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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제인 오스틴 - 최초의 문학이 된 여자들
홍수민 지음 / 들녘 / 2025년 6월
평점 :

#도서제공
p.77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중세 여성들에게는 수녀원이 바로 ‘자기만의 방’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이란 성별에 궤를 두는 일이 아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밤늦게 위험한 곳을 쏘다닐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으레 모든 학문들이 그랬던 것처럼 문학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이 남성의 이름으로 필명을 사용해야 등단할 수 있는 일이 빈번했으며, 여성의 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여러 가지 핑계를 들어 헐뜯고 폄훼하고는 기어이 역사에서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다. 셀마 라겔레프가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포문을 연 게 백 년도 더 전의 일이며 델레다, 올가 토카르추크, 아니 에르노, 그리고 2024년 한강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그의 뒤를 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이전의 여성들의 글은 어디로 갔을까? 역사는 그들의 글을 어떻게 지워내고 문학을 남성의 것으로 기록했는가? 독자들이 진작 던져보았어야 할 질문에 『비포 제인 오스틴』을 통해 저자가 답했다.
문학사를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세계사나 문예사조를 아는 편이 이해가 쉽다. 그렇지만 책이 전체적으로 상냥하고 설명이 디테일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일종의 문학사 입문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장의 소제목에 소위 말하는 ‘밈’이 많이 사용되어 있어 문예사조에 밝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흥미를 끈다. 『비포 제인 오스틴』의 1장은 헤이안 시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라시나 일기』 『베갯머리 서책』을 거쳐 2~3장의 중세에 다다라서는 소르 후아나의 「어리석은 남자」, 크리스틴의 『여성들의 도시』를 토대로 그들의 삶과 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당시의 미소지니가 어떻게 크리스틴을 지워냈는지, 어떻게 여성의 성취를 폄훼하고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는지를 읽고 있으면 자연히 분노가 치민다. 동시에 그 악습과 혐오가 현대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도 『불타는 세계』 『클레르 공작부인』 등을 통해 당시 시대상과 작품의 비하인드를 보여주는데, 단순히 여성 문인과 작품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이 어떤 배경에서 쓰여졌는지, 또 여성주의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또는 문학사나 장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부연설명이 되어있는 점에 감탄했다.
p.112 크리스틴이 맞서 싸운 것은 단순히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여성혐오 서적 몇 권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온 유구한 여성혐오 담론, 사회에 만연해 있던 차별적인 여성관 전체였고, 이에 저항함으로써 그는 한 명의 인격체로서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 한 것입니다.
『비포 제인 오스틴』에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지워지고 폄훼당한 여성의 문학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문학들은 남성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무조건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는 않다. 때로는 억압에 대한 분노와 질타를, 시대가 금지한 도전을 담고 있기도 한다. 그들의 문학은 그 여성들이 문인으로서 존재했다는 투쟁이었고 저항의 목소리였다. 한때 권력에 의한 ‘입틀막’에 나라가 떠들썩했다. 입이 막혀 끌려나가는 지식인을 보고 분노했던 사람들이, 남성 권력에 의한 미소지니가 오랫동안 틀어막아 온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비포 제인 오스틴』에게도 그러한 지지를 보내주기를 바란다. 지금은 2025년이니까. 이 책과 서평을 보고도 누군가는 과격하거나 편향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부디 반성하기를 바란다. 역사 속에서 소르 후아나를, 크리스틴을, 캐번디시를 핍박하고 멸시한 목소리가 바로 당신의 것이니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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