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부희령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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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희령의 <무정에세이>는 말하자면 그런 책이다.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생각. 언젠가 스쳐지나간 순간들과 보았던 것과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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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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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0개가 없어서 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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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20여 년의 연구 끝에 찾아낸, 초대형 히트작의 12개 흥행 코드
제임스 W. 홀 지음, 임소연 옮김 / 위너스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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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것>(원제: YOU)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재미있다길래 보기 시작했다가 결국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여러 가지 설정상 구멍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특유의 오글거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본 사람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보다 보면 또 괜찮아지는 모양인 것 같기는 하다만. 드라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서점 직원인 주인공이 손님으로 온 여성에게 한눈에 반한 뒤 그녀를 몰래 스토킹 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구해주는 것이 골자이다. 스토커 주제에 참 별일이다. 이 드라마의 이상한 점에 관해서라면 그 외에도 할 말이 무궁무진하게 많지만 일단 여기서는 제쳐두고.

드라마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서점 고객들을 품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한 남성이 문학코너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드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흥, 난 저렇게 생긴 작자들을 잘 알지. 어차피 그건 눈속임이고 곧 댄 브라운 책 고를 거지? 민망하니까 위장용으로 다른 거랑 같이 사는 거잖아. 거 봐, 그럴 줄 알았어!!! 댄 브라운은 그러니까 다빈치 코드를 쓰신 그분이다. 아니 댄 브라운 읽으면 어디가 어때서! 하여간 한국이나 미국이나 책 께나 읽는다는 놈들이란....

주인공이 댄 브라운을 언급하는 까닭은 그가 누구나 아는 대중문학의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이다. 딱히 주인공만이 아니더라도 사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인식은 전 세계 어딜 가도 비슷하다. 만약 책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 가서 ㅇㅇㅇ이라든가, xxx이라든가, 혹은 ㅁㅁㅁ작가를 좋아한다고 밝힌다면 아마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실상 큰 인기를 끌고 많은 수익을 올리지만 ‘작품성’의 측면에서는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미술,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인데, 심지어는 그전까지는 인정을 받다가도 우연찮게 대중의 인기를 끌면 이후로는 폄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까 대중성과 작품성은 애초부터 같이 가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성이 없다고 가치가 없는 책인가 하면 그것은 아닌 말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8100만 부가 팔렸다. 2012년 기준 자료이므로 지금쯤이면 멱 법칙(ㅋㅋㅋ)에 의해 1억 부에 수렴할지도 모르겠다. 자그마치 1억 부다. 대한민국 인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책이라고 한들 이 정도쯤 되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특한 지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지점은 무엇일까?

플로리다 국제대학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던 제임스 홀은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베스트셀러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10여 년간의 연구 끝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12권 사이의 12가지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 공통점을 정리한 것이 바로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제임스 홀에 의하면 일반적인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은 ‘모체가 하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슷하다고 한다. 마치 같은 책을 세대가 바뀔 때마다 디테일만 바꿔서 고쳐 쓴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12권의 베스트셀러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앵무새 죽이기>, <인디언 여름>, <인형의 계곡>,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죠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붉은 10월호>,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대부>, <다빈치 코드>, <엑소시스트>, <죽음의 지대>.

물론 판매량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지만(언급된 순서는 판매량과는 관계없다), 한 번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의 경우 이후의 작품들 역시 멱 법칙(ㅋㅋㅋ)에 의해 계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므로 그러한 작품들은 제외하고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초기작 중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들만을 기준으로 추린 것이다. 판매량은 높았으나 다른 작품과 쌍둥이처럼 비슷한 소재와 줄거리를 가진 작품들 역시 배제되었다.

나 역시 위의 리스트 속 12권의 베스트셀러 대부분을 어린 시절에 읽었다. 책이 지금처럼 풍족하지도 않았던 시기에 변방의 국가에 사는 어린 소녀가 읽었을 정도이니 현지에서의 위상은 아마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작가들은 모두 재벌이 되었을 테고.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 이렇게 다시금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전개가 엄청나게 빠르다. 고전이나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인물의 내적 갈등에 치중하는 것과는 다르다. 인물 역시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거침이 없다. 말하자면 “다른 많은 책들에 등장하는 조심성 많고 내향적인 햄릿 타입의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소파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아 문제를 분석하고 토론하고 망설이고 그러다 또 흔들리는 것”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주인공의 일천한 배경에 비해 뛰어난 능력, 명확하고 알기 쉬운 플롯, 자극적인 소재, 거대한 스케일의 배경과 그 아래 소소한 이야기, 사람들이 꿈꾸는 원형으로서의 어떤 이상적인 세계의 제시와 그것의 파괴, 전문분야 관련 대단히 디테일한 묘사, 비밀스러운 결사와 연대, 두 가지의 대비되는 환경의 제시, 국가 신화에 대한 찬양 또는 비판(말하자면 신분이 상승하거나 몰락하는 스토리), 대개 반항아와 외톨이 또는 이단아인 주인공, 성적인 사건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인데, 실제 사례들과 적절하게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아주 유익하고 동시에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작가의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인해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뜯어보는 과정은 아주 재밌었고, 미국 출판업계의 동향과 대중문화 연구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다. 한국인이 미국 출판업계와 대중문화 동향을 알아 뭐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가 미국과 일본이므로 나와 같이 책과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책임에 분명하다.

동시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 작법서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다. 그러니까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보면 엄청나게 유용한 내용이라는 뜻이다. 좋은 작품, 재미있는 작품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구조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본능적으로 그러한 감을 타고난 천재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훈련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기른다. 실제로 제임스 홀과 함께 이 베스트셀러 연구를 진행했던 제자들 대부분이 소설가로 데뷔했고, 그중 많은 이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데니스 루헤인은 <셔터 아일랜드>와 <미스틱 리버> 등을 써서 훌륭한 장르소설이자 대중소설의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저자인 제임스 홀 역시 본업인 영문학 강의를 하며 틈틈이 소설을 끼적거렸으나 그 애매한 문학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이 연구 이후 깨달음(!)을 얻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여 장르 소설 집필 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른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될 정도의 좋은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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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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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스무 살 넘어서까지 요리를 전혀 못했다. 할 기회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일본에 혼자 살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당장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뭘 먹는단 말인가! 당시의 나는 밥솥에 밥을 어떻게 안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매일같이 밖에서 먹거나 편의점 음식만을 먹을 수도 없고. 인터넷을 찾아보자니 지금처럼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리책을 보고 만들려니..... 이건 뭐,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 투성이다. 어슷하게 썰라는 건 무슨 뜻인지,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하는 수 없이 국제전화로 엄마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이것저것 해봤던 기억이 난다. 쌀을 씻는 법부터 해서 김치전이며 김치찌개며 떡국 등등. 물론 비싼 국제전화비를 매번 낼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레시피를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 뒤로 같은 요리를 할 때면 노트를 참고하고, 요리를 하면서 새로 알게 된 정보나 팁이 있으면 메모를 추가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니 인터넷을 서핑하면 나오는 몇 안 되는 레시피를 보면서 동시에 요리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레시피를 노트에 옮겨 적고 주방에 가져와서 보면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쌓인 자료가 노트가 나중에 거의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생 최초의 요리책이었던 셈이다.

그때 만든 나름의 요리 레시피를 담은 노트는 귀국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이후 한참 동안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았으므로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다시 요리를 시작한 건 결혼하고 나서였는데, 이때는 이미 인터넷에 뒤져보면 온갖 자료가 나오던 시기였으므로 요리책이라고 할 만한 걸 거의 볼 일이 없었다. 요리를 할 때마다 그때 그때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참조했다.

처음에는 매우 편했지만 그렇게 매번 찾아서 하는 과정을 겪다 보니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색할 때마다 매번 다른 레시피가 등장하고, 그때마다 완성품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 문제집도 다양한 걸 푸는 것보다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던데, 매번 달라진 레시피는 매번 새로운 내용처럼 보였다. 결과론적으로 요리 실력 자체도 별반 늘지 않았다.

백종원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한다. 장모님이 인터넷에서 백종원 레시피라고 해서 뭔가를 만들어봤는데 사위가 해주던 맛이 안 난다고 하셨다는 것, 그래서 직접 찾아봤더니 자기의 레시피가 아니었다는 것. 생각해보니 나도 네이버에서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해서 볼 때마다 매번 조금씩 다른 내용을 보고 꽤 당황했던 것도 같다.

그럼 자주 쓰는 레시피를 저장해놓고 매번 그걸 보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들어올 법도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 법이다. 사람이 참으로 게으른 존재랍니다. 하여간 백종원 유튜브의 구독자가 3일 만에 150만에 이른 것을 보면 나와 같은 아쉬움을 가진 사람이 생각 외로 많았던 듯하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오면서 요리책이나 여행서적의 종말이 오는가 싶었으나 이런 걸 보면 제대로 만든 요리책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쓴 요리책 서평집이다. 책 소개에는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요리 에세이라고 쓰여 있지만 굳이 조금 더 파고들자면 ‘요리책 독서에세이’ 혹은 ‘요리책 실습 에세이’의 느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충이나 생각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기는 하다.

책에서 줄리언 반스는 자신이 이제껏 접한 적 있었던 다양한 요리책들을 실습의 경험과 함께 소개해주는데,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줄리언 반스 역시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고충을 겪었던 것 같다. 마치 오래전 내가 ‘어슷하게’, 또는 ‘한 입 크기’ 같은 애매한 서술로 고민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경험담들이 영국인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와 맞물려 참으로 재미있다.

사실 나는 요리를 아주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하는 까닭에 요리 그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서평집으로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요리사나 책들이 모두 처음 듣는 것인 데다가 (당연하다. 영국 것이니까) 줄리언 반스가 시도했던 메뉴들도 꽤나 낯선 요리들이었던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 요리책이나 한식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요리 에세이 혹은 요리책 서평집이 나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줄리언 반스는 요리책을 무려 100권 이상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책 전체를 보는 것보다는 책의 특정한 한두 페이지만 보는 경우가 많기에 그 많은 책을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는데도 끝까지 그 책들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간혹 필요한 부분만 찢어서 한꺼번에 보관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듣지만 책들의 그 페이지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고. 음.... 장서의 괴로움이 요리책에도 해당되는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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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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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데 무려 1년이 걸린 책이 있다. 다름 아닌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읽으려고 마음을 먹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오바마 대통령 추천도서라고 엄청나게 광고를 때리기에(물론 이런 ‘추천’ 등은 사실 대부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벼르고는 있었으나 사놓고도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실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책이 그야말로 거대하다. 들어보면 묵직한 것이 성경책만큼 두껍다. 이런 두꺼운 책은 보는 순간 일단 마음에 자동으로 장벽이 생긴다. 음.... 재밌을 것 같기는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니 우선 다른 책부터 보자!! 하게 되는 것.

더군다나 이 책은 1922년, 격동의 소비에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떠올리면 눈앞에 자동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닥터 지바고, 러브 오브 시베리아.... 등등, 멋지고, 장엄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훌륭한 작품들인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매우 무겁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분명 즐겁고 재밌으려고 읽는 것임에도 뭔가 자꾸 숙제하듯 미루게 되는 그럼 심경. 심지어 주인공인 로스토프 백작은 본래는 ‘청산’ 당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과거에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썼던 덕분에 목숨만은 부지하게 되는 인물이다. 소설은 그런 백작이 호텔에서 감금생활을 하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록이고. 러시아, 백작, 혁명, 계급, 감금, 게다가 72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 분명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동시에 부담감이 팍팍 드는 요소의 집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고로 계속 미루고 또 미루던 와중에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이러려고 책 샀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이럴 바에 그냥 얼른 해치워버리자는 생각으로 드디어 집어 든 것이다. 1년 만에. 그런데 웬걸, 읽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다르다. 그러니까 위에 언급한, 러시아, 백작, 혁명, 계급, 감금 등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어둡고, 암울하고, 진지하고, 무겁고, 장엄하고, 거대한 그런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예상외로 너무나 경쾌하고, 밝고, 명랑한 스토리인 것이다. 그렇게 일단 읽기 시작하니 두께에 비해서는 페이지가 상당히 빨리 넘어간다. 뭔가 다른 의미로 기대를 배반당한 느낌이라 아주 신선했다.

주인공인 로스토프 백작은 ‘백작’이라는 지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러시아의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혁명으로 매우 혼잡한 상황임을 알고 있음에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신념 아래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명망뿐만 아니라 부유한 재산까지 갖추고 있던 그가 머무는 곳은 당연히 당시 최고급 숙소였던 호텔 메트로폴의 스위트룸. 그러나 가문의 재산을 쓰며 유유자적 보내던 백작의 우아한 귀족 생활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 날 재판에 불려 간 백작은 과거에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쓴 공으로 사형은 면하지만 호텔 밖을 벗어나는 즉시 총살형에 처해진다는, 즉 ‘호텔 연금형’에 처해진다. 그것도 그간 머물렀던 스위트룸이 아니라 호텔 구석에 있는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작고 퀴퀴한 일명 ‘하인방’에서 말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일반적인 ‘감금 소설’ 등과 다르게, 백작은 방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호텔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식당, 이발소, 카페 등등등. 하기야, 방 안에서 있었던 일들만으로 700페이지를 써내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작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선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 비좁고 어두운 ‘하인방’을 성심껏 꾸미고, 손님들이 버려진 책들을 주워다 열심히 읽고, 호텔의 식당을 비롯한 각종 상업시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직원들과 친분을 쌓는다. 이처럼 온갖 등장인물과 다채로운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참으로 재미있다. ‘에피소드’라는 단어에 걸맞게끔 읽다 보면 일부의 사건들은 좀 빼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좀 지루한 챕터가 몇 군데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작은 사건들마저 후반부에서 실로 하나하나 꿰어지는 것을 보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플롯을 공들여서 정교하고 세밀하게 짰는가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점은 세계사를 잘 몰라서 그러려니 넘어간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 러시아 혁명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훨씬 더 흥미롭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존인물들과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이 꽤 많이 등장하며 당대의 시대상이 잘 드러난다. 독서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읽다 보면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므로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역사서나 사회과학서적은 읽지만 소설을 잘 보지 않는 사람들 역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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