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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올해 일흔 일곱 살이 된 황석영 작가가 신작을 내놓았다. 제목은 《철도원 삼대》, 염상섭의 《삼대》를 연상시키는 제목인데 그만큼 두꺼울 예정이라고 한다. 《철도원 삼대》는 황석영 작가가 1989년 방북하여 서울 출신의 한 노인을 만나게 되며 구상한 것이 3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빛을 본 작품이다. 서울 출신의 그 노인은 영등포역 부근에 살며 철도기관수로 일했는데, 그 시기는 어린이 황석영이 영등포에 살았던 시기와 겹쳤고, 둘이 나눈 이야기가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소설은 이진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진오는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다. 이십오년 동안 일한 회사가 팔리면서 해고를 당했고, 복직투쟁을 위해 본사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농성을 시작했다. 굴뚝은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살아온 영등포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남는 게 시간 뿐인 이진오는 굴뚝 위에서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동네친구,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를 번갈아 소환하며 대를 거쳐 내려 온 가족사를 회상한다. 조선에 경부선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부터 철도원으로 일한 증조할아버지부터, '일본과 자본에 이중으로 억눌려' 있던 현실과 투쟁하다 월북한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반공포로가 되어 겨우 돌아온 아버지를 거쳐 여전히 노동 투쟁 중인 이진오 본인에 이르기까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세기에 걸친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한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겠다.
황석영은 이 책이 우리 근현대문학에서 빠진 부분 중 하나인 근대 산업 노동자들의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그 당시 산업노동자들을 다룬 소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한 밀도로 다룬 건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다. 창비 사전서평단에 뽑혀 1/3 가량 가제본 된 분량을 읽어봤는데, 적은 분량이지만 근대 조선 산업노동자들의 투쟁기가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노동투쟁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르포처럼 딱딱한 건 아니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정겹고 신비로운 이야기들과 한몸이 되어 펼쳐진다.
반백년 넘게 소외된 민중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오며, 끈질기게 역사와 시대와 화해를 시도했던 작가의 발걸음이 여기까지 다다랐다. 그만큼 멀리 가볼 수 있는 작가는 더 이상 없을 게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발걸음에 동참할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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