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취업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청춘 혜원(김태리)은 세상이 눈으로 쌓인 어느 날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떠난 지 오래였지만 예전과 꼭 같은 모습인 그곳에서, 급히 눈밭의 배추를 끊어와 된장국을 끓이고 남은 쌀로 밥을 지어 첫 끼를 만들어 먹는다.
그렇게 시작 된 고향집에서의 생활. 곧 어린 시절 친구인 은숙(진기주)과 재하(류준열)가 찾아와 함께 먹고 마시고 놀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도 회상하기 시작. 가게 한 번 나가려면 수십 분을 써야 하는 시골 동네에서 뭐 그리 먹을 게 많은 건지... 텃밭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온갖 요리들을 만드는 동안, 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왔다가 다시 감과 밤이 익는 계절을 넘어 눈이 내린다.
얼마를 머물지도, 사실 왜 내려왔는지도 딱히 정해놓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면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
딱히 갈등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 영화.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도 우호적이고, 특별한 사고나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굳이 억지로 꼽자면 토마토를 썩게 만든 태풍 정도가 가장 큰 위험이라고 할까.
대신 감독은 계절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시골 마을의 풍경들, 그리고 철마다 나는 먹거리를 사용해 뚝딱 요리를 만들어 내는 혜원의 모습을 조용히 따라간다. 중간 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혜원의 생각이 흘러나오는 것을 제외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자급자족 예능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물론 그 쪽보다는 훨씬 세련된 편집과 영상을 보여준다)
요새 이런 영화를 흔히 ‘힐링 무비’라고 부른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자연이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꽤나 낭만적으로 보이나보다. 끝없는 경쟁과 다툼, 속임이 넘쳐나는 도시와 대비되는 시골의 푸근하고 넉넉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은 다들 비슷하기 마련이라, 장의차량 길을 막고 수 천 만원을 요구하는 곳도 시골이고, 귀농한 주민들에게 마을발전기금을 내라거나 이런저런 참견을 해 대는 것도 시골이다.
무엇보다 영화 속 혜원이 가진 것 하나 없이 시골에 돌아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부모가 남겨준 집과 (아마도)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겨 준 요리에 대한 감각도) 이런 것들은 아무나 갖기 어렵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힐링은 커녕 박탈감만 느껴진다.
물론 이런 쓸 데 없는 트집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시골에 들어가 먹고 쉬는 것을 보는 게 정말 ‘힐링’이 되긴 할까? 내가 쉬는 대신 남이 쉬는 모습을 구경하고, 내가 뭔가 맛있는 걸 먹는 대신 남이 먹는 걸 보기만 하는데도 진짜로 뭔가 변화가 일어날까? 쉼과 여가마저도 남에게 맡겨버리고 멍하니 스크린 앞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걸로 힐링이 되고 있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좀 슬프기까지 하다.
우리에겐 진짜 쉼이 필요하다. 쉴 새 없이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뒤흔들어대는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잠시라도 물러날 수 있는 그런 곳이. 물론 그게 꼭 버스 하나 안 다니는 시골에 들어가, 텃밭에서 나는 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 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일을 좋아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쉼의 자리가 먼지 많고 어두컴컴한 그런 곳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영상이 예쁘다. 많이 치장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연의 것들을 실감나게 살려낸다. 대본에서 살짝 아쉬웠던 부분은, 계절을 설명하는 문장이 거의 같은 형식으로 한 번 반복되었다는 점. 밤이 맛있어진다는 것과 곶감이 맛있어진다는 것이 각각 가을과 겨울이 익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어구였는데, 이게 노래의 후렴구가 아닌 이상 조금 더 고민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