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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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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신자들. 

 

 

  '맹신자들' 은 에릭 호퍼가 지은 여러 권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이며, 또한 상대적으로 그의 다른 저서들에 비해서 많이 알려진 책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에서의 에릭 호퍼는 그리 인지도가 높은 학자는 아니지만 말이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저자 에릭 호퍼에 대해서 그리 많은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접하기 전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은 그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 정도였는데, 그는 사실 이 책의 책날개에도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시력을 잃었지만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이 된 후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읽어버리겠다는 듯이 책들을 읽어내려갔던 대단한 독서광이었으며 마지막으로 길 위의 철학자, 라는 이명(異名)이 붙을 정도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조금만 더 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아본다면, 그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머무를 기색을 보이면 주저없이 자신의 짐을 챙겨서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애초에 그가 처음 길을 떠나서 도착한 곳이 '노숙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온화했고, 길가에 오렌지가 열린' 캘리포니아였으니 말 다했지요. 경제적인 이익도 그를 붙잡지 못했고 사랑도 그를 붙잡지 못하였으나 단 하나 그를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학문에 대한 열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보면, 물론 저도 조금 들쳐본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제 1권의 그 첫머리에 이렇게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앎의 즐거움을 원한다. 인간의 지능은 감각에서 ... 지혜로 나아간다. 지혜란 그 어떤 원인이나 원리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이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에릭 호퍼의 경우가 위의 저 말에 특히 잘 들어맞는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평생을 일을 하면서 책을 읽고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단순히 무학(無學)노동자가 자격지심에서 공부를 한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뜨거웠으며, 그 열정의 결과물도 너무나 사유의 폭이 깊었었지요. 즉, 그의 열정은 순수한 앎에 대한 욕구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릭 호퍼가 지혜로 나아갔을까요? 네, 지혜의 정의가 위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원인과 원리를 파헤치는 학문이라면 에릭 호퍼는 충분히 나아갔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사유와 연구의 결과물로 바로 이 책 '맹신자들' 을 발표할 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이 책에서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유감없이 풀어헤쳐놓습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의 사유의 흐름은 우리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쓰인 사유의 방법은 저자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육하원칙의 그것과 닮아있습니다. 대중운동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까요? 네, 먼저 이 대중운동이라는 현상은 누가 일으키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 던질 만한 질문은 언제 이런 현상이 발발하는가, 가 되겠군요. 육하원칙에 따라서 큰 질문을 던지고 각각의 질문에 대해서 다시 세분화해서 들어가면서 질문을 던져나가면 됩니다. 이런 작업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접하여 무슨 질병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을 질문을 던져가면서 이끌어내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아니 유사할 수 밖에 없겠지요. 의사가 한 개인을 고친다면 사회철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사회가 어떤 질병을 앓고 있으며 그 치료법은 무엇인가, 를 모색하는 것이 될테니깐요. 그래서 저자는 대중운동은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 잘 일어나는가를 고찰한 뒤, 그것이 누구에 일어나는지를 알아봅니다. 그 후에 어떻게 대중운동이 그 힘을 가지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쓰인 맹신자들은 이 대중운동에 기꺼히 협력하여 한 팔을 거드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집단의 일이라면 눈 코 뜰새 없이 뛰어들며 자신의 집단이 가장 고귀한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 그런 광신자들과 크게 다른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이런 맹신자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들은 좌절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현실에 대한 좌절이 매우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요.  

   
  좌절한 사람들에게 대중 운동은 자기의 삶을 통째로 대체하는 무언가, 혹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그러나 자기 혼자 힘으로는 이끌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에릭 호퍼, 맹신자들, 30p.

 그런데 이런 에릭호퍼의 대중운동에 대한 주장이 모두 적합한 것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오늘날의 대중운동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기전들을 따라서 해석하면 그 발단과 결말을 모두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교 시험문제에서도 '모두' 라는 말이 쓰이면 답이 아니라고 했었던가요, 굳이 대중운동의 양상이 다양하므로 단일화된 해석으로 모두 우겨넣을 수 없다, 라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다른 문제점들이 몇 가지 발견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문제점으로는 이미 하나의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적합한 역사적 예들을 드는 경향입니다. 저자가 '소수자들', 특히 '주류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소수자'들이 '맹신자들'로의 '잠재적 전향' 가능성이 있는 무리 중 하나라는 주장을 하면서 그 예로 정통파 유대인과 해방 유대인의 예, 남부의 격리된 흑인과 북부의 격리되지 않은 흑인의 예를 드는 것 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지요. 저자는 이미 저런 예를 들기 전에 확고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례들은 그저 자신의 생각을 강화해주는 그런 기제로 작용할 뿐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또는 실제로 주류에 속하고자 노력하는 소수자들이 그들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주류에 대한 대중운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겠지요. 하지만 이것은 방법상의 문제입니다.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이 내려져있다면 이후에 반증되는 사례가 도출되었을때 유연하게 넘어가기가 어렵겠지요. 설령 이러한 것이 그저 선후관계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다고 하여, 현상을 관찰후 도출한 결론을 먼저 적었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내린 결론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터인데 책에서는 각 챕터의 결론에 대한 검증은 '최근 러시아에서는..', '최근 미국에서는...' 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문제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심리학적인 해석이 조금 지나치지 않는가, 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일수록 뼈저리게 실망한다. 따라서 바로 이 과도하게 이기적인 사람들이 이타적 태도를 가장 설득력 있게 옹호하곤 한다.  
                                                                                                      같은 책, 77p.

위의 인용한 부분은 '이기적인 사람'이 '맹신자들'이 되기 쉽다는 부분의 첫머리에 나온 글이지요. 사실 크게 문제될 것 없이 술술 읽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뼈저리게 실망한다' 라는 문장과 '이타적 태도를 설득력있게 옹호하곤 한다' 라는 문장은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기적인 인간이 뼈저리게 실망하면 이타적 태도를 설득력 있게 옹호하게 되는건가요? 굳이 해석하자면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이기적 태도에 실망하여 이타적 태도의 옹호자로 변하게 된다, 라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이 문장 또한 근거가 마땅히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저자가 기대는 곳은 바로 심리학적인 해석입니다. '이러 이러하니깐 (심리학적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지요. 근거가 명확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 문잔들이 거부감없이 읽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에서 연유합니다. 이미 여기에 대해서는 '반동형성'이라는 심리학적인 방어 기제의 지나친 남용, 이라는 이야기로 이 책에 대한 다른 서평들에서도 지적되어왔지요. 그리고 하나만 더 지적을 하자면, 책을 여는 이야기에서는 저자는 분명 '이 책은 일절 시비를 가름하지 않고 호오를 밝히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대중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이 드러난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애초에 대중운동에 대해서 나는 반대한다, 라는 입장이거나, 혹은 나는 찬성한다, 라는 입장이라면 이러한 호오를 드러내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처음에 나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고 싶다, 라는 선언을 하였음에도 광신자, 등과 같은 어구로 반감을 조금씩 넣어두게 되면 아무래도 주장의 객관성이 의심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는 원문을 살펴보아야하겠습니다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모두 적합하지는 않다, 라고 해서 모두 쓸모없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겠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일 수 있는 기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중운동에 대해 깊이 연구한 책은 이 책 이전에는 그리 많지 않았었지요. 이런 책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탑을 쌓듯이 하나 둘 높여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릭 호퍼는 이 책을 통하여 대중 운동에 대한 여러 예를 바탕으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사유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쉬운 말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평생을 길 위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던 그 자신의 삶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려운 말로만 점철되고 남에게 자신의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전해지지 않는 글은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유가 아닌 남의 사유를 계속 빌려오는 것 또한 무분별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몇 번 참조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앵무새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에릭 호퍼는 늘 독자의 생각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생각을 주고 받으며 논의해보자는 것이니' 그러니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대로, '한 번 생각해'보는 겁니다. 대중운동이 어떤 것인지, 저자가 말한 것이 옳은지, 얼마나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생각은 어떠한지, 라고.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들 모두가 대중운동에 대한 각자의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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