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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이과 출신인 나는 과학 네 과목을 모두 배웠다. 화학, 생물, 물리, 지구과학. 가장 점수가 안 나왔던 것은 지구과학이었고, 전혀 이해를 못하는데도 희한하게 점수만은 만점이 나오던 것이 물리였다. 물리는 문제는 어렵고, 답은 쉬운 그런 과목이었다. 아마도 그 젊은 여선생님은 사물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것보다는 답을 찾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80년대 중반의 대학은 학문보다 운동이 더 중요했던 시기였지만, 내게 학문은 운동만큼이나 충격적이기도 했다. 1학년 교양 수학 시간에 나는 처음 알았다. 내 머리는 소위 학문을 할 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교수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문제도 전혀 손 댈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풀 수 없는 수학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가장 좋아했던 과목 ‘수학’은 넘사벽이 되었지만, 사실 내가 절대 넘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물리였다. 그런데도 언제부턴가 나는 천체물리를 동경하고 있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공부는 얼마나 행복할까, 천체물리학과라는 말만 들어도 부러웠다. 다행히 내 머리의 한계를 잘 알게 된 이후라, 그걸 해보겠다고 덤벼들지는 않았다. 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멀지만 그 빛만큼은 마음속에 반짝였다.

 

애덤 프랭크의 『시간 연대기』가 신간 평가단 리뷰 도서에 선정된 것을 보고 기쁘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다. 읽기에는 너무 좋겠지만, 리뷰를 쓰기에는 결코 만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막상 도착한 책은 걱정에 무게를 더했다. 하드커버에 500쪽이 넘는 분량, 물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고생이 많겠다는, 주제 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주 내내 『시간 연대기』에 매달렸다. 3월이 되면서 이것저것 일들이 시작되고, 그만큼 절대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책 자체가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어서, 두 세 시간 꼼짝하지 않아도 힘겹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예전에 시간에 관한 책을 두 세권 읽기는 했다. 호킹의 《시간의 역사》도 읽었고,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시간 어쩌고 하는 책도 읽었다. 그 책들은 그다지 쉽지도 않고, 물리학적 지식을 꽤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그 책들에 비하면 『시간 연대기』는 차라리 반은 인문학이라 해도 좋을 만하다. 물리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호기심으로 몇 장 넘겼다가, 빨려들듯 읽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저자 프랭크가 시간을 푸는 방법에 있다.

 

“이 책은 시간, 즉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다룬다. p12”

 

물리학이 다루는 ‘시간’은 거의 우주의 시간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왜 화살처럼 방향을 갖고 있나 등의 너무 자명해 보이는 개념부터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빅뱅, 팽창하는 우주 등등이다. 그런데 『시간 연대기』의 저자 프랭크는 일반인에게는 너무도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 우주의 시간이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는 일상의 시간과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서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주론과 우주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면, 인간의 시간도 함께 변화한다는 것이다. p15”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뉴턴의 과학적 발견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킨 산업혁명이다. 뉴턴의 물리학 법칙이 별들의 움직임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했고, 뉴턴 역학은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노동자들이 줄지어 출근 도장을 찍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생활양식은 행성들이 중력법칙과 운동법칙에 따라 시계처럼 궤도 운동을 하는 우주를 반영했다.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짝을 이루며 서로를 변화시켜왔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언제나 긴밀하게 서로 얽혀, 완벽하게 분리될 수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p15”

 

그러므로 『시간 연대기』는 물리학이자 동시에 역사학이다. 시간에 대한 인간 인식의 변화는 그대로 인간의 역사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SNS 시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체험은 혁명적 변화를 거쳐 왔다. 구석기 시대에는 그 누구도 秒 혹은 分 심지어 時라는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다. 1300년대 초, 유럽의 여러 도시에 시계탑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時라는 시간을 인식하게 되었다.

 

시계는 중세 수도원의 규칙적인 성무일과라는 필요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도원들 덕분에 … 모든 인간의 정신에 시계의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박자가 공통으로 생겨났다고 누군가 말을 한다고 해도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p123” 규칙이 별 의미가 없던 일반인의 생활에도 시계가 등장하면서, 시간이 질서정연한 생활의 배경이 되었다. 추상적인 시간은 생활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15세기 말 무렵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었다. 지역주민들은 커다란 시계 종소리와 시침에 따라 움직이는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p128” 시계에 의한 삶의 변화는 뒤이어 혁명적 우주론의 등장을 촉발했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등장은 우리를 다시 우주의 시간으로 데려갔다.

 

그렇다면 수 천 년, 길게는 수 만년에 걸쳐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얽혀 변화되어 온 시간이란 놈, 시간이란 개념은 이제 완성 되었는가? 우리는 시간에 대한 불변의 진리를 얻었는가? 저자 애덤 프랭크가 『시간 연대기』를 쓴 이유는 그 답이 ‘아니오!' 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과학상식에 의하면 시간은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데 최첨단의 우주론은 이렇게 말한다. “빅뱅이론의 시대는 지나갔고, 우리는 아직 무엇이 빅뱅이론을 대체하게 될지 모른다. p13” 137억년 동안의 우주 진화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이제 더 이상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년이 아닐 수도 있다. “시간과 우주는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태초라는 개념을 버리고 연구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p26”

 

빅뱅이론의 위기는 ‘특이점’에 있다. 물리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 바로 특이점이다. 빅뱅 이후 137억년의 진화 과정은 모두 그럴 듯하다. 과학자들이 찾아놓은 증거들도 강력하다. 그런데 도대체 빅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누가, 왜, 어떻게 불꽃을 당겼는가? 빅뱅이론에서 우주와 시간은 아무런 설명 없이 시작되었다.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p366” 21세기와 함께 과학자들은 태초의 순간에 대한 급진적인 시각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고차원의 주기적 우주론과 다중우주론이 대표적이다. 이 이론들은 시작도 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접혀진 7차원, 막으로 된 우주, 영원한 인플레이션, 무수한 주머니 우주들에 대한 극한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관한 물음은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가 아니라, 이전 혹은 이후라는 말 자체다. 물리학과 우주론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이다. 단적으로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지금’들만 존재할 뿐 연속성을 가진 시간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생각나게 하는 ‘시계의 불확정성’ 이론도 있다. 어떤 시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주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시계가 불확정적이란 것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구체적인 물리법칙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각 우주마다 한가운데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전에는 어느 법칙이 어느 특정한 우주에서 생기는지 알 수 없습니다. p449”

 

빅뱅이전에 대한 급진적 사고들은 저것이 과연 과학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공상과학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물론 빅뱅이론의 대안들은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극한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추상적 사고의 결과일 뿐 물리적 증거를 획득하지 못했다. 어쩌면 인간의 물질문화가 획기적 혁명을 거듭한 끝에 접혀진 7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10차원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우주와 시간에 관한 우리의 인식도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다. 시간이 벤자민 버튼에게서처럼 거꾸로 갈 수도 있고, 한 순간에 여러 개의 우주에서 동시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그저 흥미로운 상상에 그칠 수도 있다. 아직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도 수없이 일어났던 것처럼,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물질적 개입이 이뤄지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시간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p472" 그러나 그 시간 역시 어쩌면 ‘시계의 불확정성’ 원리가 말하는 것처럼, 단지 우리가 믿게 된 혹은 선택하게 된 하나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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