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강 세븐
A. J. 라이언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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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서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소재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매력적인 것 같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작품의 세계가 끝장나게 된 원인은 포자로 전염되는 전염병이다.

특이하게도 뇌에 작용하며 전염되는데 '기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는 전염이 잘 안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병의 정확한 정체는 중반 이후에나 밝혀지는데 책 띠지에 '기억으로 감염되는 전염병'이라는 스포가 붙어 있다. 모르고 보면 더 좋겠으나 알고 읽어도 감상에는 큰 지장이 없다.)



그런 세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한 배에 탑승하고 있는 일곱 명이 등장한다.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은 채로 시작하므로 여섯이라고 보면 되겠다.

서로가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 특이하게도 자신의 신상과 관련된 내용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 나라의 이름이라던가 총기류에 대한 지식 등 이전에 학습한 내용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이 모종의 실험체가 되었다는 것과 각자 잘하는 분야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잠시 뒤, 자신들을 그 배에 태운 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데 그것도 기계음으로 처리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해야 할 일들만 간결하게 전달된다.

과연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왜 그 배에 타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기억이 없다면 우린 대체 뭔데?

아무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린 기원도 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이유가 무엇이든 계속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우리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

그냥 고통받게끔 되어 있어.

그거야말로 지옥이 아니면 뭐지?

(pg 159)

일단 전염병으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다는 점이 참신했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정신적으로는 기억이 왜곡되고 신체적으로는 급격한 변이가 오게 되는데, 쉽게 표현하면 그냥 살육을 일삼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

그런 괴물들과 싸우며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인물들의 처절함이 작품 전반에 걸쳐 잘 묘사되어 있다.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결말도 제법 괜찮았다.

해피엔딩이라 할 수는 없는 결말이라 결말에서 호불호가 다소 있을 것 같긴 하나, 그려낸 세계관 안에서 납득이 갈만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다만 등장인물이 여섯 밖에 안되는데 이들의 매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웠다.

처음에 보여준 인물들의 성격이 작품 끝까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물들의 심경 변화에서 유발되는 재미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미 영상화 계약이 완료된 작품이라 하는데 내용상 꽤나 잔인한 부분이 많아 무조건 청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신체적인 변이가 꽤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CG가 뒷받침되어 영상화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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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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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괜찮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 작가가 정말 많다.

이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를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 본인만의 유머를 많이 집어넣는다는 소개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다.

작품은 23년 전 세 명의 중학생들이 야밤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겪은 미스터리한 일로 시작된다.

그러다 시점이 현재로 바뀌고 비탈섬이라는 한 섬에 지역 유지가 지은 별장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섬에서는 유산 상속을 앞둔 한 가족이 유언장을 개봉하기 위해 모였는데 여기에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사촌도 포함되어 이 사람을 찾으러 갔던 탐정과 유언장을 개봉할 변호사, 장례 의식을 진행할 승려까지 포함해 총 14명이 등장한다.

마침 태풍으로 섬이 외부와 고립된 상황에서 유언장이 개봉되고 다음 날 한 명이 죽은 채 발견된다.

이 사건에 얽힌 비밀을 섬에 같이 간 탐정이 밝혀가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일단 배경이 되는 섬과 건물이 굉장히 독특하게 생겼다.

섬의 모습은 표지에 있고 건물 역시 층별로 평면도를 제시해 주고 있어서 저자가 마치 독자들에게 '한 번 풀어보시지'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배경을 독특하게 만든 만큼 이 배경이 사건 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표지와 평면도를 잘 숙지하고 읽어가면 즐거움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범인과 섬에 얽힌 트릭은 대충 예상을 했는데 나머지 부분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꽤 복잡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으므로 꽤나 집중하면서 읽어도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결말도 꽤 드라마틱 해서 끝까지 몰입감 있게 잘 읽은 것 같다.

다만 기대했던 '유머'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아무래도 유머 코드라는 것이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저자가 웃기려고 노력한 부분들이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재미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로서 본연의 재미가 상당히 충실하기 때문에 유머가 다소 입맛에 맞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또 한 명의 마음에 드는 일본 작가를 알게 된 것 같다.

국내에 발매된 작품도 많아서 조만간 다른 작품들도 이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너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 싫다면, 또 뭔가 새로운 느낌의 미스터리 소설을 찾는다면 분명 만족할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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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과학 허세 (리커버판, 양장)
궤도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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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의 인도로 몇 차례 영상을 본 적 있는 유튜버인데 책을 낸 줄은 몰랐다.

아이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익숙한 이름에 책장을 넘겼다가 사지 않으면 도둑질이 될 정도로 많이 읽어 버려서 충동적으로 사게 된 책이다.



제목에 충실하게(?!) 과학으로 약간의 허세를 부릴 수 있도록 여러 주제를 짧고 재미나게 정리한 책이다.

유튜브 영상에서도 그의 화려한 언변이 빛을 발했었는데 그 재치있는 입담이 그대로 글로 실려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 능한 저자이다 보니 각종 밈을 섭렵해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때문에 인터넷 문화를 잘 알면 알수록 읽는 재미도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첫 주제가 알코올에 관한 이야기인데 첫장부터 굉장히 재미있다.

알코올 분자의 화학식 같은 것을 외울 일은 없겠지만 알코올의 분자 모형이 아래와 같이 생겼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에탄올의 화학식은 C2H5OH로 그 분자모형은 그림과 같다.

우리는 개 모양의 분자를 마시고, 모두가 그렇게 개가 되어갔던 것이다.

(pg 22)

알코올을 비롯한 총 20개의 소주제가 수록되어 있고 그 영역은 우주과학에서부터 생물학, 물리학,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개인적으로는 물리나 생물, 화학 등 고전적인 과학 분류에 따른 주제들뿐 아니라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같은 트렌디한 주제까지 다루고 있어서 더 재미나게 읽었던 것 같다.

특히 비트코인을 그저 투기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상 화폐로만 인지하고 있었는데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자체는 굉장히 유용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 소주제마다 다루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책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각각의 소주제들이 모두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과학 교양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거부감 전혀 없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책 제목에 충실하게 각 꼭지마다 작은 과학 지식 하나쯤은 머릿속에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었다.

우주에서 생명체가 잘 살고 있는 확실한 한 곳은 바로 지구다.

우리가 없다면 외계인도 없을 텐데 우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외계인에 대한 기대감을 접을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현재까지 유일한 외계인이 되었고

외계생명체 존재의 결정적인 증인이 되었다.

이 넓고 무한한 우주에 우리 외에 누군가 있다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이자 증거는

바로 우리,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인류다.

(pg 155)

요즘 과학적 지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쉽고 재미있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교양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한 책 중 하나이다.

각각의 소주제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출퇴근 길에서 잠깐씩 읽기에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상뿐 아니라 저술 활동도 활발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는 돌연변이에 열광한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보여주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나

잘 만들어진 컴퓨터 그래픽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동일한 다수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전혀 안전하지 않은

새로운 길로 떠나는 소수의 혁명적인 발자국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영원한 인류를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pg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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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꼭지 초등 세계사 1 - 고대~중세 하루 한 꼭지 초등 세계사 1
정헌경 지음, 뭉선생.윤효식 그림, 전국역사교사모임 세계사 분과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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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문과 과목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유독 역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연도와 인물들을 외우는 것이 재미도 없고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역사 역시 인간에 관한 일이다 보니 스토리가 곁들여지면 재미도 있고 배울 점도 많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이제 곧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어 독서 영역을 넓혀주고자 이번에는 세계사 관련 책을 하나 골라봤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형식이어서 딸아이도 책을 보자마자 흥미를 보인다.

생각보다 글의 양이 많은 편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거부감 없이 잘 보고 있다.

글자는 많아도 문체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굉장히 친절하기 때문에 글씨를 읽을 수 있는 나이라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만화 부분이라도 먼저 보고 자신이 흥미를 느끼면 글도 읽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그림책에서 줄글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 권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1권은 고대에서 중세까지라고 쓰여있는데 인류의 기원과 선사시대, 인류의 최초 문명들도 1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어 로마제국까지의 서양 역사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역사, 기독교 문화 중심의 유럽 역사까지 다루고 있다.

책 구성이 상당히 알찬데, 좌측에 만화로 어떤 주제를 다룰지 간단히 소개한 뒤 중앙에 본문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우측에는 사진 자료와 아이들이 어려워할 것 같은 단어들의 뜻풀이까지 수록되어 있어 한 페이지를 읽어도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재미가 있어서 한참 같이 읽어보기도 했다.

(pg 124-125)

중간중간에 문제집처럼 관련 지식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연습문제들도 수록되어 있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도 충분히 재미와 의미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pg 142-143)

요즘 아이들 책 코너에 가보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무슨 책을 골라줘야 하나 오히려 더 고민되는데 이 책 정도의 구성이라면 별 망설임 없이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서 어떤 주제들이 다뤄질지 기대되는 시리즈였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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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의 철학 - 21세기의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EBS CLASS ⓔ
조대호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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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수능 문제로라도 본 적이 있을 텐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저 '고대의 서양 철학자'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인지라 단순히 이 세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책이었다면 들춰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만만한 책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대학교수들을 상대할 일이 많은 직업인지라 교수들이 아무리 본인 전공이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확신 있게 단언하는 건 꽤 드문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상기 세 철학자의 사상이 '현재'의 철학이라고, 심지어 '영원하기까지 한' 현재의 철학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 얼마나 충실할지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마무리된다.

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라는 구절이 중요한데, 이 세 철학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동시대를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가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나라가 '잘나가는' 나라에서 '막나가는' 나라로 변하던 시기를 살았고, 플라톤은 전쟁으로 나라가 몰락하여 모든 가치들이 도전받는 시기를 살았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제국의 시대에 소속될 나라조차 없이 자연을 떠도는 삶을 살았다.

이처럼 공간적인 배경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이 달랐던 세 철학자는 철학의 방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책의 포문을 여는 소크라테스는 직접 남긴 저작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전 세계 학생들이 외우고 있는 이유는 그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를 정립했기 때문이다.

바로 세상 모든 것에 질문해 보는 것이다.

동물도 호기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처럼 정의나 사랑, 용기와 같이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에 대해 궁금해할 수는 없다.

그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가진 모순을 깨닫게 함으로써 철학의 주체가 바로 이성을 가진 인간임을 명확히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은 있었습니다. - 중략 -

이 시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는데, 자연의 존재와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자연과학에 가깝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철학의 본질을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인간 삶에 대한 탐구로 바꿔놓은 사람입니다.

(pg 27)

이 대목이 재미있었는데, 소크라테스 이후로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세계는 철학, 신학 등 인문학이 이끌어왔고 이러한 인문학의 근원은 단연코 인간이다. (신학의 신 역시 인간을 창조한 주체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기에 인간 중심 사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흐름이 언제부턴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물리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으로 다시 넘어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인식, 동물도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인식,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 등 인간 중심 사상 자체가 많이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여하간 이렇게 서양 철학의 근간을 만든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플라톤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그런 그에게 당시 아테네(책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아테나이'인데, 그리스어로 읽으면 '아테나이'라고 읽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게 익숙한 표현이 아니라서 사용하지 않았다.)의 민주주의는 모순으로 가득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정치사상이 철인정치로 수렴하게 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중요한 점은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 이원론적 시각이다.

저자는 현재 뇌과학쪽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을 업로드하면 영생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바로 이원론적 시각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도 육체와 의식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추세이고, 저자 역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플라톤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외딴섬에서 자연을 공부하여 사상을 키워나간다.

이 때 그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 바로 '로고스'에 있다는 말을 남긴다.

저자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진화론의 시각이 대세가 되면서 인간이 동물보다 조금 더 고등한 사고를 할 뿐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시각에 저자는 반대한다.

물론 도구를 쓰는 동물도 있지만 그 도구를 통해 또 다른 도구를 만드는, 저자의 표현을 빌면 n차 도구를 발명할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추리'라고 하는 이성적 작용이 있으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로고스라고 불렀다는 말이다.

'인간은 추리하는 존재다. 추리에는 상상이 따르고 비교가 따르고 정당화가 따르고

선택의 과정이 따른다. 이러한 추리 과정으로부터 인간의 과학적 탐구,

실천적 계획, 범죄,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을 다 설명을 해낼 수가 있다...'

위대한 발견자의 생각 속에서 제가 찾아낸 가장 중대한 발견입니다. - 중략 -

그 모든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는

단순한 정의 안에 압축해 담았습니다.

(pg 161)

그리고 로고스가 잘 발현되는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적 역량이 중요하고 이 시민적 역량은 경제적으로 평등할 때 발휘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들에서도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통찰이라 생각한다.

좋은 민주정은 시민적 역량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민적 역량은 경제적 평등 없이는 불가능하다.

(pg 215)

200페이지가 조금 넘을 정도로 얇은 편이고 서술이 매우 친절해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 철학자들의 정수만 쏙쏙 뽑아 잘 설명해 주고 있어서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입문서로도 매우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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