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접한 사물로 기쁨을 얻었을 때는 잠시 우쭐함을 느끼네. 기쁨과 만족을 얻으면 늙어가는 줄도 모르는구나當欣於所遇,暫得於己, 快然自足,不知之"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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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나는 그들을 안심시킨다. 보디워크스사 덕분에 나이를 곱게 먹으면서 몸 구석구석을 잘 관리한다고. 그러다 때가 되면 평온하게 잠들 거라고. 눈을 감기 전에 기나긴 황혼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 P-1

말은 생각의 그림자, 그 자체가 믿기 힘들고 잡기 힘들고 비현실적이었다. 육신은 플라스티네이션을 통해 보존되어 영생을 얻었다. - P-1

딸은 나와 다른 세상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서지 못했듯이, 나는 영원한 시간을 감당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할 운명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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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나는 옆집 남자와 나를 갈라놓는 벽을 부수고 그 남자의 목을 붙들고 말해주고 싶어. 징징거리는 낭송을 좀 그치라고, 세상을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힘과 존엄성에 대해 눈을 좀 뜨라고.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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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에 담근 손가락

문학은 거리에서 체득한 생활의 지혜와 같은 현명함을 갖고 있어야 하며, 화려한 문체에 대한 유혹이나 지적 허세를 피해야 한다. 소설은 관객이 화면의 일부로 투영되는 일종의 홀로그램 영화처럼 우리가 그 안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한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고, 나아가 우리가 그 안에서 머물 수 있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인물과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 늘 명확하고 선명하게만 여겨지던 대상들을 마치 램프처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그래서 그 빛 속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갑자기 모호해지고,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고, 안심하던 것들이 의심의 대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 P115

오로지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만 책을 읽는 건 책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는 건 경험하기 위해서이며, 경험이야말로 보다 심오하고 포괄적인 이해의 유형이 아닐까. - P120

글자의 배열과 조합이 얼마든지 가능한 만큼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버전의 텍스트가 존재한다. 각각의 버전에는 신의 이름이 붙어있으니 그 이름을 일일이 헤아려 모두 부르는 자가 세상의 역사를 끝내고 시간을 마감하리라.
그렇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 P133

다정한 서술자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엄마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짧은 문장들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졌고, 살아가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결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젊은 여인, 내 어머니는 그렇게 한때 사람들이 ‘영혼‘이라 부르던 뭔가를 내 안에 심어 주었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를 내게 선물했습니다. - P334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메커니즘입니다. 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언젠가 그들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세상에 대해서 기록하고 이야기한 것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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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노즈야 (Ognozja)

자연의 원소인 물이 서퍼를 실어 나르고 서퍼는 지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자신의 궤적에 스스로 영향을 미칠 뿐 대부분은 파도의 에너지와 움직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서퍼가 존재감을 자각하는 건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파도의 운동 덕분이다. 결국 파동은 나름의 방식에 의해 존재를 불가사의한 무력감으로 인도하며 ‘운명‘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우리의 망각으로부터 끄집어낸다. - P21

지금 우리 곁에 출현한 새로운 세대는 작금의 새로운 상황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란 "아니, 아니, 아니." 라고 말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 나는 이것도 포기하고 저것도 포기할래. 이것도 자제하고 저것도 자제해야지. 필요 없어. 안 해. 갖고 싶지 않아. 단념할게. - P24

우리는 더 이상 ‘비온트(biont, 생리적 개체)‘가 아니라 ‘홀로비온트(holobiont)‘, 즉 전 생명체다. - P28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는 우리의 생각과 패션, 정치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러한 향수 속에는 시간을 되돌려 수십 년 전에 흘렀던 것과 똑같은 강물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삶 속에는 지금의 우리를 위한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우리가 설 자리는 없다. 우리 몸도,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다. - P33

나는 우리 삶이 사건들의 총합일 뿐 아니라 각각의 사건들에 우리가 부여하는 다양한 의미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것이라고 믿는다. - P35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한 채 국지적인 소용돌이, 그리고 ‘세상‘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직소 퍼즐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조각들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세상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 그리고 그 위에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세상을 말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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