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41203
소재원 지음 / 프롤로그 / 2025년 4월
평점 :

#도서제공
p.104 여러 크고 작은 단상들이 시위하는 곳곳에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기타를 들고 공연을 하며, 누군가는 현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을 했다. 마치 축제를 즐기는 듯한 현장이었다.
영화 《소원》, 《공기살인》 등으로 유명한 소재원 작가의 신작 『20241203』에는 그날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영문도 모르고 그들을 막아서야 했던 군경,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야 했던 정치인… …. 시선을 끄는 샛노란 표지에 선명하게 쓰인 제목이 독자들을 다시금 그날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국회 앞에 나섰다. 처음에는 각자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단순히 나열하는 구조라고 생각했으나 챕터가 거듭될수록 인물들이 서로 얽혀 있는 관계가 꽤 흥미로웠고, 동시에 그런 점이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얼핏 보면 한 명의 개인으로 보이는 사람 모두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였다. 또는 배우자나 연인이었고, 광장에서는 동지였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 역시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샤워를 마치고 막 나왔는데 휴대폰에 연락이 잔뜩 쌓여있었다. 온갖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욕, 놀라움으로 점철된 알림들을 슥슥 밀어 없앨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또 어느 연예인이 사고를 쳤나 보다 싶어하며 SNS를 열었을 때는 이미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고 있었다. 벌써 네 달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마치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날 그 모습을 지켜본 모든 국민들이 그럴 것이다.
p.183 각자 철학이 다르고 삶이 다르고 사상이 다른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됐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남편과 아내, 군인과 경찰 다음으로 등장한 인물이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읽어나가는 동안 이렇게 진보적인 글을 쓰는 작가라면 젊은 여성에게도 한 챕터 정도는 할애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퀴어라고 못박은 캐릭터가 등장할 줄은 몰랐어서 선영과 현정의 이야기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많은 여성들과 퀴어들이 광장에 있었음에도 언론, 정치판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실적인 소설에 여성 퀴어들도 그날 그곳에 존재했음을 똑똑히 남겨 주신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그 외에도 군인 아들이 걱정되었던 아버지, 그런 군인들에게 선배라고 달래던 어느 남성, 총구를 잡고 막아선 여성 등 많은 실화들이 글 속에 녹아있었다.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소설은 완벽한 사실을 기반으로 쓴 완벽한 픽션입니다.’ 우리는 이 소설이 픽션이라는 것을 안다. 그날 계엄을 선포한 사람은 ‘윤성렬’이 아니고, 야당 대표는 ‘이재연’이 아니니까. 동시에 이 소설이 완벽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국민들이 그날 똑똑히 모든 것을 목격했으니까.
사실 정의를 말하는 글이 언제나 그렇듯 조금은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눈가를 붉혔다. 12월 3일 국회 앞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동지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우리에게는 정의가 승리한, ‘다시 만난 세계’가 있다. 전봉준투쟁단의 어느 분이 동성로 자유발언대에 올라와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유행하는데, 당신은 그날 남태령에서 ‘처음 만난 세계’를 경험하셨다고. 투쟁과 연대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만난 세계를,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난 세계를 선물했다. 이 연대가 끝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작가님의 행보를 응원한다.
누군가는 역사를 기록해야 할 때 언제나 나서서 그 ‘누군가’를 맡아 주는 작가 소재원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241203 #소재원 #프롤로그 #공삼_북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