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연의 독설 - 홀로 독 불사를 설, 가장 나답게 뜨겁게 화려하게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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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수연:
나는 그들이 굳이 이 사회와 완벽하게 한 몸이 되어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그 중심을 잡기는 매우 힘들다. 굳이 착하고 완벽하게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 굳이 사회적으로 획일적인 성공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도 만족하고 사회도 인정할 만한 성공은 해야 한다.
이런 복합성들을 어떻게 삶 안에 녹일 것인가?

 

 

 

 

유수연:
내가 정의하는 자유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자유는 사회적인 기준이나 성공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고,
두 번째 자유는 그 시대의 대중들 사이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의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그냥 흥청망청 술퍼마시는 것이 자유인가?
그냥 아무에게도 관섭받지 않고 게임이나 하는것이 자유인가?
나쁜 짓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자유인가?
생각해 보자!!

내가 정의하는 자유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마르쿠스 키케로

 

만약 우리가 필요한 것만 한다면 우리는 노예이다.
그 이상의 것을 할 때 우리는 자유롭다.

 

 

 


 


유수연:
사람들은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맞추고 적당히 즐기며 사는 것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 자유라는 것은 내가 정해놓은 일에 집중하고 그 나머지 기준이나 구속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의미한다.
굳이 남들의 눈치를 봐가며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야 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대치에 맞추느라 숨 막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유수연:
인정받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들을 이런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려들진 않는다.
내 존재감이 비록 이질감을 줄지는 몰라도. 적어도 일렬로 줄지어 서 있는 무리 안에 숨어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정해진 줄 과 열에 맞춰진 인형들처럼 전시되는 삶에는 자유가 없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스스로 갇히려 하지 말자.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 일뿐이다. 
나만의 색을, 나 다움을 그 적당히에 묻혀버리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나라나 여중생이 욕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여중생이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치고 받으며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는,순수하게 서로 마음을 열고 반성하거나 순하고 착한 언어로만은 살아가기 힘들다.
독설이란 '솔직하고 싶지만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약하고 여린 단면을 보여주는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여중생들이 약자인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욕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대학진학하는 학생들은 그 언어가 순화된다는 것이 좀 불편하다.
우리 성인들은, 그런 여학생들의 욕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 아.. 여학생들은, 약자니까 욕을 해서 강함을 보여져야 하니까 괜찮아. " 라고 넘어가야 하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 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않된다.
바꿔야 한다.
성인들은, 여중생들을(여성들을) 보호하고 여성들은 욕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하지 말도록 변화를 시켜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어려운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미래의 자식들이 욕하는 것을 보면서 그냥 넘어갈 것인가?
그 여중생들이 개개인의 딸들이라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렇게 욕을하고 다녀도 되는지 말이다!
그리고, 성인들은 자신의 미래의 딸들을 생각하면서 여성 성범죄들을 저지르지 않도록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

 

 

 

 

 

유수연:
요즘 우리 사회는 너도나도 똑똑한 사람들의 궤변들, 입만 살아 떠들어대는 동네 천재들과 지나치게 범람하는 인터넷 지식으로 혼돈 그 자체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엄청난 명언과 좋은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사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헛 똑똑이들이 너무 많다.
아는것만 많을 뿐이다.
그것을 그 이상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자신의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인지를 자각하지 못하면 영원히 망상에만 빠져 있는 채 살아갈

것이다.

 

 

유수연:
나는 내  인생에 그런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기를 바란다.
이왕 살아갈 인생을 스스로에 대한 변명과 위로만 하다 지치기 싫다.
변명보다는 차라리 몸으로 증명하는 게 속 편하다.

 

우리는 모두가 힘들어 한다.
그 중에서도 백이면 백 모두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칭얼거린다.
도대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는 것인가?!

모두 힘들다 보니, 자신들을 토닥여줄 사람들만 찾을 뿐이다.
독설과 냉정하게 자신을 깨워줄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자신의 현 위치와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위안만 받으면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지금 당장 자신의 위치에 마주하다록 하자!

 

유수연:
과거의 실수는 후회하는 시간조차도 아깝다.
실패한 것은 실패한 것이다. 어떤 변명을 해도 실패는 실패일 뿐이다.
토 달지 말고 깨끗하게 인정하면 된다.
실수나 실패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위로하며 미화시키는 것은 안쓰럽다.
과거의 실패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억지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전시키는 것이다.

 

내 인생의 모토의 하나가,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다.
후회는 우리의 인생에서 사치일 뿐이다.

그런 모든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다.
인정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유수연:
나는 나름대로 내게 필요한 휴식을 충분히 취한다.
나에게는 머리를 쉬는 게 가장 중요한데, 에세이를 쓰다가 지치면 토익 책을 쓰고, 방송 원고를 쓰다가 지치면 강의를 하고 동영상을 찍고..
그렇게 돌아가면서 일한다. 에세이는 창의적인 머리를 필요로 하고 토익 책은 논리적인 머리를 필요로 하고 강의는 반복되는 단순 노동이니까 그런 식으로 일을 바꿔가며 하다 보면 휴식이 되고 항상 모든 일에 새로이 집중할 수 있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박사도 휴식과 은퇴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치열하면서도 즐겁게 안정적으로 독서를 하고, 글을 썼다.
죽기 전까지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다가 눈을 감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 열정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열정을 어디에 쏟고 있는가?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하지말자.
시간은 한정된 자원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나중에 딴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비겁하다.

 

최선이란, 스스로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자기 합리화로 치부를 해버린다면 그것은 최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재정의를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중에 딴말을 하는 사람은, 영원한 패배자 일 뿐이다.

 

 

 

20대에게는 처음부터 겸손이 없다.
겸손이라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인데 실제로 낮아서 낮출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겸손의 허세보다는 예의 있는 적극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젊음에게는 겸손보다는 자신감 있는 행동력이 더 어울린다.


20대. 난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20대를 지나오면서 뒤 돌아 보니 겸손할 필요가 없었다.
20대에는 자신감이 필요하고 그 자신감으로 나아가야 했다.
자신감이 싸가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싸가지 없는 것과 자신감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행동해야 한다.


유수연:
상대는 솔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전혀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가 없거나 내 일에 관련이 없어 모르는 것에 대해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오지랖 넓게 모든 것을 잘해야 된다? 그런 걸 다 잘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는 어쩌고? 그럴 시간에 나는 내 분야에서 나의 희소성을 높이는 쪽에 더 치중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공부 -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독서를 하든, 공부를 하든 무엇이든 해라!
지금 당장!!

 

 

 


 

유수연:
물론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고 부족하고 묵관심하고 무능력하다.
그런데 어느 시대나 항상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고 건방졌다.
무관심하고 싸가지 없는 건 전 역사상 모든 20대들의 특징이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고? 그건 당신네 생각이고, 바로 위 세대가 보면 당신 때도 그랬다.
문제는 위 기세대의 시각이 얼마나 넓으냐, 자신의 편협한 시선을 전달하지 않으려고 하느냐, 즉 포용력이 관건이다.

 

젊은것들의 싸가지는, 우리 모두 전체 세대를 포함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젊은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있다.
청년일 때에 우리는 스스로 잘난맛에 사는 것이 아닐까?!

 

 


유수연:
상황이 좋으면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 잽싸게 달려들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다.

 

위기 의식은, 모두가 느끼고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모두가 태평하다.
우리는 모두 무뎌져 있다.
지금은, 위기이다. 아직도 술에 취해 잠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모른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위기 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날카롭게 준비를 해 둔다.
우리는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수연:
현실에 충실히 노력하고 경쟁력을 높였는데 미래에 가서 방향을 잃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현실에 해놓은 게 많은데 미래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미래가 불안한 건 현재 내게 능력도 돈도 경력도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나이만 먹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능력한 나에게 내일은 불안한 미래이지만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나에게 내일은 희망이다.

 

미래는, 누군가에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다.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유수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후의 문제이다.
(생략) 뭐든 일단 잘하고 나면 뭘 할 수 있는지는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기회들이 알아서 당신을 찾아갈 테니까.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더 확실하게 보일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자에게도 정말 재수가 좋아서 기회가 왔을 지라도 계속 앞으로도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흙먼지 처럼 흩날려갈 뿐이다.
지금, 무엇을 준비 하고 있는가?!

 

 

유수연:
나는 그들에게 꿈을 가지라거나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긍정이라는 단어가 싫은 게 아니라 노력도 없이 몸은 못 따라가면서 말만 앞선 사람들이 싫은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동참하는 것 같아 싫다.

 

유수연: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에게 희망이나 긍정은 또 다른 망상일 뿐이다.

 


유수연:
부지런한 자는 어떤 난관에서든 스스로 길을 내고, 게으른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앉는다. 어느 직종에 있든 당신이 배고픈 것은 스스로가 주저앉아 있기 때문이다.
의지와 노력이 빈곤한 사람은 어느 직종에 갖다 놔도 항상 그 인생이 빈곤할 수박에 없다.

 

본인이 깨어 있지 않으면 평생을 의지박약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일이 나에게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백 명이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나?
이게 무슨 공장인가? 똑같은 대학, 똑같은 직업, 똑같은 회사, 똑같은 업종이라고 똑같은 월급을 받는 게 아니다. 똑같은 영어 강사도 월급이 각각이고 똑같은 회계사라는 직업을 가졌어도 월급은 천차만별이다.
왜 직업을 탓하는가?

 

일본전산을 읽어보라!!
그 안에 기본에 대한 중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유수연:
직업을 선택할 때는 현재의 시장성과 미래의 성장성, 자신의 잠재성과 경쟁자까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연결시켜 고민해야 한다.

 

그 전에, 자신의 정체성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중요하다.

 

유수연:
회사를 뜻하는 단어'COMPANY'는 라틴어로 빵을 나눈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사람들의 삶의 결제적 기반이지, 무엇을 배우러 오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회사라는 곳이 어떤 곳이라 생각하는가?
회사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곳인가?

 

안타깝지만, 학교에서는 암기만 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이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두둔하는 의향은 없다.
다만, 서로가 그런 작은 것 부터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런 악순환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유수연:
나는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싫어한다.
시장에 가서 물건 값을 깎으려고 실랑이하는 것도 이해 못한다.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 는 없지만, 나라면 그렇게 실랑이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겠다. 내 논리는 간단하다.
아쉬운 게 있으면 맞추든가 낮추든가, 그게 싫으면 확 올라가버리든가, 괜히 감정을 소비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 더 아깝다.

 

사람이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 사고는 모두 다르다.
물건 값을 흥정을 하는 것도 있지만, 무조건 흥정만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시장에 가서 그렇게 가격을 흥정하고 하면서 서로가 정이라는 것을 나눈것이기도 하다. 그 커뮤니케이션에서 서비스라는 것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있는대로 말하기도 귀찮고, 감정을 소모하기도 싫다면 그것은 기계에 불과하지 않을까?
사람은, 감정을 표출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마, 다른 이들도 우리 모두 개개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입장차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에게만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다.

그 윗세대에서의 되물림이 되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청년들에게만 잘못했다는 식의 반응은 옳지 않다.

비겁하지 않은가?

마치, 자신은 깨끗한 것처럼..

 

너무 안타깝다.

 

의식을 깨우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욕먹지 말자!

청년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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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ing - 기빙 : 우리 각자의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
빌 클린턴 지음, 김태훈 옮김 / 물푸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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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GIVING
작가
빌 클린턴
출판
물푸레
발매
2007.12.15

 

 

 

아프리카 어린이들

 


지성과 열정은 세상 어디에나 골고루 퍼져 있지만 기회와 지원 그리고 훌륭한 사회단체는 그렇지 못하다. 그 결과 수십억 사람들이 삶을 최대한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수백만 사람들이 해마다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

 

과거와 현재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이런 상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모와 전쟁을 할 비용과 에너지들을 모두 봉사에 쏟아 붓는다면 말그대로 세계적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동참을 해야만 가능 한 것이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시간은 분명 몇 세기는 지나야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나 부터 시작하면 된다!!

어느 누구를 비판하고, 헐뜯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봉사하자!!

 

 

 

 

빌 게이츠 하버드 졸업 연설

 

 


2007년 6월 2일 하버드대 졸업연설에서 "게이츠 부부는 왜 건강과 교육 그리고 개발 분야의 세계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재산과 시간을 나누기로 결정했을까?"에 대한 답변 제시.


몯근 사람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다면 아이들의 생명이 다른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노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럴 수는 없어.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무엇보다 이 일을 먼저 도와야 해.'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단을 세우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도 제 입장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상이 그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해답은 간단하고도 냉엄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아무런 경제적 대가를 기대할 수 없었고, 정부에서도 보조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장과 정부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부모들 밑에서 아이들은 죽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다릅니다.
보다 창의적인 자본주의를 개발할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시장의 힘이 닿는 범위를 넓혀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거나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최악의 불평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시장의 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혜택을 주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납세자들이 더 중시하는 분야에 쓰도록 세계 각국의 정부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업에 수익을, 정치가들에게 표를 안겨 주면서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까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세상의 불평등을 줄일 지속적인 수단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결코 완수할 수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혀는 의식 있는 노력은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렇다.
의식 있는 노력은 분명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 나도 믿는다!
나 먼저 변화해야 하는게 맞다!
작은 습관과 사고들을 하나하나 변화 시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빌 부부의 모습


게이츠재단은 불평등을 줄이고, 문제를 파악하여 해결책을 찾고, '아기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그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인간적인 관점에서
활동의 성과를 측정하며, '다른 단체들도 배울 수 있도록' 성공과 실패 사례를 나누어야 한다는 게이츠 부부의 의지가 최대한 반영되는 방향으로 엄청난 재원을 운용한다.

 

 

사례는 정말 중요하다.
처음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생각을 함으로써는 아웃라인을 잡을 수는 있지만 좀 더 깊이 있거나 좀 더 정돈된 자료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나가다 보면, 분명하게 문제점들과 생각지 못한 부분들에 맞딱드리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분화하여 사례집으로 나둔다면 후세에서도 충분히 더욱 실용성 있게 운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든다거나.

 

그럴 시간이 없다거나, 복잡한다거나 언제까지 그런 핑계들만 늘어 놓을 것인가!!

 

 

 

버핏

 

워렌버핏
자기 재산의 상당부분인 300억 달러를 게이츠재단에 맡긴 것이다.

왜 재산의 거의 전부를 기부하려고 결심했는가?


"나의 기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재산의 1퍼센트도 안되는 돈으로 필요한 모든 거을 가질 수 있어요. 나는 좋은 시기에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고, 교사나 군인들에 비해 과분한 대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초과분의 대가를 돌려 주고 있는 것 뿐 입니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들은 영화비나 외식비용을 아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소액 기부자들이예요."


모든 사람이 버핏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아마 우리는 아주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8천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1천억원을 기부하는 것과 1만원 있는 사람이 5천원 기부 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 많이 난다.
누구나 1천억원의 가치를 더욱 크게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부한 돈의 의미를 본다면 오히려 적은 액수를 기부한 사람의 돈의 가치와 의미는 분명 더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 현재 청년들은 기부에 인색하다.
작은 기부도 하지 않으려 한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투자 아닌 투자를 할 뿐이다.
그 투자가 진정 가치 있는 투자라고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무어라 하기 보다. 보여줘야 한다.


우리 개개인이 달라지고 기부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삶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게이츠 부부의 생각에 동의하며 거기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부자로 죽기 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죽기를" 선택했다.
"어차피 죽을 때 돈은 안고 가지는 못하잖아요." 라는 제이미의 말이 두 사람의 태도를 잘 보여 준다.


다른 나라도 어느 일정부분에서는 우리나라와 비슷 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는 말도 하지 못하는 한 살짜리 아이에게 자신의 재산 명의들을 모두 돌려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한심하다고 생각든다.
물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없는 사람들을 욕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눔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 부호도 기부에 대해 인색하지 않는데, 부자들은 더욱 갖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은 분명 혼자 살수 없다. 특히, 인간은 혼자가 아닌 다수 무리를 지어 사는 생명체다.

있는 것으로 잘 사는 것. 그래 인정 할 수 있다!
잘살고 나누지 않는 것에 욕하진 않겠지만, 굳이 더 갖기 위해 몸부림 치거나 없는 사람들의 몫까지 빼앗아 가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나도 어느정도 기부를 하고 있다.


그 기부가 큰 것은 아니지만, 도움받는 이에게는 분명 필요한 금액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류양선 할머니는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7년째 젓갈을 팔고 있다. 그는 자린고비로 모은 돈 23억원을 집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과 사회복지시설 운영자금으로 기부했습니다. >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젓갈가게 지키신다고 한다. 

 

15만달러를 남부미시시피대학에 기증한 87세의 흑인 여성, 오시올라 맥카티.
7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른 사람의 옷을 세탁하고 다림질한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 왔다. 그녀는 병에 걸린 고모를 돌보기 위해 6학년 때 자퇴한 후로는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1947년 이후로 그녀는 삼촌이 물려준 조그만 집에 계속 살고 있다.
한번도 차를 가진 적이 없는 그녀는 8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1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식료품점에서 먹을거리를 사고 쇼핑카트도 직접 밀고 다닌다.


(생략) 1994년 말에 그녀는 손목관절염 때문에 세탁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 그녀는 은행을 찾아가 저축한 돈의 60퍼센트를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나머지는 교회와 친척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고 말했다.


(생략) 필요 없는 일에 돈을 쓴ㄴ 일이 바보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삶의 멍에를 힘겹게 지며 살았지만 자신이 받지 못했던 교육을 젊은이들이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힘들게 장사하신 돈들을 모으고 모아서 기부를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정말 훈훈한 모습이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열심히 피 땀흘리시면서 벌으셨을 것인데 잡수시고 싶으신 것들 갖고 싶으신 것들 다 양보하고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기부를 하는 모습은 감동받고, 우리 청년들도 기성세대들도 재산이 있는 사람들도 배워야 할 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분들이 연세가 있으셔서 그럴수 도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자신은, 양심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는 유용한 기술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잘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지식과 기술을 나누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


기부는 돈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부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봉사도 하나의 기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나는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하나의 기부가 될 수도 있으며,
내 재능과 기술을 다른 이들에게 무료로 기부하여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돈도 좋은 기부이긴하지만, 그것은 자생력이 없다.
하지만, 재능과 기술을 나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이 당당하게 시작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줄 수가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냥, 무조건 적인 나눔과 도움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는 의지력을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든다.

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자생력이다!!

 

 

 

드로니 킹


드로니 킹 1992년 26살때 돈은 많이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당시, LA 폭동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제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생각을 바꾸고,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갖도록 가르치고,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자선이 아니라 의식 있는 이익추구 수단으로서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들,
그들의 집 그리고 그들의 사업에 투자하도록 설득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죄책감과 고통을 씻어내고 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희망사업단을 시작했씁니다.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도 행복의 열쇠가 더 이상 '나 '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우리' 에게 집중하기 시작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저는 70살까지 기다리지 않고 26살에 그 일을 시작했다는 점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대 사회는 이기적인 모습이 가득하다.
오로지 나 자신만 먼저 생각한다.
옆에 누가 있는지도 무관심 할 정도로 혹은, 자신이 왜 그런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되 묻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냉정하고 차가운 감정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누군가에게 따듯한 관심을 받기를 바란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듯한 관심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받는 것만 바라지 않는 것을 말한다.


70살까지 기다리지 않고, 26살 부터 그 일을 시작한 것에 행운이라 생각한다고 하니..
지금 내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나는 꾸준히(?) 준비만 하고 있는다고 하는데..

관점을 나 보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관점을 맞춰야 겠다.

 

 

무크타란 비비

 

 

12살난 남동생이 높은 신분의 소녀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마을원로들의 명령에 따라 집단강간을 당한 파키스탄의 무크타란 비비도 바이틀 보이시즈의 도움을 받고 있다.
당시 그녀는 마을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알몸으로 집까지 걸어가도록 강요당했다.
그녀는 수치심에 못 이겨 자살하는 대신 강간한 사람들을 고발하여 보상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마을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를 세웠다. 문맹이었던 그녀도 자신이 세운 학교에 들어가 글을 배웠다. 그녀는 학교외에 구호단체를 만들고 구급차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러한 여성들은 우리 모두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

 

어떠한 나라들은 아직도, 성차별이 심한 곳들이 많다.
안타깝다.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시대가 변한 만큼 그 나라의 문화들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것은 그대로 유지하거나 혹은 좀 더 발전 시키면 좋지만 좋지 않은 것들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명은 소중하고, 그 사람의 존재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지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직은 새명의 소중함과 상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 못되었을까?!

아마도, 계급사회에 억눌렸던 서민층의 사람들과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따라가려다 보니 중요한 것들을 모두 놓치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 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투치족

 

                                                               

 

 

후투족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화해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마 르완다일 것이다.
1994년에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 살인자들은 90일 만에 80만 명의 투치족과 그들에게 관대했던
후투족까지 대부분 벌채용 칼로 살해했다.
(생략)
소세핀 무렙와위레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후투족 이웃이 고발하는 바람에 광분하는 살인자들에게 가족을 잃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등에 칼을 맞아 심한 상처를 입고 그대로 죽도록 방치되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과 남편 그리고 여섯 아이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웅덩이 속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힐러리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혼자만 살려두었다는 절망감에 신을 원망하며 울부짖었죠. 하지만 곧 내가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고, 그건 복수 같은 나쁜 짓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대학살 때 부모를 잃은 여섯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화해. 혹은 용서.
용서는,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용서한 사람을 보며 위대하다고 한다.
그 당사자의 마음에는, 울분과 화 증오 온갖 복잡한 좋지 않은 감정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죄지은 사람에게 복수로써 푸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잠재우고  사랑으로써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돌보는 데에 에너지를 쏟는 것.

 

 

 

 

 


세상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이들은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쳐서 아이디어를 실행할 뜻을 가지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그 일을 시자할 재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사회적 기업가'들은 아이디어를 추진할 도움만 받는다면 수백만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 시스템 부터 몽땅 뜯어 고쳐야 한다.
우리는, 닭장안에 갇힌 생각들을 교육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는 두명의 스티브 잡스나 혹은 워런 버핏, 빌 게이츠가 탄생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과 혹은 비슷한 사람들을 양성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언급한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분명 그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생각을 지닌 사람들임에는 틀림 없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이제 혁신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1 더하기 1의 답은 2 라는 것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혁신의 아이디어를 갖도록 요구하는 것은 잘 못된 발상이 아닐까?!

 

 


아쇼키에 참여한 첫 운동가 중세는 경험상 구시대의 수동적인 암기 교육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지겹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봄베이 지역의 교사인 글로리아 드 수자가 있었다.
그녀는 주위환경을 이용하여 아이들이 행동을 통해 학습하고, 아기하기보다 생각하며, 반복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배움의 과정을 적극적이고 창의적이며 즐거운 것으로 만들었다.

 

배움에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거움 없이는 우리 자신이 기계가 되는 것 뿐이라 생각한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수동적인 기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현재 사회를 보면, 대부분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지닌 청년들 보다는 수동적인 청년들의 비중이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을 청년들에게 탓할 수 는 없다.
그 청년들을 가르치고 양성한 것은 부모와 선생들이었다.
그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제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비정부단체들도 공공기간을 촉진하는 시장을 조직하고 확정하며 고객들이 같은 일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하기 위하여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정부단체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후웑들의 돈과 시간이 미치는 영향력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다.
지금부터 비영리시장을 조직하려는 우리 재단의 노력을 설명함으로써 여러분이 이를 새롭고 색다른 나눔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큰 영햘력을 끼칠 수 있는 비슷한 활동을 후원하거나 직접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것을 어떻게 운영을 해 나갈지 혹은, 그 단체들을 세웠을 때 사명등을 철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무조건 적으로 양만 늘린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리스 콧                               제프 이멜트 

 

리 스콧이나 제프 이멜트 같은 비즈니스 리더나 혁신적인 노조 및 공적 연기금 투자자들, 애모리 로빈스와 같은 사회운동가들, 글로벌 페어니스와 같은 노동자 지원단체들 혹은 아이라 매거자이너와 같은 뛰어난 사회적 기업가들이 기여하는 더 크고 더 잘 조직된 공공선 시작은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폭넓게 파급시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에너지 소비와 제품 구매방식을 바꾸고 후원한 시간과 기술 그리고 돈의 영햘력을 높이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정부정책을 바꾸고 개선하거나 보홓려는 노력이 시간과 돈, 지식 그리고 기술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믹둑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다음 다섯 가지 큰 도전을 안고 있다.

 

첫째, 적이 더 적어지고 친구가 더 많아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테러와 대량학살 무기의 확산 그리고 군사적인 조치가 아닌 외교, 지원, 무역, 투자를 통해 실패하거나 불법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파국을 막아야 한다.

둘째, 기후변화에 맞서는 세계적인 활동의 리더십을 유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중국과 인도를 비롯하여 인구가 많은 다른 개발도상국이 동참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셋째, 국내에서 경제적 기회를 늘리고 수입의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넷째,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충분히 비용을 낮추고 환자에 대한 치료 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황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인 의료보장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의료정책을 개혁해야 한다.

다서째, 국가안보를 증진하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며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깨긋하고 보다 독립적인 에너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기후 변화 환경은 정말 예민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부분에서는 약간 걸리는 부분이 있다.
과연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자신이 받아야 할 월급의 액수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거라 생각한다.
즉, 당사자는 100원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그 당사자는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200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회사가 그를 책용할 것인가.
눈만 높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보다도, 교육 시스템과 사회의 인식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시건은 2002년에 자동차, 전력 방위산업에서 대체에너지 기술을 진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비열리재단인 넥스트에너지를 통해 미국을 청정에너지와 경제적 기회의 새 시대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
넥스트에너지는 크와미 킬패트릭시장, 웨인주립대학, 제너럴 모터즈,헬리포드 건강시스템이 하이테크 기업가들을 위해 만들었으며, 현재 디트로이트 도심지의 테크타운에 자리잡고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 )에게 기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량, 시민들의 바람과 불만에 대한 응답성, 법치에 대한 준수, 성장과 변화에 대한 개방성과 같은 정부의 품질은 삶을 개선하려는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능력과 비정부단체의 활동 및 해외 지원프로그램의 성공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에서 정부활동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의 노력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평화를 지키는 여성 네트워크'의 사명은 전 세계의 걸처 갈들지역에 있는 여성들을 조직하고 공공정책에 영향을 끼치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의미를 지닌 활동을 점 점 늘어나야 한다.
그것을 악용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모든 종교도 형식은 다르지만 나눔의 윤리적 의무를 가르친다. 불교도들에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필수적인 단계이다.
그들은 자선을 거부하는 이기심이 성숙을 지체시키며, '다나 파라미타'로 알려진 자비심에 따라 대상과 장소에 상관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진 것을 베풀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 그들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행하는 자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질투심과 증오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얻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를 넘어서야 한다. 인종을 넘어서야 한다.
기부의 중심과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 존중 " 이라 생각한다.

 

 

 

 

 

 

 

빌 클린턴


현대 문화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방종과 자기 파괴의 이야기로 물들어 있다.
현대 정치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솔직한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인신공격에 매몰되어 있다.
현대 미디어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최악의 순간으로 그들을 재단하며, 그들의 고통을 이용하여 돈을 번 사람들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
누가 더 행복할까?
통합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분열시키는 사람들일까?
만드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부수는 사람들일까? 나누는 사람들일까 갖기만 하는 사람들일까?
나는 여러분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리 저 편에 그리고 바다 거너에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있다.
가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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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귀 기울여
이문정 외 지음 / 은은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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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귀 기울여
작가
낙타, 글래디에이터|주연|주동산|베이다
출판
은은북스
발매
2012.11.12

 

    

 


먼저 그 순간의 가슴 아프고 절망스런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한다.
그리고 차분히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힘든 상황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생략)  과정은 힘들겠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을 자주 하게 되면 위기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게 되고 절망의 늪에 있는 시간도 단축된다.

 

그 감정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받아 들일 때 비로소 성장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정 사건에 대해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시각에서 생각을 하거나, 읽었던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을 기억해내려고 애써도 좋다.
음악을 들으면서 감상을 정리해 보고 왜 이 음악이 좋은지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꼼꼼히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할 것이고 지하철을 타도 금방 도착지에 다다른다.


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것이 왜 좋은지에 대한 것들을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그런 감정들을 잘 표현해 낼줄 안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분별해서 상대방에게 글쓰기에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감정에 치우치기 쉬우니 그런 연습들이 필요하다.
작지만, 단순한 연습을 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평소 사물에 대한 생각, 사건에 대한 생각 들을 논리적으로 글로 정리해 보면 생각이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학교때 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거에 관해서 누구와 상담하거나 이야기 해 볼 그 누군가가 없었다.
더욱이 공부를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방법에 대해서 무지 했다.
책은 거들떠 보지 않았으면서도 말이다. 그때 책을 읽었더라면 그런 부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그 글쓰기에 최대한 매진 했을 것이다.

이미 시간은 흘러왔다.
후회하진 않는다. 이제 부터 시작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처음 걸음마를 하기 시작 하고 있다.

 

 

 

 

 


우리에게 음란함과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면 행동하는 범죄인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깨끗한 척하는 우리의 위선적인 모습은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늘 잠재적 범죄자다.


우리는 늘 잠재적 범죄자.
난 이미 범죄자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가해자 이기도 하면서 피해자 이기도 하다.
우리의 윤리 사상은 현재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돈? 명예? 지식? 폰? 차? 백? 등등... 그런것들이 윤리 의식으로 대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사람은, 그런것으로 오랫동안 지속성을 갖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오히려 단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큰 것들을 채우려 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인스턴트 처럼.

 


 

 


민족의식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일본에 대해 당연히 좋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적인 좋지 않은 부분들을 보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글레디에이터 작가님이 말씀 하신 것 처럼, 일본에서는 오히려 우리보다 정신이 깨어 있는 나라다.
독서, 공공질서, 서로간의 유대감, 등등이 내재되어 있는 민족이다.

우리도 단일화로 냄비 근성은 아주 죽여준다.
단, 그것 뿐이다. 그 이상이 없다.


일본인들의 정신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좋지 않은 정보들과 좋지 않은 것들을 다른 나라에서 먼저 받아들여와서 배우고 더욱 질 나쁜 것으로 이용하는 것들은 더이상 발생하면 않된다.

배울것은, 배우고 잘 못된 것은 인정하고 고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힘들때 웃고 그냥 지켜보는 행동보다는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그런 사람.


우리가 지녀야 할 정신이 아닐까?!

나도 아직은, 많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깨어 있기 위해서 부단히 독서를 하고 있다.

 

 

 

사실, 10대를 위한 특별한 이야기 에서 나와 공감가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몰라서 않하게 되고, 하지 말라니까 않하게 되고, 그냥 순응하면서 10대를 보내왔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10대 꿈을 찾는 건 정말 행운아다.
10대,20대,30대가 되어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그렇지만 때로는 30대가 되었을 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우연의 계기로 인하여 알게 되어 그 분야에서 성공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

분명,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나이에 혹은 시기에 분명하게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도 그런 준비하는 방황을 하고 있다.

 

너무 빠른 진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분명하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알아가는 것 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때로는, 그 빠름이 시간이 지나서는 후회와 공허함을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은 해야 한다.

 



기회도 마찬가지다.
정말 성실하게 꾸준히 준비하는 자에게는 분명히 그 기회는 주어진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기회들을 맞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회라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회가 안오는 것이 아니라, 왔음에도 캐치를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칼을 갈아야 한다.
그 준비를 해둬야 기회가 와도 더욱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준비를 시작한지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좌절할 생각은 없다.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고개를 수차례 끄덕이면서 읽게 되는 마치 나의 이야기 같은 느낌.

그냥 다독이는 희망 메시지 보다, 그냥 덕담으로 해주는 메시지 보다, 그냥 긍정의 메시지 보다, 그냥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다.
차라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설 이다.
그 독설이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이 담겨 있고 그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독설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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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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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저 | 돌베개 | 2009년 03월

 

 

 

민주주의를 제대로 누리려면 국민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잘 알고 그 권리를 적그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국민들만이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 의식,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적절한 이해, 공정한 경쟁 규칙의 수립과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민주공화국을 만든다.
(생략)우리는 앞으로도 긴 세월에 걸쳐 '후불제 민주주의'의 비용을 정산해야 할 것이며, 지난 시기 잘해낸 것처럼 미래에도 잘해나갈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한심하다는 말을 한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에게 무엇을 했노라고 반박한다.

그런 생각에서 탈피해야 한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력은 29년 신년하례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경제 위기',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로 규정했다.
특히, 이 3대 위기 가운데서도 핵심은 '민주주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발간된 시기는, 2009년도다. 그 점을 먼저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민주주의 위기는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큰 문제는 다수의 국민은 그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이 적을 것이다.

지금 현재는, 그 민주주의 위기 보다도 경제 위기에 놓여져 있다.

 

 

■ 행복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것은 이른바 '행복추구권'을 명싱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이다.

 

분명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행복추구권에 대해서 말이다.

과연, 그 헌법대로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추구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헌법일 뿐이다.

약한자는 누구에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오늘 하루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지려고 무엇인가 준비한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오늘을 희생해서 내일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오늘 다음에 내일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생각외로 행복이라는 것은, 큰 것에서 나오기 보다 작은 소소한 것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누릴 권리를 지니고 세상에 온, 스스로 귀한존재들이다.

 

행복을 추구 하는것이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수가 아니라, 모두가 다 그렇다.

하지만 세상과 강한 사람은 약한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행복을 강탈하기도 한다.

혹은, 행복에 대해서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기아에 의해서 생명이 위태로운 나라들도 많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지만, 그 평등을 침해하는 자들 때문에 불행하다.

우리는, 선한 강함을 지녀야 한다.
행복할 권리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다.

 

 

 

 


■ 자유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는 전적으로 그런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얻은 것이다.

 

우리는, 선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 감사함은 단순한 감사함이 아니라, 진실성이 있는 감사함으로 다가서야 한다.

민주주의를 외처던 모든 사람들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던 고인이 된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함을 되세겨야 한다.

이러한 자유를 느끼고 있지만, 우리 현재 사람들은 오히려 더 불평과 불만들을 늘어 놓을 뿐이다.

하늘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들을 보신다면, 그 분들은 억장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유는 귀하고 아름답지만,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인간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지만, 국민의 의사는 묵살당하기 일쑤다.
그것이 현실의 민주주의 국가다.

 


■ 주권

 

문명이 발생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배권력을 차지하려면, 또는 지배자를 거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목숨을 걸지도 않고 무엇을 차지하고, 변혁을 이루겠는가?!
우리는, 목숨도 내 놓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주권을 운운하는 비겁한 국민이다.


지도자 또는 권력자에게 대항한 자는 본인은 물론이요, 배우자와 자식과 일가친척까지 모두 처형되거나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그만큼 권력이라는 것은 무섭고도 위험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거세질지도 모르는 이 풍파를 잘 헤쳐 나갈 것이다.
많은 고난과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누구도 한번 자유를 맛보고 권리의 소중함을 체험한 국민들을 다시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맹목적 추종의 본능 아래 복속시킬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동량재가 될 나무는 응달에서 자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선다.
이 시련을 통해 한국 사회는 권력자의 선의에 의지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게 될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한가?!
우리 국민은 항상 무슨 일만 터지면, 희생을 치뤄야 하는 가?!
그것이 국민의 의무인가?

 

■ 유신헌법

 

박정희 대통령이 나쁜의도를 가지고 독재를 한 악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000 달러'같은 국가 목표를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시켰다.
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나쁜 수단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쁘든 나쁘지 않든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은 이어가되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독재정권은 두 번다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 양복입은 침팬치

 

두뇌가 명석하지 않으면 심성이 맑기 어렵다. 분별없는 탐욕과 그 탐욕이 잉태하는 끔찍한 범죄는 우둔함과 관계가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두뇌가 명석하다고 해서 심성이 꼭 맑은 건 아니다.
명석한데 맑지 않은 사람은, 명석하지도 맑지도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해로운 범죄를 저지른다.

 

사람은 심성이 중요하다.
그 심성으로 사람의 됨됨이도 엿볼수 있다.
명석한 두뇌를 가져야만 심성이 곱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단순한 사람일 수록 순수한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한다.

 

 


■ 존재와 당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권력자의 선의에 크게 의존하는 취약한 민주주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 절차적인 면에서는 다시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주제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산장의 여인' 처럼되어버렸다.
그러나 헌법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지키려는 자세가 결여된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등장하자마자,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한눈에 드러났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기껏해야 1세기도 지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적지 않은 세월동안 악순환을 일으키며 발전 없는 국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존재'가 아닌 '당위'를 선언한 것이다.
이 당위를 존재로 전환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결국, 국가는 국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 진보와 보수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
진보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싸운다.
진보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와 문화를 변혁하려고 한다.
진보의 사고방식은 연역적 구조를 가진다.

 

진보와 보수가 하나의 음식의 양념처럼 잘 버무려 진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보다는 변화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겠다.

 

 


■ 어떤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느냐는 매우 흥미로운 논쟁거리이다.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일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억지 논쟁은 필요없다.

 

 

 


■ 파시즘

 

권력 쥔 자들이 하는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어리석은 국민을 숙주로 삼아 번성한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깨우고, 깨어있는 다른 사람과 손잡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정치과 경제들을 다각도의 시선을 바라보고 분석해봐야 한다.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한다.

 

 

 


■ 애국자

 

1979년 유신 정권 막바지.
서울대학교 총장이 어떤 '문제학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휴학을 명령했다.
학생 본인의 희망과는 전혀 무관하게, 대학 총장이 어떤 학생을 특별히 사랑하면 휴학을 명령할 수 있었다.
'지도휴학제'다. 지도휴학의 대상이 되는 학생을 고른 것은 대학 총장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오늘날의 국가정보원)와 결찰청 대공과 였다.

문제의 법대 학생은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는 유신헌법 제1조 제2항을 우습게 여기면서, '언론 자유 보장하라'든가 '독재 타도 민주 쟁취'같은 불순한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자기의 주권을 직접 행사할 가능성이 많다는 판정을 받은 탓에 강제로 휴학을 당했다.

이것이 불과 30년 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300년 전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다른 그 어느나라보다 분명 급진적 변화와 쇄신을 이룩했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후유증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의 역사는 1세기도 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마치 우리는 그런 역사들을 마치 1시기 전의 일들로 치부하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깨어나자!! 대한민국은 우리 자신들의 나라이며, 우리는 대한의 아들 딸들임을 잊지 말자!!
자부심을 갖고, 너와 내가 하나 될 수 있도록 변혁해 나가자.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대 후손들은 진정 강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볼 만 하지 않겠는가?!


■ 법치주의

 

자유는 행복 추구의 필수 조건이다.
자유를 무한대로 누릴 수는 없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만 확장할 수 있다.

 

기준은, 그렇다.
하지만, 자유에는 분명한 책임제가 뒤따라야 한다.
책임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독단일 뿐이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비판하자면, 우리나라의 헌법은 눈에 보여지는 안전장치에 불과 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생각한다.

 

■ 종교

 

 

재산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돈 많은 독신 여성을 종교재판에 회부해 태워 죽이는 야만 행위까지 숱하게 저질렀다.
중세의 종교법정을 운영한 종교권력자들은 현대의 독재자들이 사용하는 고문 기술의 원형을 창조했다.

 

어떠한 무엇이든, 좋은 것에서 나쁜 것 좋지 않은 것을 파생시킬 수 있다.


■ 낚시

 

언론인은 사실을 낚는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실과 사건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지 않는다.
언론인은 자기가 독자나 시청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데 필요한 사건과 사실을 찾는다.
남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언론인 스스로 보도하기 싫은 것은 보도하지 않거나 작게 보도한다.
그러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만 별 의미가 없는 사실이 된다.
객관적으로는 별것 아닌 사실도 언론인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에 유용한 것이라면 크고 중요한 사실이 된다.

 

언론의 힘은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알면서도 그 낚시줄에 잘 걸린다.

언론 플레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양질의 정보를 캐치해내야 한다.

 

정보를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강 권력은 언론이다. 국민 대다수가 매일 구독하는 몇몇 신문의 지면 평성과 논조와 보도 내용을 지배하는 사주와 그 대리인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한다. 그들이 네모난 창을 만들면 국미는 네모난 하늘을 본다.
그들이 둥그런 창을 만들면 국민이 보는 하늘은 둥그렇게 된다. 그들은 국민의 눈과 귀, 국민의 입을 자처하지만 그 눈과 귀와 입은 사실 그들 자신의 것이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으며 신임을 묻는 일도 없다.
교체되지도 않으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그들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혁명 - 쿠테타를 일으켰을 때 방송국을 먼저 장악했다고 한다.
그만큼, 언론의 중요성과 힘을 파악 했던 것이다.

 

 

 


■ 카리스마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했고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러냈다. 박정희 대통령도 목숨 걸고 한강을 건너 쿠데타를 성사시켰으며,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과정에서 결국 심복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도 목숨을 걸고 12.12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광주에서 대학살을 저리르면서 권력을 잡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무려 23일 동안 단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교통사고를 위장한 암살 미수 사건을 겪었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현해탄에 수장될 뻔했다.


5.18 때는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목숨을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두번찌이다.
대한민국은 드디어 생물학적 목숨을 건 도박을 하지 않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만큼 그 자리가 중요하고 목숨을 내놓을 만한 배짱과 신념이 있는 사람들의 자리라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무장하지도 않은 채 어떻게 한 나라의 수장이 될 수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무력을 주시해야 한다.


■ 심기보좌

 

대통령은 고독하다.
일상의 삶도 고독하고, 장관들 사이에 논쟁과 대립이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릴 때도 고독하다.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나도 다 짐작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대통령만큼 강력한 심기보좌가 필요한 사람은 달리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개인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수반되는 정책을 결정할 때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감시보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반감을 갖기보다 오히려 반겨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도록 그 사람을 곁에 두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코드인사

 

나는 나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자유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로 규정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도 존중하고 사회주의자도 존중한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이 오로지 이익만을 좇아 손바닥 뒤 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은,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존중은, 남녀노소 그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필요하다.
서로의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존중이 없어서는 않된다.
어차피 진보든 보수든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함께 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존중이 묻어나는 대화로써 풀어나가 힘을 합쳐도 부족한 현실에 어찌 서로 싸워서 이기려고만 하는지...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할 지라도.. 안타깝다.


■ 이미지

 

이미지는 콘텐츠와 다르다고 한다.

어떤 정치인에 대해 장기간 특정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 그 이미지는 허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 안애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 콘텐츠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지을 디자인 해야 한다.
이제, 디자인이 필요하다.

말을 활용하지 못하는 권략자에게 남는 수단은 힘밖에 없다.

 

그 만큼 말과 힘의 차이는 동급 혹은 말의 힘이 더욱 높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인내

 

마땅치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일은 잘하더라, 장관 잘 시켰네, 이런 평가를 듣는 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고 그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이라 여겼기에 그렇게 했다.

 

믿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그 믿음에는, 보답이 필요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행동이 필요하다.

 

 

 

 


■ 리더십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 좋은 지적이시고 매우 중요한 질문인 만큼 장관이 신중하고 정확하게 답변을 드려야 하겠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그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자료를 확인해본 다음 이따 오후에(또는 내일) 정확하게 말씀드리도록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치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일방통행일 뿐 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생각 있는 고래는 칭찬한다고 해서 무조건 춤추지 않는다. 공문원들을 일하게 하는 것은 사명감과 자부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존중과 배려는 공무원의 사명감과 자부심에 활력을 제공한다. 태만과 오류에 대한 질책과 징벌은 입에 올릴 필요가 없다.
공무원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은 동일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 신임

 

노 대통령은 그 두 법률안의 기획에서부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비공개 협상, 여당과의 협의, 재정 조달, 글고 부결된 법률안을 다시 살려내 처리하는 시점까지 모든 과정을 보고받았고 중요한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혼자 힘으로 성공하는 리더는 없다.

 

리더는,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 영어

 

새로운 지식과 가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영어로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영어로 쓰인 정보를 능숙하게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은 번역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검색하고 취득하지 못한다.
정보 취득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속도에서 뒤지게 된다. 좋은 생각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거을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모국어 울타리 안의 좁은 국내 지식시장에 갇히게 된다.
지식 생산과 유통을 맡은 연구자와 지식인들이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지식과 기술은 세계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다.

 

교육과 공부는 게을리 할 수 없다.
끊임 없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배움에 앞에서 우리는, 항상 허기저 있어야 한다.

 


■ 국회의원

 

국회의원들은 서민일까?

비서가 승용차를 운전해주고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서민을 본 적이 있는가
냉난방이 잘되는 사무실에서 1억 원 연봉을 받고 근무하면서 해마다 두세 차례 이상 공식. 비공식 외국 여행을 다니는 공직자가 서민일 수 있을까.
회의 시간에 상임위원장실 소파에 앉아 여비서가 가져다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주말 라운딩 때 날린 티샷 비거리를 자랑하는 사람도 서민인가.
대한민국 0.1%에 들어가고 남을 만한 부자 기업인들과 마주 앉아. 봉사료 포함해 1인당 10만 원이 넘는 일식 메뉴로 스코틀랜드산 몰트위스키를 곁들인 만찬을 즐긱기도 하는 사람이, 자기가 밥값을 계산하지 않았다고 해서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너나없이 서민경제를 챙기노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사는 국회의원들이 서민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될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국회의원들은 아닐지라도 자신만은 서민측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쉽게 말해 입장차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다해도 그 자신은 적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악 뿌리의 사고 방식은, 국회의원들 먼저 뽑아내야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수의 국회의원도 있겠지만...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 지식 소매상

 

너무 혹독한 결핍은 사람을 좌절에 빠뜨리지만 적당한 결핍은 창조적 에너지를 일으킨다. 적당한 결핍을 느끼며 사는 오늘의 삶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결핍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적당함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적당함을 맞추기가 정말 힘든 부분이다.

조금만 없어도 조금 더 갖고 싶기 원하고, 조금만 더 얻게 되면 더 얻고 싶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결국, 적당히 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절제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절제력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므로 건전한 독서를 함으로써 발전 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의 책 [루시퍼 이펙트]
이 책의 부제는,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이다.

1971년 스텐포드대학에서 실시했던 모의 교도서 실험의 내용을 35년 만에 처음으로 상세하게 공개했다.


"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악한 상황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방학을 이용해 학비를 벌려고 자원한 평범하고 선량한 대학생들이었다.
실험팀은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교도관 역할과 수감자 역할을 맡을 사람을 나누었다.


몇칠 지나기도 전에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대부분 수감자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악당으로 변했다.
수감자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대부분 인간적 자존감과 정신적 평정을 상실하고 학대를 받아들이는 평범한 죄수로 변해갔다.
소수의 참가자만 죄의식을 느끼거나 학대에 저항했을 뿐이다.

1주일이 지나기 전에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

사람,상황, 그리고 시스템 이 세가지가 지속적으로 악한 상황을 만들어내면 선한 사람도 악을 저지른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온화한 사람도 그런 3가지 시스템의 영향을 받으면 그렇게 변화하는 것을 말이다.

사실상, 그 지원자들이 온화하고 선량한 학생들이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그들 일상과 습관 행동. 사상들이 정말 온전하고 선량했는지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변화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적으로 변화하는 것 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수 있도록 내 자신을 담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통제 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선의 연대와 민주주의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느낀것 은,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가 아닌 다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나 아니면, 된다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다. 

 

우리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내 옆사람이 어떤 좋지 않은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에 맞서 함께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그 이익때문에 결국에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후불제 민주주의..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변화하기 힘들것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들도, 장관들도 안타깝지만 그들이 바꿔줄 수는 없다.

아니, 바꿔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바꿔나가도록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투정에서 벗아나야 한다.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과 정치를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링컨"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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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조건 -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을 얻는가
바스 카스트 지음, 정인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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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조건 :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을 얻는가

바스 카스트 저/정인회 역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12년 10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사진작가로 꼽히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면, 후회가 남을 가능성도 두 가지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선택의 유머다!

 

 

 

 

 

 

 

 

왜 우리는 거리에서 춤을 추지 않는가


왜 우리는 점점 부유해지는데 불만은 늘고 바빠지며 피로해지는가?
또 왜 우리는 자유로운데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행복을 찾지 못하는가?
혹시 어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점점 부유해 지고 있다고? 우리가?
아니다! 부유해 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부유하지 않다.

부유한 기준은 분명 다를 수 있지만, 그 부유라는 뜻은 어느정도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말하는 것을 부유 하다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부유하다는 의미는 대체적으로는, 정말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두가지 의미를 두고 보았을 때, 과연 우리는 부유한가?

분명,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유로워지면 더 행복해질까

 

"내가 사치스런 탄식에 불과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가 보더라도 풍족한 나와 같은 세대가 사랑과 삶에 어려움을 겪으며 만족하지 못해 좌절하기까지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탄식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질을 보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왔다.
그렇다 보니, 본질없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탄식하고 불만을 토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왜 우리는 어떤 일이든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왜 우리는 만족하지 못할까? 이전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고, 수많은 가능성이 널려 있는데도 왜 만족도는 더 떨어질까?
설문자소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이룬 성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불만만 키워가고 있는 셈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해서 이루었지만, 결국 그것을 잘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할 줄만 알았지 성취후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니 무언가 공허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물론, 그 외의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종이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그 성취했을 때의 느낌을 더 느끼고 싶은 욕구와 욕심 때문에 성취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급진적인 현대사회의 문제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한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모두 놓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쉽지 않다.
우리 인간은 그런 것이다.

 

선택지가 많으면 리스크와 부작용이 동반될 수도 있다.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생기는데, 우리는 이러한 부작용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선택의 폭이 하나씩 늘어 날 때 우리는 고민하게 되는 시간은 그 배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후회의 폭도 더 넓어진다.
  우리는 선택에 있어서 한 번더 진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진정, 내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인가?!

 

이러한 자문을 한다면 선택의 조건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부작용은 쌓이고 쌓여서 스트레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선택지가 많으면 우리의 기억 활동이 혹사당할 뿐만 아니라 좁은 의미에서는 우리의 심리까지도 (아마도 이것이 훨씬 더 결정적인 측면일 것이다) 혹사 당한다.

 

첫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을수록, 우리가 버릴 수밖에 없고 또 아쉬워하게 될

      대안도 늘어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기회비용' 또는 '대안비용'이라고 표현한다.


둘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을수록, 기회비용뿐만 아니라 선택한 대안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선택할 여지가 없으면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서, 선택의 권한과 권리는 개인의 몫이다.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선택에 앞서서 우리는 한 번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조건 적인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않되는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선택에 있어서 너무 억압받지 않을 필요가 있다.



친밀한 과계와 유대는 삶의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선택지가 넘치는 사회에서 우리의 처신을 도와주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관계가 마이너스가 되는 관계라고 한다면 굳이 친밀한 관계유대는 필요 없다.
 
  밥을 먹거나, 파티를 한다거나, 어떠한 모임에 갈 때, 나와 함께 무언가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친민한 관계유대를 이어나갈 필요성은 있다.
  때로는, 마음이편한 사람. 그런 사람도 포함을 하고자 한다.

  그 관계와 유대는 모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커리어를 쌓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돈을 모으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결과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악순환은 저절로 강화되어 우리를 점점 더 고립된 단독자로 만든다.
왜냐하면 돈은 우리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돈은 유대를 해체하고 우리를 외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위에서 악순환을 겪고 있다.
답은, 알고 있지만 그 답이 진짜 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악순환 이긴 하지만, 그 생활은 지금 겪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으며 내 주위에도 그런 악순환을 겪고 있기에 그 상황들이 보편적인 삶이라 생각하기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용기가 없는 것을 말한다.

돈은, 우리 동양의 의미로 풀이 한다면 음의 기운이 굉장히 강한 것이라고 했다.
음은 좋지 않다. 물론, 적당한 음과 양이 잘 조화가 이뤄진다면 좋지만 돈이라는 것은 양을 왠만한 양의 기운을 누를 정도의 음의 기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좋지는 않다.

그래서 돈을위해 혹은, 돈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절망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험이 바로 '돈' 이다.

 

 

 

 


우리에게 안정과 포근함을 주는 인간관계가 부족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주저 없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이렇게 부유한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결핍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부유한 사람들이 더 외로울까?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일도 많이 한다. 따라서 이들은 친구나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커리어를 쌓는 것에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직장을 쫓아 이사 가는 것도 꺼리지 않는 탓에 친구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인생에서 제일 최고는, 적당함이다.
많은 것도 좋지 않으며, 적은 것도 좋지 않다. 차라리 많은 것보다는 적음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 그 만큼 선택해야 할 것들이 자연스레 많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는 발상이 공허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반대로 적게 지닌다라고 하면 원하는 것 혹은 선택해야 할 것들이 한정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좀 더 신중하게 자문을 하면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돈이 없을 때, 과연 이것이 내게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절제된 삶을 살기 때문에 선택에 있어서도 공허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친구와 가족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고소득자에게는 이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서 시간만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어느정도의 돈은 필요하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함께 하고 있는 "시간" 말이다.

  우리는, 시간을 어디에 얼만큼 활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음을. 문한제가 아님을 말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CAPITRLISM KILLS LOVE

"자본주의는 사랑을 죽인다"

 

 

 

 

[ 영상 실험 ]

 

돈이 개입되거나 연상될 때는 사회적인 성향이 줄어들고 개인적인 경향이 늘어났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는 욕구가 적었고 또 역으로 타인으로 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성향도 약했다. 중요한 일을 혼자서 처리하고 싶은지 아니면 파트너와 함께 처리하고 싶은지를 물으면, 돈이 많은 사람들은 혼자서 처리하는 쪽을 택한다.
돈은 타인을 차단하고 독자성을 띠게 하며 비사회적인 성격을 강화시킨다.

 

돈이 가진 힘은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은 쪽으로 강한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돈은 음의 기운이 굉장히 강하다.

돈이라는 것은, 마이너스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돈이 무조건 적으로 좋지 않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잘.. 혹은, 좋은 쪽으로 어떻게 활용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공급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곧바로 경쟁업체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경쟁업체가 우리에게 호의를 표하는지가 아니라 지불한 돈만큼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하는지의 여부다.

 

우리 인간의 심리는 자신이 해준만큼 받으려는 보상심리를 자연스레 지니고 있다.
그 이상을 해주면 좋지만, 그 이상을 받을 때는 오히려 부담이라는 것도 함께 받게 되는게 보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선을 좋아한다.

 

예를들면, 2만원 어치를 샀으면 2만원 어치의 양을 받으면 되는 것이고
          간혹 서비스로 좀 더 얹어주는 것은 고객을 기분좋게 하는 수단중의 하나이다.
          물건을 하나 팔면서 기쁨을 얹어 준다. 그리고, 그 고객을 통해서 앞으로 더욱

          많은 고객들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니 약간은 주제와 맞지 않게 생각을 적었다.)

 

 

현대인들은 행복의 경로에서 커리어를 우선시한다.
교육과 직업에 신경을 쓰고, 가정은 뒷전에 두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지향하는 성공적인 삶에 대한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다.
부유해질수록 행복의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다.
부유해질수록 행복의 가치관 또한 작고 사적인 가정의 세계에서 크고 공적인 커리어의 세계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이는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변화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그렇다. 우리의 성공의 척도는 바로 커리어에 기준화되어 있다.
그러한 커리어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커리어 보다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세워야 한다.

가치관역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돈이 많아질수록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구성원들은 점점 더 각자의 길을 가며 개인적인 소망과 계획을 추구하게 된다.
이는 가족 간의 유대와 사회적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족이라는 작은 세계는 중요성을 잃어가고, 우리는 점점 더 바깥 세상에서 얻는 인정, 즉 커리어에만 집중하고 있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돈에 끌려다니면 않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믿지는 않으려는 것 같다.

 

돈도 중요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마이클 센덜 교수의 책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이라는 책 제목처럼..
이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들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지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부유할지라도 그것은 중요치 않으며,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만이 간절히 원하는 유일한 선택지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사실상 부모라고 하기엔 미숙하다.
아이들을 생전 처음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에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 부모들도 분명 어릴 때는 선택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안타깝지만, 그 생각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잊혀지게 된 것 같다.

아이들의 선택 마저도 부모들이 제한해 버리고 권한을 뺏어 버리는 것.
그러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진로 인생을 모두 자신들의 욕심으로 채워나간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이다.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부모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자아정체성이나 사회적인 인정 추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도 인정을 얻지만, 가족을 통해 보다 더 절대적인 인정을 얻는다.
가족 안에서는 누구나 작은 스타이며 누구나 전폭적인 주목과 지지를 받는다.
반면 커리어의 세계는 이와 다르다.
사회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상에 서는 사람은 항상 소수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지만, 사회든 어디든 정상에 설 수 있는 인원은 소수일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소수인원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모두 송두리째 뽑아 내야 한다.
다수가 원하는 일반적인 것들을 외면하고, 내 자신을 브랜드화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격고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고통은 수반될 것이다.
그것도 이기지 못한다라면, 정상에 설 자격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지금 이 현시점에서 더욱 퇴보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제 휴식을 부끄러워한다. 오랜 사색에 대해선 양심의 가책까지 느낀다.
시계를 바라보며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눈은 주식 시세가 나와 있는 신문을 향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느니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원칙이 모든 교양과 고상한 취미를 파괴하고 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우리 자신을 갉아 먹을 뿐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본질을 깨쳐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늦지 않았다.
본질을 깨쳐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본질을 깨쳐게 될 때, 우리는 그런 조급함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바쁘다는 것이 최고로 높이 평가받는 척도가 되었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스케줄이 빈틈없이 꽉 차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중요한 인물로 인식되는 것.

 


바쁘다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의 대상과 함께 멋져 보였다.
바쁘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라 생각하게 된다.
바쁘다는 것은 나쁘진 않다.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바쁘다는 것이 정말 진정 바쁘다는 것인지 한 번은 점거해 볼 필요가 있다.
쓰잘데기 없는 바쁨이라고 한다면 그런 스케줄은 모조리 지워버리고 본질들을 채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바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여유있게 본질을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경직된 사회구조는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해체되었고 역동성을 띠게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커리어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출신 집안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 성실성, 그리고 지속적인 성과다.


세상은 변화 한다.
모든 것은 변화 한다.
예전의 사고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오늘날 이미 어느 누구나 모두에게 기회는 주어졌다.

다만, 그 기회라는 것을 뚜렷하게 보고 잡아 낼 수 있는 능력만 길러 내면 된다.
그 능력은, 재능 - 성실성 - 지속 - 준비 등등의 것을 의미한다.

준비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수 백만개의 기회를 준다 할 지라도 혹은 눈앞에 있을지라도
맹인처럼 그 기회를 볼 수 없어서 매 순간 놓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칭얼거리는 아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청년이고 성인이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독서를 해야 한다. 

 

사회적 압력은 초과근무도 불사하며, 더 열심히 일해 더 많은 돈을 벌도록 강요한다.
다른 곳에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데도 말이다.


이미 우리는 돈이라는 것에 얽메여 있다.
마치, 개 목줄에 걸린 것 처럼 말이다.

너무 심하게 표현했나?!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봐라!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위해 일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말이다.
애처롭고 안타까움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그 모든 것은, 우리 자신들이 선택하고 이뤄낸 것들이 아닌가?
아무리 주위에서 압박을 가했던 무엇을 했던 결국은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고, 그 선택을 한 것은 우리 자신이었음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누구를 탓하라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해서 각자 자신에게 투자를 하라는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분야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분야를 동싱에 같이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자신이 잘하는 것에 올인 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두가지를 동시에 각고한 노력으로 해내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각오도 없이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도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있을 것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이보다 못한 어른.
몸만 커져버린 아이가 아닌가.

반성하고, 변혁을 일으켜 보자!!
우리는 자신 스스로가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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