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평점 :

#도서제공
p.248 에이미는 그저 여자와 함께 있는 여자일 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치유였으며 구원이었다.
토리 피터스의 책은 기묘한 구석이 있다. 퀴어-앨라이 집단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그 바깥의 집단에서는 기상천외하다 못해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싶은 반응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노골적이다. 문단에서는 진작부터 퀴어가 공공연하게 다뤄지는 소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한국이다. 2025년에도 차금법은 고사하고 LGBTQ+에 대한 요만큼의 이해조차 없는 사람이 지천에 널린 나라. 이 책이 한국 출판시장에 풀려 있다는 것 자체가, 비로소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어떤 증명이 될 것도 같다. 특정 종교나 특정 정치성향에서 쓴소리를 듣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출판사에게 미리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소설의 주요 인물은 리즈, 에임스(에이미), 카트리나 세 명으로, 이 중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한 캐릭터는 에임스이다. 트랜스젠더 캐릭터야 이미 젊은 작가들이 종종 다뤄왔지만 성환원을 다루는 작품은 퀴어 문학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들을 묶어낸 소재가 임신이라니, 꽉 막힌 세상에 그야말로 작은 폭탄을 던져버린 작가에게 경의를 느낀다.
p.348 살해당하는 트랜스 여성들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주로 유색인종이다. 그 경우 그 자신의 부고에서조차 성별을 잘못 기재하는 경우가 범인이 밝혀진 경우보다 많다.
『디트랜지션, 베이비』의 인물들은 인격적으로 고결하거나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는 않다. 이 소설은 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특별히 애쓰지 않는다. 리즈, 에임스, 카트리나는 그저 이야기 속의 삶을 구성하는 개인들이다. 사실 이 인물들이 모두 시스젠더 헤테로였다고 상상해보면 이건 일종의 K-아침드라마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순식간에 읽어나가게 하는 흡입력을 받쳐주면서 페이지 사이사이 작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정상성이란 무엇인가? 사회가 허락하는 정상성 하에서만 사랑과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신랄하고 노골적이며, 혁신적인 동시에 유머러스하다. 혐오와 편견을 드러내면서도 성장과 사랑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할 것이고 누군가는 뻔하다고 느낄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대사와 날것으로 쓰인 묘사들 사이에 놓인 채 깊게 감탄하다 보면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다. 어쩌면 조금은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특정 퀴어 용어가 무엇을 뜻하고 퀴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는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 누군가 명명해주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인정하거나 법적으로 규정해주지 않아도 그냥 그곳에 존재한다(‘해준다’는 표현도 사실 굉장히 시혜적이지 않은가?).
모두가 이 책을 뻔하고 우스운 드라마라고 느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당신의 불편은 책을 덮으면 사라지겠지만 그들의 불편은 살아 있는 한 계속되니까. 책이 국내에 출판된 타이밍이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광장에서 이미 연대의 방법을 알았고 더 이상 무지개는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디트랜지션베이비 #비채 #토리피터스 #공삼_북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