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한국 초기 기독교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저자가, 이 시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잘못된 통설들을 바로잡고, 당시 기독교회의 실체적 성격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책은 크게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백낙준과 민경배의 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2부에서는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에 관한 여러 오해들을, 3부에서는 초기 한국 교회들에 관한 오해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담아낸다. 4부 당시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여러 예배(송구영신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등)의 모습들의 기원과 모습에 관해, 마지가 5부에서는 당시 한국 기독교계 안에서 이뤄졌던 몇 가지 논쟁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물론 그 뿌리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우리에게 기독교는 서양에서 전래되어 온 종교이다. 최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경교(네스토리우스교)를 한반도 기독교 전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보이지만, 일단 그건 현재의 한국 교회와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흔히 교회사하면 유럽 중심의 서양교회사가 주류다. 그러나 한국에 교회가 정착한지 100년이 넘은 상황에서 여전히 서양의 이야기만 줄줄 외우고 읊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지난 100년 간 참 다양한 일들이 한국 교회 안에 있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내용들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산들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종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비신자들은 별 관심이 없고, 신자들의 경우 일종의 헌정된 역사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종종 충분한 증거 없이 미화되는 측면이 많았던 게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오류들을 증거에 입각해 교정하고,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좋은 시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13장에서 다루는 남대문 교회의 기원은 현재 남대문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1885년이 아니라 1909년이라는 주장은,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기분이 꽤나 상하는 내용일 것이다. 흔히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기도문이 실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작가의 상상물일 뿐이라는 설명(8), 사무엘 마페트 선교사의 턱에 큰 상처를 냈던 깡패 이기풍이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약간의 윤색이 있었음을(이기풍은 깡패가 아니라 조선 관원이었던 듯하고, 직접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지적하는 내용(10) 역시 김이 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에 기초해 은혜 받는 일이 어디 제대로 된 일일까?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해가는 한국 초기 기독교사의 이야기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리는 대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화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공부에 전념했었는지, 조선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그들이 교리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특히 선천 지역의 기독교 성장은 한국 기독교가 서양 선교사 중심의 타율적 조직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성장과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다만 책 초반에 실려 있는 두 초기 한국기독교회사가(백낙준, 민경배)에 대한 비판은 좀 더 상세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스승의 성과물을 비판하는 것이 거의 드문 한국의 학계 분위기에서, 이들의 초기 선구자적 연구결과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일단 너무 적고,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거기에 중심을 둔 게 아니긴 하지만, 그러면 굳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부분을 맨 앞에 배치해 둘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과 관련한 연구서가 따로 출판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일단 사관(史觀)’이 중요한 법이니까.

 

 

     무작정 미화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함으로써 후세에게 교훈과 경계를 남기는 것. 역사 서술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초기에 국한된 연구이긴 하지만, 한국 교회사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