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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 - 빛으로 그려진 영원의 시퀀스, 사랑으로 읽는 50개의 명화
원형준 지음 / 날리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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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은 분명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액자 속 캔버스에 갇혀 있는데도 마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색채나 붓터치 하나로 그 순간의 분위기나 환경이 생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감상에 빠져들며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고 설명을 읽거나 큐레이션을 듣다 보면 그 시대에 유행한 기법이나 주제, 또는 그림 속 오브제나 인물이 상징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런 추가적인 정보들이 있으면 그림을 더 잘 이해하고 그림 속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떨까? 우리는 지금까지 명화 속에서 사랑을 얼마나 읽어내고 있었을까?

 

p.315 인간의 삶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중략)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고 수없이 많은 예술 작품에서 언급된 사랑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오늘날 문학과 영상, 공연 등 각종 문화콘텐츠에도 촘촘히 박혀있는 현재진행형의 소재이다.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는 미술관의 전시관처럼 여러 개의 챕터가 빛과 자연의 교향곡, 비극에서 피어난 찬란등의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근현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이기도 하고 미술 초심자도 읽을 수 있도록 상냥하게 쓰여 있기 때문에 소제목이 끌리는 챕터부터 골라 읽어도 이해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술 사조에 따라 사랑은 개인의 욕망이나 정열, 낭만이기도 하고 신을 향한 구애나 영원한 이상, 혁명이나 죽음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은 인간이 예술을 만들고 향유하는 내내 동반자처럼 함께했고 아마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책에서는 이미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인 클림프의 <키스>, 고흐의 <밤의 카페>, 요하네스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도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는 단순히 눈에 익은 것을 가지고 이 작품들을 안다고 얘기하지만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지금까지 너무 많은 예술을 잘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사랑이라는 모호함을 가장 쉽게 나타내고 기록하는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그 예술 속의 사랑을 파헤칠 기회가 이 책을 통해 주어졌다.

 

독자만을 위해 마련된 아주 상냥한 큐레이션처럼 쓰인 글들을 따라가며 황홀한 명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고, 미술관에서 하루를 잘 보내고 나온 기분이 든다. 사랑과 고통, 욕망, 비극평소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좀 더 흥미로울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서양미술사를 아주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편이어서 책을 뜯어먹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읽었다. 반쯤 농담이지만, 이런 책이 나올 줄 알았다면 대학에서 서양미술사 교양을 조금 덜 들었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고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도서제공 서평에 이런 사담은 잘 덧붙이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미술교양서 특성상 풀컬러 인쇄를 하다 보면 자연히 가격대가 올라가기 마련인데, 근래의 종이값 인상 이슈들을 생각해보면 한 학기 교양 강의라고 봐도 무방할 퀄리티의 책을 어떻게 겉표지까지 챙겨 이 가격에 내놓을 수 있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랑과시간의알레고리 #원형준 #비욘드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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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해피엔딩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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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229 이 아이들은 애정에 반응해서 숨을 쉬기 시작해. 네가 어떤 존재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주면, 그리고 운 좋게 그녀석들에게 힘이 있다면, 숨을 쉬면서 존재하기 시작하지.


움직이는 걸로도 모자라 잔소리를 하는 곰인형, 그리고 그런 인형과 장난감들을 치료해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난감 가게. 너무 포근하고 설레는 이야기가 아닐까? 누구나 어릴 적 한번쯤은 애착 장난감으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인형들이 모두가 자는 사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노는 모습을 상상해보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는 해피엔딩』이 굉장히 잘 쓰여졌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 이십 대라는 어린 나이에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어버린 주인공 소미가 그 삶을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후련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화재로 인해 소미를 힘들게 한 가족이 소미의 삶에서 덜어져 나가고, 소미는 특별한 장난감 가게로 여러 인연들을 만나며 삶을 이어가게 된다.


나는 으레 힐링소설에서 무조건 착한 주인공이 무조건 착한 사람들을 만나서 고루한 명언을 듣는 것으로 작품 밖의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 행태를 '게으르다'고 본다. 그런 건 초등학교 도덕 수업만 들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조언이고 아무렇게나 입발린 소리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불행이 어떻게 인생에 영향을 주는지, 무슨 사건들이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가 울고 웃었고 우리가 삶을 내려놓는 대신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섬으로써 종래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는 해피엔딩』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입체적이라는 점도 좋았다. 인물이 너무 과해서 부담스럽지도 너무 부족해서 공감이 힘들지도 않고 사연마다 소설 속의 인물들과 같이 울고 웃게 된다.




챕터별로 나뉘어져 있지만 늘어짐 없이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독자들은 쉽게 장난감 가게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소미를 위로하거나 함께 위로받는다. 게다가 단순한 힐링 에피소드 모음집으로 끝나지 않고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가 소미를 의심하면서 작품에 약간의 미스터리함과 긴장감도 불어넣어준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진, 동시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소미와 함께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도 나쁜 기억들을 뒤로 하고 다정한 '두 번째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북로망스(@_book_romance)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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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
안셀름 그륀 지음, 최용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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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97 여러분의 영혼이 지닌 슬기를 신뢰하십시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무절제한 모습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자신이 지닌 척도와 슬기를 신뢰하십시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에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을 달래주는 따스함이 있다. 그간 많은 책에서 그런 온기를 보여주셨기에 이번 책도 기대를 가득 갖고 펼쳤다. ! 알맞게 살아가는 법의 부제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삶의 균형 잡기였다. 삶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일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정말로 간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신앙생활도 인간관계도 물질적인 것도 어느 순간에는 너무 부족하다가 때로는 너무 넘친다.

 

책에서는 그런 부족함과 넘침을 조절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삶의 태도를 제시하는데, 모든 부분이 다 좋았지만 특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대가 내 삶을 좌우하게 하지 말 것,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지 말고 욕망을 길들일 것, 평범한 자기 모습을 받아들일 것. 우리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기대에 떠밀려서, 또는 욕망에 지배당해, 남들보다 더 특별해지기 위해 이기심과 경쟁으로 자꾸만 균형을 잃어버리고 만다. 무조건 앞서가라고 외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남의 기대에 전부 부응하지 못해도, 평범하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 너무 반가웠다.

 

p.43 그러나 화내는 것도 극단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화내는 것은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얕보는 행위니까요. 우리는 다른 이들을 얕볼 권한이 없습니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판단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중심 찾기챕터에서 가장 깊게 와닿은 부분은 화내는 태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분노와 혐오로 가득 찬 요즘 세상에 너무나도 필요한 말이라고 느껴졌다. 우리는 너무 쉽게 화내고 있지 않은가? 가족, 친구, 또는 불특정 다수나 사회를 내가 가르칠수 있는 상대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심하게 화를 내고 상대에게 무안을 주거나 무시하고 깎아내린 후에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던 일인 경우가 많다. 화를 내기보다는 설득하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인데 바쁘고 손해보기 싫은 사회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게 단순한 화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우리에게는 심판의 권한이 없는데도 말이다.

 

! 알맞게 살아가는 법은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 규칙서를 기반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천할 수 있는 중용을 제시한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주변과 스스로를 보전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일. 삶에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내며 세상과 공존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이구나, 싶어져 책의 제목을 괜히 한번 곱씹으며 웃게 된다.

 

보통 인생 조언이 담긴 책을 읽고 나면 괜히 혼난 기분에 마음이 거북해지거나, 어려운 철학이 가득해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 알맞게 살아가는 법은 종교나 철학을 잘 몰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쓰여 있어서, 비종교인에게 원하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된 건 정말 감사한 기회였다. 올해는 이 책으로 인해 균형이 맞는삶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캐스리더스 #가톨릭출판사 #딱알맞게살아가는법 #안셀름그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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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위의 변호사 - K-법정 좀비 호러
류동훈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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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의 가장 특이하고 매력적인 점은, ‘K 법정 좀비 호러물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르라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 소설에서도 호러나 스릴러 장르를 흔히 볼 수 있지만 경찰이 아닌 법조인이 주인공인 경우는 드물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하는 장편은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로는 흔해졌지만 장편 소설로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장르 특성상 잔인하고 적나라하다고 느껴지는 표현들이 꽤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더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올 것 같다. 단순히 선하거나 진부하게 악하지 않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입체적인 인물들이, 좀비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거나 배신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정말로 이 상황에서 가장 위협적이고 두려운 게 좀비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소설 서평은 대개 대략적인 스토리를 설명하거나 대사를 많이 발췌하는데,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는 드라마같은 매 챕터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 서평을 읽을 분들이 스포일러 없이 책을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에 스토리 언급을 최대한 줄였다. 확실한 건, 에필로그까지 모두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더 이상 두려운 건 좀비가 아니게 된다.

 

좀비가 두려운 것은 말이 통하지 않고 본인의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을 기꺼이 해치는, ‘욕망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인간은 좀비와 얼마나 다른가?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일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해하는 인간이 정말로 욕망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좀비와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는 스토리와 동시에 구성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목차의 대제목이 음악 용어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끈다. 아다지오(느리게)로 시작된 소설은 질병 X 사태가 흘러가면서 알레그로-프레스토-프레스티시모(아주 빠르게)로 점점 빨라지며 치닫는다. 그러다 에필로그가 등장하는 마지막 챕터는 템포 프리모로 끝난다. 템포 프리모는 다시 처음의 빠르기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밴드 보컬을 할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저자가 빠르기를 표현하는 용어로 소설의 기승전결을 매끄럽게 정리한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작중의 채팅이라는 요소를 단순히 따옴표나 대괄호가 아닌 메시지 버블 모양으로 표현한 것도 몰입도가 높아져 좋았고, QR코드를 찍으면 OST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은 기획이라고 느껴졌다.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영상에 비해 시청각적으로 압도되는 감각이 덜한 텍스트의 단점을 크게 보완함으로써 독자가 책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듯했다. 자칫 올드한 소설 독자들에게는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치를 장르문학이라는 특성에 힘입어 과감히 시도한 저자의 센스가 존경스럽다. 특히 웹소설 UI에 익숙한 젊은 독자층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 듯하다.

 

특이한 소재, 특이한 구성으로 많은 매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르 소설이었다.

 

#러닝머신위의변호사 #미다스북스 #류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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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차별 - 그러나 고유한 삶들의 행성
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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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가 발매된 것은 2011년이었다. ‘어떤 정체성이든 이렇게 태어난(Born This Way)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주는 노래가 오랫동안 차트에 걸려 있었고 모두가 따라 불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세상에서 톱 가수가 Born This Way를 외치고 14년이 지난 지금, 과연 모두의 정체성은 존중받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당신은 차별주의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열에 아홉, 또는 열 모두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차별주의자가 아닌가? 이 문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면 지구상에서 차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진작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졌어야 한다. 그러나 차별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현존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편해하며, 누군가는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고, 누군가는 그 차별로부터 오는 이득을 위해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그 사회에 안개처럼 내려앉은 무시, 배제, 혐오, 차별은 때론 느낌의 변주로 때론 물리적 억압으로 침범한다. (중략) 그 감정들 가운데 초라함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초라함은 누구나 아는 감정이다. 그리고 상대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작동한다. p.8-9 머리글

 

차별이 안개처럼 내려앉아 있다고 표현되는 이유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것이 거기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 감수성의 발전에 따라 미국의 노예제나 한국의 호주제와 같은 많은 제도적 차별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많은 차별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마치 안개처럼 그들의 발목을 옥죈다.

 

인간차별에 등장하는 사례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수자성을 갖고 있다. 이민자이거나 여성이고, 또는 노인이거나 퀴어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떠올리기 힘든 입양 가정이나 청소년 부모, 난민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차별이 곧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차별이 그토록 가까이 있기 때문에 연대를 통해 허물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의 시선으로 본인의 정체성이 초라해진다고 해서 그 정체성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그 사회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니까.

 

나는 선하다 내세운 내 의도, 곁에 있다고 주장한 연대선언에서 무언가를 흘렸다. 아마도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한 무지같다. 타인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p.106

 

차별을 타파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소수자들을 돕는다는 시혜적인 생각에 빠지는 실수를 한다. 또는 단순히 같은 소수자성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상대의 삶을 모두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스스로의 무지를 고백함으로서 그런 태도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누구나 차별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 또한 차별주의자였다거나 내가 무지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이 부분이 책 속의 수많은 문장들 중 가장 진솔하고 가장 무거운 문장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너무나도 많은 차별을 알게 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 차별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삶이 세상을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소수자성을 갖지 않는 독자더라도 좋다. 죄책감을 갖거나 깊이 고뇌하며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소수자가 어떻게 불리는지, 차별금지법은 왜 항상 뜨거운 감자고 어떤 단체가 정확히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별을 똑바로 마주할자신만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인간차별은 아주 라이트하고 상냥하게 쓰여 있다. 동시에 소수자들에게는 내가 나로서존재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고 알려주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냥 하나의 삶으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김영사 #인간차별 #안희경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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