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네온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3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수영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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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 글의 그로테스크함이 활자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동물계에 여성이나 다른 약자로 태어났다는 것도 이미 반쯤 접힌 거구요. 페미니즘을 성대결로만 인식하는 사고라면 이 책이 장르로 읽힐 수도 있겠네요. 약자임을 잊어버릴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이런 글을 쓰고, 현실에 찰싹 들러붙은 감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그 입장에 서서 공감하는 것과 그 입장인 것은 또 다르지만, 그 입장이 되보려는 공감조차 형성할 수 없다면 이 작가의 감각은 영원히 제대로 못 읽히 겠죠. 스웨덴 학술원이 아직도 실재적으로는 강자의 감각에 잠겨 있다면 노벨문학상도 어렵겠지만, 수상을 기원해 봅니다. 깊숙히 서글픔이 느껴지는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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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네온

어스름, 가슴 아픈 시간. 
강물 위에서 천천히 기울던 빛이 
눈처럼 녹아내린다.
‘네온‘이 시작되는 시간. 
갑작스럽게, 미묘하게.
길고 눈부신 낮 내내 기다린 사람이 아니면 
알아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P341

궁금한

호기심은 젊음의 습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자 하는 절박함.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기를 열망하는
청춘의 저주. 
반면 내 나이에는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 P81

원한다는 것

‘욕구‘가 얼굴에 뻔히 드러난 거다. 
흑요석이 희미한 빛 속에서도 번득이듯이.
그는 느긋하게 그녀에게 다가간다. - P143

친밀감

그렇게 가는 길에 난데없이 나타난, 
너를 기다리는 키 큰 형체.
"부인, 안녕하세요! 차까지 바래다줄게요. 이 근방이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당신처럼 혼자인 여자한테요."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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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은 아랍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 
사다리꼴을 이루고 앉아 있는 형제들, 
수프를 데우고 있는 어머니, 
이렇게 군주가 앞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개같이 복종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 P31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머니칼을 잡았다.
나는 웃고 있었다. 
나는 이 칼로 모든 것을 잘랐다. 
붙어 있는 책의 페이지, 
이드 세기르‘ 때 닭 모가지 (총 32회), 
이드 엘케비르‘ 때 양모가지 (총 10회), 
그리고 하미드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배를 한 번 잘랐다. - P50

그렇지만, 나는 의식하고 있었다. 
시력이 나쁘다는 것만 빼고, 군주는 내 안에서 완전하게 다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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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원소

"침묵도 의견이다."

이스마엘의 후손이 더 이상 
검은 실과 흰 실을 구별할 수 없을 때.......
엘 앙크‘의 대포 소리가 열두 번 울렸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의 외침이 
사방에서 연달아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면서,우리는 일어났다. 
베라다, 로슈 선생님, 그리고 나. 
우리는 이날의 첫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기독교인인 로슈 선생님에게도 첫담배였다.
그 순간, 갑자기 내 안에서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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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돛대 유람선 <넬리>호의 돛은
펄럭이지 않았고 배는 닻을 내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멎었다.
조수는 이미 밀려들고 있었는데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그래서 강 하류로 내려갈 예정이었던 배는 
정박한 채 조수가 썰물로 바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P7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프레스레벤이야말로 일찍이 이 세상에서 두 발로 걸어다닌 동물 중에서도 가장 점잖고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함께 들었지만,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 몹쓸 짓을 할 수 있을까고 놀라지는 않았다네. 그가 점잖고 조용한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없겠지. - P20

그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정직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저 거짓말이 내게는 무섭기 때문이야. 거짓말 속에는 죽음의 색깔이 감돌고 또 인간 필멸의 냄새도 풍기는 게 아닌가. 바로 거짓말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증오하고 혐오하는 바이며 내가 잊어버리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네. 그리고 그런 속성은 마치 무언가 썩은 것을 한 입 물었을 때처럼 나를 비참하게 하고 또 구역질나게 한다네. - P61

그는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했어.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밀림이 그만 하늘에 박힌 별들을 뒤흔들 
정도로 굉장한 웃음을 터뜨리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 나는 숨을 죽이곤 했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것은 보잘것 없는 주장이었지.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에게 복속(服屬)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어둠의 힘이 
그를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면 온통 오싹해지기도 하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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