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 믿을 건 9급 공무원뿐인 헬조선의 슬픈 자화상
오찬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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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늘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그랬고, <진격의 대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에 매달리는 현 세태를 다룬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앞의 두 책이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를 띵하게 만든다.
공무원 시험 (공시)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공시에 도전하는 몇몇 수험생들의 사례를 통해
이 시험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이런 길밖에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시험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벌이 그다지 좋지 못하고, 전공이 비주류인 학생에게
공시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다.
그래도 공시는 시험성적에 의해서만 선발하는, 비교적 공정한 게임이니까 말이다.


이건 이 책에 소개된, <족구왕>의 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선배: 너 무슨 과야?
만섭: 생활경영대 식품영양학과...
선배: 음...공무원 시험 준비해.
만섭: 근데 저는 공무원 시험에는 별로...
선배: 너 토익 몇점이야?
만섭: 아직 본 적 없습니다.
선배: 학점은?
만섭: 평점 2.1.
선배: 음...공무원 시험 준비해.

명문대라고 해서 공시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직장 대신
안정적인 공무원에 유혹을 느낀다.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부모에게 야단을 맞을 줄 알았건만,
부모는 요즘 공무원만한 직업이 없다며 대환영이다.

너도나도 공시를 보니 장수생이 생기는 건 필연적이다.
[초기에는 자신의 생활을 빨리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점점 탈출은 생각만으로 하고
실제 행동은 무기력해지는 삶에 적응한다. 그러다가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된다. (71쪽)]
그 결과 한창 꿈을 펼쳐야 할 젊은이들 수십만명이 노량진에 모여 살게 된 것이다.


평소 강의를 통해 책을 읽으라고 역설하곤 했다.
책을 읽으면 뭘 하든지 자신의 역량을 더 잘 발휘할 것이라는 게 내 주장인데,
책에 나온 은정이의 깨달음을 보면 독서를 권하는 건 너무 한가해 보인다.
“(공시 준비생들을 보니까) 손에 들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책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가 가벼워 보였다....순간 미래는 불안해졌다.(32쪽)]
결국 은정이는 공시에 도전해 결국 합격하지만, 공무원이 희망직업 1순위가 되는 지금 사회가 과연 정상인 걸까.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비극적인 것은 공무원 시험이 잘못된 한국사회에 도리어 면죄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포악스런 한국사회에서 구나마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자 노량진에서의 삶을 선택한 수십만 명의 이야기는 일상의 비상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봉쇄해 버린다.” (16쪽)
대안은 있을까.
“사회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개인들의 변화만이 해법이다.” (243쪽)
물론 저자의 이 답변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이 많이 팔린다면, 그래서 보다 많은 개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면,
해법도 나오지 않을까.
공무원이 될 사람이든 관계없는 사람이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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