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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8월
평점 :
직설.
1.
요즘 사회의 트렌드라면 독설과 직설의 재조명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전에 ‘슈퍼스타 K 2’에서 주목받았던 이승철의 독설로부터 시작해서, 이번 ‘위대한 탄생 2’에서는 윤일상이 출연자들에게 독설을 무자비하게 퍼붓는다지요. 가수들만 독설을 내뱉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가장 핫이슈로 떠오른 ‘나는 꼼수다’ 라는 방송의 4인방은 주저 없이 독설을 내뱉지요. (대상은 모두가 잘 아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이전에 독설이나 직설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면 가수 신해철도 들 수 있겠습니다. 백분 토론이나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말을 하는지 잘 기억하시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독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윤일상의 경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이 하는 말이 독설이 아니라 직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꼼수다 4인방의 말도 독설뿐만이 아니라 현안에 대한 직설들도 가득하지요. 이런 유명인들만 직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것을 위선이라고 보고 솔직한 것이 좋다는 분위기가 자주 조성됩니다. 속에 쌓아두면서 뒷담화를 하지 말고 쿨하게 앞에서 이야기해라, 라는 이런 분위기는 옛날 같았으면 버릇없다는 이야기에 눌려서 쉽게 생길 수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저만해도 이전에는 남의 감정을 이리 저리 계산해보면서 이 말을 해도 좋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면모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이런 직설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때와 상황을 잘 살펴보면서 직설을 해야만 그 직설이 진실로 효과를 발휘하겠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된 직설은 타는 목을 넘어가는 차가운 생수처럼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것입니다.
저런 수많은 독설과 직설에다가 한홍구, 서해성이 ‘직설’ 이라는 책을 한 권 더 보태었습니다. 이전에 한겨레 신문에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이라는 코너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손님으로 불러서 여러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들을 묶어서 이번에 이렇게 책으로 펴낸 것이지요.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이 책의 저자들, 아니 대담을 이끌어나가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볼 때 큰 편견이 없이 읽을 수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2.
사실 이 책은 저에게 쉽게 읽혔습니다. 고백하건데 지금껏 인문서적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 쉽게 다가왔던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예 구어체로 쓰인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닥치고 정치’ 와 같은 책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쉽게 읽혔다고 해서 그 내용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책 내에는 청소노동자문제, 이주노동자문제, FTA문제, 청년실업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슈가 되어왔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생생하게 육화된 음성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지요. 사회적 문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시대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리영희, 고은에서부터 김제동이나 류승완에 이르기까지 한홍구와 서해성이 링에 초대하는 인물들은 각계각층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고,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 이제 남은 것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이겠지요. 이 책에서는 사회적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 방안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회적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역할을 맡게 된 인물들을 초대해서 대담을 다룹니다.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물론 정치인들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고개를 저으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또한 정치인들에 대해서 강한 불신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깐요. 오죽하면 국회의원들을 조롱조로 국민들이 국K-1이라고 부르겠습니까. (K-1은 격투기 대회 이름이지요.) 그러나 갑자기 국회의원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다면 정국은 혼돈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이들은 좋든 싫든 일단은 민의를 대표한다는 중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쉽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의 저자들은 민주당, 민노당, 한나라당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
그런데 저로서는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기분을 완전히 지워낼 수 없었습니다. 통찰 혹은 구라, 라는 꼭지로 묶여서 쓰인 첫 번째 부분에서는 유홍준씨를 다룰 때 대담 후에 책의 저자들이 몇 자 덧붙이는 ‘잔설’ 이라는 부분에서 조선 ‘3대 구라’ 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백기완, 방동규, 황석영이 바로 그 사람들인데 저자들이 그들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상당히 경건합니다. 책에서 쓰인 이 구라라는 말은 이야기꾼이라는 말과 거의 비슷하게 쓰입니다. 완전히 허구를 채집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을 살아냄으로서 가지게 되는 경험을 바탕으로 ‘썰’을 풀어나가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지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한 이 ‘구라’ 들은 항상 재야에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요. 그리고 이 ‘구라’ 라는 말은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조선 3대 구라는 조선 3대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조선 3대 거짓말쟁이가 조선 3대 구라가 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하는 말들이 순전히 허구가 아니라 삶에서 비롯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구라라는 말은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른 생동감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홍준을 유구라라고 부르면서 저 3대 구라의 뒤를 이을 신진 구라로 표현하기도 하고 뒤에 가면서 읽다보면 저자 중 한 명인 한홍구를 한구라, 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고개가 약간씩 갸웃거려졌습니다. 뒤의 잔설들을 다시 읽어보면 마치 3대 구라라는 권위를 두고 신진 구라는 누구인가, 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저자 한홍구를 한구라라고 추켜세우는 사람이 다른 저자 서해성이고 보면 재야 학자들끼리 서로를 높여주는 듯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었지요. 물론 이런 생각이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라’ 는 ‘구라’ 자신이 받은 긍정적인 이미지와 생동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야에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생동감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생기는 것이지 절대 대중과 유리된 학계에서 생길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요즘 트위터와 같은 SNS가 많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그 간극이 매우 줄어들었습니다만 아직도 재야가 아닌 중심 되는 학계에 있으려 하거나 정계로 진출하려고 하면 대개 좌절을 겪게 됩니다. 이는 사회가 형태가 다른 생각을 쉽게 수용을 못하는 것과도 연관이 되겠고 모난 정이 돌을 먼저 맞는 이치와도 비슷하겠지요. 그래서 사회에서 맞은 정을 서로 보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못내 찜찜함을 털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겠고, 설령 보듬는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라는 반론을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네, 적어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회를 밝히려는 사람은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끊임없이 내쫓기더라도, 심지어 불나방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사회에서 부딪혀나가야 된다고 말이지요. 사회 변혁의 이상을 품고 있는 개인은 그 스스로를 날카로운 창이 되도록 갈고 닦아야만 합니다. 신 앞에 선 인간은 절대 고독을 느끼게 되지요. 그는 그렇게 신 앞에 자신을 모두 내던지듯이 스스로를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보듬기 시작하면 그것은 그들만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게 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목적을 중심으로 모인 조직이나 사회와는 다르게 이런 보듬는 행동에는 사사로움이 관여하게 되고 이는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그런 조직에 의존하게 만들며 이윽고 그들은 안주하게 되겠지요. 물론 사회에 아무리 부딪혀도 사회는 꿈적도 안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 개인의 인생이 개죽음처럼 압사당하는 경우도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 개개인의 날카로운 창이 한 다발 묶여서 함께 같은 곳을 공격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공동작전은 단순히 묶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화살을 쏘아서 10점을 몇 번이고 연속해서 적중시켰을 때 그 화살들이 개개가 묶이지 않고도 모두 한 점을 향하는 것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사로움을 피하며 하나의 목적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개개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그런 현상이 되어야만 하지요. 이와는 반대로 창이 단순히 한 다발 묶이면 필연적으로 그 창 개개의 부피 때문에 창날 사이에는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 생각 사이의 간극이라고 부르면, 결국 그 공간들 때문에 사회의 변혁에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4.
책의 네 번째 꼭지는 정치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변명, 그들의 희망’ 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잘 지은 제목이라고 여겨집니다. 나온 정치인들을 보면 천정배부터 시작해서 강기갑, 홍준표, 문재인 등이 있는데 이전에 읽었던 ‘강남좌파’ 와 겹치는 정치인도 보이고 거기서 다뤘던 일화와 연관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가장 흥미로웠으면서도 가장 읽기 싫던 부분이기도 하였습니다. 어차피 변명할텐데, 어차피 실현할 마음도 없는 이야기들을 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네, 적어도 저한테는 정말 변명을 하고 그렇게 의욕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립서비스로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책 자체의 한계입니다. 예를 들어서 홍준표 의원과의 이야기는 여섯 시간이 넘게 계속되었다지요. 그렇다면 적어도 공식적인 직설 대담만 해도 두 시간 정도는 되었을 텐데 막상 옮겨진 대담은 10분도 채 안되는 듯 합니다. 물론 책으로 읽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은 짐작합니다만 그래도 중간 중간에 이야기가 붕 뜬다,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아마도 긴 대담을 축약하는 데서 비롯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적지에 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책을 내고 기사를 내는 주체는 한겨레 신문사입니다. 아무리 공정하게 옮긴다고 하더라도 정말 내밀한 무의식적인 부분에는 거리감이 남아있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의 한계 외에도 마음에 걸렸던 것은, 대담자들의 대담에서의 새로운 변명 방식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 언급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고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무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내용을 자료를 제시하면서 책의 저자들이 들이대면 바로 싱겁게 인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싱겁게 인정하는 것은 마치 그들이 그런 잘못된 내용을 '쿨한 척' 넘겨버리려는,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내용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었지요. 그들의 기저에는 그저 인정 한 번 했다, 라는 행위만 남았을 뿐이겠지요. 저자들이 그 부분을 좀 더 집요하게 잡아서 대담자들의 기저에 위치한 저항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대담 서너 시간 만으로 지향하는 바가 달라진다면 처음부터 그 자신이 지향했던 바는 허상이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시선은 바뀌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저항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을 너무 깊게 파고들게 되면 대담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겠지요. 혹은 그렇게 파고들었지만 책에 쓸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편집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이런 변명들을 제외하면 어찌되었든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핵심 목표는 저 '그들의 희망' 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래도 사회가 살만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는 만들어주었습니다. 이게 다 직설의 힘이겠지요. 근본적인 것을 공격하는 직설적인 질문을 했으니 그 질문을 받은 사람들도 핵심이 되는, 그들 주장의 골자가 되는 이야기들을 꺼낼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5.
'쩐의 전쟁' 이라는 드라마가 한 때 브라운관을 점령하던 시기가 있었더랬죠. 박신양이 주연인 금나라 역할을 맡고 상당한 열연을 보여주면서 호평을 받았었습니다. 그 내용은 부친의 사업실패로 인한 빚 때문에 채무자가 되어서 힘들게 살던 금나라가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원수 마동포에 대해서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그 결말이 개인적으로는 실망이었습니다. 좀 허망한 결말이었기도 하고 끝으로 가면서 드라마가 점차 힘이 빠지는 것처럼 보였으니 때문이지요. 그러나 쩐, 그러니깐 돈을 앞두고 벌어지는 암투는 정말 전쟁처럼 장대하게 펼쳐졌습니다. 이 '직설' 이라는 책도 말이란 측면에서 보면 정말 쩐의 전쟁에 모자람이 없는 '썰의 전쟁' 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 저자들은 끊임없이 직설과 독설을 날립니다. 하지만 그 썰들 사이에는 해학이 있고, 저자들의 인생경력과 근거는 썰에 생동감과 신뢰감을 심어줍니다. 서해성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잡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화제를 대담자들에게서 이끌어내며, 한홍구는 '걸어다니는 한국 현대사' 라는 별명에 걸맞게 대담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살았던 격동의 시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 생생한 이야기를 건져올려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사람이 이루는 앙상블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이 '썰의 전쟁' 으로만 그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쩐의 전쟁은 끝내 금나라의 죽음으로 그 끝을 맞이합니다. 모든 것을 이룬 순간 허망하게 마동포의 일격에 문자 그대로 뒤통수를 맞고 즉사하지요. 이는 적어도 제 생각에는 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역량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썰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끌어 나갈 역량이, 여기서는 대중적이고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적 의식이 되겠습니다만, 없다면 수많은 직설은 이 책으로 그대로 결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역량의 고취가 필요하겠고, 그런 '썰의 전쟁을 넘어서는' 역할을 맡은 존재는 바로 당신이 되겠지요.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의 당신이 말입니다.
p. s. 마지막 리뷰이네요.. 그동안 9기 신간평가단...ㅎㅎㅎ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