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 금강요정 4대강 취재기
김종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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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삶의 터전 함께 일구며 더불어 사는 벗들과 금강에 다녀왔다. 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향한 곳은 공주 공산성. 얼마나 일찍 도착했는지 공산성엔 사람 하나 없었다. 한산했던 성곽 너머 고요히 흐르는 금강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자잘하게 반짝이는 윤슬들이 눈부신 보석 같았다. ‘이래서 비단가람, 금강이라 하는구나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함께 간 친구들과 사진 찍기에 바빴다.

 

오후에는 운 좋게도 금강에서 오래 활동하신 김종술 기자님을 만나 4대강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님은 손수 준비해서 갖고 다니시는 보드판으로 금강이 어떻게 파괴되어갔는지 설명해주었다. 대충 들어 알고만 있었던 4대강 사업의 민낯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팠다. 이야기 들은 후엔 같이 금강 변을 걸었는데, 강에 다가갈수록 악취가 났다. 펄이 만들어져 발을 조심해야 한다던 기자님은 강가에서 펄을 헤집었다. 믿을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4급수 오염원으로 전락한 금강의 몸부림 같은 냄새였다.

 

금강에서 돌아온 후론 차마 사진첩을 열어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대충 생각하며 살던 오만이 부끄러웠다. 죄스런 마음 들어 앞으론 잊지 않겠노라며 페북에서 김종술 기자님을 팔로우했다. 때마침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단숨에 구해 읽었다. 책에는 10년 간 금강과 함께 동고동락한 김종술 기자의 눈물겨운 분투기가 담겨 있었다.

 

취재한다고 인부와 관계자들에게 욕지거리 들어가며 협박 받아가며 때론 맞기까지 하고, 집단 폐사한 물고기 마주하며 얻은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오염된 금강에 들락거려 배탈과 두통, 두드러기와 함께 약을 달고 살고, 부족한 취재비 때문에 운영하던 지역신문사를 정리하고 땅 팔고 차는 담보 잡히고, 지인들에게 손 벌리다가 사람이 멀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돈이 없으면 막노동, 대리운전 전전하며 취재비를 벌고, 그렇게 다시 취재를 하고.. 정말 눈물겨운 일들 투성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대체 이런 삶을 왜 사는 것인가. 사람이 이토록 한 가지 일에 미치도록 골몰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10년 전 MB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4대강 사업을 포함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때, 그 허탈감에 마냥 젖어있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박근혜가 당선이 된 후에는 절망이란 단어에 대해 새로 배웠다. 지금이야말로 이민을 가야할 때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던 때였다.

 

나 또한 그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분간은 조용히 살아야지생각하며 내 한 몸 건사하기에 바빠 눈 닫고 귀 닫고 살았다. 아니 그러면 너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으니까 그저 몇 발짝 뒤로 물러나 저 멀리서 바라보며 살아왔다. 마치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인냥, 그러니까 그 날 공산성에 올라 저 멀리 금강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기자님은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김종술 기자를 만났던 그 날 누군가 물어보았다. 김종술 기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라며, 자기는 부모님에게 배운 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저 소박한 대답 속에 담겨있는 삶의 무게가 도저히 헤아려지지 않았다.

 

강은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걸 진짜 진실로 믿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김종술 기자에게 금강은 어릴 적부터 제 몸 온전히 내어준 친구였고, 힘들 때 찾아가면 말없이 위로해주던 믿음직한 친구였다. 금강에 몸과 삶 부벼대며 살았던 그에게 금강은 마치 완전히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 그야말로 친구가 아니었을까. 그런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쏘냐. 그건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글만 말만 가지고서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4대강 사업에 대한 고발을 잘 정리한 책이려니 생각하며 펼쳤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은 숨 막힐 듯 다이내믹(?)했고, 어떤 이야기보다도 감명 깊었다. 어느 영웅담보다도 배울 게 많은 삶의 진중함이 있었으며, 어느 사랑이야기보다도 아름답고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금강에서 풍찬노숙하며 써내려간 투박한 문장들은 어떤 미문 투성이의 글보다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세상이 다 바뀐 것만 같지만, 차근히 우리 삶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바뀐 건 많지 않다. 금강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아팠던 금강에겐 아직 그만큼의 시간과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이 이제 막 우리 앞에 펼쳐진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이 부디 마침표로 읽혀지지 않길 바란다. 엄혹한 시절, 모두가 상처 받은 금강을 떠나고 잊었을 때, 금강을 똑 닮은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켰고, 금강은 그 누군가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노무현) 이젠 우리가 금강에게 배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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