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평점 :
사람들이 겪게 되는 죽음 중에 (사고사를 제외한) 가장 가슴 아픈 죽음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는 경우 같다. 필자 또한 배꼽 친구였던 지인을 10여 년 전에 암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젊은 나이였고, 그녀에게는 10살이 채 안 된 어린 딸도 있었다. 가슴 아프고, 아직 건사해야 할 어린 자녀가 있으니 더욱 안타까웠다. 암이라는 게 그런 거 같다. 일반 병보다 더욱 사무치고, 두렵고, 그에 따르게 될 고통이 다른 병보다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그 한 단어만으로 치료하기도 전에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니…
17세에 아버지를 암으로 떠나보낸 소년이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되어 써 내려간 암과 더 나아가 죽음을 바라보는 과학적, 철학적 고찰을 담아낸 책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를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읽어 보았다.
저자인 김범석 교수님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글 잘 쓰고, 조곤조곤 차분히 말씀 잘해주시는 종양내과 전문 교수님으로 알고 있었다. 간간이 읽게 되는 그의 산문을 보면서 글로써 마음을 잘 어루만져 준다라고 여기던 차에 서평의 기회가 되어 이번 신간을 받아 펼쳤다.

책은 1부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2부 암을 향한 인류의 도전, 3부 죽음과 불멸의 두 얼굴, 암, 4부 반전, 5부 죽음 뒤집어 보기로 나뉜다.
1부에서는 저자의 대학병원 초보 레지던트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암을 정복하고자 하는 패기 넘치던 시절이라 어떻게 하면 암을 없앨지 궁리하던 암과의 전투 시절이다. 우리가 왜 죽는지, 그리고 암으로 인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지에 관한 질문을 거듭하며, 역으로 그 죽음의 원인을 하나씩 제거해 보고자 하는 노력을 펼친다. 이를테면 암 환자가 감염과 출혈로 죽는다는 원인을 접하고 출혈과 감염을 막으려 한 노력이 나온다. 하지만 강력한 항생제에도 불구하고 이미 저하된 면역으로 인해 암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는 등 암은 언제나 의기양양하게 저자를 굴복시켰다. 이때는 저자가 의학적 노력, 본인의 능력으로 어쩌면 암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담당했던 환자가 사망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은 거 같다. 의사가 된 저자의 믿음은 아버지의 죽음에 직면하여 정성을 다해 1,080배를 하면 나을 거라고 믿었던 소년 시절의 믿음과 맞닿아 있는 거처럼 보였다. 단지 1,080배에서 의학적 지식으로 바뀌었을 뿐 그 밑바닥에는 암을 정복하고 물리칠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전공의 2년 차에 본격적으로 암과 싸워보고자 혈액종양내과로 전공을 선택한다.
2부부터는 암 치료에 대한 인류의 도전이 쓰여있다. 마치 ‘암’이라는 악당을 주인공으로 써 내려간 투쟁사를 읽는 기분이다. 또한 항암치료는 인류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연구의 노력이 아닌, 우연에 의해 발견된 사실이라는 게 놀라웠다.
근래의 항암치료에 관한 연구는 가히 눈부시게 발전하였는데, 특히 저자가 속한 서울대병원 연구팀에서 찾아낸 ALK 유전자 변이 폐암 환자에 대한 선별 검사와 이에 대한 항암치료를 위해 일본에서부터 날아와 치료받았다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성과에 나 또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들이 속속 발견되는 장면에서는 암은 곧 극복될 수 있는 대상으로까지 보였다. 하지만 이는 곧 한계에 부닥친다. 분자표적함앙제로 치료가 가능한 암은 전체 암의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또한 암세포들이 이들 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들어 냈다. 암세포가 진화하는 것이다. 이에 또다시 연구는 계속되어 면역항암제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면역항암제에서도 성공과 실패를 보게 된다. 저자는 다시 연구의 관점을 전환하여 암세포가 아닌 모든 세포의 본질에 관해 연구하게 된다.
3부 죽음과 불멸의 두 얼굴, 암에서는 인류보다 더 오래된 암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책에서는 암이 언제부터 있었는지의 물음에 DNA를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가 있던 순간부터라고 답한다. 이렇게 오래된 암은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와중에도 늘 함께한다. 심지어 지금 필자의 몸에서도 암세포가 생겨나고 죽어 나간다고 한다. 단지 번식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 이처럼 시시각각 생겨나고 죽어 나가지만 어쩌다 유전자, 진화, 환경, 우연이 혼합되어 어느 순간 암세포가 커져 암이 발병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발병 확률이 30%는 된다고 하니 아직 30% 안에 들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고 본다.
4부 반전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이야기한다.
암세포의 입장에서 서술했는데, 새겨볼 게 무척 많다. 우선 우리 몸의 상피세포인 피부와 내장의 겉면에서는 생명체를 위해 무수한 세균으로부터 방어를 펼친다.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죽어 나간다. 계속 세포들은 그 속도만 다를 뿐 계속해서 분열되는데 이때 오류가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인류가 장수할수록 이런 세포 분열에서 오는 오류의 횟수도 많아지기에 필연적으로 암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거기에 방어를 펼치긴 하지만 끊임없이 지속해서 들어오는 발암물질도 무시할 수 없어 상피세포들의 DNA에 돌연변이가 누적되어 마침내 암세포라는 돌연변이가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암세포가 아니었다. 가혹한 환경에 의해 암세포로 변해 반란을 시도한다. 그래서 애초에 암세포로 변하기 전에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암세포로 변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이는 노화의 반대로 생활 습관을 잡으면 되는데, 암에 대한 예방이 곧 가장 강력한 암의 대비 방법이다. 오죽했으면 나를 방어해 주던 상피세포가 암세포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면 암에 대한 관점도 바꾸어 바라보면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과 한 걸음 물러서서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5부에서는 죽음에 대해, 암에 대해 뒤집어 본다. 우리는 지금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시각각 암세포도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암과의 공존을 인정하고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한한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라고 말한다. 반복된 일상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사랑하는 이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자주 여행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시간은 희한하게 늘어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미리 예방하는 습관을 지니도록 말한다. 암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예방이다!
암의 정복을 꿈꾸었다가 암에 대해 이해하게 된 종양 전문 의사의 에세이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5부에서는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입장에서 서술되어 의학, 과학적으로 치열하게 싸우다 철학적으로 현자의 단계에 오른 경지도 저자에게서 느껴져 다시 책을 펼쳐보며 한 구절 한 구절 되새기게 된다. 암이라는 대상에서 시작했으나 결국은 삶과 죽음, 유한하지만 상대적인 시간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어, 내 몸과 내 주변인,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시작하면서 들었던 우리는 왜 죽느냐는 의문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고, 유한하기에 더욱 소중하고 값진 내 인생이라는 게 더욱 와닿는다. 암으로 투병하는 이들과 주변 보호자뿐 아니라 암에 대한 의문을 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