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 먼저 무화과나무가 언제 열매를 맺는지 살펴보자. 무화과나무는 몇 차례 열매를 맺는데, 건기가 시작되는 4월에 맺는 첫 번째 열매를 ‘파게‘라고 한다. 그러나 이때의 열매, 즉 ‘파게‘는 맛도, 볼품도 없어서 가축 사료로 쓰이거나 가난한 자들, 혹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온 여행자들이 허기를 달래는데 사용되었다. ‘파게‘ 이후 4~5차례 열매가 맺힌 후 8~9월에 맺히는열매를 ‘테헤나‘라고 하는데, 이때가 맛이 좋다고 한다. 본문은 유월절,
즉 양력으로 3월 말에서 4월 초에 있었던 사건이다. 이는 파게가 맺힐시기다. 즉 여기서 예수님이 바라셨던 무화과 열매는 8~9월경에 열리는 맛난 테헤나가 아니라 파게였던 것이다. 그 파게마저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다. - P350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도 비유 행위다. 그러면
"무슨 뜻을 전하려고 하셨던 것일까? 13절에서 ‘무화과나무의 때‘란 계절적 의미에서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란 뜻이 아니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이로스(Kaupós)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마가복음 1장15절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예수님이 선포하셨는데, 여기서 ‘때‘는 ‘카이로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뜻한다. - P351

둘째, 무화과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였다(렘 8:13;미 7:1: 호 9:10). 그렇다면 ‘무화과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지금은 이스라엘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특히 다음에 나오는 성전정화 사건을놓고 볼 때 ‘무화과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이스라엘 성전의 때는 지났다‘는 뜻으로서 타락한 성전에 대한 심판을 뜻한다.
셋째, 마가복음 11장 12-25절은 아래와 같이 샌드위치 구조이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샌드위치 구조가 아니다. 성전에 대한 상징적심판행위 후에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 그 뿌리가 말라 버린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이 내용이 아예 없다. - P351

위 구조를 보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 그 결과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일이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과 가르침의 사건을 감싼 구조이다. 즉 이 두 사건이 서로 긴밀한 관련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해석해 준다는 말이다. 즉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결국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을 예고하는 행위인 것이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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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통일된 한 이야기로 기록한 최초의 책이다. 마가복음이 기록되기 이전에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하신 일들은 단편적으로 전해졌으리라 추정된다. Q‘나도마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만 모아 놓았다. 그러나 신약의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뿐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까지 포함하여 그분의 생애를 ‘이야기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마태복음에는 산상수훈(5-7장) 등이, 요한복음에는 여러 긴 설교(혹은 담론, discourse, 13-17장)가 중간중간 나온다.
마가복음 4장과 13장에 비교적 긴 설교가 자리 잡고 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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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합니까?
가나안을 향해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P91

가나안을 향해 걸어야 할 사람들이 그러지 않고 자신들을 종으로 부려 먹었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향가나안‘ 대신 ‘환애굽‘을 시도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광야 여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입니다. 광야 여정이 힘들고 어렵다고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다시 종살이하는 노예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우니까 간신히 탈출해 나온 그곳에 대해 환상 가득한 나눔을합니다. - P91

문제는 광야가 하나님 임재의 경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부
‘재의 경험도 가득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 부재의 경험은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 것 같은,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이 없으신 것 같은,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경험입니다.  - P95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부재의순간에 하나님 임재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임재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P95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우리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울때,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 하나님 부재의 순간에 우리에게베풀어졌던 은혜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부재의 순간을 돌파하는 것이신앙인의 내공입니다. - P96

슬로브핫 딸들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한번 주신 말씀이 기계적으로고정돼 있지 않고 새롭게 변화된 상황에서 정당한 문제 제기에 따라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 하면
‘계시의 발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이해하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이 주어진 맥락과 상황과 배경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과 배경에서는 적절한 말씀이지만, 새로운 상황의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에 걸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우리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계시의 발전이 일어나야 합니다. - P98

신명기는 앞서 기록된 내용을 반복해서 쓴 책입니다. 되풀이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일단 기록한것을 왜 굳이 반복해서 다시 기록한 것일까요? 왜 이미 나와 있던 내용을 신명기에 또 기록한 걸까요?
일단 말씀을 듣는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는 출애굽 1세대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도 출애굽 1세대를 위한 말씀입니다.  - P99

신명기는 출애굽2세대에게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1세대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모세, 여호수아, 갈렙이 전부입니다. 신명기의 청중인 출애굽 2세대는 출애굽 당시 20세미만이었거나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출애굽 2세대에게 선포한 유언적인 설교가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기록된 말씀을 반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 P99

신명기 28: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오랜 세월 바로 이런 인과응보, 신명기 신학이 이스라엘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집어진 게 욥기입니다. 욥기에서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은 의로운 신앙인 욥은 고난을 받습니다. 자녀들이 죽임을당하고 많은 재물이 사라져버립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와 욥의몰골과 처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합니까?
욥기 4:7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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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다윗왕의 맏아들이다. 고대 왕국에서 장자의 지위는 막강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아버지가 죽으면 대를 이어 왕이 될 터였다. 어릴 때부터 떠받들어 주는 사람들의 대우에 익숙했다. 세상이자기 발아래 있는 듯 여겨졌다. 그러면 선을 넘기 쉽다. 신앙이고 도덕이고 간단히 무시하게 된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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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입다는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전쟁에서 이겨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야 단박에 자신의 서러움이 씻기지 않겠나? 그의 유명한서원 기도는 이 맥락에 위치한다.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신다면, 내가 암몬 자손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삿 11:30-31).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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