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사랑
문녹주 지음 / 고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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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291 저는 여의도에서 일하면서 각종 사회 모순을 자주 접했습니다. 세상에는 옳은 일을 하고도 덤터기를 쓰거나 좋은 의지로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선의에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아주 익숙했지요.

 

문녹주의 글은 일상적인 어투로 기묘한 비일상을 그린다. 가상세계나 특이한 바이러스, 좀비… … SF에서는 다소 흔한 소재일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함께 건설해가는 인물들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익숙한 지역 방언을 쓰고 울고 웃으며 감정을 나눈다. 인물과 인물 사이, 그들을 연결하는 어떤 사랑과 감정, 연대를 보면서 독자는 마치 그 이야기 속에 자신도 살아 숨쉬는 것처럼 깊이 공감하게 된다.

 

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책에 갇히다등 일찍이 여러 앤솔로지에서 SF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 온 작가답게 첫 소설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흡입력이 좋다. 단편임에도 이야기의 짜임이 어지럽지 않고 평소 SF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도 가볍게 시도해봐도 좋을 만큼 순식간에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다. 특히 어머니의 도원향이나 표제작 지속 가능한 사랑은 가족이라는, 상당히 예민한 소재를 깊은 감정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혈연은 끊어낼 수 없는 것이고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사랑해야 할 존재로 보았던 기성세대와 다르게 가족과 나를 분리된 개인으로 보는 젊은 세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작품이 아닐까 싶다.

 

p.340 그렇지만 엄마는 언니 없이 살지 못했다. 엄마는 기꺼이 언니의 연료가 되었다. 고작 목걸이 따위로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엄마는 자기가 일생에 걸쳐 일군 것을 언니의 연료로 갖다 바쳤다. 언니가 같잖은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적인 기반이 바로 엄마였다.

 

특히 지속 가능한 사랑이 표제작답게 굉장히 강렬했고, 상대적으로 보기 드문 소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치밀하게 엮여 있어 가슴에 오래 남았다. 표제작치고는 길이가 짧다고 느꼈으나 분량에 비해 볼륨이 크고 밀도가 높아서 마치 흥미진진한 을 읽는 것처럼 집중하게 된다. ‘언니의 기묘한 분위기와 답답하고 괴로운 의 심정에 속이 타서 자꾸만 재촉하듯 다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목에서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스토리에 몇 번을 다시 읽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좀비 정국에 올리는 편지에서는 언니의 희생도 물론 깊게 와닿았으나 쌀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쌀을 지키고 있다는 대답이 어쩐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아수라장이 된 나라에서 쌀을 지키려는 농민들은 지난 겨울 남태령을 지켰던 트랙터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 가능한 사랑에는 세련됨이 있다. 퀴어, 농민, 이주민, 지역 사투리, 기후 위기, 모녀의 이야기 등 마주해야만 하지만 외면하기 쉬운 목소리들, 때로는 아주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온 풍경들이 그의 글 속에 살아 숨쉰다. 문녹주 작가의 첫 소설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가 앞으로도 그의 세계를 지속 가능하게(물론 언니의 사랑과는 다른 형식으로) 펼쳐나가기를 응원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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