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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하찮은 인간은 이 책의 원제인 약탈하는(rapacious)를 그나마 순화시켜 표현한 책인 것 같다. 아무래도 책의 제목에 사람들이 느낄 거부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책의 내용도 평범하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진보는 신화이고, 자아는 환상이며, 자유의지는 착각이다."
나아가 인류의 진보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헛된 믿음을 가능케 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를 뿐 아니라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이라고 '존그레이시'는 주장한다.
먼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왜 저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일상적이지 않은, 오히려 일탈에 가까운 저자의 주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저자의 주장에는 독창적인 생각이 많고, 읽는 이가 간과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발견하는 재미를 찾을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정부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앞장서던 그가 토니 블레어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결정 이후 反휴머니즘적 저술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이처럼 급격한 사상적 변화를 보인 그에게 우에서 좌란 표현보다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분명 공격적이고, 다분히 염세주의적이긴 하지만, 그러한 공격들은 아마도, 독을 뿌리기 위한 비판이 아닌 세상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비판인 것 같다. 물론 이 한 권의 책과 내용으로 섣불리 판단 내릴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책 속에는 재밌고 기발한 생각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즐겁나다.
"테크놀러지는 그냥 이 세상에 떠어진 일종의 사건이라고 봐야 한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근대적 탈주술화를 가져온 주원인이 과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식과 지각은 의식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과 인식은 동식물의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간이 특별한 존재도 아니고,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지금처럼 과학의 발전을 노래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은 얼핏들으면 될대로 되라지 하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을 불투명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저자는 인간은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을 때에만 잘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 안에 숨겨져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구원의 손길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또 그냥 넋 놓고 바라보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바라보는 편향된 '과학, 진보,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에 오히려 일침을 놓는 것 같다. 누가 보아도 지금의 과학과 진보가 '죄짓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하면 팔매질을 마구 헤댈 것이다. 새삼스럽게 생각할 것 없다. 저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말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같다. 다행히 이 책 속에는 고정관념을 흔들어 줄 독특한 표현들이 넘쳐나니, 비판으로 일색하는 저자를, 우리도 비판으로 일색하는 시각으로 보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