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빨간 수레 바람 그림책 5
레나타 리우스카 글.그림, 김혜진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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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도 따스한 4월의 어느 날, 걸음마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는 조카가 처음으로 걸어서 놀이터엘 갔다. 그런데 요녀석은 희안하게도 놀이터보다는 그 옆 주차장에 더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놀이기구를 만지는 듯 하다가도 흘깃 주차장을 바라보고, 주차장에 차만 들어오면 아예 넋을 잃고 그 쪽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결국 할머니 손을 잡아 끌며 주차장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주차장에 도착한 조카는 그곳에 정렬되어 있는 수많은 차들, 배달부의 오토바이들, 그리고 한쪽 구석의 자전거 보관소까지 유심히 바라보더니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드디어 어느 차 앞에, 정확히 말해 차 바퀴 앞에 선다. 도대체 바퀴가 뭐 그리 신기한 것인지...차례차례 각종 탈 것들을 순례하며 바퀴를 바라보는 폼이 마치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미술애호가인 듯하다. 엇, 그런데 요녀석이 바퀴를 만지려고 한다! 함께 나간 어른들이 입을 모아 말렸더니 갑자기 내 손을 척 낚아채 바퀴 위에 올려 놓는다. 이것의 의미인 즉, 바퀴를 돌려 차를 움직여보라는 지시이다(조카는 늘 바퀴 자체를 돌려 장난감 차를 굴리고 논다). 이런, 이모를 무슨 차력사로 아는 건지, 나는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그 때, 주차장 옆으로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간다. 조카의 시선도 냉큼 움직이는 차를 쫓는다. 그리고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자기 앞에 정지해 있는 차 바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조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해도 멈춰있는 바퀴와 움직이는 바퀴 사이에서 수많은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힘이 센 어른이 되어 주차장에 있는 모든 차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카의 상상 속에 루시의 빨간 수레 이야기를 슬며시 밀어 넣어주고 싶었다. 수레뿐만 아니라 마차, 기차, 우주선까지 총 출동하는 이 모험을 통해 바퀴달린 탈 것들도 실컷 보고, 상상의 세계를 두 다리로 누비며 신나게 달려보라고. 그리고 물론, 앞으로 더 자라서 심부름도 잘 하라고.

 

자, 이제 루시와 수레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표지를 열면 아기 여우 루시가 빨간 수레에 누워 책을 보고 있다. 루시에게 수레란 그저 물건을 실어나르는 도구가 아니라 침대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친구인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친구라면 가기 싫은 심부름길도 멋진 이야기로 채워갈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엄마도 참...수레를 선물 받자마자 심부름부터 시키시다니!

 

 


루시가 심부름길을 떠나는 순간,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이것은 어쩌면 빨간 수레가 루시를 위해 발휘한 첫 번째 마법일지도 모른다. 빨
간 수레의 마법인지, 아니면 정말 친구들이 따라온 것인지,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어쨋든 이미 수레는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법도 더 가득 실렸다. 마법의 수레가 아니였다면 한 차례의 소나기와 따가운 햇살을 만났을 루시와 친구들은 거센 홍수를 건너 사막을 횡단하는 카우보이가 된다. 씩씩한 보안관 루시가 끌고 가는 것도 더이상 수레가 아니라 늠름한 마차다. 마법의 수레라더니, 정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 같다.

 

 

 

와! 시장이다. 어찌나 즐거운지 서커스 축제의 환상 마저 펼쳐진다. 루시와 친구들은 어느새 서커스 단원이 되어 묘기를 부리고 나팔을 불고 흥겹게 시장을 거닌다. 만일 루시 혼자 시장에 왔더라면 엄마가 주신 목록만 열심히 살피느라 장보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겠지?  이토록 재미난 것이 시장이라면 먼 길을 걸어 심부름을 와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 야채를 실어나르니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기만하다. 루시의 마음을 아는지, 수레도 어느새 기차가 되었다. 이런, 변신로봇보다도 더 굉장한 수레의 마법인걸? 함께 온 친구들과 수레가 정말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이제 야채를 가득 싣고 집으로 가는 길, 그러나 또 한 번의 난관에 부딪히고, 수레는 얼른 마법을 뿅~! 루시와 친구들은 갑자기 야채 행성들이 운행하는 기이한 우주의 세계로 빠져든다. 물론, 우주선은 빨간 수레다.

 


 

단지 시장에 한 번 갔다왔을 뿐인데 탱탱하게 묶여있던 리본은 엉망이 되고 루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고맙다며 이제 수레를 가지고 놀라고 하셨지만 루시는 그만 수레 안에 쏘옥 들어가 잠이 들고 만다. 하긴, 수레의 마법에 완전히 빠져 엄청난 모험의 세계를 지나왔으니 피곤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하지만 위대한 모험가 루시는 꿈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누비며 수레의 마법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눈치챘겠지만 수레가 가진 마법의 비밀은 루시의 상상력에 있다. 가기 싫은 심부름을 즐겁게, 책임감있게 해내는 방법을 루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의 빨간 수레>는 심부름길을 떠난 아기 여우 루시를 통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꿔내는 지혜를 보여주고, 아이 다운 모험심을 한껏 펼쳐주며, 수레라는 넉넉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탈 것을 통해 다양한 변신으로 상상력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깜찍한 이야기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가기에 바뻐 심부름 갈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어디를 가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발걸음만은 항상 경쾌했으면 좋겠다.

 

 

 

 



 
 
달사르 2012-05-03 14:25   댓글달기 | URL
ㅎㅎ 돌쟁이 조카가 있으시군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조카를 보는 이모의 마음은 엄마의 그것과 꼭같다지요. ^^
할머니가 조카를 얼마나 이뻐라 하실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 합니다요. 하하.

여우 루시의 모험은 분홍신님에게도 어울려보이는데요? ^^ ㅎㅎ 동화책은 조카에게 읽어주는 맛도 있지만 어른이 그림 보면서 두근거리는 맛도 있잖아요. 동화책 좋아하시는 것도 저와 같으시네요. ^^

수레는 역시 빨간 색이 어울려요. 노란수레..나, 파란수레..보다 말이죠. ^^ (오은 책 지금 보고 있어요. 히)

탄하 2012-05-04 23:00   URL
역시, 조카있는 이모들의 마음..^^
첨엔 조카 주려고 하나 둘씩 챙기기 시작했는데 너무 예뻐서 오히려 제가 더 탐이나요.
글구 어떤 그림책들은 어른들 책 못지 않게 깊고 비상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새삼 감탄도 하구요.

오옷~! 오은님 책! 빠르시네요. 그새 읽고 계셨어요?
달사르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듣고 싶어요.
다 읽으시면 부디 소감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