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 인문 B조 마지막 도서 :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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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 간장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자유, 어느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 되었다. Freedom, 우리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이 시점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되짚어 보는 여행을 한다. 자유, 그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던 옛날 자유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가보자.
자유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다. 어쩌면 상당히 아이러니 한 것이다. 자유란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면 전혀 자유롭지 못할 테니까.. 그처럼 자유를 둘러싼 역사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또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자유가 있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정치가 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국민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도대체 자유란 무엇일까? 그 옛날 자유가 태어나던 날, 자유는 크나큰 산통을 동반하며 태어났고, 기나긴 가시밭과 힘든 여정의 길을 걸어왔다. 또 한 번 아이러니, 자유는 결코 달콤한 꿈, 이상은 아닌 것인가? 과연 자유는 우리가 싫어하는 그 무엇인가를 위한 자유는, 어떠한 것인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를 통해 그 해답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공기, 물, 우리가 흔히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원들이 있다. 흔히 공공재, 또는 무한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 여기서 강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깨달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기와 물은 더 이상 우리가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오해, ’자유’ 그것은 과연 무한한 것일까? 자유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는 것일까?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냉전 시대는, 구소련의 해체, 중국의 시장경제화로 막을 내린듯하다. 그리고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 북한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의 역사를 바탕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고, 또 그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안타깝게도 제목부터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진다. 표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 영어 활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차지할 만큼 좋은 내용들이 [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안에 누군가 ’자유’로이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과거 금지도서로 지정된 과거가 있다) 또한, 이 책은 ’당신이 생각한 것 처럼 지루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당신의 생각을 앞뒤로 늘려주고, 척추측만증에 걸린 것 마냥 휘어져 있는 생각을 곧게 펴줄 것이다.
1984년 레이건 정권 당시 텍사스에서 정부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를 하던 시위대 중 한명이 미국 국기에 불을 질렀다. 그는 ’공경 대상’에 대한 훼손을 금지한 텍사스법을 어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그 판결을 뒤집고 국기를 불태우는 표현적 행위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결했다. 브레넌 대법관은 의견서에 이렇게 썼다. 국기 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이 상징을 그토록 숭배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바로 그 자유를 약화시킨다.
미국 사회에서 정치와 유명인에 대한 풍자는 흔한 일이며, 정말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도 넘쳐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쇄물 또는 인터넷으로 주장하고 발표할 수 있다. 개중 몇몇은 맨 정신으로 봐주지 못할 만큼 혐오스럽고 역겹기 까지 하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이 예외적인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흔히 나오는 대답은 "수정헌법1조다. 미국 헌법의 그 수정조항은 다른 무엇보다도, "의회는... 의사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 고 규정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듯한 이 수정헌법 1조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수정헌법 1조는 언제나 처럼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수정헌법 1조는 1791년 이래로 늘 극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그렇다. 변한 것은 수정헌법 1조라는 무대 위의 배우인 대중들이다.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는 대중들의 시각이 변하고,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판사들의 판결이 역사처럼 쌓이면서 수정헌법 1조를 둘러싼 이야기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수정헌법 1조는 소송에서 자주, 성공리에 원용된다. 대법원과 그 밖의 법원들은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관한 수정헌법 1조의 보장 내용을 이행한다. 그래서 대법원의 의견이 1919년에야 처음으로 수정조항에 따른 자유의 요구를 지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반대의견이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일단 수정헌법 1조를 법으로 집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자유의 길은 쉽지 않았다. 수정헌법 1조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절대적이며, 직접적인 방법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던 듯하다. 수정헌법 1조는 절대적으로 하얀 도화지 또는, 그저 투명한 물과 같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너무도 절대적이고 직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뜻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마치 야누스의 얼굴 처럼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수정조항의 언어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보이지만, 진정 그것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 내용이 어떠하든 법이 그에 반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뜻인가? ... ... 거꾸로 수정헌법 1조는 말로 표현되거나 글로 인쇄되지 않은 어떤 행위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 ... 미국 국민에게 수정헌법 1조를 부여한 사람들은 그 조항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세부 규칙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해석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같은 법을 두고 같은 판사가 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는 신뢰성에 큰 흠이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빌어먹을 징집’이라는 문구 때문에 기소된 젊은이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했던 대법관은 후에, 그와 같은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에 동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정헌법 1조는 그 해석을 둘러싸고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남기며, 그 어떤 가치 보다 수많은 쟁점을 쏟아 내었다. ’수정헌법 1조는 허위진술도 보호하는가?’, ’사생활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누가 언론인가?’ ’무엇이 음란물인가?’ 등등
자유란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등장하는 긍정의 힘 역시 그렇다. 연금술사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으며 자연 속의 징조를 따라 움직이면 세상의 모든 힘이 그렇게 되도록 도울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런 힘 조차,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그것을 찾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주어 지지 않는 것이다.
산에 길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금새 길은 무성히 자란 풀들에 가려져 사라져 버린다. 멋진 음악이 있더라도 그 음악을 듣고 연주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이, 자유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일 뿐, 그 위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지’가 없다면 자유는 그저 잠자는 사잠와 같을 뿐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자유를 위한 생각을 싫어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듯하다. 이 한권의 책으로 지금껏 배우고 알고 있던(비록 아는 것이 라고는 자유 두글자 뿐이었지만) 모든 것보다도, 생각해 왔던 모든 것 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함께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선물은, 이 책이 던지는 대답에 대해 나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 가 걸어왔고 걸어 가야할 길, 그리고 이 땅을 밟고 있는, 이제는 5천만이 된 우리들이 밟고 가야할 자유의 길 또한 이와 비슷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