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현실엔 이 책이 있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은 한 줄의 글로 충분하다고 한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제목 한 줄에 내 마음이 덜컹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겁부터 났다. 임신, 출산, 육아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라도 무조건 내 일을 가져야 한다고 여겼던 가치관도 무너진 지 오래다. 하지만 또 언제까지나 누구의 엄마로만 살 수도 없다. 흔들리는 나를 이 책이 잡아줄 것 같은 희망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차례를 빌리자면 한 명의 인간, 여자로서의 삶이 엄마로 바뀌는 과정, 그리고 오직 엄마에서 엄마이면서도 한 명의 사람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실-분열-깨달음-변화-통합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마치 종교인이 해탈해나가는 과정같기도 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한 행복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한 것 같다.
상실 - 엄마가 되고 잃은 것
뿌리깊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자동으로 이런 모성을 내면화했다. ‘이건 힘든 게 아니야. 임신했는데 행복해야지. 힘들어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내 자신을 다그쳤다. 임신을 힘들어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는 나 자신의 감정들을 스스로 부인하며, 나를 ‘상실’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22)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이를 가졌으면 무조건 아이 위주로 맞추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모든 행위는 모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 비난을 받는다. 그렇다고 아이가 어찌되던 너만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엄마도 힘들 수 있고, 그것이 정상임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가치관,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말이다.
결혼한 여성이면 남편에게 맞추는 것이 당연하며, 엄마가 되었으니 개인의 욕구쯤은 내려놓는 게 ‘정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화낼 수 없었다.(44)
남편의 이직으로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하게 된 작가는 완전한 독박육아로 우울증이 생겨 온 가족이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불안이 높은 상태였고, 엄마는 우울증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지극히 정상인 건강한 상태였다. 일반적인 가정의 경우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밖에 나가서 일하느라 고생하고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만 일단 집을 나가면 육아에 대한 스위치는 꺼지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하루종일 육아하느라 힘들다고 하면 나도 똑같이 힘들다고 하겠지. 책을 읽으며 왠지 감정이 격해진다.
휴~ 다시 감정을 추스리고 처방전을 살펴보자.
정신과 의사가 내린 처방전은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고.
분열 - 내가 아닌 나로 산다는 것
엄마가 된 한 여성의 희생과 헌신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이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은 그 여성의 성장 가능성으로 짓밟는 일이된다. 한 사람이 자심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일은 자기 자신의 성취는 물론, 가정과 사회에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이기적인 일이 될 수 있겠는가. (91)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나처럼 살지마라. 너는 집안일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는 말일 것이다. 비단 내 또래 뿐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딸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살림에 육아에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딸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딸이 결혼하는 순간 대부분 다시 그 가부장적인 굴레에 빠져 다시 엄마처럼 사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진정으로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일을 위해 산다면 이기적인 엄마, 아내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정말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일이아닌가.
그렇게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면서 가치관과 현실 사이에서 점차 분열되어 간다고 한다.
깨달음 - 시야를 넓히면 보이는 것
이곳에서는 나처럼 가족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돌봄 행위를 대신해주는 사람을 ‘인에이블러’라고 표현했다. 인에이블러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조력자’나 ‘도와주는 사람’ 정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개념 안에는 상대방을 도와준다고 생각 하지만 실은 망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인에이블러는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하고 결국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행동에는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의도가 담겨있다.(137)
그런것 같다. 우리네 아버지들도 처음부터 딱히 어머니에게 이렇게 해달라 요구한 적은 없
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들이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본인이 해야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까지도 고통을 감내하며 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몸이 부서저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가족 모임을 해도 늘 힘들게 갈비찜이니 잡채니, 김치 담그는 것까지도 엄마들이 혼자서 낑낑대고 하신다. 뻔히 몸이 아프신 것이 보이는데도, 자식들이 필요없다, 대충 먹자, 간단히 하자 하는데도 이제는 그리 안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음식에 매달리신다. 어쩔 때는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짜증이 앞서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누군가의 강요 때문이라고 하기도 힘들 것이다.
“사람이 자기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면 나답게 살 수가 없대. 워크숍에서 알게 됐는데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평등’이야. 이게 우리 관계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난 이 결혼 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질 것 같아.”(148)
작가는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겪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가장 나 다운 것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부수적인 존재가 아닌 오로지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평등을 회복하려 한다. 나의 경우에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굳이 나다운 것을 찾지 않아도 나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났던 것 같다. 누군가의 아내이지만,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몫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정말 미친듯이 찾아야 한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자아정체성을 찾아 미친듯이 방황하는 것처럼.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가 중요하기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가정에서, 이 사회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밤 늦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변화 - 갈등을 마주해서 얻게 된 것
‘고맙다’는 한 단어는 백 마디의 지시와 잔소리보다 우리를 더욱 변화시켰다. 긍정적인 피드백에 남편은 더 적극적으로 가사에 임했다. 나는 남편의 노력을 진심으로 ‘고맙게’여기게 됐다. 나 역시 더욱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내가 제공하는 돌봄노동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주자 주부로써의 가치를 인정받는듯해 집안일을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됐다.(168)
흔히 남편을 조종하는 것은 백 번의 잔소리가 아니라 한 번의 칭찬이라고 한다. 특히 남자들이 칭찬에 약하다고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칭찬을 더 좋아할 것이다. 나 역시 남편에게 음식을 정말 잘한다. 맛있다. 내가 하면 밥맛이 없게 된다. 자기가 밥을 하면 유난히 찰지고 맛있네. 등등 각종 칭찬을 자주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래서 출근 전에도 밥과 국을 다 해놓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 글을 읽으니 더욱 자주 여러 분야에 칭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는 말 뿐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 습관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는 식이었고, 남편은 통보하는 식이었다. 가사나 육아에 있어서는 남편은 수동적인 언어로 도와줄께, 해줄께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습관이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에 의식적으로 주체적인 말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고, 남편 역시 가사에 있어서 도와준다는 것이 아닌 그냥 할게식으로 변화하면서 가부장적인 사고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통합 - ‘나 답게’ 산다는 것
남편의 ‘노는 사람’이란 표현에 이제야 반박할 말을 찾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내고 있는 우리 중에 ‘노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바꿔가야 할 것은 ‘일’에 대한 편협한 생각이다!”(215)
꼭 직장에 소속되어 있어야 일을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부분이 완전 자동화가 되고, 알파고가 대신해주는 사회에서 앞으로는 집에서 혼자 일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가 이미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키는 일만 하던 내가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엄마, 이젠 그만 좀 희생하세요. 엄마가 그렇게 희생만 하고 살면 그런 모습을 마음에 담은 자식들은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린다고요. (226)
책을 읽기 전부터도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는데 작가도 이 책과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자신의 친정 엄마에게 쓴 편지글 형식의 글이 있는데 어쩌면 위의 말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엄마가 희생하는 것은 싫으면서도 나의 꿈을 위해서는 또 그 엄마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현실. 분노와 죄책감의 모순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삶은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몇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다.
첫째, 어떤 순간에도 ‘자기 존중’을 내려놓지 말 것
둘째,동등한 돌봄과 솔직함에서 시작할 것
셋째, 부당한 죄책감에 저항할 것
이 책에는 그 동안 그냥 이 사회에게 그래, 가부장적이 사회 시스템이 다 그렇지하며 넘겼던 모든 것을 여러 다른 책이나 이론을 통해 명확하게 원인을 파악해 주고 있다. 그래서 더욱 모든 내용이 분명하게 와닿았다. 처음 단순히 임신이 힘들어, 출산, 육아, 집안일까지 너무 힘들다는 투정인 줄만 알았던 모든 것이 다 너무나 분명한 사회적인 이유가 있었고, 또 그것인 가정 안에서 충분히 해결해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나에게 큰 결실이었다.
책을 덮고 중간중간 메모한 내용을 보니 이전에 읽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이 있다. 아마 지금 나의 상황과 비슷해서 더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아직까지 아이를 맡기고 일하러 나갈 용기가 없어 아직 여기 머물러 있는 것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시 크게뛰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시기라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일 위해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여자, 엄마가 온전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