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에 읽었던 책 중에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가 있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심지어 추천까지 했고), 본래 장기간에 걸쳐 인물과 시대의 변화를 서술하는, 말하자면 대서사시 류의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볼 정도로 팬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페친 한 분께서 전작을 워낙 극찬하시는 것이다.

사실 전작이래 봤자 딱 하나밖에 없다. <우아한 연인>. 이는 에이모 토울스가 40대 후반에 쓴 데뷔작으로, 데뷔작임에도 마치 10번째 작품 같다는 호평을 들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에는 <모스크바의 신사>가 나왔다. 그러니까, 대기만성형인데다가 작품 하나 쓰는데 굉장히 오래 걸려서 팬들 복장 터지게 만드는 스타일의 작가 되시겠다.

워낙 재미있다 말씀하시니 호기심이 생겨서 책을 구하려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국내에 2013년에 출간되었던 <우아한 연인>은 이미 절판된 지 오래였다. 중고 서점을 샅샅이 뒤져봐도 매물이 없었다. 그나마 3만 원짜리 프리미엄을 붙여 팔고 있던 한 권마저 누가 채갔다. 그대로 남아있었어도 너무 비싸서 아마 안 샀을 테지만.

참고로 외서의 경우 대부분의 작품들이 절판된다. 로맹 가리나 체호프 등 대가도 마찬가지다. 안 유명한 작가야 안 팔리니 그렇다 치고, 꾸준히 수요가 나오는 작가들의 작품까지 절판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여 알아봤더니, 외서의 경우 5년 단위로 출판 계약을 맺는데,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여러모로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따라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베르나르 베르베르 급으로 어지간히 많이 팔리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절판을 시킨다고. 그러므로 관심 있는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재깍재깍 삽시다(?).

하는 수 없이 도서관에 있는 오래된 책을 빌려다 봤다. 다행히 아주 인기가 넘쳤던 작품은 아니라 청결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세월감과 자연스러운 손때 정도. 그것도 찜찜하지만..... 아으...

그렇게 읽고 난 감상은.... 음.....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만, 싫으신 분은 여기서 살포시 뒤로 가기를.

이 책은 크게 4부 정도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책 속에서는 겨울, 봄, 여름, 가을의 계절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처럼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 여성이 4명의 남자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 별로 새로운 남자가 한 명씩 등장하고 주인공은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승자는 당연히....... 가장 부자고 잘생긴 남자지 누구겠어요. 말하자면 ‘똑똑하고 예쁜 시골뜨기의 뉴욕 신랑감 찾기 프로젝트’, 즉 1930년대 버전 <섹스 앤 더 시티> 되시겠습니다. 보다 상세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프롤로그 : 나는 남편과 사진전을 감상하러 갔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 주인공은 바로 팅커 그레이. 팅커는 총 두 장의 사진이 찍혔는데, 한 장은 굉장히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빈곤해 보이는 모습이고, 다른 한 장은 세련되고 부유한 옷차림을 한 모습이다. 남편은 두 장의 사진을 보며 그래도 이 사람 성공했나 보군, 다행이네,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은 부유한 사진이 더 이전, 남루한 사진이 나중이다. 그러면서 나는 팅커와의 추억에 젖어든다.

챕터 1 : 세련된 뉴욕 청년 팅커 그레이와의 만남
시골에서 상경하여 여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나는 우연히 기숙사에서 이브 로스라는 부잣집 아가씨를 만난다. 누구나 돌아볼 만큼 아름다운 미모와 호탕한 성격을 지닌 이브는 나와 죽이 잘 맞아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일이 끝난 후 밤마다 뉴욕 시내를 쏘다니며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고 놀다가 우연히 재즈 바에서 팅커 그레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한눈에 봐도 부티가 좔좔 흐르는 팅커에게 나와 이브 둘 다 호감을 느끼지만 왠지 팅커는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고, 그 모습에 이브는 매우 질투심을 보인다. 하루는 팅커가 운전하는 차에 우리 셋이 함께 타고 가다 매우 큰 충돌 사고를 당한다. 별 부상이 없던 팅커와 나와 다르게 이브는 아주 크게 다치고 다리를 절게 되었으며 아름다웠던 얼굴은 마구 뭉개졌다. 팅커는 이브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그녀를 자기의 아파트에 데려와서 손수 간병하고자 한다. 어느 날 팅커는 이브를 간병하러 들른 나에게 키스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나는 이브에게 미안해서 그대로 도망치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브가 팅커와 함께 휴가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챕터 2 : 귀공자 월러스 월코트와의 만남
이브의 연락을 받고 팅커의 아파트로 향한 나는 팅커와 이브의 관계가 휴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다. 본래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같았던 두 사람은 이제 자연스러운 연인처럼 보인다. 애정표현도 서슴지 않을뿐더러 침실을 살짝 엿본 바에 의하면 동침도 하는 듯하다. 팅커는 나에게 그냥 그렇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는 괜찮다며 둘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준다. 그리고 그날의 파티에는 월러스 월코트라는 팅커의 지인도 와 있었는데, 그는 팅커와 사립학교 동창으로 매우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뉴욕 사교계에서 모든 사람이 노리는 특등급 신랑감인 그가 나에게 왠지 연락처를 물어본다. 이후 6개월간 연락이 없었던 월러스는 어느 날 갑자기 나를 가족의 사냥터로 초대한다. 월러스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지냈던 친구의 여동생을 짝사랑했지만 그녀가 이미 유부녀이므로 마음속으로만 연정을 품고 있는 상황이고, 나 역시 팅커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이런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괜찮은 연인관계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월러스가 전쟁에 참전한다고 밝힌다. 월러스는 전쟁에 참전하기 전 나에게 가족 파티의 초대장을 보낸다. 사교계의 여인들이라면 이곳에 오고 싶어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중요한 파티였다.

챕터 3 : 뉴욕 최고의 재벌 가문 자제 밸런타인과의 만남
파티에 참석한 나는 이브와 팅커도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 의해 팅커가 이브에게 청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차마 그 광경만은 보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그런데 그렇게 허둥대는 와중에 파티의 가장 주요한 책임자이자 최고 권력자인 어르신께서 아들에게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라고 명한다. 그 아들인 밸런타인은 나를 기차역이 아닌 숙소까지 데려다준다. 이러실 필요 없다는 말에 자기도 파티에 있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브와 팅커에 대해 잊어버리려 애쓰던 와중에 이브가 팅커의 청혼을 거절하고 그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팅커의 ‘진심’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이브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팅커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있는 별장으로 와줄 수 없느냐고 묻고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팅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우리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근사한 하룻밤을 보내지만 다음날 아침 팅커는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한 뒤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중학생 소녀가 아닌 쿨한 나는 알았다고 말한 뒤 뉴욕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중식당에서 우연히 팅커가 어떤 여성과 수상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앤 그레딘이라고 하는 그 여성은 오래전 팅커가 자신의 대모라고 밝혔던 재계의 거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대모가 아닌 스폰서였다. 나는 충격을 받고 뛰쳐나온 뒤 따라 나온 팅커의 뺨을 갈겨버린다. 그 이후 사과하러 찾아온 팅커에게 심한 말을 퍼붓는다.

챕터 4 : 철부지 도련님 디키와의 만남
나는 팅커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을 전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니던 디키를 통해 풀고자 한다. 나는 그렇게 팅커를 때리고 돌아오는 길에 디키의 아파트에 들른다. 거기서 고급진 욕조를 가리키며 이거 한 번 써볼까?라고 유혹한다. 나와 디키는 순식간에 옷을 벗어던지고 나는 두 다리로 디키의 허리를 감는다.... 이후 우리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알고 봤더니 디키 역시 엄청난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어느 날 디키는 내 마음에 깊은 심연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나는 팅커와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 디키는 조용히 위로를 건네며 팅커와 잘해보라고 말한다. 나는 문득 깨달음을 얻고 팅커를 찾아 나선다. 팅커는 예전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가난하지만 싱그러운 정신으로 살고 있었다. 나를 만난 팅커는 매우 반가워하고 우리는 오래된 회포를 풀고 묵은 앙금을 청산하며 그날 밤 뜨겁고 격렬한 섹스를 한다. 다음날 아침 팅커는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 “당신에게 정말 고마워요. 이제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볼게요.” 그 뒤로 나는 종종 팅커 생각을 했고, 부유한 청년들 여럿과 데이트를 했으며, 그러던 와중에 예전 월러스의 초대로 갔던 파티에서 만났던 밸런타인과 재회한다. 그가 나의 남편이 되었다.

정말이지 섹스 앤 더 시티 1930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정말이지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는 죄다 부자다! (물론 팅커 그레이의 경우 거짓된 부로 밝혀졌지만.) 부자일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잘생겼다. 팅커 그레이의 경우 세련미가 좔좔 넘치는 개츠비와 같은 인물이고, 월러스 월코트의 경우 차분하고 내성적인, 다소 숙맥 같지만 내면에 진지한 열정을 품은 미남이고, 밸런타인의 경우 차갑고 도시적이며 냉정한, 그러나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그런 냉미남이고, 디키는 귀엽고 철부지 같은 부잣집 막내 도련님 스타일의 미남이다.

심지어 이들은 부잣집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방탕’하다거나, ‘오만 방자’ 하지도 않고 성격마저 좋다. 그런 남자들이 주인공을 보고 모두 한눈에 반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 이 여자는 아주 눈에 띄는 미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물론 키가 크고 다리가 예쁘다고 나옴), 모든 남자들이 누구나 돌아볼 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주변 인물들 대신 그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그녀를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바로 바로 그녀의 ‘지성’ 때문이다. 남자들은 모두 보자마자 그녀의 ‘내면의 차분함’을 눈치채 버린다. 오오오오!

“처음 봤을 때부터 나한테는 당신 안의 차분함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책에 써놓았지만 실제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은. 내면의 고요함 같은 것. 그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죠. 저 여자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러다가 저건 후회가 없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 그게 나를 멈칫하게 했죠. 그래서 그걸 다시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내면의 차분함을 눈치채다니 대단한 걸. 하긴 이 주인공의 경우 변호사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할 때도 엄청난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오고, 불현듯 변호사 사무실을 그만두고 출판계로 전업하기로 결심한 뒤 출판사 사장을 말로 구워삶기도 하며, 온갖 일에서 지성을 뽐낸다. 물론 어떻게 뽐내는지 구체적으로는 그려지지 않고 주변인들이 그녀에게 감탄하는 장면만 나오지만. 심지어 그녀와 처음 만난 어떤 남자는 이 짧은 대화를 통해 그녀의 지성을 깨달아버리기도 한다!

“이름이 뭐예요?”
“캐서린이요.”
“캐시라고 불러도 되나요?”
“아뇨, 절대 아뇨.”
“당신은 참 똑똑한 여자군요.”

????????????? 대체 저 대화의 어디에서 지성을 느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인공의 매력에 굴복하는 것은 남자들 뿐만이 아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주인공에게 사로잡힌다. 부잣집 가문의 여신 같은 외모의 하숙집 룸메이트 이브, 월러스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대상이었던 패기 넘치고 영리하며 당당한 여성 빗시, 팅커 그레이의 스폰서였던 앤 그레딘까지 모두 주인공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앤 그레딘은 자신에 대한 주인공의 적의를 알면서도 그녀에게 찾아와 아파트 열쇠를 건네기까지 한다. 팅커가 떠나고 난 빈 집에 들어와서 살라며.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깊고 진한 키스를 한다. 정말이지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인가 보다. 걸어 다니면 온갖 사람들, 그것도 부자들만 다가와서 달라붙으니. 걸어 다니는 부자 자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녀를 향한 이 모든 부자들의 사랑이 굉장히 맹목적이고 관대하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앤 그레딘은 아파트를 제시하며, 나중에 알고 보니 몰래 직장까지 주선하고, 전쟁 때 죽은 주인공의 짧고 가벼운 연인 월러스는 유언장을 작성하여 신탁기금까지 남겨준다. 게다가 월러스와 디키는 주인공이 이전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질투나 불쾌한 감정은커녕 너무도 관대하게 그녀의 과거를 포용해준다.

“우리가 자신과 완벽히 맞는 사람하고만 사랑에 빠진다면, 애당초 사랑을 둘러싸고 그런 소동이 벌어지지도 않을 거야.” 와우!!

소설의 챕터 1에 해당하는 팅커와의 만남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서로 마음이 있지만 불가피한 이유로 다가서지 못하는 두 사람의 아련한 운명에 나 역시 애틋한 감정을 느낄 뻔하였으나, 읽다 보니 이 무슨..... 팅커 – 월러스 – 밸런타인 – 디키 모두 아는 사이인데, 연인의 친구와 연인이 된다는 고리타분한 지적은 당연히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좀...... 가십걸이나 디오씨 같은 막장 드라마가 생각보다는 막장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주인공이다. 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겉으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뒤로는 누구보다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이다. 어떠한 욕망에도 초연한 것처럼 행동하고, 남자에도 관심 없는 것처럼 굴지만 알고 보면 할 것 다 하고 있다. 작가인 에이모 토울스 역시 이런 주인공을 매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심으로 그녀가 쿨하고, 현명하고, 차분하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었다. 할 것 다 하는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겉으로는 그런 가치에 초연한 척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부자만 골라 만나는 이유를 가정교육을 통해 ‘깊이 있게 몸에 밴 배려’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질 않나 돈은 주변인들이 다 대주기에 별로 생활이 궁핍하지도 않으면서 변호사 비서 대신 출판 편집자가 된 것을 두고 돈 대신 진정성을 택했다고 셀프 위로를 하질 않나. 그렇게 부와 명예와 인기와 욕망 등에 초연한 것처럼 행동하는데도 그런 것들이 계속 그녀를 줄줄이 따라다닌다. 거기에 착한 척까지 잃을 수 없어서 이브와 팅커를 두고서는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이브를 위해 진심으로 기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 주인공의 가장 좋아하는 인생 소설이 <월든>인 것을 보면 알 법도 하다. 월든은 참고로 숲에서 혼자 속세를 등지고 수도승처럼 생활하는 수기인데, 끊임없이 이 <월든>을 찬양하면서 실제로 하는 행태는.... 아오.... 아오..... 아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이토 미나코 님의 말을 빌면 ‘코발트 문고’ (소녀 만화의 활자판)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이 성인판 코발트 문고에 해당하는 작품들의 특징은, 플롯은 할리퀸이나 순정만화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유려한 문체와 엄청난 분량을 통해 책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을 준다는 것이다. 이 <우아한 연인>도 마찬가지고.

물론 이런 플롯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주 재미있다. 심지어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문체를 읽다 보면 매우 고급스럽고 아련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받게 된다. 비록 그 내용은 부잣집 자제들이 모여 재즈 음악 듣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사냥하고 요트 타는 게 전부라고 할 지라도.

신기한 것은 이 작품의 작가가 남성이라는 점이다.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굉장히 여성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체도 그렇고, 섬세한 심리묘사도 그렇고, 뭐랄까 전반적으로 코발트 문고 풍이라는 점이 그렇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일반화가 아니라 하나의 특징으로서 ‘masculine’ 또는 ‘feminine’으로 구분하자면, 작가 자체가 아마도 확연하게 feminine 한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분명 섹스 앤 더 시티 광팬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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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20-02-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판 < 캔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