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제프 호킨스 & 샌드라 블레이크슬리 지음, 이한음 옮김, 류중희 감수 / 멘토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사실 제목을 공돌이가, 라고 하려다가 아무래도 제목에는 부적절할 것 같아서 바꿨다. 잠이 안오는 밤에는 결국 글을 끄적거리게 된다. 책을 읽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언가 능동적인 일을 해야 나를 사로잡는 생각들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운동을 하자니 달밤에 운동은 역시나 귀찮다. 결국 만만한 것은 글 찌끄래기를 끄적거리는 것인데, 외로울때는 역시 무엇인가 끄적거릴 수 밖에 없고, 아마 이런 점이 외로운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현대에 SNS가 발달한 원인이었겠지.

 

별 다섯개를 이 책에 줬는데 사실 나는 먼저 이 책에 대하여 비판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제목의 공대생이 책을 쓰면.. 운운하는 소리는 중의적 의미이다. 공학계열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있는 반면, 공학계열만 공부하였기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많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이 책의 저자는 세세한 부분에서 오류를 보이고 있다. 뇌의 작동방식을 병렬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그 예로 이런 것을 제시한다. 한 사람이 백걸음에 할 수 있는 일을 백사람이 하게 되었다고 치자. 이 때 책의 저자는 백 사람이 하게 되었더라도 여전히 백걸음을 걸어야 되기 때문에 이런 속도적 한계를 병렬로만은 해석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한 사람당 백 걸음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 결과적으로 같은 양의 일을 백 사람이 하게 되었을 때는 백 사람 X 백 걸음에 비하여 한 사람 X 백 걸음 만큼 일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간과한 예시이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한 사람이 백 걸음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이제 백 명이 있어서 그걸 백 걸음에 일을 동시에 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일의 총량은 백 사람 X 백 명이고, 이걸 한 사람이 다 하려면 백 사람 X 백 명의 일을 다 해야 하니, 한 사람에 비하여 백 사람의 처리 속도가 더 빠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백 걸음, 이라는 것이 근원적인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에 병렬로 뇌의 작동방식을 해석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라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겠지만, 본인의 예를 든다고 하더라도 병렬이 직렬보다 빠른 것은 부정못한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현대 심리철학적 논제에 대하여 상당히 무지하다는 것을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데, 책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대략 밝힌다. "난 좀비라도 괜찮아요" 어느 세미나에서 어느 뇌과학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하는 이야기이다. 그 뇌과학자는 감각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에 대하여 당신이 그런 내밀한 감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 않느냐, 라고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그런 논의를 깔끔하게 무시해버린다. 그 말이 바로 위의 말이다.

 

심리철학에서 마음에 관한 논의 중, 메리의 방과 좀비 논변, 역전 감각질 논변에 기능주의에 일격을 가한 퍼트남의 다수실현논변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혹시 알고 싶은 사람은 구글링해보면 알 것이고 - 요즘 인터넷이 너무 발달해서 좋다 - 여기서 좀비 논변을 조금 끄적거리자면 1. 나는 내가 의식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을 안다. 2. 그런데 다른 사람도 그럴까? 이다.

 

아마 저자가 심리철학적인 베이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니 공학도가 책을 쓰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어디서 좀비를 듣기는 들었으니 이야기는 하는데, 의식에 대한 예로는 정말 오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좀비 논변은 먼저 내가 나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라는 점에서 전제를 두며, 글쓴이처럼 난 의식이 없는 좀비야, 그래도 괜찮슴, 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 실험에서 의식이 사실상 기억에 의존한다, 라는 것을 밝히려하는 것에도 상당한 오류가 있다. 본인의 틀, 모델을 어떻게든 적용하려고 발버둥쳤겠지만, 사실 이야기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그의 사고 실험은 이렇다. 우리가 버튼을 눌러서 어제의 기억을 몽땅 지울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당신은 의식이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기억이 지워진 이후의 당신은 이제 어제 내가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른 논변이다. 어제 지워진 것은 어제의 기억이지 어제의 의식이 아니다. 이미 기억과 의식을 같은 거라고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오지가 않는다. 어제의 나는 의식이 있었다. 오늘의 나는 의식이 있다. 어제의 기억이 사라졌더라도 어제의 나는 의식이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는가? 잘 읽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비슷한 류의 과학자인 라마찬드란 박사의 책을 읽을때에는 그래도 철학적인 베이스에 논리적 기본기가 있어서 그랬는지 상당히 납득이 갔는데, 이 책의 사변적 증명은 사실 와닿는게 하나도 없다. 아마 이 책은 뇌과학에서 고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게 별 다섯개를 준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책 스스로는 고전이 되기 어려울지라도 마운트캐슬의 논문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히게 될 것이다. 뇌 피질들의 유사성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외계인의 눈으로 본 결과일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다시 말하겠다.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 그럼 사람들의 차이보다는 유사성에 눈에 번쩍 뜨일 것이다.

 

이런 시각을 뇌에까지 접목시킨 저 논문은 분명 찬사받을만하다. 그리고 이 논문에서 일종의 틀로 만든 기억 - 예측 모델은 어렴풋한 복잡계, 창발 이런 단어에 괜스레 의존하게 되던 뇌과학에 분명 새로운 바람을 불어일으킬 것이다. 나중에 창발에 관하여 이야기를 좀 할텐데, 난 사실 저 개념에 대하여 상당히 의구심을 품고 있다. 사실 저런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아마 공학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책을 썼다면 - 그리고 실제로 그런 책들이 많은데 절대 이 책처럼 청사진을 만들 생각은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그런 신경생물학자들은 뇌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고 있기에. 그러나 공학자이기 때문에 뇌의 피질에 집중할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걸 청사진을 만들어서 해석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말미에 적힌 예측들의 결과가 더욱 기다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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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4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5-06-17 23:26   좋아요 0 | URL
가연 님, 제가 관심 있는 분야라 위 리뷰 글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더군요.

그런데 가연 님이 전개한 제프 호킨스(Jeff Hawkins) 비판에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즉 ⑴ 제프 호킨스가 좀비 개념을 오용하고 있으며, 좀비 논변을 잘못 전개하고 있다는 가연 님의 비판은 전혀 옳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⑵ 제프 호킨스의 기억 지우기 사고 실험 논변도 그른 논변일 뿐이라는 가연 님의 비판 또한 전혀 옳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가연 님의 두 가지 비판이 왜 오류인지 자세히 밝히는 역비판글을 제 블로그에 올려놨습니다.

처음에는 윗글을 읽고 댓글란에 제 답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글이 너무 길어지고 해서, 제 블로그에 역비판글 형식으로 완전히 새롭게 올렸놨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익한 논쟁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비판글 제목과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프 호킨스의 좀비 논변과 사고 실험 논변이 과연 오류일까?
http://blog.aladin.co.kr/qualia/7601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