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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평점 :
좋은 소설이란 명문장이나 어려운 단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대단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 엄청난 교훈이나 메시지를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뼈 때리는 각성이 없어도 괜찮다. 그저 우리의 이웃, 우리 곁의 타인들을 몰래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소설일 수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 드라마틱한 설정에 주목할 만한 사건을 보태어 주의를 환기시키는 이야기도 좋지만,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극히 지루한 모습에서 작은 ‘틈’을 발견하고 그것을 헤집고 틈을 벌여 균열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더 나의 관심을 끈다. 그런 이야기 역시 다른 방식으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야기를 탐하는 욕구를 ‘관음증’에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병적인 시선이 빠진 단어라면 어느 정도 맞다. 왜 아니겠는가. ‘간접 체험’이란 표현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타인의 삶을 엿봄으로서 직접 겪지 않고도 경험할 수 있다. 완전한 공감은 어렵더라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 결국 그 책을, 단순히 물성으로만이 아닌 그런 이유로 아끼게 된다. 좋은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삶에 뛰어들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들이 모두 내게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 배경들로 찬찬히, 느긋하게, 조곤조곤,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좋았다. 일반적이고 삶에 관한 포괄적인 뭄제들을 다루면서 누가 읽어도 즐길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늘그막에 앵무새와 사랑에 빠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아주 환한 날>들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36쪽)❞
글쓰기 강좌에서 발표할 수필을 구상하는 ‘옥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과거 기억의 편린들을 통해 나는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렸다. 사랑은 본능처럼, 계산하거나 잴 새도 없이, 알게 모르게, 나이와 상황에 상관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열병처럼 앓아낸다. 오는 사랑은 막아낼 수도, 가는 사랑은 잡아지지도 않는다.
옥미가 사랑에 빠지는 앵무새는 이야기의 피상성을 소거하기 위한 적절하고 영리한 소재처럼 보인다.
<빛이 다가올 때>는 욕망을 거세당한, 그리고 스스로도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인물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인 ‘인주’는 가족 내 ‘희생양’ 캐릭터다. 이 사람은 자신을 그렇게 몰고 간 상황이 종료되자 늦게나마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런 인주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다. 화자가 인주에게 갖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환상에 기반한다. 인주가 그동안 내보인 캐릭터에 화자는 그녀에게 덧씌운 틀 안에서 인주를 이해한다. 인주가 그 모습에서 벗어나려하자 화자는 혼란을 느낀다. 타인을 공감한다는 게 정말로 가능한 건지, 작가가 묻고 있는 듯하다.
슬픔과 애도, 공감에 관한 이야기인 <봄밤의 우리>는 서로 닮은 두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되는 구성만으로 충분했던 작품이었다. 쉽고 단출하고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모양새가 특히 좋았다. 유타와 보라의 성적인 긴장감, 개와 죽음이라는 소재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29년 발표한 단편 <Next to a Dog>를 생각나게 한다.
<흰 눈과 개>는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독자로서의 ‘나’의 반응이 꽤 요란했던, 드라마 훈수 두듯이 읽었던 작품이었다.
결혼을 하네 마네, 외국인 사위를 받아들이네 마네, 하는 설정들보다 같은 형제인데도 사랑의 무게의 방식이 달랐다고 느끼는 ‘진아’의 고민, 부모와의 갈등에 공감이 갔다. 다만 부녀의 화해를 이끈 ‘다리 셋의 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의문은 두 사람의 화해가 단지 분위기가 만든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남긴다.
생면부지인 타인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갖는 슬픔과 애도는 진심일까 묻는 <호우>는 ‘그 공감 진짜야?’라고 묻는다는 점에서 앞에 나온 <빛이 다가올 때>와 한 맥을 이룬다.
죽음은 관념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특히 그렇다. 우리는 죽음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육체의 유기적 기능이 끝났다는 사실 뿐이다. 우리가 죽어보지 않는 이상 그것에 대해 알 기회는 전혀 없다. 영원히 추상에 머문다.
죽음이 그럴진대, 이름도 삶의 배경도 모르는 타인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슬픔과 애도는 진짜일까. ‘소희’는 두려움과 슬픔을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건, 죽음도 노인에 대해서도 소희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 테다.
노년을 준비하는 모범적인 태도에 대한 글처럼 읽히는 <눈이 내리네>의 ‘임복례 할머니’ 역시 앵무새와 사랑에 빠진 ‘옥미’와 닮았다. 늦게 내리는 첫눈, 마지막에 힘을 내는 보일러와 함께 늙어서도 한글 배우기에 열의를 보이는 복례 할머니의 모습은 늦은 나이에 이직이 과연 좋은 생각일까 고민하는 ‘다혜’에게 뭔가 힌트를 줬기를 바란다. 나이를 의식한 나머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기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모든 일엔 때가 있다고들 한다.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한다. 타인들의 욕망에 대해서도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 그건 ‘주제넘은 오만, 어리석은 소리(209쪽)’다.
작품집에서 유일하게 멋을 부린, 스타일에 힘을 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작품집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적당한 작품이었다. 구심점과 동력이 되는 미스터리, 극적인 전개 등을 통해 작가는 삶의 불확실성, 불안과 걱정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를 선사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며 얼마나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지… (중략).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조차 할 수 없는 미래와 끝에 대해서 대비할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헛되게 믿으면서… (중략). 한없이 잔혹한 인생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또다시 기쁨을 줄 수 있는지… (후략). (245쪽)❞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각자 잘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지 아닐까. 가혹하게 들리지만 그것만이 확실한 사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