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간 제목에서 혹등고래를 보았다. 대만 작가 류커샹이 지은 『혹등고래 모모의 여행』(더숲)이다. 타이베이도서전 대상 수상작이다. 모모는 평범한 혹등고래이지만 다른 여느 고래들과는 달리 일방적인 삶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특히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척은 여기서 그만. ^^;)

내가 알고 있는, 고래에 대한 지식 몇 가지. 물고기처럼 유선형 몸통을 가졌지만, 지구 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동물. 포유동물로, 암컷의 자궁에서 새끼를 키우고 낳는다. 바다에서 살지만 폐로 호흡한다. 콧구멍으로 물을 내뿜는다. (사실은, 호흡으로 체내에 있던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공기에 닿아 갑자기 팽창되면서 수증기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상당히 수명이 긴 편이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오래 사는 종류도 있다.

간혹 떼죽음 당한 고래들이 바닷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갑작스런 고래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최근 어선에 장착된 음파탐지기에서 만들어지는 수중소음이 고래의 장기에 내상을 입히기 때문에 죽음의 원인이 된다고. 바다 속에서 빛은 굴절과 왜곡이 발생한다. 음향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음파는 공기보다 몇 배 빠르게 전달된다. 이런 음파의 성질을 이용하는 음파탐지기는 수중에서 음파를 발사하고 되돌아오는 반응을 해석하여 물체를 식별한다. 음파탐지기는 현대전의 전략무기 중 하나인 잠수함에서 이미 핵심인데다, 매일같이 만선을 꿈꾸는 소형 고기잡이 배에서조차 어군탐지기라는 이름으로 필수가 되다시피 하였다. 인간의 생존을 넘어선, 분수를 모르는 탐욕이 바닷속 생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고래들끼리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 그 소리에 반복적인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에 ‘고래의 노래’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리를 내는 방법은 고래 종에 따라 다르다. 돌고래의 초음파 음역은 코메디 소재로도 쓰여질 정도로 우리한테 익숙해진 반면 혹등고래의 노래는 다소 생소하다. 자연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처음 접한 혹등고래의 노래는 악기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래도, 아무리 고래의 노래라고 하지만, 인간의 노래와 사뭇 다르다.

“혹등고래는 노래한다!”로 시작하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그 혹등고래가 모모였나보다?) 마르틴 게크가 지은 『혹등고래가 오페라 극장에 간다면』(한스미디어, 2015)이다. 경이로운 클래식 음악에 관한 에세이 33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33개 변주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영감, 감성, 사색, 좌절, 반항 등 클래식 음악에 반영된 인간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어려운 내용이 더러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주요 작품이 탄생하고 갈등이 빚어지고 가라앉는 등 역사적인 맥락을 훑어보는 동안 (저자의 말대로)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는 즐거움 또한 크다고 하겠다.

저자는 혹등고래와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고대 그리스의 명가수 아리온이 음악으로 마법을 부려 돌고래 떼를 부리고, 끝내 돌고래 등에 타고서 하늘로 올라가 같이 별자리가 되었다는 헤로도토스의 말과 그리스 신화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음악의 마법에 사로잡혀 별자리가 된 돌고래와 동일 선율을 몇 시간이고 불러대는 혹등고래 사이에 인간이 있음을 강조한다. 혹등고래와 인간은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 음악적 본성을 가진다. 혹등고래의 노래에 자연의 숭고함이 깃들었지만, 인간의 음악성은 존재성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은 음악성을 갈고 닦아 예술적 경지를 이뤄냈다. 오페라는 최고의 예술적 경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음악성에서 빚어낸 클래식 음악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음악은 더욱 찬란하다. 저자는 경탄스러운 클래식 음악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고 안내한다. 그가 앞서 나아간 길을 따라서 나도 동행할 수 있음에 고맙다.

혹등고래는 외형이 독특하다. 주둥이 주변에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때문에 그렇다. 책 제목은 그보다도 더더욱 특이하다. 혹등고래가 오페라 극장에 간다… 파격을 넘어 상식 파괴라고 할 수 있겠다. 혹등고래처럼 좀처럼 잊히지 않는 제목이다. 그나저나 혹등고래와 오페라는 무슨 관계가 있나, 왜 이런 제목이어야 했을까? 책 서문에서 저자가 답한 내용을 아래에 옮긴다.

“이 책의 제목은 안내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혹등고래와 돌고래의 긴장 관계 혹은 이를 통해 대변되는 자연과 예술의 긴장 관계, 복잡하고 까다로운 작품을 들을 때에도 맛볼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의 즐거움은 일상 속 경험이나 표현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클래식 음악은 완전히 다른 것, 음향 세계 밖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를 사로잡기도 한다. 음악을 하거나 들을 때 우리는 이러한 긴장감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그 긴장감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특이하지만, 경이로운 클래식 음악의 애호가가 되는 길을 안내하는 책으로 손색없다. 나한테는 충분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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