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재의 철학 - 21세기의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EBS CLASS ⓔ
조대호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수능 문제로라도 본 적이 있을 텐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저 '고대의 서양 철학자'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인지라 단순히 이 세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책이었다면 들춰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만만한 책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대학교수들을 상대할 일이 많은 직업인지라 교수들이 아무리 본인 전공이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확신 있게 단언하는 건 꽤 드문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상기 세 철학자의 사상이 '현재'의 철학이라고, 심지어 '영원하기까지 한' 현재의 철학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 얼마나 충실할지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마무리된다.

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라는 구절이 중요한데, 이 세 철학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동시대를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가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나라가 '잘나가는' 나라에서 '막나가는' 나라로 변하던 시기를 살았고, 플라톤은 전쟁으로 나라가 몰락하여 모든 가치들이 도전받는 시기를 살았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제국의 시대에 소속될 나라조차 없이 자연을 떠도는 삶을 살았다.

이처럼 공간적인 배경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이 달랐던 세 철학자는 철학의 방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책의 포문을 여는 소크라테스는 직접 남긴 저작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전 세계 학생들이 외우고 있는 이유는 그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를 정립했기 때문이다.

바로 세상 모든 것에 질문해 보는 것이다.

동물도 호기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처럼 정의나 사랑, 용기와 같이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에 대해 궁금해할 수는 없다.

그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가진 모순을 깨닫게 함으로써 철학의 주체가 바로 이성을 가진 인간임을 명확히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은 있었습니다. - 중략 -

이 시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는데, 자연의 존재와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자연과학에 가깝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철학의 본질을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인간 삶에 대한 탐구로 바꿔놓은 사람입니다.

(pg 27)

이 대목이 재미있었는데, 소크라테스 이후로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세계는 철학, 신학 등 인문학이 이끌어왔고 이러한 인문학의 근원은 단연코 인간이다. (신학의 신 역시 인간을 창조한 주체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기에 인간 중심 사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흐름이 언제부턴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물리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으로 다시 넘어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인식, 동물도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인식,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 등 인간 중심 사상 자체가 많이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여하간 이렇게 서양 철학의 근간을 만든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플라톤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그런 그에게 당시 아테네(책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아테나이'인데, 그리스어로 읽으면 '아테나이'라고 읽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게 익숙한 표현이 아니라서 사용하지 않았다.)의 민주주의는 모순으로 가득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정치사상이 철인정치로 수렴하게 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중요한 점은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 이원론적 시각이다.

저자는 현재 뇌과학쪽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을 업로드하면 영생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바로 이원론적 시각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도 육체와 의식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추세이고, 저자 역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플라톤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외딴섬에서 자연을 공부하여 사상을 키워나간다.

이 때 그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 바로 '로고스'에 있다는 말을 남긴다.

저자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진화론의 시각이 대세가 되면서 인간이 동물보다 조금 더 고등한 사고를 할 뿐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시각에 저자는 반대한다.

물론 도구를 쓰는 동물도 있지만 그 도구를 통해 또 다른 도구를 만드는, 저자의 표현을 빌면 n차 도구를 발명할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추리'라고 하는 이성적 작용이 있으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로고스라고 불렀다는 말이다.

'인간은 추리하는 존재다. 추리에는 상상이 따르고 비교가 따르고 정당화가 따르고

선택의 과정이 따른다. 이러한 추리 과정으로부터 인간의 과학적 탐구,

실천적 계획, 범죄,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을 다 설명을 해낼 수가 있다...'

위대한 발견자의 생각 속에서 제가 찾아낸 가장 중대한 발견입니다. - 중략 -

그 모든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는

단순한 정의 안에 압축해 담았습니다.

(pg 161)

그리고 로고스가 잘 발현되는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적 역량이 중요하고 이 시민적 역량은 경제적으로 평등할 때 발휘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들에서도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통찰이라 생각한다.

좋은 민주정은 시민적 역량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민적 역량은 경제적 평등 없이는 불가능하다.

(pg 215)

200페이지가 조금 넘을 정도로 얇은 편이고 서술이 매우 친절해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 철학자들의 정수만 쏙쏙 뽑아 잘 설명해 주고 있어서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입문서로도 매우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