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이 재미있었는데, 소크라테스 이후로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세계는 철학, 신학 등 인문학이 이끌어왔고 이러한 인문학의 근원은 단연코 인간이다. (신학의 신 역시 인간을 창조한 주체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기에 인간 중심 사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흐름이 언제부턴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물리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으로 다시 넘어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인식, 동물도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인식,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 등 인간 중심 사상 자체가 많이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여하간 이렇게 서양 철학의 근간을 만든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플라톤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그런 그에게 당시 아테네(책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아테나이'인데, 그리스어로 읽으면 '아테나이'라고 읽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게 익숙한 표현이 아니라서 사용하지 않았다.)의 민주주의는 모순으로 가득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정치사상이 철인정치로 수렴하게 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중요한 점은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 이원론적 시각이다.
저자는 현재 뇌과학쪽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을 업로드하면 영생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바로 이원론적 시각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도 육체와 의식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추세이고, 저자 역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플라톤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외딴섬에서 자연을 공부하여 사상을 키워나간다.
이 때 그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 바로 '로고스'에 있다는 말을 남긴다.
저자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진화론의 시각이 대세가 되면서 인간이 동물보다 조금 더 고등한 사고를 할 뿐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시각에 저자는 반대한다.
물론 도구를 쓰는 동물도 있지만 그 도구를 통해 또 다른 도구를 만드는, 저자의 표현을 빌면 n차 도구를 발명할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추리'라고 하는 이성적 작용이 있으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로고스라고 불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