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8일은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아는척하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나도 페북에서 안내하는 세계 여성의 날 페이지를 보고, 아~ 오늘이 세계 여성의 날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여자 입장이다보니, 유엔이 콕 집어 전 세계 여성인권과 평등을 선포하는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적어도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오늘하루만이라도 세계 여성의 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나의 시대를 사랑하고  지금 이런 시대를 만들어 준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감사한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여전히 남녀차별은 존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긴 하지만, 전 세대의 여성들에 비하면 나에게는 말할 자유, 표현할 자유, 소유할 수 있는 자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주어졌으므로, 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워 온 수 많은 페미니스트과 그들을 도왔던 남성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에게 우리는 엄청난 빚을 진 셈이다.

 

언젠가 페이퍼에도 올렸지만, 우리는 현대사회의 관습에 너무나 익숙해,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관점으로 들여다 보곤 한다.  위의 사진은 벨기에 사업가 솔베이의 지원하에, 1911년 유럽의 내놓으라 하는 물리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솔베이회담의 한 장면이다. 이 사진에서 우리는 한 손을 머리에 기댄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마리 퀴리의 모습과 그 시대를 풍미했던 다른 남성 물리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흘끔 사진을 보면서, 아, 이 사진은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 시대의 부분적인  모습을 찍은 거구나. 마리 퀴리가 위대한 여성과학자니깐, 남성물리학자들 사이에 있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남성물리학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골똘히 뭔가 생각하고 있는 마리 퀴리을 찍은 이 한장의 사진이, 그 당시 사회 관습상 얼마나 불가능한 장면이었는지 깨달은 것은, 1926년에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나서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1926년에 씌여진, 버니지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가 묘사한 당대 여성의 모습은 남성과 철저히 차별화 되고 분리된 모습이었다. 한 예로, 대학이나 도서관에서조차 여성은 출입이 불가능했으며, 여성이 대학이나 도서관에 들어간다해도 남성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없고, 따로 여성만이 다닐 수 있는 후미진 길로만 걸어다녀야할 정도이니, 20세기 초에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21세기를 사는 우리로서는 그 시대의 여성의 지위와 억압된 삶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1920년대 서구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에조차 여성의 길을 따로 낼 정도니, 20세기초에 찍힌 저 사진 속 마리 퀴리의 모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여성의 사회 참여 모습이 아닌,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럼 20세기 이전에 왕성하게 활동한 여성소설가 제인오스틴이나 브론테자매는 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의하면, 그녀들조차 소설 쓴다는 것을 숨기고 몰래 썼으며, 자신의 소설을 쓰기 위한 독립된 방조차 없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20년대에 들어서면서,울프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을 남성의 종속물이나 부속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독립체로 바라보며 본격적인 여성의 평등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수 천년의 역사중에서 얼마 되지 않은 셈인 것이다.

 

물론 그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강연을 하기 전부터,  여성의 운동에 대한 열망과 움직임은 미국에서 일기 시작했다. 초기 여성운동가들의 움직임은 참정권 획득 운동이었다.  남성과 같은 지위를 얻기 위한 움직임이었고 남성과 같은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평등을 위한 싸움이었으며  무엇보다 법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아니었다.. 초기 여성운동가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기득권 남성들과  힘겨운 투쟁을 하는 동안,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참정권 부여에 소극적이었으며 심지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의 비리를 탐사했던 기자인 아이더 타벨조차 여성참정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반대했었다. 

 

그러나 초기 여성운동이 많은 여성의 동조를 얻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투쟁에 동조하는 남성들도 있었는데, 프랭크 바움도 그 중 한명이었다. 몇년 전에 오즈의 마법사를 쓴 열혈 공화당원인 프랭크 바움의 평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프랭크 바움이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해 자신의 평생 과업으로 삼았다는 것. 우리는 이 작가를 단순히 유명동화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바움은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해,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지역신문을 내고 집회에 참석했으며, 한편으로 남자 아이(프랭크 바움은 아들만 셋 있었다 )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이 아닌,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획득 염원을 위해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오즈의 마법사를 집필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잠깐, 프랭크 바움의 평전 이야기 좀 더 해 보련다. 프랭크 바움의 평전은 너무나 유명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집필하게 된 과정을 집중적으로 서술한 것이지만, 이 동화의 탄생 배경과 함께 초기 여성운동의 모습이 잘 그려졌는데, 바움이 초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지자였고 실천가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의 평전만큼 19세기 말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잘 그려낸 평전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이 평전을 읽고 나서, 간혹 투표권리를 행사 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를 반성하였다. 얼마나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하여 헌신하고 투쟁하였는지, 얼마나 참정권을 간절히 원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나의 투표권리를 꼭 행사하였다.

 

우리 세상이 수천년동안 불평등과 편견이라는 엔진이 달고 세상을 움직이고 있을 때,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하면서,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바람직한 세상으로,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편견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세계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페미니스트란 말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면, 평등주의라는 이념으로 타인을, 세상을 계속해서 바라봐야한다. 링컨은 미국의 독립 선언문이 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단언했는지 청중에게 물어본 후, 그는만민평등에 대해이렇게 대답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든 인간은 이미 평등을 달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설령 완벽하게 달성되지 못하더라도 늘 추구하고 노력하면 끊임없기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하나의 목표라고 말이다. 이 말은 차별이나 편견이라는 이름하에 놓여졌던 , 여성, 흑인, 동성애의 평등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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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9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9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0 0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6-03-09 11:01   좋아요 0 | URL
서양 여성운동 첫무렵에 참정권 운동도 틀림없이 있었지만, 두 가지 여성운동도 더 있었어요. 하나는 `생존권(출산권)` 운동을 했던 마거릿 생거(마거릿 생어)입니다. 다른 하나는 `노동권` 운동을 했던 마더 존스예요. 참정권 운동을 한 여성은 거의 중산층 이상이 대상이었다면, 생존권 운동하고 노동권 운동을 한 여성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소외되고 아픈 여성`이 중심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주류운동은 언제나 정치참여 쪽으로 기울어지기에 여성운동을 연구하는 분들도 거의 다 참정권에만 눈길을 맞추더군요.

마거릿 생거라는 분이 했던 생존권(출산권, 산아제한) 운동은 `남성이 요구하는 잠자리를 여성이 거부할 권리`하고 `남성이 잠자리를 요구할 적에 남성이 피임을 하도록 요구하는 권리`에다가 `남성은 욕구해소를 넘어서 육아와 가사를 여성한테서 배워서 함께 할 것을 바라는`, 여기에 `남성과 여성 모두 청소년기에 성교육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이 네 가지가 핵심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무튼, 여성의 날이 달력에 적힌 딱 하루로 그치지 말고, 언제나 서로 평등하고 평화로운 살림이 되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기억의집 2016-03-09 22:1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마거릿 생거에 대해서 찾아봐야겠어요. 제가 여권운동에 대한 역사를 검색해 보니 인터넷에는 그렇게 유용한 자료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읽은 사회서적들과 여러 책들의 기억에 의존에서 쓴 거였어요.

아무래도 참정권이 법을 여성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기에, 참정권의 획득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였거든요. 생존권운동도 결국 입법의 문제였기에 아마도 참정권에 촛점을 맞추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페이퍼에의 글이 길어질까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미국 여서으이 26년 참정권 획득 이후에도 스위스 같은 나라는 여성의 참정권이 1970년에야 가능했으니 사실 20세기가 여성이나 인종차별이나 동성애차별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더라구요~ 그리고 숲노래님이 언급하신 마거릿 생거가 주장한 생존권 문제는 서구쪽에서는 많은 부분 실현화 되었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유교문화가 뿌리박혀 있어서... 그걸 거부하면 김치년 이러니 참.. 과도기겠죠!


다락방 2016-03-10 10:07   좋아요 0 | URL
와, 기억의집님. 이 글 정말 좋으네요. 마리 퀴리 사진은 일전에도 한 번 페이퍼 쓰셨던 기억이 나요. 그렇지요?

프랑크 바움, 사실 전 그동안 관심도 없었는데, 이 글 읽고나서 평전 읽어볼 생각을 갖게 되네요. 지금 당장 검색해볼게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기억의 집님!

아! 오즈의 마법사도 읽어봐야겠어요.

기억의집 2016-03-10 10:51   좋아요 0 | URL
네, 지난 번에 올렸던 글에 덧붙혀서~

저는 예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평전 읽고 더 이상 자서전이든 평전 안 읽어요. 자서전이든 평전이든 진실을 말하진 않더라구요... 바움은 서점에 갔다가 오즈의 마법사 작가여서 궁금해 들춰보았다가 저런 면이 있구나 싶어 구매해 읽었던 작가였어요. 하도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좀 특이한 인물이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