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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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보고 싶다. “인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제각기의 매력으로 호감을 사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 닮아있다.”

문자 그대로, 남들의 사랑을 받는 이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각자 다른 매력을 뽐내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놀랄 만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인간관계에 미숙하여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있는 동시에, 시기와 질투심이 심하며, 센스가 없고 눈치가 부족한 사람들. 개인적인 호오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특징들이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정 부분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두기 마련인 어두운 면들이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한 두 명쯤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반에서, 혹은 학교에서 늘 혼자 다니던 아이들. 드러내 놓고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그런 저열한 의욕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아이들. 지저분하고, 촌스럽고, 주눅 들어 쭈뼛거리고, 무엇을 하든 서툴고, 늘 교실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아이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꾸는지 아무도 물어본 적 없이 그렇게 잊힌 아이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 <아일린>은 모두가 자라면서 한두 번쯤 스쳐 지나갔을 법한, 그러나 결코 눈여겨보거나, 깊게 생각한 적이 없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보스턴 외곽의 소년원에서 일하는 아일린은 겉으론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스스로를 비롯하여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똘똘 뭉쳐있는 인물이다. 유일한 식구인 아버지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곤 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이 일상인 알코올 중독자이다.

두 식구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 아일린은 살면서 단 한 명의 친구도 가져본 적 없으며, 이웃들은 아일린의 가정을 마을의 골칫거리로 여기고 기피한다.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교도소에서 루틴한 일을 하며 매일을 무력하게 보내는 아일린이 유일하게 기쁨을 느끼는 때는 바로 아버지를 버리고 탈출하는 공상을 하는 순간.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죽일 만큼 혐오하면서도 거기에서 끝내 도망치지 못한다.

나는 이제껏 책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비호감인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다. 모든 주인공이 영웅일 필요는 없지만(사실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기인인 경우보다 태생적으로 외톨이와 이단아의 성격을 띠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모두 나름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특정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반항적이지만 영리하다든지, 가난하지만 현명하다든지. 그러나 아일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단순히 소심하다거나, 내성적이라거나 하는 것을 넘어 비호감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그녀는 더럽고, 냄새가 나고, 기분 나쁘다. 사타구니가 가려워 속옷 안 쪽을 긁은 뒤 남몰래 냄새를 맡기도 하며, 그런 손으로 일부러 남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는 등 자잘하게 섬칫하고 악의적이며, 상점에서 립스틱이나 스타킹을 서슴없이 훔치는 비도덕적인 인간인 동시에,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을 보고 야한 망상을 하기도 하고, 같은 소년원에서 근무하는 교도관을 짝사랑하며 그에 대한 집요한 스토킹을 하는 소름 끼치는 여자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인물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더 깊은 몰입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토록 혐오스럽고 기분 나쁜 여자가 잘 살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은 그런 마음. 너무 비호감이어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그런 인물. 사람들 내면의 부정적인 요소만을 모아 극단화시킨 그런 캐릭터. 읽는 내내 어째서 이렇게까지 기분 나쁜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든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작가는 어쩌면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나를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비호감의 전형인 인물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 비록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혐오의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일일 뿐, 아마도 마음 깊이 진심으로 포용하고 알고 싶어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비참하지만 매력적인, 가난하지만 용감한,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게 현실의 인간들은 절대로 서로 상반된 요소로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는 사악하며 가난한 이는 선량하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인 오테사 모시페그는 어쩌면 일부러 이런 극단적이면서 현실적인 인물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정말로 우리가 잊고 지나갔을 법한, 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던 그런 사람들의 진짜 생각과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쭈뼛거리는지, 왜 그토록 이상하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구는지, 왜 그렇게 지저분하고 불쾌한 행동을 하는지. 왜 지독한 자기혐오와 간절한 열망들은 서로 맞닿아있는지.


이와 같이 알고 싶지 않았던 불쾌한 인물의 기분 나쁜 행동이 이어짐에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엄청난 집중력으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 덕분이다. 인물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며, 플롯은 매우 탄탄하다. 소설은 매일을 지루하고 비참하게 사는 아일린이 리베카라는 여성이 등장하며 일주일 동안 겪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무언가 보여줄 듯 보여줄 듯하면서 계속 꼬리를 빼는 통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결국 독자 입장에서는 책장을 덮지 못하고 끝내 페이지를 계속 넘길 수밖에 없고.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존재감이 없었던 여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해나가는 성장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비참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탈출소설이 될 수 있고, 뒤틀린 가족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찾는 이야기가 될 수도, 그도 아니면 그냥 기분 나쁜 여자의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그 모두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주인공 아일린에 비해 같이 등장하는 리베카란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많이 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뛰어난 문장 아래 인물의 매력과 특징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이 되지만, 아일린이 마지막에 행동하는 계기로 작동하는 리베카의 어떤 생각들.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가는 끝내 납득하기 어려웠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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