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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란 무엇인가
1.
지금부터 3년 전, 백분토론이 400회 특집을 맞이하였지요. 그때 백분토론 초대 손님으로 많은 분들이 나오셨었습니다. 진보와 보수 쪽을 대표하는 논객들을 모아서 양 쪽에 나란히 앉혀놓았었습니다. 그런데 보신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그 백분토론은 결국 두 명에게 초점이 맞춰지더군요. 그 두 명은 바로 유시민과 진중권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저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그 둘의 토론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분이 말씀하셨던가요, 유시민의 토스와 진중권의 스파이크라고.
저는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이 책을 보자마자 바로 떠올랐던 생각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저 400회 특집과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었습니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은 그저 제목이 똑같아서 떠오른 것이었고.. 여담입니다만,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의 원제는 ‘정의 : 무엇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입니다. 실제로 정의를 정의하지는 않지요. 400회 특집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더 이어가자면, 사실 진중권과 유시민은 서로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단순하게 광고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보자면, 좌파라는 점에서 유시민이 그냥 커피라면 진중권은 T.O..... 차마 더 쓰면 간접 광고가 될 것 같으니 여기쯤 해두도록 하지요. 토론 중간에서도 그런 성향이 서로 드러났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공동의 적, 이라고 할 수도 있는 보수 논객을 앞에 둬서 겨우 뭉친 모습이더군요.
그러고 보면 이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담긴 내용은 어쩌면 이미 이때부터 싹을 틔우고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적힌 정치적 연합에 대한 이야기도 사실 저 토론 때 진중권과 유시민이 연합한 것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었고, 법치주의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그 법치주의가 정치를 하는 정치가들을 제한하는 게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저 토론에 이미 언급을 했었더군요.
2.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에 수많은 책들이 OO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 를 읽어보면 정작 정의에 관한 명확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어떤 분은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살짝 간만 보면서 약을 올리는 것 같다고. 결국은 읽는 독자들에게 정의의 개념을 정의해보라고 떠넘긴다면서. 하지만 저는 저 책의 방식을 이해합니다. 사실 정의란 개념에 대해서는 백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명의 생각이 있듯이 모두다 그 정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정의에 대해서 개념을 정의하였다고 하여도 다른 사람들이 그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비슷한 개념으로는 자유, 선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국가는 저런 추상적인 개념에 비해서 그 의미가 와 닿기는 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거나 글을 보거나, 혹은 무엇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주문한다거나 등의 활동이 모두다 국가라는 구체적인 실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상대적으로 와 닿는다는 이야기이지 정말로 그 개념을 쉽게 규정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논의를 진행시켜봅시다. 이 국가란 개념을 규정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국가가 없는 상태를 생각해본다면 국가가 무엇인지 상대적으로 쉽게 개념을 파악할 수 있겠지요.
이런 생각을 저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국가에 대해서 그 생각을 진척시킨 사람은 바로 홉스였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도 국가를 정의하기 위해서 세 부분의 철학자를 끌어들이는데, 그 중 첫 부분에 해당하는 이가 바로 토마스 홉스입니다.
홉스는 만약에 국가가 없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 가 지속될 것이며 그로 인해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삶은 비참하고 고독하며 불안하고 가혹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주장이 일견 타당한 것 같습니다. 최근 소말리아 해적 총격 피격사건이 있었지요. 그때 우리는 그 소말리아의 실상을 신문을 통해서든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든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법도 인권도 없는 순수한 폭력만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악의를 가지고 서로를 집어삼키는 곳이었습니다. 국가가 없다면 저런 폭력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하며, 그 국가에 속한 사람은 주권자에게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국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하고 그 국가에 속한 사람들은 국가에 저항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국가주의 국가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정말 국가의 역할은 저게 전부일까요? 우리 인간을 자연 상태에서 지켜주는 역할이 국가의 전부라면 수많은 독재와 인권 탄압도 어쩌면 정당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독재에 맞서 싸워왔고, 그때 흘린 피들이 절대 헛된 피가 아니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주의 국가론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국가론을 여기서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주의 국가론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유주의 국가론을 정의하기 위해서 세 명의 철학자들을 데려옵니다. 존 스튜어트 밀, 애덤 스미스 그리고 존 로크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약간씩 상이하지만 그 중심이 되는 이야기들을 하자면, 권력은 법치주의에 의해서 다스려져야 되며 그 법치주의는 통치자에 대한 구속이 되어야 하고 국가는 당연히 외부의 위험에 대해서 대항하여야만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들의 불의나 불공평을 해소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밀의 경우에는 자유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불의나 불공평을 해소한다는 측면은 국민의 평화와 일맥상통할 것이며 복지에 국가가 힘써야 한다는 말과도 합치합니다. 앞서 백분 토론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때 이 책의 저자 유시민은 한나라당 의원과 논쟁하면서 우리나라는 법치주의로 다스려져야 되고, 이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되는데 그것이 안 되니 정말 죽겠다, 제발 좀 살려 달라, 라고 말을 합니다. 저 말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더라도 저자의 국가론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 있습니다. 이 국가론에서는 국가가 무용하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은 오직 계급간 불평등을 심화하고 착취를 위한 그런 도구로 봅니다. 이 국가론을 주장한 철학자로는 마르크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그 거대한 실험은 소련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끝이 나고 이제는 어쩌면 무용하다고까지 일컬어집니다. 이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현실의 일부를 잘 포착하기는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루기에는 너무나 먼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도 이 마르크스주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비극은 쉽게 가시시 않기 때문이겠지요,
3.
저 국가론들은 사실 코끼리를 장님들이 만져보듯이 각자의 관점에 걸맞은 부분만 손으로 더듬거린 것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저 세 가지 국가론을 통합하면 대부분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 국가론이 국가 자체가 되지는 못합니다. 어떤 ‘장님’의 경우에는 좀 더 새로운 방향을 더듬거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국가론은 갈수록 늘어만 갑니다. 그래서 저 세 가지 국가론으로 국가의 모습을 책에서 대략 그려본 저자는 좀 더 실제적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질문을 던짐으로써 말이지요.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는 그의 철학을 설하기에 앞서 일종의 격률을 만들었습니다. 그 격률 첫 번째는 자신이 명백한 진실로 판명한 것만 받아들일 것이며, 그 두 번째는 모든 문제를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해하기 쉬운 것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의 방향을 나아가게 하라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빠뜨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솔직히 당연한 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물론 당연한 말입니다. 이 말 뿐만이 아니라 철학의 대부분의 명제들은 당연한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말을 이렇게 의식의 표면에 이끌어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하고 쉬운 말들은 마치 물이 흐르듯 의식에서 스르르 흘러가버리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저 방법론 4원칙을 통해서 데카르트는 ‘모든 수학 문제를 다 풀 수 있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 원칙은 수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일들, 가령 바로 이런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과연 어떤 부분에서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접근해야 할까요? 다시 말하면 국가는 어떤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다스려야 되는지, 애국심이라는 감정은 어떤 감정인지, 혁명은 어떤 것이고 진보정치는 무엇인지, 국가는 어떤 이상을 가져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정치인은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가, 가 바로 책 후반부를 차지하는 내용들입니다. 이 질문들이 국가의 모든 것을 포괄한 것인지 저로서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당연한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견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것처럼 이런 질문들을 이끌어내는데 저자도 정말 수많은 고민을 했으리라는 점은 두말 할 나위 없겠습니다.
4.
우리들은 수많은 부조리들로 둘러싸여져 살아갑니다. 정치인들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고 옛날에 문제시 되었던 일이 아직도 문제시 되는 게 현실입니다. 책의 서두에서 언급되는 용산 철거민 사태에서부터 최근에는 4대강 사업과 등록금 문제 등 거기에 빈부격차는 여전히 심화되고만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가 써지게 된 배경은 분명 이런 문제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을 테지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약간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책의 좋은 내용도 그 저자의 가치관, 즉 진보적 성향에 자꾸 연관을 하면서 읽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현실 정치에 적용을 시켜서 책 내용을 진행해주었으면, 하고 바랐었는데 뒷부분을 읽을수록 은근슬쩍 집어넣은 현실 정치와의 대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를 이야기하는데 그 정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며, 그 정부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빼놓고 정부의 정책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정부에 논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논객도 자신의 정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같은 정치관이든 다른 정치관이든 말이지요. 저자는 이를 긍정이라도 하듯이 책 내에서 그의 진보에 대한 성향을 드러냅니다. ‘진보란 진화에 따라서 과거의 지배적 사유습성을 체현하는 낡은 제도에서 벗어나서 오늘날 생활환경이 요구하는 최적의 대응을 펼쳐나가는 것’ 이라고 말이지요. 책에서도 물론 언급했다시피 진보와 보수는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한 쪽으로는 날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가 있다면 그 중 더 나은 것은 진보다,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줍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자유주의와 국가주의를 놓고 본다면 당연히 자유주의가 좋은 국가론이다, 라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진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자유주의자의 온화함을 겉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와 같은 문장은 저런 생각을 뒷받침해줍니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정권을 잡은 보수정당에서는 정말 백분 토론에서 말했듯이 ‘제발 좀 살려달라’ 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하게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버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리 옹호하지도 않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도 하며, ‘이것 봐, 이것만 완성이 된다면 언젠가 사람들이 내가 한 공적을 알아줄 거야’ 라는 생각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저런 일들은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 뿐만이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책들 모두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무차별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무의식중에 진보는 옳고 보수는 나쁜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보수 정권이 하는 모든 일들을 국가에 해가 되는 일들로 보게 되고 정권은 당연히 진보가 쥐어야 된다, 라는 비약을 가져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국가주의 국가론이나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모두 하나의 국가를 두고 장님이 어루만지듯 만져본 것에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하나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책의 저자는 진보가 옳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자유주의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텍스트 전반에서는 그의 진보와 자유주의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납니다. 게다가 저자가 정치인이었기에 그리고 이번 대선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이기에 그의 성향을 배제하고 책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자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그의 국가에 대한 생각과 정치인에 대한 생각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 저자가 제기한 질문들에 맞춰서 이야기해보면 먼저 ‘자유주의 성향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정권을 잡아야 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텍스트를 읽으신 분들마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애국심은 ‘굳이 기피할 대상은 아니며’ ‘공동의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로서 그 의지를 ‘정당과 정치인들이 북돋울 책무’가 있으며 전체주의를 피하기 위해서 ‘점진적 개혁의 길’을 걸어가야 하며 사회혁명은 일단 지양할 것이며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여야’ 하며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특정한 가치 하나만 추구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정치라는 것이며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에의 예견할 수 있는 결과를 자신의 책임으로 껴안는 그런 책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에 따른 보론으로 복지국가의 실현 그리고 연합정치의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저렇게 주장을 정리하고 보니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말 이상적이며 한편으로는 당연한 국가의 모습입니다. 국가가 선을 행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너무나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치조차 현실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이렇게 글로써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겠지요.
5.
요즘 이슈가 되는 문제는 반값 등록금 문제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학교들의 등록금은 거의 항상 인상만 해왔던 것 같습니다. 물가가 상승하기에 등록금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물가 인상률의 1.5배까지는 법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카이스트의 자살 사건도 이 등록금 문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3.3학점 이상에 한해서 등록금 면제가 되며 그 이하의 학점에 대해서는 징벌적 등록금 제도를 시행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지요. 지금은 조정을 한다고 말들을 합니다만 애초에 경쟁의 결과로 승자승이 아니라 패자패가 되는 순간 이미 문제가 된 것 이었습니다. 이런 자살은 카이스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대학교들에서 목숨을 버리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추정컨대 200명에서 300명에 달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최근 집권 여당에서 이를 정책으로 삼고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선거 때 뿌리는 그런 선심성 정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정부에서의 반발과 당 내부에서의 방발에 부딪혀 현실화되기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관련 예산이 없으면 무용지물로 돌아가 버리지요. 그러나 집권 보수 여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는 이러한 정책을 하나의 큰 발걸음으로 보고 싶습니다. 비록 이런 정책이 거짓 공약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듣게 되더라도 이렇게 집권당에서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서 변화가 약간은 생긴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집권당의 성향이 보수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는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다는 것을 드러내주며 더 나아가서 이 책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그렇게 강조해왔던 사회 정의 실현과 공공선 실현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물론 아직 수백, 수천 미터 떨어져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프로그램을 하나 꼽으라면 슈퍼스타 K2라고 말하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오디션을 통해서 가수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좁은 문을 통과해서 슈퍼스타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외모의 열세를 딛고 기적을 노래했었지요. 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들자면 역시나 ‘내 점수는요’ 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유행어를 빌려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내 국가는요, 시민을 자유롭게 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