순히 소심하다거나, 내성적이라거나 하는 것을 넘어 비호감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그녀는 더럽고, 냄새가 나고, 기분 나쁘다. 사타구니가 가려워 속옷 안 쪽을 긁은 뒤 남몰래 냄새를 맡기도 하며, 그런 손으로 일부러 남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는 등 자잘하게 섬칫하고 악의적이며, 상점에서 립스틱이나 스타킹을 서슴없이 훔치는 비도덕적인 인간인 동시에,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을 보고 야한 망상을 하기도 하고, 같은 소년원에서 근무하는 교도관을 짝사랑하며 그에 대한 집요한 스토킹을 하는 소름 끼치는 여자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인물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더 깊은 몰입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토록 혐오스럽고 기분 나쁜 여자가 잘 살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은 그런 마음. 너무 비호감이어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그런 인물. 사람들 내면의 부정적인 요소만을 모아 극단화시킨 그런 캐릭터. 읽는 내내 어째서 이렇게까지 기분 나쁜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든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작가는 어쩌면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나를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비호감의 전형인 인물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 비록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혐오의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일일 뿐, 아마도 마음 깊이 진심으로 포용하고 알고 싶어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비참하지만 매력적인, 가난하지만 용감한,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게 현실의 인간들은 절대로 서로 상반된 요소로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는 사악하며 가난한 이는 선량하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인 오테사 모시페그는 어쩌면 일부러 이런 극단적이면서 현실적인 인물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정말로 우리가 잊고 지나갔을 법한, 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던 그런 사람들의 진짜 생각과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쭈뼛거리는지, 왜 그토록 이상하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구는지, 왜 그렇게 지저분하고 불쾌한 행동을 하는지. 왜 지독한 자기혐오와 간절한 열망들은 서로 맞닿아있는지.


이와 같이 알고 싶지 않았던 불쾌한 인물의 기분 나쁜 행동이 이어짐에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엄청난 집중력으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 덕분이다. 인물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며, 플롯은 매우 탄탄하다. 소설은 매일을 지루하고 비참하게 사는 아일린이 리베카라는 여성이 등장하며 일주일 동안 겪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무언가 보여줄 듯 보여줄 듯하면서 계속 꼬리를 빼는 통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결국 독자 입장에서는 책장을 덮지 못하고 끝내 페이지를 계속 넘길 수밖에 없고.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존재감이 없었던 여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해나가는 성장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비참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탈출소설이 될 수 있고, 뒤틀린 가족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찾는 이야기가 될 수도, 그도 아니면 그냥 기분 나쁜 여자의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그 모두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주인공 아일린에 비해 같이 등장하는 리베카란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많이 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뛰어난 문장 아래 인물의 매력과 특징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이 되지만, 아일린이 마지막에 행동하는 계기로 작동하는 리베카의 어떤 생각들.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가는 끝내 납득하기 어려웠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