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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서성란 지음 / 강 / 2024년 11월
평점 :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의 두 사람, 부부 관계를 화두로 한 두 작품, <완벽한 스테이크와 적양배추 요리>와 <봉희>는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삶의 지향점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성인이 된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한데 묶였을 때, 그 관계가 사랑을 기반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두 사람은 얼마나 오래 같이 살았든, 얼마나 깊은 사랑을 했든, 얼마나 많은 자손을 봤든, 나는 네가 아니고, 네가 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너 역시 내가 아니고, 내가 될 수도 없듯이 서로에게 영원한 타인이지 않을까.
<완벽한 스테이크와 적양배추 요리>의 아내는 실직하여 방에 처박힌, 드럼 세트를 사고 싶은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완벽한 식사를 구상하고 요리하지만, 정작 그의 욕구나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 한다. 그저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할 뿐, 시모가 아들을 위해 준비해 보낸 음식마저도 귀찮아하며 방치한다. 완성된 완벽한 스테이크는 결국 여자의 입에 들어간다.
이 작품에서, 서로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인 부부 관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감정이 소외된 남편에게 다소 치우쳐져 있다면, <봉희>에서는 아내의 메마른 삶이 좀 더 두드러진다.
‘성중’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한 ‘봉희’는 29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결심을 한다. 이 작품은 ‘권태’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데, 남편에 대한 억누르기 어려운 혐오감(199쪽)과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감정(202쪽)엔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저 우연히 순간의 일탈을 경험하고(피아노 학원의 초록색 소파, 익명의 남자와 들어갔던 호프집) 숨어 있기 적당한 장소(205쪽, 도서관)를 찾아 나선다는 사실 뿐. 이후 봉희는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은(207쪽) 욕구에 갈등하는데, 자서전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자신의 삶을 오롯이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필요에 의한 것처럼 보인다. 봉희에게 자서전 쓰기는 거짓과 왜곡에서 자유로운(207쪽)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독자들은 성중 역시 봉희와 같은 마음이었음을 결말에 알게 되는데, 이로서 권태라는 감정을 딱히 설명하지 않았음에 면죄부를 제공한다.
<좋은 어머니들>은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다. 몇 개의 매듭을 꼬며 시작했다가 진행하면서 서서히 풀어 보이는 이야기엔 각박한 현실에서 엄마보다 ‘어미’가 되어야 했던 여자들의 애환과 고통, 슬픔이 녹진하게 흐른다.
작품이 주는 절절한 감정과는 달리, ‘좋은 어머니들’이란 제목엔 이중의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 혹자에 따라서는 화자의 어머니를 비롯한 ‘그곳’의 여자들을 비난할 여지도 충분해 보이기 때문인데, 이를 주제로 토론하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좋아했던,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세 작품,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존, 로베르트, 은희>와 <이규호, 노먼 테일러>는 같은 주제를 변주한 작품들이다.
‘해외 입양’을 소재로 한다. 문화 수출로 콧대가 있는 대로 높아진 우리나라의 치부를 드러냈달까. 그것 이상으로 관련 시스템의 부재, 마구잡이식,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행정엔 기가 찬다. 몇 년 전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사건이라고 하니, 이후 관련 행정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궁금하다.
세 작품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느낌이 다른 건, 인물과 배경, 관점을 각각 달리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 작품 중, 사건의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나선 <이규호, 노먼 테일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위 세 작품은 현실 비판, 사회 고발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표제작인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는 문학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갖추고 있다.
<회촌의 달>은 작가의 자기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다.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고단함, 더 이상의 생산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걱정과 두려움을 처음 방문한 장소가 주는 낯설음과 공포에 빗대어 잘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지극히 사적이어서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작품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건,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문장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가의 역량 덕분인 것 같다.
<유채> 역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누구나 알 만한 작품이다. 강요된 희생과 침묵으로 거의 넋이 나간 부모의 모습을 작가는 조금도 서두름 없이, 비인간적일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여준다.
다소 평범한 시작과 혼란과 궁금증으로 독자들을 긴장시키며 이어지다가, 충격적인 마무리로 이어지는, 독자의 감정을 휘몰아치는 전개가 일품이다.
이 역시, 사회를 고발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목적이 있는데, 이를 앞세우기보다 문학적인 완성도를 우선시한, 소재와 감정에 함몰되지 않은 작가의 거리감이 남다르다. 울부짖거나 외치는 대신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늘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외에, 불법체류자를 통해 외국에 나가 소식도 없는 (입양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그리워하는 부부를 그린 <피아라 식당의 손님>, 목사라는 신분을 위장한 출소자를 중심으로 이방인 혐오를 보여준 듯한 <O리의 목사>가 실렸다.
위 두 작품은 좀 어렵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읽게 된, 중소 출판사의 책이라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읽을 기회조차 갖지 못할 뻔했던 책이다. 출판사의 영향력, 폭력적인 마케팅, 이런 걸 떠나 독자들에게 알려질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도태되는 훌륭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릇 책을 좋아한다면, 주류 출판사 외의 책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