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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따뜻한 경쟁.

 

 

 

 

 

1.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저는 탐탁지 않은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보통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전에, 잘 아는 책이 아니면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다른 책들을 찾아보면서 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아보려고 노력하는데, 이 책의 제목으로 검색을 하자 이 책의 저자의 아내 되시는 분이 본인이 활동하는 카페에 올린 잡담 겸 알림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글의 덧글들에는 한 번 주문해서 읽어볼께요, 하는 댓글이 몇 개가 달려있었고 말이지요. 그 후 다시 검색을 하자, 이번에는 저자의 블로그에 서평이 올라온 인터넷 주소가 모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실 책을 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책이 잘 알려지기를 바라고,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며, 동시에 많이 팔렸으면,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인터넷에서 저렇게 글을 올리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본인의 책을 본인이 홍보하겠다는데 이상할 것도 없고, 적어도 돈 주고 알바를 시켜서 본인이 아닌 척 홍보하는 것 보다는 훨씬 당당하고 좋지요. 그러나 저는 적어도 책에 있어서는, 책 자체로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리고 책을 알리는데 있어서는 단순한 광고문구가 아닌, 적어도 독자의 주체적인 생각이 함께 하여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기에, 저런 모습이 솔직히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요즘 세상은 정보 과잉의 세상이기에, 훌륭한 책도 많은 정보들에 밀려서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훌륭한 책이라고 해서 잘 알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 훌륭한 책이 훌륭하다고 알려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을 거라면 굳이 출판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일방적으로 정보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 냉전시대의 국가에서 뿌리는 선전 용지와 다를 바 없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일종의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네, 사실 저는 이런 편견을 조금 가진 채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

 

 

  지금껏 인문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점차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었지요. 인문관련 서적을 읽고 있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소설이라던가 그 외에 에세이를 읽고 있을 때는 정말 스스로가 빨리 읽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별로 비슷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야기하자면 마치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달고 뛰다가, 잠시 벗어두며 뛰면 스스로가 빨라지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지요. 물론 다른 장르가 생각할 부분이 적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인문계통의 책들이 생각을 훈련시킨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시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일종의 정신적 운동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 책은 딱딱한 이론을 정립하거나 빈틈없는 논리 전개로 차갑게까지 여겨지는 그런 인문 서적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에세이에다가 사회현실을 섞은 그런 책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읽어나가면서 점차 저는 제가 품고 있던 편견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읽을 만한 책이다, 라고 말이지요. ‘따뜻한 경쟁’ 이라는 책은 이미 제목에서 모든 것을 다 함축하고 있습니다. 경쟁을 하되 따뜻하게 하자. 그렇다면 어떤 게 따뜻한 경쟁인가? 이 책에서는 따뜻한 경쟁을 스위스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실패를 용납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이며, 다양한 경쟁이 이루어질 때를 말하고, 공교육이 든든하게 받쳐주는 상태에서 여러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경쟁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이지요. 우리 속담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라는 말이 있던가요, 궁지에 사람을 몰아넣지 않는 것, 이 경쟁이 끝나도 아직 살아갈 길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따뜻한 경쟁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따뜻한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 밖에 없지요. 고3수험생들은 수시로 대학에 이미 합격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수능을 마치고 자신의 인생이 끝난 듯한 느낌을 받으며, 회사에 입사할때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서 스펙을 쌓지 않을 수 없으며, 입사하는 것에 계속 미끄러지면 이윽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도 있고 말이지요.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수능보다 더 어렵습니다. 수능이야 치고 난 뒤에는 세상이 끝난 것 같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 길을 택할 수 있게 되지만, 공무원 시험은 정말로 자신의 평생직장을 구하는 것이라 더 신경 쓸 수 밖에 없고, 더 목숨을 걸며 준비할 수 밖에 없지요. 전국을 둘러보면 수많은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예전에야 네 꿈이 뭐니? 라고 물었을때 9급 공무원이라고 말하면 꿈이 낮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9급 공무원이라도 감지덕지라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이들 중 저학력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 대학을 나왔고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이지요. 비싼 돈 들여서 대학의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대학에서 받은 교육을 써먹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대학이라고 딱히 무슨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졸업생들이 다시 대학에서 조교나 강사로 일하지 않는 한, 그러니깐 직접적으로 대학에 관여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 몰라라, 식으로 내버려두게 됩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의 근원은 무엇에 기인할까요?

 

 

3.

 

 

  이 책의 저자는 코리안 패러독스와 스위스 패러독스라는 용어를 정의하며 저 현상을 이렇게 진단합니다. 먼저 코리안 패러독스란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가 넘는데도 젊은이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며, 스위스 패러독스란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은 스위스가 매우 높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현상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젊은이가 대학을 진학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젊은이의 집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대학은 나와야 먹고 살 수 있다, 라는 말에서부터 주변에 모두가 대학을 나왔다, 요즘 세상에 고졸을 봤느냐, 나와서 뭘 하며 살 건데, 라는 말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 젊은이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말에 따르게 되며, 그 중 정말 한 둘은 나와서 살겠다고 부모와 인연을 끊다시피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려고 하지만 세상의 험악함에 질려서 결국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언론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개천에서 용났다, 고학생에서 대기업 회장이 되었다, 등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봅시다. 힘든 생활을 거쳐서 결국 잘살게 되었다는 사례가 언론에 날 정도라면, 얼마나 드물면 그렇게 언론에 기사화되겠냐고 말입니다. 물론 저 의지를 본받으며 잘 해나가면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기사화된 것이리라고 짐작합니다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기사화가 된다는 것 자체가 그런 현상, 개천에서 용난다거나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우뚝 선다거나 하는 현상이 드물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딱히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겨우 겨우 기업에 취직하는데 급급할 뿐이고, 대부분 그렇게 취직도 하기가 쉽지 않아서 학교 졸업을 차일피일 미루고 말지요. 게다가 대기업들은 쉬쉬하면서도 아무래도 수능 성적에서 상위권에 위치하는 대학들, 소위 말하는 명문대생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명문대가 아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이중, 삼중으로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신이 전공한 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인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부는 대학교 간판을 바꾸기 위해서 편입을 하거나, 대학원을 명문대로 간다거나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서도 차별은 끊이지 않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든지 진학하지 않든지 문제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 무조건 진학시키려합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저런 문제점조차도 겪지 못하게 되고, 좀 더 넓게 말하자면 최소한의 기회조차도 박탈된다는 이야기이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개천에서 용나는 그런 사회는 이미 예전에 끝났으니깐 그렇겠지요. 그 바탕에는 기술직에 대한 천시가 어느 정도 깔려있다고 봅니다. 대학에 가서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기술직은 힘들기만 하고 돈을 별로 못 벌고,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대접을 많이 해주지 않습니다. 어느 직업이든 톱니바퀴처럼 꼭 사회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직업들인데 신분이 마치 조선시대처럼 나뉘어져있으니, 불만이 쌓이고 자신의 자녀만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교육만이 유일한 신분상승의 길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길이, 경쟁의 방법이 단 하나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의 입장은 다릅니다. 스위스에서는 직업교육을 받는 것을 장려하며, 대학 졸업장에 대한 집착이나 콤플렉스가 없다고 합니다. 공교육에서는 선생님은 학생에게 ‘꼭 네가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합니다. 우리는 스위스의 롤렉스 시계를 시계 중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시계내부의 부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두 대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학위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마이스터’라는 이름으로 대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충분히 존중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직업이 시계수리공이라고 한다면 뒤돌아서서 수군거리지만, 스위스에서 직업이 시계수리공이라고 한다면, 게다가 롤렉스 시계를 만든다고 한다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이들은 많은 보수를 받고 개인의 상황판단만으로도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술직에 비하면 전혀 딴판이지요. 직업을 고를 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적성과 흥미, 재능도 맞아야겠지만, 보수와 사회적 인정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스위스는 우리나라에 비하여 다양한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하지만 따뜻한 경쟁, 이라는 이 책의 모든 내용에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스위스와 우리나라의 비교가 정말 가능한가, 라는 것이지요. 몇 가지 수치를 따져보겠습니다. 스위스의 인구는 2008년기준으로 758만명이고 크기는 4만1290제곱킬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기준으로 4875만명입니다. 나라의 크기는 10만 210제곱킬로미터이고 말이지요. 스위스의 인구가 2년 사이에 급증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최소 서너배는 인구차이가 나며, 나라의 면적도 두배 이상 납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내륙국이고 우리나라는 반도국가라는 점도 생각해볼만한 점입니다. 저자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스위스의 시민들이 깨어있는 시민들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스위스가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된 배경은 저렇게 인구수가 적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리라 여겨집니다. 저 정도 인구수라면 깨어있는 시민들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이 있고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단체는 각자의 목소리에 뒤덮여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대표할 사람들을 뽑아서 정치를 시킵니다. 그러나 스위스는 어쩌면 그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국가가 아닌가, 굳이 대표자의 귄위를 강화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혼란에 빠지지 않는 그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렇다면 스위스의 정치 체제나 교육 체계를 단순히 우리나라에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책에서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점을 이야기하면서 구색을 맞추려 하고 있습니다만 곧이어 시민들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용을 넘겨버립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스위스의 예를 들다가 갑자기 브라질의 시민참여의 사례로 건너뛰는 부분은 그저 자신이 경험한 부분을 최대한 많이 넣으려는 욕심이 아닌가, 정도로까지 보입니다. 이왕 다른 국가를 더 넣을 생각이었다면 시민참여부분뿐만 아니라 책의 주제에 맞게 경쟁부분에서도 다른 나라들을 충분히 조사하는 것이 옳겠지요. 책의 말미에는 뜬금없이 한반도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름의 의도가 있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전체적인 주제와 겉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남북한이 따뜻한 경쟁을 한다는 말이나 남북한이 공존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닌 이상은 말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의도로 적어둔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청년들의 경쟁 문제는 따뜻한 경쟁과 서로의 공존이 해답이 될 수 있지만, 남북한 관계는 (물론 중간 중간에 공존도 하고 경쟁하는 시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되며 근본적으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고 할지라도 해답자체가 다른 이야기들을 억지로 넣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긍정적입니다. 단순히 따뜻한 경쟁을 하자, 라고 원론적으로 외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어떤 방식을 택하면 좋을까, 모색해본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경쟁 이외에 다른 길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위스처럼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붙잡고 대학을 안가도 이쪽으로 가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 라고 이야기하는 모습들, 기술직에 있는 사람이 잘릴 위험이 없이 관리직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모습들 등을 말이지요.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스위스는 스위스이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다가 서로의 인구나 상황도 다르니 영영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저렇게 교사들이 학업 지도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것이며,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봉급 문제로 넘어가게 되고, 블루칼라들의 지위가 높아지더라도 화이트칼라들은 여전히 블루칼라들에 대해서 배타적일 것이고 그러다보면 블루칼라들은 배타적인 태도를 이기지 못해 그들끼리 조직을 만들고 맞서 싸울 것이며 그러다보면 혼란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재해있다고 해서 이상적인 사회를 잠시나마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정답조차 알지 못하고 헤매는 것 보다 최소한 정답이라도 안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스위스의 체제가 정답일지는 좀 더 세월이 흘러봐야 알겠습니다만, 적어도 교육만이 거의 유일한 상위 계급으로의 통로가 되어버린 우리나라보다는 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남들에게 따르게 하려 할 때에 날카로운 논리를 내세우며 서로를 논박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논리와 논리가 있으면 설령 상대방의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이상 이해하고는 따를 수 있으나, 감정과 논리가 맞서게 되면 서로를 항상 엇나가게 되고, 감정과 감정이 맞서는 경우에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 한 상대방의 감정에 거의 대부분 평행선을 달리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날카로운 논리가 아니더라도, 차가운 논박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같은 꿈을 꾸게 만들면 됩니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요. 이 책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차가운 경쟁을 이기고 서로가 존중받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꿈’의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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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2-03-12 14:36   좋아요 0 | URL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가연 2012-03-13 12:30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3-13 13:21   좋아요 0 | URL
가연님 여쭤보고 싶은게 한가지 있는데, 혹시 과학사 책으로 많이 읽는 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과학의 탄생>을 제외하고 표준적(?)으로 많이 읽는 과학사 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 염치불구 부탁드릴께요.^^;

가연 2012-03-13 16:54   좋아요 0 | URL
아.. 부탁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만, 죄송하게도 제가 과학사에 관련된 책을 그리 많이 접하지 못해서 추천드릴만한 책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안 읽은 책을 읽은 것처럼 말씀드릴수는 없으니..ㅠㅠ 지금 예로 들어주신 과학의 탄생, 이라는 책도 방금 빵가게재습격님이 언급해주셔서 찾아보았습니다. 지금껏 제가 몇몇 과학사, 라고 이름이 붙은 관련 책들을 접해보긴 했으나, 대부분 고대(과학과 철학의 구분이 없던 시대)로부터 거슬러올라가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성을 큰 틀로 가졌었는데, 고대의 과학을 다루는 부분은 철학의 역사를 다룬 책들만 못하고, 진정한 의미의 과학이 시작된다고 개인적으로 여기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 대두되는 시기에 있어서는 과학철학관련 서적을 보는게 나은 것 처럼 보여서 전반적인 과학사를 다루는 책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여겨지지 않아서 ㅠㅠㅠ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게다가 물리나 화학을 기준으로 보는가, 생명과학을 기준으로 보는가(저는 사실 물리를 좋아하지만 배운 것은 생명과학분야를 배웠기에...)에 따라서 책의 선택도 매우 달라질 수 있을테고 말이지요. 괜히 죄송스러워서 이렇게 길게 주절거려놓았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해서 저보다 과학 관련 책을 훨씬 많이 읽은 분께 부탁드리는게 옳을 듯 합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3-13 22:30   좋아요 0 | URL
어이쿠, 댓글을 보니 제가 죄송하네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