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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도서제공
p.136 기러니 다신 죽지 마오. 보통강에 물 넘치면 서장리 형님 무덤 떠내려갈까 개구리처럼 우는 옥이 심정도 헤아려주시구려.
일반적으로 세대를 나눌 때 한 세대의 기준을 30년으로 잡는다. 어느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자녀를 가질 정도의 기간이 30년이기 때문이다. 『서른 번의 힌트』는 그렇게나 긴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문학계를 이끌어온 한겨례문학상의 30주년 기념 앤솔로지다. 또한 단순히 30주년 기념이라는 명분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역대 수상 작가 20인이 자신의 당선작을 모티프로 스핀오프나 비하인드를 풀어냄으로써, 해당 작가들를 새롭게 접한 독자에게는 기존 작품에 대한 흥미로움을 이끌어내고 오랫동안 그 작품을 사랑해온 독자들에게는 선물처럼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박서련, 강화길, 장강명 등 현재 문단과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들의 익숙한 이름들로 장식된 표지는 넘기기 전부터 독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20명의 앤솔로지인데도 페이지는 약 400페이지 정도로 작품 하나하나의 볼륨이 크지 않아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바쁜 사람들도 잠깐씩 틈을 내어 단편 하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책은 최신 수상자인 하승민 작가의 「유전자」로 시작한다. 『멜라닌』을 인상깊게 보았기 때문에 파란 피부를 가진 알파와 시각장애를 가진 베타의 이야기도 익숙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개요가 간략하고 설정이 복잡하지 않아서 작가의 수상작인 『멜라닌』을 읽지 않은 독자들도 「유전자」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에서 받은 느낌도 비슷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수상작을 안다면 숨겨진 비하인드를 보는 것처럼 두근두근하게, 모른다면 이 짧은 단편으로도 독자를 매료하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단편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30주년 기념 앤솔로지답게 30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숨어있다. 이렇게 앤솔로지의 중심이 되는 키워드를 찾아보는 것도 읽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p.223 나를 죽일 수도 있는 행복에 X의 지분은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X에게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X의 죽음은 내게 아무 의미없다. 없는 사람의 죽음은 나를 흔들 수 없다.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해왔던 작가인 박서련, 최진영 작가의 단편은 당연히 즐겁게 읽었다. 특히 박서련 작가의 「옥이」는 『체공녀 강주룡』에서도 보여주었던 작가 특유의 다채로운 방언 사용, 노동투쟁에 대한 깊은 이해가 드러나는 속편이어서 『체공녀 강주룡』도 다시 들춰 읽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김희재, 김유원 등 비교적 최근에 등단해 아직 낯설었던 작가들의 단편도 많은 감탄을 자아냈고 작가의 수상작이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서른 번의 힌트』의 최대 장점은 이 책 한 권에 무려 20명이나 되는 작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서운한 이야기지만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일 수는 없다. 작가 20명의 글이 취향인지 알아보기 위해 책 20권을 사야 한다면, 그리고 개중 몇은 취향이 아니라서 책장 구석으로 보내야 한다면 독자에게도 책장 구석으로 보내진 책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서른 번의 힌트』는 아직 현대 문단을 이끌어나가는 작가들이 조금은 낯선 초보 독자들에게, 일종의 맛보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한겨레문학상이 달려온 30년을 기록하는 동시에 새로운 독자들에게 앞으로 읽어나갈 책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게 된 셈이다.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꿰뚫는 작품들로 오랫동안 문단에서 권위 있게 자리매김해온 한겨례문학상의 30주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의 기대와 함께 글을 마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