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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평점 :
“울지 마. 걱정하지 마. 내가 기도해줄게. 다 잘 될 거야. 너는 곧 괜찮아질 거야.” - p120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생존자 증언을 통해서, 당시의 처참하고 끔찍한 사건을 되새기고, 다시 한 번 교훈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책은 기대보다 훨씬 더 묵직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사회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 그것도 아주 오랜 영향을 말이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보는 평면적인 보도 내용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건의 피해자 한 명, 한 명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아직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방송에서도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이러한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약자를 대변해서 싸우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사망자 502명(부상자 937명, 실종 6명)을 기록한 전대미문의 백화점 붕괴 사건이다. 부실한 건축과 감독이 주요 원인이었다. 최종 사고 당일, 빠른 판단으로 백화점 문을 닫았다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골든타임도 놓친 ‘인재’다.
조금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자 한 경영진의 ‘욕심’도 부실한 건축을 만든 원인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역시 멀쩡해보이던 대교의 한 부분이 내려앉아서, 32명의 사망자(부상자 17명)가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건 후 일 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이후 26년이 흘렀지만, 2021년 6월 9일, 또다시 인재가 발생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사망 9명, 부상 8명)다. 재개발을 위해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지면서, 운행 중인 버스를 덮쳤다. 대기업이 하청을 주고, 또 하청을 주는 악순환이 되면서 제대로 된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왜 인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문제인가?
이 책은 단순히 사고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 저자가 겪은 ‘상처’를 다룬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이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상처를 겪은 상태였다. 어렸을 적에 겪은 친오빠의 학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었다. 그야말로 힘들게 이어가던 ‘정신의 끈’이 그냥 끊긴 느낌이었을 것이다.
“내가 쓰고 기록하는 이런 사회적 참사 이야기 역시 그날 운 좋게 내가 마시지 않았던 폭탄주처럼 복불복 벌칙 같은 일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다음에는 내 차례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 p130
저자의 이런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도 몇 년 전에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버스 운전사가 앞에 버스를 들이받으면서 일어난 참사다. 앞쪽에 앉아있던 승객의 증언으로는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평소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있어서 무릎만 살짝 까진 정도였다. 시속 80km 이상 달리는 버스가 급정거했는데, 그 정도면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의 앞, 뒤에 앉아있던 승객은 앞좌석에 얼굴을 부딪치면서, 뺨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일차적인 책임은 버스운전사이지만,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던 승객도 일부 책임이 있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니라’는 안일한 인식 때문이다.
‘사고’를 겪은 후에 정신을 차리는 것이 문제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늦게라도 외양간이 얼추 고쳐진 덕에 우리가 전보다 안전한 세상에서 사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31
정부 차원에서 뒤늦은 대처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충분할까? 여전히 거리에는 안전모를 쓰지 않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부지기수이고, 일부 택배 오토바이 운전자는 신호를 위반하고, 거리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질주한다.
아직까지 다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돼.’
일단 나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빠른 배달을 원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묵시하고, 대부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자전거 안전모를 쓰지 않아도, 나만 사고가 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전 동네 개천의 산책로에서 여자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 목격자를 찾는다고 했다. 아마 그 아이도 헬멧을 쓰지 않았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잘못된 정부와 사회의 행태에 맞서서 불우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싸운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말에 절대 공감이 간다.
“나는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돈으로 가득 찬 국고를 물려주는 것보다 이웃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 p133
온 나라가 재테크와 부동산으로 광분하고, 열을 뿜을 때, 우리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돌아보았는가?
후세에 물려줄 ‘빚’도 걱정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감수성을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안전수칙을 알려주고 교육하는가?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 외에, 어떻게 하면 사고를 당하지 않고, 또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는가?
이 모든 것은 성장에 목말랐던, 슬픈 과거의 역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떳떳하게 잘 살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부도 그랬고, 국민도 그랬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본부터 다시 점검할 때다. 아이들 교육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유튜브에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파고들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나라, 사회, 동네가 안전해질 수 있는지 고민할 때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원래 기대한 것은 절망의 순간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숭고한 의지였다. 마치 할리우드식 결말을 예상했으나, 결론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여전히 사회적인 편견에 맞서서 싸우고 있고, 우울증도 겪고 있다. 한평생 가져가야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서도 ‘왕따’를 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잘 보듬어주지 않는다. 언제든지 ‘마녀사냥’을 할 준비가 되어있고, 그럴 수 있는 플랫폼도 잘 갖춰져 있다.
저자의 힘든 현실과 대한민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든 현실이 겹쳐 보인다.
이 책은 우울함을 안겨준다. 슬픔도 안겨준다. 언제까지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부터라도 조금씩 변했으면 한다. 잘못된 규정, 수칙, 행동을 바꾸도록 말이다. 사소한 행동이 모여서 거대한 행동을 이루기 때문이다. 안전모를 쓰고, 속도를 지키고, 신호를 지켜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답답한 현실과 이를 타개할 묘책을 고민하게 된다. 역시 엄격한 법 밖에 대안이 없는가?
- 한 줄 요약 : 삼품 백화점 매몰 사태의 생존자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 생각과 실행 : 원리와 원칙이 없는 사회는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사상누각’과 다름없다. 언제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어른이 변해야 하고,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적당히’, ‘나만 아니면 돼’라는 단어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