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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불필요한 계산을 하면 나는 인생의 어떤 때에 500여 시간을 일본 드라마를 보는데 썼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일드를 보았던 500여 시간은 정확하게 인생의 변곡점, 바닥을 칠 무렵과 겹친다. 본격적으로 시청했던 것은 직장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취미’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싶어 ‘일본’이라든지 ‘작품성’이라는 수식을 데려왔지만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어떤 수식을 부여해도 '일'에 가려지는 '나'로서 겪는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저녁마다 보았던 일드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 개인이 입는 피로를 깊은 생각 없이 날려 주는 드링크였다. 언제적의 3S인가. 장려하지 않아도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감정'을 쉽게, 효과적으로 누그릴 줄 알았으니. 요새는 외국의 것을 데려와 보는 수고도 없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88>을 재미있게 보았다.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택이와 덕선이가 노는 장소를 두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에 완전히 빠질 수는 없었는데, 드라마를 보는 데 오백 시간을 써도, 매주 택과 덕선이의 공간을 마련해 두어서 그때마다 웃거나 울거나 해도, 나의 ‘감정’이 과연 내게 의해 움직이는 것인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일회일비가 기사로 뜨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간에 한 가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대화한다는 것은 감동 끝에도 역시 이상했다. 현실로 돌아와 내일을 향해 눕는 등이 자주 겸연쩍었다. 드라마를 보는 ‘사태’를 해석할 머리는 없었으나 몰입하는 것엔 의구심이 들었으니. 전후가 바뀌어야 하는가. <덕후감>같은 책을 기다렸다.
<덕후감>은 일명 '빠순이'로 불렸던 소녀들의 판타지로 시작해 ‘이벤트 데이’, ‘박재범 사태’등을 읽으며 연예인 소속3사에 대한 분석. <비정상회담>, <캠퍼스 드라마>를 훑고 식지 않는 감자인 <무한도전>등의 미래를 들여다 본다. 이들을 한 줄로 꾀는 것은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단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건축학개론>에 대한 해석이었는데, '창작'이란 '비평'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자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꼬투리 잡으며 영화를 읽는다. 왜 수업이름이 <건축학개론인>가(대학에는 '~개론'이라는 이름의 수업은 잘 없다). 전공 과목이 2학기에 개설되는가. 정황적 공간은 연세대인 것 같은데 캠퍼스는 왜 경희대인가. 등등. 그리고는 마침내 이 징후들을 ‘1996년 봄여름의 연세대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른바 X세대의 주체성을 어떻게 재현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글을 열어 재낀다. 정말이지 탁월한 시선이었다.
1996년 봄여름의 연세대는 학생운동의 내리막길이었다는 점, 1990년대 초는 동구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좌표가 상실된 시기였으며 전두환과 노태우가 구속된 직후였다는 점, 그로인해 1996년은 젊은이들은 표적을 잃어버린 시기이며, 정치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이 봉쇄되던 시기라는 것. 그리고 그해는 다가올 1997년, 외환위기를 앞두고 있었던 시기였기도 했다.
그때를 살았던 청춘은 장성했고, 시절을 지나 나온 영화를 편하게 첫사랑이나 간지러웠던 캠퍼스에 머리를 뉘이면 되었다. 그러나 이 맥락을 인지한 후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수지’외에 무엇을 또 기억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책을 덮으며 나는 다른 문제를 마주한다, 시청률 30%에 육박한, 이제 그것을 빼놓고 윤기 있는 대화가 어려운 <태양의 후예>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송중기에게 취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홀리는 것을 넘어 팽팽하게 드라마를 둘러싼 징후를 취할 수 있겠는가. 덕후감이 알려준 덕후의 자세는 '더' 보는 자이다. 한 끗차 아닌가. 그저 '보는 자'와 '더 보는 자'의 간극이란.
우리가 잘 아는 프로그램과 인물의 분석으로 효과적인 간증의 <덕후감>은 약간의 갈증을 남긴다. 텔레비전 그 자체의 이해를 도모할 도서를 함께 읽으면 어떨까.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스>. 텔레비전의 사회적 삶을 생각해 보았는지. 그것은 "폐쇄회로 속에 운동을 채널링 하면 이루어지며, 상품의 판매에만 봉사하도록 사물의 운동을 제한"한다. 텔레비전이 공공 담론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에도 긴급하다고 말하는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의 저서. <덕후감>이 다소 골방에서의 진취적인 사고를 떠오르게 한다면,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스>는 대중문화, 텔레비전을 진원 삼아 미디어, 정치등 담론의 넓은 운동장을 확보한다. 9시, 하면 끝나버리는 일요일의 짧은 낙차여, 개그콘서트로 지는 주말의 낙이여. 오늘 밤에도 볼 것이 스치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보는 것. 덕후가 알려준 TV를 '전복'하는 자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