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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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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당신이 읽을 차례-기 드 모파상





믿음직스러운 선택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내가 알거나당신이 알거나그래서 우리가 알거나한 스푼 맛에 대한 만족이 그렇지 않나. 31개의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고 그들은 외치지만 어떤가, (입안에서 바스락거리며 터지는 외계의 맛은 다신 먹고 싶지 않다)먹는 것은 늘 정해져 있다고르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무엇보다 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물론 다 알 필요도 없지만) 유구한 맛이라면 나 역시 한 번쯤 알고 싶어진다. 박힌 글씨와 없는 여백을 모두 읽어내야 하는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이 다른 활동에 비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르고 싶다하품이 따라오는 것 같지만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아온 이들의 시간의 단위가 한 세기로 접힌다.

 

무려 톨스토이와 니체가 극찬한(!) 이 작가의 단편집은 순서에 상관없이 손 가는 대로 어디를 펼쳐도 만족이다. 63개의 단편을 수록했고, 803페이지의 두께를 기록했으며 책의 제목은 작가의 이름이 되어 '기 드 모파상'이다그 유명한 <목걸이>로 한 때 여느 유년 깊은 한숨을 불러일으켰던 이충격적인 결말에 모파상의 소설을 약간 '공포'스럽다고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위트와 풍자가 전부라는 듯사랑연애가족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에서도 어느 한 문장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이런 성실성에 탄복하면 그것 말고는 쓸 것이 없었다는 듯 태연한 마침표로 답하는데읽다보면 이 사람 얼굴이 궁금해진다대부분 다섯 장을 넘지 않는 간결한 분량에도 백 수십년 전 프랑스를 속속 그려내는데 망설임이 없다내용이 길다고 무엇을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안다.


<비곗덩어리>는 단편집의 표제작인 동시에, 모파상을 확실히 자리매김한 작품이라고 한다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넘는 통찰을 갖고 있다배경은 전쟁이 차분해진 시기주민들은 프랑스를 점령한 프로이센 군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무렵으로그 중에는 좀 더 담대하게 프랑스군이 점령한 지방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 마차에 탄 10명의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인물 소개부터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여섯은 계층이 다르나 연금을 받는 부유층두 명은 수녀한 명의 남자는 공화주의자마지막 여자는 매춘부로 인물 소개에서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며 비곗덩어리로 소개된다. 9명이 이름과 한 명의 별명은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남녀 사이에서는 파벌(?)을 형성한 대화가 시작된다.


우선 수녀들은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세계에 함몰하며 세 부인들은 계층이 다름에도 매춘부 덕분에 친구가 되고세 남자 역시 공화당원을 보고 돈으로 인해 형제와 같은 공감대를 느낀다이들은 상황보다 '공간'으로 기울여 설명되는 곳에서 행동이 달라지는 데 이것을 유념해 읽을 필요가 있다. 1) 외부가 아직 전쟁중이라는 전체적인 상황에서 2) 마차라는 격리된 공간이곳에서 계급이 높고 낮음과 인물의 고귀함과 비천함부의 유무는 간단하며 심각한 '배고픔'의 문제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져 버린다그리고 우습게도 비곗덩어리가 갖고 있는 먹을 것으로 구원 받는데이 자존심 상하는 고마움은 잠시, 3) 독일인 장교가 점령한 마을의 호텔에 마차가 서면서(공간의 이동이야기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사건은 좀더 복합적으로 던져지며 인물들의 양상 또한 두드러지게 달라진다.

 

마차에서 내리는 순서는 인물 소개만큼 기억할 만 하다. 적국의 마중에 가장 먼저 순종적으로 두 수녀가 내리고 백작-공장주-상인부부 순으로 별 저항 없이 이어진다문 앞에 가장 가까웠으나 가장 마지막에 비곗덩어리와 공화주의자가 화를 참으며 내린다그 날 밤독일군 장교가 비곗덩어리에게 할 말이 있다며 말을 전해 오는데이때 처음으로 비곗덩어리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엘리자베트 루세 ''으로진중하게 전해져 온 말은 '자는 것'의 문제여서 비곗덩어리는 화를 내며 거절한다독일인 장교는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말을 매지 못하게 하고그 때문에 마차는 마을을 떠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 먼 자들의 도시>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모습은 다만 소설 속 상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인류의 샘플이 되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갖는 괴로운 배경은 인간의 다양한 유형들을 기꺼이 드러나게 했다이 세계에서는 살아야 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운그야말로 본능을 갑칠한 인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소설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만나고 부딪히면서도 과연 희망이라는 것을 도출해 낼 수 있느냐아니 그전에 희망이 있느냐 는 확신 없는 물음을 던졌다메시지는 다르겠으나 문제에 다가서는 방식은 비슷한 것으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꼽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70억을 넘는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해 지표를 설명한다. 이 책이 회자 되었던 이유는 백 명이라는 상상할 수 있는 숫자를 불러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들을 비로소 상상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마차의 '열 명역시 생각해 볼 만 한 인물의 조합이다마차에 올랐던 열 명과 마차에 타지 못한 일반인들의 모습은 당시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한다일반인(농부)은 마차가 내린 호텔에서 두드러지게 나온다땅에 매이고가족에 매이고프로이센 군인들에 매였을 그들은 어디를 떠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이 적군과 동화되어 그들의 시중을 든다그들에게는 누구의 통치가 아니라 생활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그러나

 

비곗덩어리의 마지막은 몇 페이지를 남겨 놓지 않는다상황에 따라 바뀌는 인물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마지막을 덮으면 웃음기가 싹 가신다모파상은 어떤 인물이 대표하는 성향 하나를 찬미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참여와 윤리를 외치는 공화주의자는 상황을 비웃거나 아는 체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라마르세예즈'를 불러 부유층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뿐이다신앙으로 투철한 수녀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으로 자신을 모면하고 방패삼는다자신의 이익에 맞춰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며 언제어디서나 눈을 쉽게 감는다자신들의 배고픔을 구원했던 비곗덩어리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부유층그들의 아메바적인 뇌새김과 뻔뻔함에는 손발을 모아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그러나 쓰고 가감 없는 비판 속에 나는 과연 어떤 인물일 것인가하는 물음이 따라와야 한다. 대답은 마찻발이 굵게 눈을 가로질러 패이는 소리에 잦아든다.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뭐라고 부를 것인가세어지지 않는 것은 소리가 없다는 말일지 모른다내지 않는 것인가없는 것인가 다시 묻는다.


'비곗덩어리'는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기고 62개의 다른 이야기에 바통을 넘긴다비곗덩어리라고 하면 역시 김수영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야경꾼에게...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라고 이전의 말을 다시 옮겨 적는다이런 물음이 여기 있어 알린다서둘러 나가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미 단편만큼 긴 얘기라니. 그러니 모파상, 다음은 당신이 읽을 차례다. <비곗덩어리로> 옹졸한 분노를 이야기하며 끝을 내달렸지만 단편들 중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도 많고 짧아서 읽기도 좋다. 그 중에 '봄'을 추천한다. "선생, 사랑을 조심하세요. 사랑이 당신을 찌르고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 사람들이 코가 얼어붙은 행인에게 경고하듯 선생에게 이것을 알릴 의무가 있어요" 가을이 다 왔으니 새겨들을만하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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