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저 | 돌베개 | 2009년 03월
민주주의를 제대로 누리려면 국민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잘 알고 그 권리를 적그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국민들만이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 의식,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적절한 이해, 공정한 경쟁 규칙의 수립과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민주공화국을 만든다.
(생략)우리는 앞으로도 긴 세월에 걸쳐 '후불제 민주주의'의 비용을 정산해야 할 것이며, 지난 시기 잘해낸 것처럼 미래에도 잘해나갈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한심하다는 말을 한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에게 무엇을 했노라고 반박한다.
그런 생각에서 탈피해야 한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력은 29년 신년하례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경제 위기',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로 규정했다.
특히, 이 3대 위기 가운데서도 핵심은 '민주주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발간된 시기는, 2009년도다. 그 점을 먼저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민주주의 위기는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큰 문제는 다수의 국민은 그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이 적을 것이다.
지금 현재는, 그 민주주의 위기 보다도 경제 위기에 놓여져 있다.
■ 행복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것은 이른바 '행복추구권'을 명싱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이다.
분명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행복추구권에 대해서 말이다.
과연, 그 헌법대로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추구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헌법일 뿐이다.
약한자는 누구에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오늘 하루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지려고 무엇인가 준비한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오늘을 희생해서 내일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오늘 다음에 내일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생각외로 행복이라는 것은, 큰 것에서 나오기 보다 작은 소소한 것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누릴 권리를 지니고 세상에 온, 스스로 귀한존재들이다.
행복을 추구 하는것이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수가 아니라, 모두가 다 그렇다.
하지만 세상과 강한 사람은 약한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행복을 강탈하기도 한다.
혹은, 행복에 대해서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기아에 의해서 생명이 위태로운 나라들도 많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지만, 그 평등을 침해하는 자들 때문에 불행하다.
우리는, 선한 강함을 지녀야 한다.
행복할 권리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다.

■ 자유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는 전적으로 그런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얻은 것이다.
우리는, 선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 감사함은 단순한 감사함이 아니라, 진실성이 있는 감사함으로 다가서야 한다.
민주주의를 외처던 모든 사람들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던 고인이 된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함을 되세겨야 한다.
이러한 자유를 느끼고 있지만, 우리 현재 사람들은 오히려 더 불평과 불만들을 늘어 놓을 뿐이다.
하늘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들을 보신다면, 그 분들은 억장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유는 귀하고 아름답지만,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인간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지만, 국민의 의사는 묵살당하기 일쑤다.
그것이 현실의 민주주의 국가다.
■ 주권
문명이 발생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배권력을 차지하려면, 또는 지배자를 거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목숨을 걸지도 않고 무엇을 차지하고, 변혁을 이루겠는가?!
우리는, 목숨도 내 놓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주권을 운운하는 비겁한 국민이다.
지도자 또는 권력자에게 대항한 자는 본인은 물론이요, 배우자와 자식과 일가친척까지 모두 처형되거나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그만큼 권력이라는 것은 무섭고도 위험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거세질지도 모르는 이 풍파를 잘 헤쳐 나갈 것이다.
많은 고난과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누구도 한번 자유를 맛보고 권리의 소중함을 체험한 국민들을 다시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맹목적 추종의 본능 아래 복속시킬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동량재가 될 나무는 응달에서 자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선다.
이 시련을 통해 한국 사회는 권력자의 선의에 의지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게 될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한가?!
우리 국민은 항상 무슨 일만 터지면, 희생을 치뤄야 하는 가?!
그것이 국민의 의무인가?
■ 유신헌법
박정희 대통령이 나쁜의도를 가지고 독재를 한 악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000 달러'같은 국가 목표를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시켰다.
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나쁜 수단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쁘든 나쁘지 않든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은 이어가되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독재정권은 두 번다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 양복입은 침팬치
두뇌가 명석하지 않으면 심성이 맑기 어렵다. 분별없는 탐욕과 그 탐욕이 잉태하는 끔찍한 범죄는 우둔함과 관계가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두뇌가 명석하다고 해서 심성이 꼭 맑은 건 아니다.
명석한데 맑지 않은 사람은, 명석하지도 맑지도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해로운 범죄를 저지른다.
사람은 심성이 중요하다.
그 심성으로 사람의 됨됨이도 엿볼수 있다.
명석한 두뇌를 가져야만 심성이 곱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단순한 사람일 수록 순수한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한다.
■ 존재와 당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권력자의 선의에 크게 의존하는 취약한 민주주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 절차적인 면에서는 다시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주제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산장의 여인' 처럼되어버렸다.
그러나 헌법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지키려는 자세가 결여된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등장하자마자,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한눈에 드러났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기껏해야 1세기도 지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적지 않은 세월동안 악순환을 일으키며 발전 없는 국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존재'가 아닌 '당위'를 선언한 것이다.
이 당위를 존재로 전환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결국, 국가는 국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 진보와 보수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
진보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싸운다.
진보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와 문화를 변혁하려고 한다.
진보의 사고방식은 연역적 구조를 가진다.
진보와 보수가 하나의 음식의 양념처럼 잘 버무려 진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보다는 변화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겠다.
■ 어떤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느냐는 매우 흥미로운 논쟁거리이다.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일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억지 논쟁은 필요없다.
■ 파시즘
권력 쥔 자들이 하는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어리석은 국민을 숙주로 삼아 번성한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깨우고, 깨어있는 다른 사람과 손잡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정치과 경제들을 다각도의 시선을 바라보고 분석해봐야 한다.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한다.
■ 애국자
1979년 유신 정권 막바지.
서울대학교 총장이 어떤 '문제학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휴학을 명령했다.
학생 본인의 희망과는 전혀 무관하게, 대학 총장이 어떤 학생을 특별히 사랑하면 휴학을 명령할 수 있었다.
'지도휴학제'다. 지도휴학의 대상이 되는 학생을 고른 것은 대학 총장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오늘날의 국가정보원)와 결찰청 대공과 였다.
문제의 법대 학생은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는 유신헌법 제1조 제2항을 우습게 여기면서, '언론 자유 보장하라'든가 '독재 타도 민주 쟁취'같은 불순한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자기의 주권을 직접 행사할 가능성이 많다는 판정을 받은 탓에 강제로 휴학을 당했다.
이것이 불과 30년 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300년 전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다른 그 어느나라보다 분명 급진적 변화와 쇄신을 이룩했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후유증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의 역사는 1세기도 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마치 우리는 그런 역사들을 마치 1시기 전의 일들로 치부하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깨어나자!! 대한민국은 우리 자신들의 나라이며, 우리는 대한의 아들 딸들임을 잊지 말자!!
자부심을 갖고, 너와 내가 하나 될 수 있도록 변혁해 나가자.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대 후손들은 진정 강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볼 만 하지 않겠는가?!
■ 법치주의
자유는 행복 추구의 필수 조건이다.
자유를 무한대로 누릴 수는 없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만 확장할 수 있다.
기준은, 그렇다.
하지만, 자유에는 분명한 책임제가 뒤따라야 한다.
책임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독단일 뿐이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비판하자면, 우리나라의 헌법은 눈에 보여지는 안전장치에 불과 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생각한다.
■ 종교
재산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돈 많은 독신 여성을 종교재판에 회부해 태워 죽이는 야만 행위까지 숱하게 저질렀다.
중세의 종교법정을 운영한 종교권력자들은 현대의 독재자들이 사용하는 고문 기술의 원형을 창조했다.
어떠한 무엇이든, 좋은 것에서 나쁜 것 좋지 않은 것을 파생시킬 수 있다.
■ 낚시
언론인은 사실을 낚는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실과 사건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지 않는다.
언론인은 자기가 독자나 시청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데 필요한 사건과 사실을 찾는다.
남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언론인 스스로 보도하기 싫은 것은 보도하지 않거나 작게 보도한다.
그러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만 별 의미가 없는 사실이 된다.
객관적으로는 별것 아닌 사실도 언론인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에 유용한 것이라면 크고 중요한 사실이 된다.
언론의 힘은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알면서도 그 낚시줄에 잘 걸린다.
언론 플레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양질의 정보를 캐치해내야 한다.
정보를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강 권력은 언론이다. 국민 대다수가 매일 구독하는 몇몇 신문의 지면 평성과 논조와 보도 내용을 지배하는 사주와 그 대리인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한다. 그들이 네모난 창을 만들면 국미는 네모난 하늘을 본다.
그들이 둥그런 창을 만들면 국민이 보는 하늘은 둥그렇게 된다. 그들은 국민의 눈과 귀, 국민의 입을 자처하지만 그 눈과 귀와 입은 사실 그들 자신의 것이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으며 신임을 묻는 일도 없다.
교체되지도 않으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그들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혁명 - 쿠테타를 일으켰을 때 방송국을 먼저 장악했다고 한다.
그만큼, 언론의 중요성과 힘을 파악 했던 것이다.
■ 카리스마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했고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러냈다. 박정희 대통령도 목숨 걸고 한강을 건너 쿠데타를 성사시켰으며,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과정에서 결국 심복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도 목숨을 걸고 12.12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광주에서 대학살을 저리르면서 권력을 잡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무려 23일 동안 단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교통사고를 위장한 암살 미수 사건을 겪었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현해탄에 수장될 뻔했다.
5.18 때는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목숨을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두번찌이다.
대한민국은 드디어 생물학적 목숨을 건 도박을 하지 않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만큼 그 자리가 중요하고 목숨을 내놓을 만한 배짱과 신념이 있는 사람들의 자리라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무장하지도 않은 채 어떻게 한 나라의 수장이 될 수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무력을 주시해야 한다.
■ 심기보좌
대통령은 고독하다.
일상의 삶도 고독하고, 장관들 사이에 논쟁과 대립이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릴 때도 고독하다.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나도 다 짐작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대통령만큼 강력한 심기보좌가 필요한 사람은 달리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개인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수반되는 정책을 결정할 때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감시보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반감을 갖기보다 오히려 반겨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도록 그 사람을 곁에 두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코드인사
나는 나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자유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로 규정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도 존중하고 사회주의자도 존중한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이 오로지 이익만을 좇아 손바닥 뒤 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은,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존중은, 남녀노소 그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필요하다.
서로의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존중이 없어서는 않된다.
어차피 진보든 보수든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함께 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존중이 묻어나는 대화로써 풀어나가 힘을 합쳐도 부족한 현실에 어찌 서로 싸워서 이기려고만 하는지...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할 지라도.. 안타깝다.
■ 이미지
이미지는 콘텐츠와 다르다고 한다.
어떤 정치인에 대해 장기간 특정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 그 이미지는 허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 안애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 콘텐츠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지을 디자인 해야 한다.
이제, 디자인이 필요하다.
말을 활용하지 못하는 권략자에게 남는 수단은 힘밖에 없다.
그 만큼 말과 힘의 차이는 동급 혹은 말의 힘이 더욱 높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인내
마땅치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일은 잘하더라, 장관 잘 시켰네, 이런 평가를 듣는 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고 그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이라 여겼기에 그렇게 했다.
믿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그 믿음에는, 보답이 필요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행동이 필요하다.

■ 리더십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 좋은 지적이시고 매우 중요한 질문인 만큼 장관이 신중하고 정확하게 답변을 드려야 하겠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그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자료를 확인해본 다음 이따 오후에(또는 내일) 정확하게 말씀드리도록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치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일방통행일 뿐 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생각 있는 고래는 칭찬한다고 해서 무조건 춤추지 않는다. 공문원들을 일하게 하는 것은 사명감과 자부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존중과 배려는 공무원의 사명감과 자부심에 활력을 제공한다. 태만과 오류에 대한 질책과 징벌은 입에 올릴 필요가 없다.
공무원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은 동일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 신임
노 대통령은 그 두 법률안의 기획에서부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비공개 협상, 여당과의 협의, 재정 조달, 글고 부결된 법률안을 다시 살려내 처리하는 시점까지 모든 과정을 보고받았고 중요한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혼자 힘으로 성공하는 리더는 없다.
리더는,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 영어
새로운 지식과 가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영어로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영어로 쓰인 정보를 능숙하게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은 번역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검색하고 취득하지 못한다.
정보 취득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속도에서 뒤지게 된다. 좋은 생각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거을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모국어 울타리 안의 좁은 국내 지식시장에 갇히게 된다.
지식 생산과 유통을 맡은 연구자와 지식인들이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지식과 기술은 세계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다.
교육과 공부는 게을리 할 수 없다.
끊임 없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배움에 앞에서 우리는, 항상 허기저 있어야 한다.
■ 국회의원
국회의원들은 서민일까?
비서가 승용차를 운전해주고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서민을 본 적이 있는가
냉난방이 잘되는 사무실에서 1억 원 연봉을 받고 근무하면서 해마다 두세 차례 이상 공식. 비공식 외국 여행을 다니는 공직자가 서민일 수 있을까.
회의 시간에 상임위원장실 소파에 앉아 여비서가 가져다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주말 라운딩 때 날린 티샷 비거리를 자랑하는 사람도 서민인가.
대한민국 0.1%에 들어가고 남을 만한 부자 기업인들과 마주 앉아. 봉사료 포함해 1인당 10만 원이 넘는 일식 메뉴로 스코틀랜드산 몰트위스키를 곁들인 만찬을 즐긱기도 하는 사람이, 자기가 밥값을 계산하지 않았다고 해서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너나없이 서민경제를 챙기노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사는 국회의원들이 서민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될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국회의원들은 아닐지라도 자신만은 서민측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쉽게 말해 입장차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다해도 그 자신은 적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악 뿌리의 사고 방식은, 국회의원들 먼저 뽑아내야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수의 국회의원도 있겠지만...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 지식 소매상
너무 혹독한 결핍은 사람을 좌절에 빠뜨리지만 적당한 결핍은 창조적 에너지를 일으킨다. 적당한 결핍을 느끼며 사는 오늘의 삶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결핍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적당함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적당함을 맞추기가 정말 힘든 부분이다.
조금만 없어도 조금 더 갖고 싶기 원하고, 조금만 더 얻게 되면 더 얻고 싶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결국, 적당히 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절제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절제력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므로 건전한 독서를 함으로써 발전 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 선과 선의 연대를 위하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의 책 [루시퍼 이펙트]
이 책의 부제는,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이다.
1971년 스텐포드대학에서 실시했던 모의 교도서 실험의 내용을 35년 만에 처음으로 상세하게 공개했다.
"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악한 상황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방학을 이용해 학비를 벌려고 자원한 평범하고 선량한 대학생들이었다.
실험팀은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교도관 역할과 수감자 역할을 맡을 사람을 나누었다.
몇칠 지나기도 전에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대부분 수감자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악당으로 변했다.
수감자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대부분 인간적 자존감과 정신적 평정을 상실하고 학대를 받아들이는 평범한 죄수로 변해갔다.
소수의 참가자만 죄의식을 느끼거나 학대에 저항했을 뿐이다.
1주일이 지나기 전에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
사람,상황, 그리고 시스템 이 세가지가 지속적으로 악한 상황을 만들어내면 선한 사람도 악을 저지른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온화한 사람도 그런 3가지 시스템의 영향을 받으면 그렇게 변화하는 것을 말이다.
사실상, 그 지원자들이 온화하고 선량한 학생들이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그들 일상과 습관 행동. 사상들이 정말 온전하고 선량했는지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변화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적으로 변화하는 것 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수 있도록 내 자신을 담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통제 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선의 연대와 민주주의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느낀것 은,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가 아닌 다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나 아니면, 된다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다.
우리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내 옆사람이 어떤 좋지 않은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에 맞서 함께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그 이익때문에 결국에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후불제 민주주의..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변화하기 힘들것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들도, 장관들도 안타깝지만 그들이 바꿔줄 수는 없다.
아니, 바꿔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바꿔나가도록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투정에서 벗아나야 한다.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과 정치를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링컨"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