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평전
안병용 지음 / 더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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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이력을 보아하니 과연 ‘평전‘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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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리더 2020-12-06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희상찬양집 ㅎ
 
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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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이 제법 잘 팔리는 상품이 된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서가에는 꼭 잘 나가는 글쓰기 책들이 하나씩은 꽂혀 있고, 온라인서점에도 잊을만하면 글쓰기 신간 소식이 메인을 채운다. 왜 그럴까. 1인 미디어 증가라는 매체 환경 변화와 디지털 시대에 자꾸만 떨어지는 독해력과 문장력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까.

나도 비슷한 시기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 쓰다 자괴감이 들 때면 글쓰기 책을 찾아 읽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서평 글쓰기 특강》, 《서평 쓰는 법》, 《글쓰기의 최전선》, 《소설가의 일》, 《무엇이든 쓰게 된다》, 《고종석의 문장》... 아 쓰고 보니 왜 이리도 많을까. 이것 말고도 몇 권 더 있는 것 같은데 스치듯 지나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읽을 책들 쌓아놓은 곳에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 몇 권 더 있다.

그러나 글쓰기 책을 아무리 읽어도 곧장 실력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건 뭐 나뿐만 아니라 만연해있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저렇게 많은 책들을 읽었을 테고, 글쓰기 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겠다. 글쓰기는 저마다 몸에 새겨진 고유한 삶의 경험과 통찰들이 자기도 모르게 배어져 나오는 것인지, 어쭙잖게 머리 까딱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글쓰기 책을 전처럼 찾아 읽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저렇게 읽어댄 건, 글쓰기의 묘한 매력 때문이었지만.

종종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는 찾아 읽지만 이젠 글쓰기 기술을 다룬 책은 거들떠도 안 보는데, 그런 책 중 하나가 웬일로 눈에 들어왔다. 도발하는 듯한 제목과 카피("글쓰기 비법에 대한 소문과 진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절대 법칙은 없다!")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기획자로 일한 강창래 작가가 쓴 《위반하는 글쓰기》였다. 이 책은 "유효 기간이 지난 지식은 버려야 한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기존에 출간된 숱한 글쓰기 책에서 제시한 방법론들이 시효가 다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어떠어떠한 통념이 왜 잘못됐는지 생선 가시 발라내듯 해부하고 부순 후,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따로 있을까? 거의 모든 글쓰기 책에서는 이 물음에 모두가 노력하고 훈련하면 잘 쓸 수 있다는 답을 하고 시작한다. 그래야 글쓰기 책이 성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두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잘 쓴다." 모두 노력한다고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각자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많이 쓰면 잘 쓰게 될까? 많이 읽으면 잘 쓰게 될까? 필사를 많이 하면 잘 쓰게 될까? 저자는 기존 글쓰기 책에서 봤을 법한 기시감이 드는 명제들을 하나씩 톺아간다.

기존의 허울 좋은 원칙들이 해체된 후 나름의 방법론이 펼쳐진다. 바로 머리와 가슴속을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꽉꽉 채우라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아직 좋은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할 정도가 되어야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높다. 쓰겠다는 결심보다 글로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생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괜히 연애편지가 일기보다 잘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로 속을 가득 채우면, 마치 원석에서 보석을 세공해내듯 좋은 글들을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여태껏 출간한 많은 책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고 전하며 다소 극단적인 예시, 서평 하나를 쓰려고 7권의 책과 10편의 영화를 보았다는 경험담도 들려준다.

여러 원칙들을 꼬집었지만 글은 쓰고 나서 고쳐야 한다는 원칙에는 저자도 동의하나보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통념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한다. 예컨대 형용사와 부사는 되도록 안 쓰면 좋은 게 아니라 '잘' 써야 하고, 직유는 은유의 못난 동생이 아니라 직유만을 위한 자리가 있으며, 문장이 길다고 무조건 안 좋은 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원칙은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과 망각의 대상이다. 원칙은 언제나 알고 나서 잊어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잔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한 수련을 통해 비로소 글쓰기의 과정이 몸에 새겨질 때, 자기 고유의 글이 써진다는 말이겠다.

저자가 말하는 시효가 지난 글쓰기 원칙들이 어디에서 수집된 것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때론 저자도 그 원칙의 연장선 위에 서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이야기의 다른 판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건 "어디에서나 통하는 절대 법칙은 없다"는 말이다. 각자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글쓰기의 길이 있을 텐데, 그 길을 탐험하면서 괜히 그릇된 편견으로 눈을 가리지 말라는 말이다. 이 책은 그 탐험이 미로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등불이 되줄 수 있을 것 같다.

"원칙은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과 망각의 대상이다. 원칙은 언제나 알고 나서 잊어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아직 좋은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할 정도가 되어야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높다. 쓰겠다는 결심보다 글로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생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모두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잘 쓴다."

"유효 기간이 지난 지식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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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6-1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청년 님, 알라디너셨군요 ? ㅎㅎㅎㅎ 몰랐습니다(페루애)

세계문학전집 2020-06-15 13:51   좋아요 0 | URL
오 여기서도 뵙네요ㅎㅎ 반갑습니다 ㅎㅎ 잘 안 쓰다가 리뷰글 올릴까 해서요
 
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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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통념을 깨부수고(“위반하고”) 새로운 길을 알려주는 책. 기존의 글쓰기 책들과는 다르게 신선한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그게 또 실용적이기까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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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지클래식 1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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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고(苦)라던 불교의 가르침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속은 상처고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김윤식, 김현) 문학은 현실의 산물이기에 으레 그 안에 상처가 담기는 법인데, 아픈 상처를 굳이 드러내(야하)는 건, 그것이 반성과 치유라는 희망을 품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그러한 상처의 풍경들을 모아놓은 연작소설집이다. 20세기는 세계 어느 곳이나 격동의 전환기였다. 이 땅의 민중들은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과제를 떠안고 식민지 지배, 전쟁, 독재의 경험까지 견뎌야 했기에 모순은 짙고 상처는 깊었다. 《관촌수필》은 1941년 충청도 관촌 부락에서 태어나 자란 이문구가 1970년대 소설가가 되어 옛일을 회상하고 옛 친구들을 만나 전해 듣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모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소설인 <일락서산>(해가 서산에 지다)은 화자가 오랜만에 귀향하며 시작된다. 옛 마을에 도착해 처음 발견한 건, 마을의 오랜 터줏대감, "4백여 년에 걸친 그 허구헌 풍상을 다 부대껴내고도 어느 솔보다 푸르던, 십장생의 으뜸다운 풍모로 마을을 지켜온 왕소나무"의 부재였다. 이 장면은 소설이 시작하고 3쪽이 채 넘어가기 전에 펼쳐지는데, 이후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암시되어 있다. 화자는 구차스런 동네로 변모해버린 마을을 눈으로 확인하며 깊은 상실감에 잠긴다. '이젠 완전히 타락한 동네구나', '실향민, 나는 어느덧 실향민이 돼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덜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느 한 가지도 그전 그 모습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진실로 서글픈 일이었다'

화자가 저리도 깊이 그리워했던 건 할아버지, "고색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할아버지"였다. 말하자면 구한말의 끝자락에 태어난 마지막 양반이었던 할아버지, 상대가 상놈이라면 나이가 많더라도 철저히 하대했던 할아버지, 아흔의 나이에 숨을 거두며 족보만은 잘 간수하라는 유언을 남긴 할아버지, 시대가 변하여 제대로 된 양반 노릇도 못해 본 할아버지,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선비처럼 글만 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였다. 화자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여 일찍 세상을 떴기에, 화자의 어린 시절 애착과 경외는 고스란히 할아버지를 향해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대목은 깊은 서정적 울림을 자아내지만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유교적 영향은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한계는 소설 곳곳에 은밀히 숨겨져 있다.

이어지는 소설들, <화무십일>(열흘 가는 붉은 꽃은 없다)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을 내려온 윤영감 일가 이야기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행운유수>(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에는 유년시절 화자와 친밀하게 지내며 자랐던 부엌데기 옹점이의 가슴 아픈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녹수청산>(푸른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에는 거의 유일했던 친구인 대복이의 순박한 삶이 타락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공산토월>(빈 산이 달을 토하다)은 가장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데,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남을 위해 살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석공 신씨를 통해 작가의 정신 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구원의 인간상을 그려낸다. 문학동네에서 몇 해 전에 펴낸 한국문학전집에 이문구의 중단편집이 《공산토월》이란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작가의 《관촌수필》에서 4편과 그 외 《우리동네》, 《유자소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에서 추려서 만든 책이다. 작품들을 추리고 추린 중단편선에 이름을 걸고 나온 걸 보면 평론가들도 가장 인정하는 작품인가 보다. 관촌수필의 여덟 편의 글 중 분량도 제일 많고 가장 비극적이지만 현재의 나가 과거와 화해해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가장 인정받지 않았나 싶다.

이어지는 후반부의 소설들, <관산추정>(고향에서 꼴 베는 사람, 고향의 옛 친구)<여요주서>(그저 그런 이야기에 관한 해설), <월곡후야>(월곡 동네의 밤중부터 아침까지)에서는 회상보다는 현재의 화자가 바라본 농촌의 풍경을 그려낸다. 화자가 직접 찾아가 보거나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는 농촌은 도시에서 밀려든 향락객들로 오염되어 가는 곳이고, 공권력의 횡포가 제멋대로 자행되는 곳이며 이전에는 없던 끔찍한 범죄들이 벌어지는 삭막한 곳이다.

이상향 같던 유년 시절의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건, 앞서 말했듯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침탈 때문이었다. 평범하고 고요했던 마을에 전쟁과 함께 비극이 시작되고, 미군이 몰려들어 농촌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자본의 깊숙한 침투로 땅이 오염되고, 각종 이권사업으로 관계들이 단절되고 공동체가 깨어지는 일들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쟁통에 밥 한 그릇도 나눌 줄 알았던 인심은 서로 반목하고 의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냉혹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문명의 이기 앞에 갈가리 찢기는 공동체를 바라보며 철저한 무력감과 그리움에 사로잡히지만 그가 이상향처럼 그리워하던 풍경은 유교의 질서였고 극도의 가부장 사회였다. 물론 작가가 그 질서 자체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또한 부엌데기였던 옹점에게선 그 어떤 이한테서도 보지 못한(심지어 사회당원이던 아버지한테서도) 주체적인 인간상을 발견할 줄 알았을 만큼 감수성도 트여 있었다. 할아버지와의 긴밀했던 관계와 그 영향은 뿌리 깊지만 그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촌을 주목하며 민중의 목소리와 숨결을 채취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관성 있게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것 아닌가 싶다.

이문구는 《이문구 소설어 사전》이 따로 나올 정도로 충청도 방언을 비롯한 토속어들을 거침없이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정겹고 구성진 말들은《관촌수필》의 정서적 울림을 배가시킨다. 여러 판본을 거쳐 나온 2018년 문학과지성사 출간본에는 부록으로 낱말풀이가 딸려있다. 모르는 어휘는 뒷장을 참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흐름이 끊긴다는 단점이 있다. 문맥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어휘들이 꽤 많아서 읽으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귀찮을 수 있고, 그 과정이 힘겨운 탓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읽다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숲을 만날 수 있다. 중간중간 다소 호흡이 긴 문장들도 돋보이는데, 작가의 입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리듬이 좋고 막힘 없이 읽힌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고,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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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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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 일곱 살이 된 황석영 작가가 신작을 내놓았다. 제목은 《철도원 삼대》, 염상섭의 《삼대》를 연상시키는 제목인데 그만큼 두꺼울 예정이라고 한다. 《철도원 삼대》는 황석영 작가가 1989년 방북하여 서울 출신의 한 노인을 만나게 되며 구상한 것이 3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빛을 본 작품이다. 서울 출신의 그 노인은 영등포역 부근에 살며 철도기관수로 일했는데, 그 시기는 어린이 황석영이 영등포에 살았던 시기와 겹쳤고, 둘이 나눈 이야기가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소설은 이진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진오는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다. 이십오년 동안 일한 회사가 팔리면서 해고를 당했고, 복직투쟁을 위해 본사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농성을 시작했다. 굴뚝은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살아온 영등포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남는 게 시간 뿐인 이진오는 굴뚝 위에서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동네친구,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를 번갈아 소환하며 대를 거쳐 내려 온 가족사를 회상한다. 조선에 경부선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부터 철도원으로 일한 증조할아버지부터, '일본과 자본에 이중으로 억눌려' 있던 현실과 투쟁하다 월북한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반공포로가 되어 겨우 돌아온 아버지를 거쳐 여전히 노동 투쟁 중인 이진오 본인에 이르기까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세기에 걸친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한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겠다.

황석영은 이 책이 우리 근현대문학에서 빠진 부분 중 하나인 근대 산업 노동자들의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그 당시 산업노동자들을 다룬 소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한 밀도로 다룬 건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다. 창비 사전서평단에 뽑혀 1/3 가량 가제본 된 분량을 읽어봤는데, 적은 분량이지만 근대 조선 산업노동자들의 투쟁기가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노동투쟁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르포처럼 딱딱한 건 아니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정겹고 신비로운 이야기들과 한몸이 되어 펼쳐진다.

반백년 넘게 소외된 민중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오며, 끈질기게 역사와 시대와 화해를 시도했던 작가의 발걸음이 여기까지 다다랐다. 그만큼 멀리 가볼 수 있는 작가는 더 이상 없을 게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발걸음에 동참할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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