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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뇌과학 - 반려견은 어떻게 사랑을 느끼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이주현 옮김 / 동글디자인 / 2025년 7월
평점 :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강아지도 날 사랑할까?” 그저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주니까 옆에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진짜로 나를 ‘좋아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할까? 『개의 뇌과학』은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미국 에모리대학교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 교수는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을 ‘과학적 장비’로 개의 뇌를 들여다보며 탐구한다.
이 책은 단순히 연구 결과만을 나열하는 과학서가 아니다. 실험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기까지의 수많은 이야기, 인간과 동물의 신뢰를 쌓아가는 인내의 과정, 윤리적 고민과 개인적 성찰이 어우러져 있어 흡사 한 편의 과학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하다. 더욱이, ‘개의 뇌’를 들여다보는 방식이 **최첨단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이라는 점이 놀랍다. 인간의 뇌 분석에 사용되던 이 기술을 ‘자발적으로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있는 개’에게 적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이다.
물론 이 실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스 교수는 실험 대상인 반려견들에게 마취 없이, 강제 없이 MRI 기계에 스스로 들어가 머무는 훈련을 진행했다. “동물에게 억지로 실험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은 이 연구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렇기에 개들은 놀람, 경계, 신뢰, 기대, 기쁨 등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하며, 이는 곧 뇌의 특정 부위 활성화와 연결된다.
그중 특히 인상 깊은 발견은, 개의 뇌 속에서도 보상과 사랑에 관련된 ‘선조체’(caudate nucleus)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보상을 기대할 때 반응하는 부위와 동일하다. 저자는 이를 통해 반려견이 인간을 단순한 명령어 공급자 이상으로, 감정적으로 연결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개의 사랑도 뇌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책은 개의 후각 능력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개의 뇌 구조에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후신경구(olfactory bulb)**가 존재하며, 이를 통해 개는 냄새로 세상을 ‘읽는다’. 특히 실험에서 개들은 주인의 냄새와 낯선 사람의 냄새에 대해 전혀 다른 뇌 반응을 보인다. 주인의 냄새는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했고, 이는 곧 개가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의 뇌과학』은 단순한 뇌의 구조나 반응을 넘어서,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과학적 여정을 펼쳐 보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학이 이렇게까지 따뜻할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이 실험은 수치와 그래프가 아닌, 오롯이 개라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서술 방식은 과학책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친절하고 유쾌하다. 반려견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독자도 자연스럽게 저자의 여정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실험에 참여한 개들—특히 ‘캘리’와 같은 주요 인물(?)—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독자라면 “우리 아이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저자 스스로도 이 연구가 아직 ‘시작’일 뿐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실험에 참여한 개의 수는 제한적이며, 모든 개가 동일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은 걸음을 통해 개와 인간 사이에 ‘진짜 감정적 연결’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앞으로의 과학적 탐구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결국 이 책은, 반려견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과학의 대답이다. 그것도 따뜻하고 정중한 방식으로. 단순히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과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 혹은 개를 단지 ‘훈련의 대상’이 아닌 ‘감정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은 따뜻한 울림을 전한다.
요약하자면, 『개의 뇌과학』은 인간과 개 사이의 유대가 단순히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일방향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감정적 실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놀라운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반려견의 꼬리 흔들림과 눈빛, 몸짓 하나하나에는 과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한 ‘사랑’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반려견과 함께 사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일상의 눈빛이 전혀 새로운 깊이로 다가오게 만드는 감동적인 한 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