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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파인만.
중학교 때는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에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네 분야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있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각각의 과목이 다 따로 나뉘고 전문화되었었습니다. 뭐, 대학교에서는 더욱 더 세분화되었었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어쨌든 그렇게 고등학교에 처음 올라가서 물리를 공부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정말.. 지금도 표현하기가 힘들군요. 강의를 들으면 무슨 이론인지 알 것 같았었는데 막상 문제에 적용시키려고 하니깐 잘 안 되는 겁니다. 운동량이 어떻고, 마찰력이 어떻고.. 왜 그렇게 고려해야만 할 공식들이 많은지.. 게다가 수학과 마찬가지로 물리는 공식만 외워서 되는 과목은 아니잖습니까, 한 유형의 문제를 푸는 만능 공식을 외워두어도 조금만 문제를 바꾸면 다시 또 수렁에서 헤엄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고등학교에나 제물포가 한 명 정도는 있었겠지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 제물포는 지명 제물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쟤 때문에 물리 포기 했다, 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마침 우리를 지도하시던 선생님은 제물포였고, 학생들은 이 선생님 강의가 되면 이제 한숨을 쉬면서 책을 쳐다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물포 선생님이 강의를 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지요. 그러나 강의를 잘한다고 해서, 그 강의 내용이 우리 머리에 모두 남는 것은 아니었고, 결국에 남게 되던 것은 공식들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수능을 쳐야 되니깐, 말이지요. 그런데 공식을 열심히 외워서 점수가 잘 나온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요. 원리를 모르니 조금만 응용해도 문제를 틀리게 되니깐 말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긴데, 라는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가장 쉬운 이야기가 가장 지키기 어려운 이야기니깐 말입니다, 삶이든, 시험문제든. 어쨌든 그렇게 문제를 틀리게 되면 점수가 낮게 나오고, 나는 물리에 재능이 없어.. 하는 생각을 품게 되고, 그러면 물리가 재미가 없어지게 되고, 그러면 더욱 더 물리의 기본 원리를 익히기 싫어하게 되고, 이윽고 물리를 포기하게 되는 겁니다. 고백하건데 저도 물리는 별로 점수가 높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저런 악순환을 거쳐서 거의 물리를 포기해버렸으니깐 말이지요.
그런데 저와 달리 고등학교 동기 중에 물리학과를 선택한 학생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때 제 눈에는 상당히 물리에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요즘 가끔씩 연락하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니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가끔씩 학과에서 잘 하는 학생들에게 도대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푸냐고 물어보면, 그 학과의 우등생들은 한결 같이 고개를 저으면서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처음엔 이 학생들이 그저 비법을 가르쳐주기 싫어서 이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만, 몇 번이고 질문을 해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물리학에 있어서는 잘 설명하지도 못하는 것을 평가하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저기 저 학생들은 어쩌면 직관적으로 답을 깨달을 수는 있었을 겁니다. 굳이 저 직관이라는 말을 설명하자면 우리가 하나 더하기 하나를 수식으로 1+1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2라는 답을 도출해내는 반면에 그들은 공간에서 돌덩이 두 개를 떠올리고 2라는 답을 도출해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일종의 재능이고, 물리에 있어서 사실 재능의 중요성을 경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곧 아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풀 수 있지만 그것이 왜 이렇게 되는지 설명할 수가 없는 그런 현상에 빠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리처드 파인만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양자 역학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동료 교수에게 ‘안되겠어요, 이 양자 역학을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도저히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도저히 못 찾겠어요. 이는 우리가 아직 양자 역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을 뜻해요’ 라고 말이지요. 그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런 아인슈타인 이후의 최고의 천재, 라는 이름이 붙은 학자마저도 두 손을 들고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것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라면, 현대 물리학은, 아니 그 기초가 되는 대학교 과정에서마저도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모래로 된 성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물리학이 마음에 듭니다. 고등학교때는 물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했지만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막상 물리학과를 택한 제 고등학교 동기는 취업이라는 난에 부딪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물리학과와는 한 발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저는 어쩌면 만용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조심스럽게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사실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바로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 때문에 촉발되었지요.
이 책은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점을 잘 살려 파인만의 여러 일화들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을때, 결혼했을때, 그리고 이윽고 QED를 재규격화해서 완성한 일화, 노벨상을 타기 싫어서 끙끙거리다가 피하면 도리어 더 이슈가 될 것이라는 말에 받으러 가는 이야기에다가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까지. 그런데 적어도 제 생각에는 이 책에서 가장 깊이 있게, 성의를 다하여 다루고 있는 부분은 파인만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물리학 강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파인만이 여러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왔지만 그 근본에는 언제나 물리학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잘 드러내어 주는 장치임과 동시에, 일반인들에게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이런 그래픽 노블이라는 매체를 만나 얼마만큼 효과를 거두었나, 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하는 과정이라고 짐작됩니다. 그러나 사실 많은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얼핏 다른 서평들을 읽어보아도 그의 물리학 강의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사실 이 책의 내용만으로는 그의 QED강의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사실 이 책이 그런 강의의 기초로 삼고 있는 것은 파인만의 다른 책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강의’입니다. 그 책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하물며 그 내용을 대폭 줄여서 그리 길지 않은 지면에 넣은 만화를 읽고 이해를 하다니요. 읽히기 쉽다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의 그런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다른 물리학 이론은 사실 수식만 보아도 진절머리가 나고, 정말 전공자가 아니면 다루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이나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던 뉴턴의 운동방정식과는 복잡성에서 그 궤를 달리합니다. 그러나 파인만이 만들어낸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보면 왠지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의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강의가 수많은 수식을 바탕으로 논리의 탑 위에서 이론은 전개해나간다면 그는 수식을 쓰지 않고 비유를 통하여, 그리고 실험으로 도출된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해서 그의 이론을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스스로도 파인만처럼 물리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의 머리말에서 이런 말을 했었던가요, 자신의 편집자가 수식 하나가 들어갈 때마다 책의 판매수가 절반으로 줄어들 거라고 했었다고 말이지요. 반은 우스개소리겠지만 그만큼 대중들은 수식에 민감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파인만의 QED강의를 이렇게 그래픽 노블로 옮긴 것은 (물론 파인만의 강의 원본에서도 일반인을 위한 강의에서는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날 우리 인류가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지식이 소실되어버리는 상황이 생긴다고 하고, 후세에 단 하나의 명제만을 물려줄 수 있다고 한다면, 파인만은 그 하나의 명제로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있다’ 라는 말을 고르겠다고 합니다. 나머지 모든 지식은 단순해 보이는 이 명제에서 모조리 도출될 수 있을 거라며 말이지요.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서부터 원자보다 더 큰 물질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런 도출 과정에서 파인만은 과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도출된 실험결과와 유리된 상상력은 공상에 지나지 않으니 실험결과와 합치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실험결과에만 얽매이지 않는 그런 창의적인 상상력 말입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앞서 말했던 물리학과를 택했던 제 동기는 취업을 조금씩 고민하게 되었지요. 사실 그렇습니다, 비단 물리학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학계열이나 다른 이과계통의 학문을 택한 경우 상위권 성적을 가진 경우에는 연구실이나 다른 취업 자리를 어떻게든 구할 수 있게 되지만 하위권에서 중위권에 이르는 경우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고 이윽고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학했을 때는 각종 물리학적인 아이디어가 번쩍이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 모든 것을 물리학에 대한 재능이 부족해서 그렇다, 라는 말로는 돌릴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는 학과 커리큘럼이 파인만이 강조하는 저 ‘과학적 상상력’을 짓누르는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상상력을 하는데 있어서는 당연히 과학적인 기초를 잘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못지않게 자유스러움, 자유분방함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마치 파인만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어중간한 통섭은 피해야 하겠습니다. 창의적 사고를 한다는 명목 하에 개념 몇 개를 알고는 그것이 지금껏 알아낸 과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범위를 너무 넓혀서 적용하는 상황은 정말 그르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파인만의 이름은 몇 세대를 지나도 끝까지 남겠지요. 자유스러운 삶과 그 삶에서 기반을 둔 번뜩이는 재치를 가진 과학자로.
수학에서는 증명이 완전히 끝났을때 뒤에 QED를 붙이곤 합니다. 이는 Quod erat demonstrandum의 약자로, '이와 같이 증명이 되었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껏 파인만이 다뤄온 Quantum Electro Dynamics도 그 준말이 QED입니다. 비록 양자전기동역학이 자연계에서 찾아낸 법칙을 적용시킨 이론 중 가장 정확하다고 하지만 아직 그의 QED, 양자전기동역학이 좀더 재구성되어야 할 부분이 남아있겠지요. QED뿐만이 아니라 양자역학 전반적으로도 아직 물음표로 남겨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서, 혹은 우리 이후의 세대에서라도 그의 재치와 자유분방함을 이어받아 과학적 상상력을 발전시켜나간다면 QED가 QED가 되어 '이와 같이 증명이 끝났다' 라고 선언할 날이 오래지 않아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p. s. 에휴... 글이 잘 안써져서 정말 힘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