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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1.

 

 

 

 

  사람의 정신은 정말 복잡하고 미묘하기에 어떤 요인을 겪으면 당시에는 별로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느꼈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이런 저런 문제의 단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정신에는 여러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꼭 정상인이 아니다, 장애인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정신의학적인 병리상태로 장애인, 이라고 불릴 만큼 장애가 있으려면 일상 및 사회생활을 하는데 정말 크나큰 지장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문제가 있어도 우리가 사회생활이나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부연하자면, 좀 약한 정도의 정신과적인 장애는 많이들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이지요. 그 중에 특히나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적인 질환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강박장애입니다. 보통 우리가 정신과 질환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사회적으로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많을 것 같고 왠지 모르게 가난한 사람들이나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들에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분열병의 경우에는 사회경제적인 상태가 낮을 때 호발합니다.(물론 이는 사실 애매한 말입니다. 낮을 때 정신과적인 질환이 나타난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적인 질환이 있기에 계층이 낮아졌을 수 있습니다.) 외인적으로는 스트레스나 좌절을 많이 받게 되면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요. 물론 유전적 소인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강박증은 좀 특이한 질환인 것이, 이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학력이 높거나 고지능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소인도 강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뇌 속의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부족 등의 요인들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학력이 높거나 고지능인 경우가 많다, 라는 내용에서 착안해보면, 거칠게 말하면 현대 사회일수록 이런 강박증이 많이 등장한다,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로 접어들면 접어들수록 각종 교육이 의무화되어가고, 누구나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말이지요. 학력과잉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일수록 강박장애는 그 밝음 뒤에서 한편으로 숨어서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지요.

 

 

 

 

2.

 

 

 

 

  물론 위와 같은 주장은 엄밀하지 않습니다.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이 학력이 높은 경우가 많다, 라는 것과 학력이 높은 경우 많이 생긴다, 라는 주장은 선후관계가 언제나 뒤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것이지요. 하지만 일단 그 부분을 접어두고 학력이 높을수록 강박증이 많이 보인다, 라는 주장을 보면, 생각보다 개인과 사회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강박장애의 진단 기준을 봅시다. 먼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있고, 다음으로 이것이 과도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을 인정하고, 생활에 장애를 줄 때 우리는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강박사고란 무엇일까요? 부적절하고 반복적이고 고통을 주는, 일상생활과는 관계없는 사고입니다. 그리고 불합리한 사고가 환자에게 주입당하지요. 강박행동은 무엇일까요? 강박사고를 해소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숫자를 세고 기도하고 손 씻는 등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몇 몇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숫자를 세고, 손을 씻는다, 와 같은 부분 말이지요. 우리는 사회에서 손을 몇 번이고 씻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남이 만진 문고리를 만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손을 씻는다거나 숫자를 센다거나 하는 행동이 정말 무의미하다는 것을 마음 깊숙이 인지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된다면 (심각한 장애라고 부를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본인 스스로가 그런 행동이 거슬리고, 심하면 좌절감까지 겪게 되는 것이지요. 그건 정말로 ‘어쩔 수 없음’ 입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의 주인공이 강박장애를 앓고 있지요. 남들이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신 스스로는 괴로운 것이 바로 이 강박장애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문이 잠겼다는 것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는 것 등은 이런 강박장애의 가벼운 증세와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측면에서는 어떤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볼 때, 실제로는 별로 대단치 않고, 구성원들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왠지 무언가 더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을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와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합리적이지 않은 사고로 사람들을 몰아갑니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에 올라야지, 명문대에 진학해야지, 이런 사고를 주입받은 자녀는 강박적으로 명문대에 가야지, 더 높은 위치에 올라야지, 라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자각하게 됩니다. 이런 강박적인 사고가 제대로 행동으로 (결과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앞서 개인적인 강박증과 마찬가지로 심한 좌절감까지 겪게 되며 때로는 강박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결국 지나친 스트레스에 못 이겨 극단적인 행위를 하기도 하지요. 이는 음식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가 강박장애와 만나게 됩니다.

 

 

 

 

3.

 

 

 

 

  우리는 수많은 음식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일부는 물론 선정적인 언론 보도 때문이겠지만, 그 중 일부는 근거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근거는 특정 음식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기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에서는 어떻게 그런 근거들이 특정 음식을 사람들이 찬양하게 만들고, 혹은 혐오하게 만들었는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예가 요구르트, 소고기, 우유, 비타민, 콜레스테롤입니다. 우리는 요구르트와 우유를 건강식품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어떻게 요구르트와 우유가 오늘날과 같이 건강식품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몰락하였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소고기도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에 대한 문제가 크게 사회에서 논란이 된 때가 있었지요. 이 책에서도 직접적으로 광우병을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부분을 할애하여 비위생적인 소고기 도축 시설과 사료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비타민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이 허약해진다, 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 책은 비판을 가하는데, 물론 비타민을 섭취하지 않으면 허약해지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비타민이 발견 당시에 그렇게 이슈가 된 것은 자본의 입김이 뒤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면 심혈관계 질환이 많이 증가한다, 와 같은 주장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책은 어떤 음식을 먹어야 된다, 먹지 말아야 된다, 라는 것을 음식에 대한 ‘공포’ 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공포는 사회 자본과 의사, 영양사 집단, 전문가들에 의하여 조장되어왔다고 주장합니다. 근거없고 막연한 공포에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이런 근거 없고 막연한 공포는 앞서 말한 강박장애와 연관됩니다. 사회적으로 볼때 사람들은 일상생활과 관계가 없고, 실제로 그 본인도 불합리할 것 같다, 라고 여기면서도 남들이 따르고,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니 그런 이야기들에 사고를 주입당하여 각종 음식을 피하거나 선호합니다. 버터를 피하고 요구르트를 피하고, 혹은 그 둘을 먹고 말이지요. 저자가 말하는 근거를 보면 확실히 그럴 듯 합니다. 어떻게 영양 회사나 가공 회사가 특정 음식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그 공포로 돈을 벌었는지, 객관적인 연구를 해야 할 과학자들마저도 그 열풍에 휩쓸려 그 공포에 한 축이 되었는지를 여러 자료를 들어서 제시하고 있지요. 결과적으로 이 책은 다른 연구자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슨 음식이든지 자유롭게 먹어라, 무슨 음식을 먹어야 되고, 먹지 말아야 되는가,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적당히 먹는 것이 당신의 건강에 가장 좋은 것이다, 라고 말이지요.

 

 

 

 

4.

 

 

 

 

  하지만 이 책은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방금 이 책은 특정 음식을 먹어야 된다, 먹지 말아야 된다, 라는 것을 음식에 대한 공포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는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은, 막연한 공포지요.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암으로 죽은 누구누구씨 말인데, 저번에 콜레스테롤이 든 우유를 마셨대, 등과 같이 말입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우리는 음식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은 그저 그 뒤에 그런 관념을 가지게 만든 세력이 있다, 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야말로 앞서 말한 강박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각종 뜬구름 잡는 소리에 의하여 주입당한 사고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만약에 그 공포가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더 이상 그 공포는 막연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형상을 띄니 말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책은 엄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콜레스테롤의 경우, 이 책에서는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현대 연구 결과로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의 섭취가 증가되면 증가될수록 실제로 관상동맥질환들의 위험률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에서도 저밀도 콜레스테롤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짧은 부분을 할애하고 넘어갑니다. 이 책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콜레스테롤에 대한 위험이 과장되어있다, 라는 주장) 희생되어버린 것이지요.

 

게다가 이 책은 이런 입장, 음식에 대한 공포는 과장되어있다, 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한편에 오류가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고기가 도축되어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그 과정이 비위생적이다, 라고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낸 도축 과정의 실체를 그려낸 책을 보고 사람들이 소고기에 대하여 반발심을 가지는 것과 대비해서 정부나 육가공 업체의 반발이 거세다, 등의 사례를 그려놓았습니다. 결국 미국 내 소고기 소비는 별로 줄지 않았다, 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공포’ 를 느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말해서 도축 과정의 실체를 그려낸 책들을 보고 사람들이, ‘아, 이제 소고기 먹지 말아야지’ 라고 느낀다면 공포를 느낀 걸까요? 그렇다면 비위생적이고 세균이 가득 찬 도축 과정의 실체를 보고도, 에이 저건 과장된 거야, 책 쓴 사람이 과장을 한 거야, 라고 말하면서 소고기를 사먹는다면 음식에 대한 공포를 이겨낸 걸까요? 그러니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막연한 공포, 를 이겨낸 거라고 보아도 될까요? 아닙니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겠지요. 이 책은 음식에 대한 공포를 큰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례를 가져와서 억지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려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그야말로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은 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5.

 

 

 

 

  그럼에도 이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겠습니다. 바로 정당한 과학적 근거를 공포에 대항하여 따져보라, 라는 부분 말입니다. 일전에 우리는 광우병 사태를 겪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는 사실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그렇게 반대를 한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그 당시 뉴스 보도를 보면서 계속 품었었습니다. 물론 어쩌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계약이 제한이 걸려있다거나 등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그 사태에서의 정부의 모습은 국민들의 불안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뒤에 이어진 여러 촛불시위들을 보면서, 그리고 인터넷을 잠식한 광우병 관련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촛불시위들은 어쩌면 일종의 광풍과도 마찬가지였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시위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어쩌면 바람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 귀를 막은 손을 내리거나, 아니면 귀를 막더라도 들리게 크게 소리를 지를 수 밖에요. 하지만 본래 시위는 ‘현 FTA로는 도저히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지 안걸릴지 과학적으로 안정성을 검증할 수 없다, 그러니 수정을 해야 한다.’ 등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었어야 옳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터넷에서는 ‘광우병은 소의 변형 프리온을 0.0001g만 섭취해도 걸리고 젤리를 먹어도 걸리고 조미료를 먹어도 걸린다, 라면 스프를 먹어도 걸린다’ 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의식은 조금씩 격렬해져 갔었습니다. 물론 변형 프리온은 정말 끔찍한 존재이긴 합니다, 하지만 정말 저렇게 젤리, 조미료를 통해서 전파된다면 지금쯤 미국의 인구는 큰 수로 줄어들었겠지요. 떠도는 말들 중에는 생리대에 관한 말도 있었습니다. 생리대를 사용하면 광우병에 걸린다던가요. 하지만 이런 공포는 사람들을 잠식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어느 순간 정부는 저런 극독을 들여온 악의 무리가 되었습니다. 국민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사실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판을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지요. 물론 광우병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연구가 진행중이지요. 하지만 적어도 당시의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 처럼 집단적으로 인간 광우병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아무래도 지나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발병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인간과 소 사이에는 종족 간 장벽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섭취를 한다고 해서 쉽게 걸리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는 왜 그렇게 인간광우병이 발병했는가? 그것은 종족 간 장벽을 뛰어넘기에 충분한 독성을 프리온이 획득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그 독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독성은 일종의 순환 때문에 강해집니다. 처음 광우병에 걸린 소가 있습니다. 그 소는 죽어 다시 사료가 됩니다. 그러면 다시 그 사료를 양이 먹고, 사료가 되어 소에게 먹히지요. 만약에 이 소가 다시 사료가 되었다면 그때까지 남아있는 프리온은 몇 번이고 다른 동물들을 이동해가며 독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순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사육이 되어야겠지요. 당시 영국의 경우에는 양의 군집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충분히 독성을 키울만큼 순환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로 대규모 사육을 하는 반추동물군이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반추동물을 사료로 쓰는 것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오염된 육골분은 엄격히 규제하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미 발병한 것을 들여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옳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각종 안전장치와 규제가 집중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우너, 그러니깐 광우병이 발발한 소를 도축하는 것을 금지하고, SRM, 광우병 위험물질인 뇌와 두개골 등을 엄격히 규제하는 한, 오염된 육골분 사료를 없애는 한 광우병이 일어날 확률은 희박합니다. 논문들에서 언급하는 0.0001g과 같은 수치는 뇌와 척수 부분을 가지고 실험한 결과입니다. 살을 먹는다면 더욱 더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혈액전파는 변형프리온이 존재할 수 있는 림프구를 성분 수혈을 통해 제외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대처방법들이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시위는 이런 부분, 안전장치가 미국에서 제대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검역이 제대로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광우병 시위는 이런 부분에 처음에는 집중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정말 극소량으로도 걸린다고 하던데, 조미료로도 걸린다고 하던데, 와 같은 부분에 집중하기 시작해서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이성적으로 따져보려는 사람들을 정부의 앞잡이다, 와 같은 말로 매도하는 경우도 생겼었습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리라 짐작됩니다. 공포는 사실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두렵지만, (당시에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이렇게 된다 등의 말이 많았었지요, 대부분의 주장이 과장된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공포를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우리는 치매와 인간광우병의 증상을 유의하게 가려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록 이성을 찾고 근거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고기를 계속 먹겠다면, 육식을 계속 하겠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선을 정할 수 밖에 없고, 우리는 그 선을 최대한 엄격하고 엄밀하게 이성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변형 프리온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별 수 없이 채식으로 식성을 전환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과학에서는 절대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변형 프리온은 정말 소 살코기만 먹었는데 섭취될지도 모르고, 조류에게도 퍼질 가능성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닭도 먹지 못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설령 그런 것들이 사실로 다가오더라도 나중에 일어날 일, 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하여 아직 판단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검역체계에 대한 감시 등과 같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겠지요. 모두가 광우병의 병태 생리에 대해서 전문가는 될 수 없지만 이성적으로 무엇이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일인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공포에 대항하는 이성, 그것이 이 책,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의 궁극적인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부과되는 사회적인 강박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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