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의 모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6
마크 트웨인 지음, 이미정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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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톰 소여를 읽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인디고에서 요정 같이 귀여운 아이들을 표지로 한 새 책이 나와서 얼떨결에 톰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톰 소여 이 녀석 아주 반갑다! 허크도!! 두 아이 중 누가 허크고 누가 톰일 것 같나요?? 참고로 톰은 밀짚모자를 쓰고 다닌답니다.


제가 처음 만난 톰과 허크는 애니메이션 세계명작을 통해서였어요. 30대분들 중에는 이 책 아시는 분이 꽤 될 것 같은데 맞나요?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 하이디, 엄지공주, 백조왕자, 장화요정(? 도무지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구두장이 할아버지를 대신해 구두를 만들어주는 요정들 이야기), 사랑의 학교, 십오 소년 표류기 같은 동화들을 알게 한 전집이었죠.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기 때문에 굉장히 얇고 단순하게 이야기가 풀어져 있어요. 차마 요약집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두께에 기억력도 꽝이라 이 녀석들을 그저 꾸러기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다시 만난 톰과 허크는 세상에나 단순히 장난꾸러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말썽꾸러기들이라니요. 폴리 이모의 회색머리가 며칠 새에 하얗게 세어버리는 일이 불가능은 아니겠다 싶을 정도의 스케일로 사건사고를 칩니다. 제가 엄마라도 저 애를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걸까 하고 가슴앓이 꽤 했겠더라구요. 깜냥도 안되면서 내가 무슨 생각으로 애를 낳았을까 하고 잠깐씩 후회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도로 천방지축이거든요. 383 페이지의 그리 두껍지 않은 양에도 벌써 집 나가 죽을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아니, 자칫 목격자로 살해 당했을지도 모를 첫 번째 사건까지 하면 도합 세 번이군요. 혹 톰 소여를 한 번도 안읽어 본 분들을 위해 톰의 모험 세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할게요.

사건 1. 인디언 조의 살인사건

허크의 사마귀를 떼어내기 위해서 밤의 공동묘지를 찾은 톰과 허크는 인디언 조의 살해사건을 목격하게 되요. (여기서 등장하는 19세기 각종 미신들이 웃기고 재미납니다. 요약집이나 그림책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다양한 주술에 깜짝 놀라실 거에요.) 인디언 조는 알콜 중독의 심신허약자 머프 포터의 손에 칼을 들려 마치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꾸며요. 아이들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조의 손에 죽게 될까봐 이 비밀을 평생 안고 가자고 피의 맹세를 하지요. 머프 포터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서 사형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톰과 허크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실을 폭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두가지가 톰이 겪는 모험의 가장 큰 줄기에요.

사건 2. 가출

톰과 허크, 조는 어른들의 꾸지람으로 집을 나가 해적이 되기로 결심해요. 조 이 친구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혹 애니메이션 세계명작 보신 분들 조도 그림책에 등장했나요? 저는 톰과 허크 두 아이만 가출했는 줄 알았어서 잠깐 배신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찌됐든 이 세 아이는 내가 죽으면, 내가 집을 나가면 엄마가 또는 가족이 또는 동네 어른들이 후회를 하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뽑겠지? 하는 그 시절 우리도 한번씩은 했을 생각으로 집을 떠나요. 저도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나면 엄청 아팠으면 좋겠다, 내가 엄청 아프면 엄마가 나 혼낸 거 후회하겠지 하며 바라곤 했던 터라 그 또래 아이들 특유의 생각을 어쩜 이렇게 잘 꼬집어 표현해 놨나 싶어 마크 트웨인이 신기하더라구요. 그 신기함과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 절인 햄 등으로 행랑을 꾸린 채 뗏목을 타고 떠나는 모험이 아주 낭만적이라 전 여기 가출 얘기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어요. 벼락 맞아 죽을 뻔한 일만 제외하면요.

사건 3. 톰과 베키의 동굴실종사건

마지막까지 사건을 일으키지 않으면 톰이 아니지요. 톰과 여자친구 베키는 놀라간 동굴에서 탐험에 나섰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아요. 하마터면 굶어죽을 뻔한 이 아이들이 어떻게 동굴을 탈출해서, 어떻게 조를 잡고 (의도치 않게), 어떻게 보물을 찾아 부자가 되는지 아주 상세하게 알려드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꾹 참겠습니다. 하여튼 이 녀석들 정말이지 대단했다니까요.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톰과 허크를 꼭 끌어 안고 뽀뽀를 해주고 싶어집니다. 내가 이 놈을 왜 낳았을까 하다가 또 천사같이 예쁘고 자랑스런 아이의 행동에 자식 낳길 잘했지 라고 생각하는 우리네 엄마의 마음을 아주 쬐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빨간머리 앤과 비슷한 시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어딘지 비슷한 느낌들이 있습니다. 학교 생활이라던지, 학예회, 시 낭독,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함께 앉히는 벌, 선생님께 벌이는 장난, 아이들의 연극놀이 등에서 앤 생각이 많이 났어요. 19세기 미국 배경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어린 친구들의 유쾌한 모험활극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고전 명작 톰 소여의 모험도 틀림없이 마음에 드실 거에요. 그림책에서 딱 줄거리만 알게 했던 사건들 이외에도 톰이 일으키는 각종 말썽들, 입만 열었다 하면 쏟아지는 허풍과 뻥, 거짓말, 친구들과의 우정, 첫사랑 베키와의 갈등 (물론 그 전에도 사랑을 고백했던 에이미가 있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노라며 이 어린 녀석이 부정하니 그런 걸로 합시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가출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펼치는 놀이와 자유 그 천진난만함에 휩쓸리면 마치 어릴 적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져요. 저는 이런 류의 말썽은 하나도 일으키지 않는 얌전한 책벌레 여자아이였지만 그 시절 제 마음 속에도 이런 모험을 하고 싶다는 두근두근한 욕망이 있었거든요. 어른이 된 지금도요. 실행에 옮기지 못할 낭만들에 대한 대리만족감으로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기분이 좋아져요. 무엇보다 이 녀석들은 그저 말썽꾸러기에 삐뚤어지기만 한 아이기 아니거든요. 그랬다면 톰도 허크도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지는 못했을걸요. 공부는 안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영리하고, 다정하고, 때때로 드러나는 아이다운 순수함과 선한 본성을 가진 톰이기에 또 자유를 갈망하는 허크이기에 백년이 넘도록 내내 사랑받고 있는 거겠지요. 인디고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 번역판도 나오면 좋겠다고 은근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아이들과의 만남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섭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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