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화와 무한수법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수학의 세계에 있어서도 그 배후의 세계관, 우주관이 크게 변화하여 고대 그리스의 ‘유한은 무한보다 우수한 존재‘라는 사고가 역전했다. - P88

구적법(積法): 도형의 넓이, 부피나 길이를 구한다.
→적분학의 탄생


접선법(法): 운동의 속도, 방향이나 곡선상의 접선을 구한다.
→미분학의 탄생 - P88

15세기 이후의 약동하는 사회는재차 이들의 난문에 바로 정면으로 들러붙기 시작하여 오른쪽에 보여주는 단계에 따라서 17세기에는 ‘극한법‘이라는 고도의 무한수법에 도달한다. - P89

다음의 페르마는 이 단책(무한소량)의 사고에 구분구적의 사고를 도입하고 아르키메데스의 양측으로부터 끼우는 방식도 채택하여 ‘극한법‘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것을 받아서 갈릴레이의 제자인 가발리 에리는『불가불량 기하학』 (1635년)을 저작하여 구적이론으로서 후세에 영향을주었으나 이것에는 큰 벽이 있었다. - P90

마지막으로 양자를 일체화시킨 것이 17세기의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이고 그는 저서 『좌표기하학』(구 해석기하학)을 완성했다. 이것은 - P92

16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탈타리아는 저서 『새로운 과학』 (1573년)안에서 탄도 이론의 연구에 대해서 언급하고 45°일 때 가장 멀리 도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 P93

여담이지만 나폴레옹은 "국가의 번영에 수학은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여 우수한 수학자를 육성했고 전술에서는 대포를 잘 다룬 군인이었다.
그런데 탄도가 그리는 포물선상의 어떤 한 점에서 그 접선의 방향(기울기)은 어떻게 구하면 되는 것일까. - P96

17세기에 미적분학이 탄생했고, 실용성을 가지고 왔다라고는 하지만무한소에 관한 부분은 많은 문제를 계속 남겼다. (중략).
그것은 차치하고 ‘미분‘은 탄도연구라고 하는 ‘움직이는 것‘을 대상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이래 수학계가 회피하여 온무한, 운동, 변화에의 도전이고 필자는 이것을 ‘제1반(反)수학시대‘라 부르고 있다. - P97

3. 사회문제와 그 해결

(전략).
수학의 세계도 그 예외는 아니고 고대 그리스 이래의 오랜 전통─정적(靜的), 불변, 절대, 확실, 확정적, 고정적, 부동 등을 타파하게 된다. - P97

‘확률론‘은 ‘우연‘이라고 하는 그때까지의 수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또는 반대의 극(極)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수량화하여 수학적으로 해결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 P98

그 뒤 프랑스에도 확률론의 연구자가 배출되고 파스칼이나 페르마 등이 유명하다. - P99

* ‘수학적 확률에서는 ‘확실성‘이 중요하다. 영국의 네스호(湖)에 "네시가 있는가없는가"라고 할 때 ‘있다‘ ‘없다‘이므로 확률은 2분의 1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두 개의 ‘확실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 P100

1517년 이후 런던에서는 시내의 사원(寺院)에서 세례를 받고 매장된 사람의 숫자를 매주 집계하여 ‘사망표‘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연말에는 1년간의 집계표도 내고 있었다.
이 ‘사망표‘에 흥미를 가진상인 존 그란트는 60년 가까이 소급하여 이표를 모아 1매로써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많은 자료를 봄으로써 여러 가지경향을 발견했다. - P101

‘보험학‘의 탄생은 통계학과 확률론의 발전으로부터의 산물이다. - P104

이에 뒤져서 핼리혜성으로 유명한 핼리가 생명보험제도를 창설했다. 1693년의 일이다. 그 뒤 여러 가지 보험이 계속 탄생되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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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지와 연락했어요? 현경 수사과장님이랑.......
"아아, 아까 통화했어. 상황은 어제와 다를 바 없고. 경찰은 배고 헬리콥터고 못 띄워. 우리는 변함없이 이 섬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상황인거지." - P298

다카오의 부정적인 발언에 텔레비전 앞에 있던 도라쿠 스님이 반론했다.
"아니지요. 섬에서 나가지 못하는 건 변함없더라도 어제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어쨌거나 쓰루오카를 죽인 범인은 이 섬에 없으니까요. 그 점은 안심이지요." - P298

"흠, 고바야카와 씨, 그대로 잠들어 버렸군요."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샤워하러 간 탐정은 결국 거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야카는수수께끼가 하나 풀린 기분이었다. "맞아요. 고바야카와 씨가 자는사이에 완전히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어요. 범인은 외부에서 온 침입자. 그리고 그자는 벼랑에서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그게모두가 내놓은 결론이죠." - P299

다카오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라면서 고개를 숙이자마사에는 "알았어, 어젯밤 일이로군" 하고 눈치 있는 모습을 보이며 두 사람을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두 사람은 마사에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아침 안 드셨습니까? 식당에 안 계시던데요."
다카오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마사에는 컵 세 개에 머신으로 내린 커피를 따르며 대답했다. "응, 늦잠을 자서 아침은 걸렀어. 둘다 커피면 되지?"

다카오는 딱 잘라 말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 빨간 도깨비를 놓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사에 씨께 전화드렸죠. 통화한 후에 게이스케 씨가 어떤지 확인하셨습니까?"
"물론이지. 그런 식으로 말하길래 걱정됐거든. 바로 게이스케 방에 가봤어."
"어땠나요? 게이스케 씨는 자기 방에 있었습니까?"
"응 있었지." - P301

"응, 확인했어. 시간은 좀 걸렸지만."
"시간이 걸렸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의아해하는 탐정에게 마사에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 P301

"방에 있더라고. 게이스케가 욕실에 오래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야. 왜 샤워하고 있으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안 들리잖아. 그래서대답이 없었던 건가 봐. 그런 줄도 모르고 게이스케를 찾아 온 저택을 돌아다닌 거지. 정말 얼빠진 짓이었다니까."
마사에는 후후후 웃고서 커피를 마셨다.  - P302

마사에는 더욱 매서운 말투로 따져 물었다. "어젯밤 전화로는 게이스케를 걱정하는 척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어. 실은 걔를 의심하는거지? 빨간도깨비의 정체가 아닐까 싶어서." - P303

탐정은 당황한 듯 한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게이스케 씨가 빨간도깨비라면 이미 바다에 빠져 죽었을 테니까요. 그럼 지금 저택에 있는 게이스케 씨는 대체 누구냐는 이야기가 되죠. 아닙니까. 마사에 씨?"
다카오가 농담조로 꺼낸 말을 듣자마자 마사에의 얼굴에 한순간흠칫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마사에는 입술을 떨며 항의하듯 말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 P303

2

(중략).
"잡아떼지 말아요. ‘마침맞게…………… ‘라니 그게 무슨 뜻인데요?"
"아아, 그거. 그건 참 ‘마침맞다‘는 머릿속 생각이 그대로 입을 타고 나온 거야. 정말 마침맞잖아. 머리가 젖은 걸 둘러댈 핑계로 ‘샤워‘는 이상적이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응하지 않은 이유도 되고말이야." - P304

"확실히 당신 말이 맞아. 즉, 게이스케는 우연히 그 타이밍에 샤워를 오래 즐긴 것뿐인가. 그 늦은 밤에 씻는 것도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말이야." - P304

 탐정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게이스케 방이지. 그 시간에 정말로 욕실에 있었는지, 직접 물어볼 거야."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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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장

 벼랑 아래의 기적


1

다음 날 아침, 야노 사야카는 유리창을 세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깨어났다. 안경을 쓰면서 침대를 빠져나와 창가로 다가가자 바깥 날씨는 난리도 아니었다. - P296

"그 정장, 용케 말랐네요. 어젯밤은 물웅덩이에 빠진 개보다 심하게 젖었었는데. 어떤 비밀 기술을 사용한 거예요?"
"아아, 이거?" 다카오는 양복 옷깃을 손가락으로 집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알렸다. "아직 덜 말랐어. 따로 입을 옷이 없어서 입고 있을 뿐이야. 후하핫."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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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실 사람들은 피터 키팅을 좋아했다. 키팅은 그들에게 마치 거기 오랫동안 근무했던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어느 집단에 들어가든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법을 알았다. 부드럽고 밝은 태도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그곳 분위기에 쉽게 젖어들었다. - P112

"피터, 나갈 때 이걸 제퍼스 양에게 주게. 내 스크랩북에 정리해두라고 해."
키팅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잡지를 공중으로 높이 던졌다가멋지게 받으며 입술을 오므리고 소리 없는 휘파람을 불었다. - P113

"잠깐." 키팅이 그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잠깐! 다른 방법이 있어. 내가 대신 마무리해줄게."
"응?"
"내가 야근을 하겠다고. 내가 대신 해주겠다고 걱정 마. 아무도 모를 테니까." - P114

"오, 이런, 피터!" 데이비스가 혹해서 한숨지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들통 나면 난 해고야. 자넨 아직 신입이라 이런 일을 못해."
"아무도 모를거라니까."
"피터, 난 쫓겨나면 안 돼. 안 된다고, 곧 일레인과 결혼할텐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
"아무 일 없을 거야." - P115

9시 30분에 그는 작업을 끝내 데이비스의 탁자에 똑바로올려놓고 사무실을 나섰다. (중략). 오늘 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 P115

키팅은 일 년 전 보스턴에서 캐서린을 만났다. 캐서린은 홀어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캐서린은 못생기고 따분한 여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 P116

캐서린의 어머니는 작달막하고 온화한 여인으로 교사로 재직하다가 작년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캐서린은 뉴욕에 있는 삼촌 집에서 살게 되었다. 키팅은 캐서린이 보내온 편지에 즉시 답장을 보내주기도 하고, 몇 달씩 침묵을 지키기도했다. - P117

키팅은 캐서린을 향해 달려가며 그녀에게 간다고 미리 연락할 걸 그랬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 P118

"모자 이리 줘요. 그 의자 조심하고, 그리 튼튼하지 못하거든요. 거실에 더 좋은 의자들이 있어요. 들어와요." 캐서린이말했다.
거실은 수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고 놀라울만큼 세련된 취향으로 꾸며져 있었다. - P119

"당신은 별로 안 변했네요. 좀 마른 것 같지만 그게 더 잘어울려요. 피터, 당신은 쉰 살이 되면 정말 매력적일 거예요."
캐서린이 말했다.
"그건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 암시적으로."
"왜요? 오, 내가 지금의 당신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오, 당신은 매력적이에요."
"내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 P120

"늘 아무 문제도 없었고 사실 그게 제일 이상하지. ·아무튼, 그동안 있었던 일을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어. 중요한 거니까."
"피터, 나 정말 듣고 싶어요."
"알다시피 난 프랭컨 앤드 헤이어에서 일하는데……. 참,
넌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조차 모르지!" - P123

"그런 내가 경멸스럽지 않아?"
"아뇨. 당신이 원했던 거잖아요."
"그래, 내가 원했던 거지. 사실 그리 나쁘지도 않아. 뉴욕최고의 굉장한 회사니까. 나는 일을 잘 해내고 있고 프랭컨도날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 난 선두로 나아가고 있어. 결국에는 거기서 내가 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야.
사실 오늘만 해도 어떤 친구 일을 대신 해줬는데 그는 자신이곧 쓸모없는 존재가 되리란 것도 모르고・・・・・・. 케이티 !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 P125

"삼촌 직업이 뭔데?"
"오, 아주 많은 일들을 해요. 너무 많아서 나도 다는 몰라요. 그 중 한 가지가 예술사를 가르치는 거예요. 삼촌은 교수라고 할 수 있어요." - P126

"일단 만나보면 알아요. 오, 삼촌도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하세요. 내가 당신 얘기를 했거든요. 삼촌은 당신을 T자(T-square: 건축 설계 때 쓰는 T 모양의 긴 자-옮긴이) 로미오‘ 라고불러요."
"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 P128

"우리 삼촌요."
"그래, 삼촌 이름이 뭐라고?" 키팅이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
"엘즈워스 투히요. 왜요?"
키팅은 손에 힘이 쭉 빠졌다. 그는 캐서린을 빤히 보았다. - P128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 널 통해서는・・・・・・・ 케이티, 넌 나라는 인간을 몰라. 난 사람들을 이용해먹는 인간이야. 난 너까지 이용하긴 싫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 너만은."
"날 어떻게 이용해요? 무슨 일인데요? 왜 그래요?"
"난 엘즈워스 투히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있다는 거야." 키팅이 거칠게 웃었다. "삼촌이 건축에 대해 좀안다고? 이 바보! 그는 건축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야. 아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그렇게 될 거야. (후략)." - P129

"그렇게 하기 싫으니까! 내 일, 내 직업, 나의 출세 방식은추하고 혐오스러우니까! 너에겐 그 더러운 때를 묻히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진정으로 가진 건 너뿐이야. 케이티, 넌 개입하지 마!"
"무엇에 개입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도 몰라!"
캐서린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일어서서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 P130

"오늘 일 끝나면 내 방으로 와." 헨리 캐머런이 말했다.
"예." 로크가 대답했다.
캐머런은 홱 돌아서서 제도실을 나갔다. 그게 한 달 동안그가 로크에게 건넨 가장 긴 말이었다. - P131

"심상치가 않아요." 젊은 제도사 루미스가 늙은 동료 심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노인네가 저 친구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아요. 하긴 그럴 만도 하죠. 저 친구, 오래 못가겠어요."
심슨은 늙고 무력했다. 그는 캐머런이 세 층짜리 사무실을 갖고 있을 때부터 버텨온 인물로 도무지 건축을 이해할 줄 몰랐다. - P132

로크가 이 셋방을 선택한 것은 주당 2달러 50센트에꼭대기 층 전체를 차지한 큰 방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창고로 썼던 이 방에는 천장이 없고 드러난 지붕 들보들사이로 물이 샜다. 하지만 두 벽에 창들이 줄지어 길게 나 있었다. - P132

"자넨 해고야." 캐머런이 말했다.
로크는 긴 방 중간쯤에서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두 팔은아래로 늘어뜨리고 한쪽 어깨를 올린 채 서 있었다.
"제가요?" 그가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 P133

"자네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자네가 원하는 길을 가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로크, 소용없는 짓이네. 빨리 포기하는 게좋아."
(중략).
"어차피 이루지도 못할 이상을 위해 자네의 재능을 낭비하는 건 쓸모없는 짓이네. 사람들은 자네가 그 이상을 이루는 걸 절대 허용하지 않을 걸세. (중략). 로크, 자네 재능을 팔게. 지금 당장 좀 늦긴 했지만 자넨 충분한 재능이 있어. 자네가 가진 재능이면 다른 데서 좋은 조건으로 데려갈 걸세. 그 재능을 그 사람들의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말일세. (후략)." - P134

"이보게, 자넨 절대 날 찾아와선 안 되는 거였어. 내가 자넬여기 붙잡아두는 건 죄악이야. 누군가 자네에게 여길 떠나라고 경고해야만 해. 난 자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될 거야. 자네의 이상을 꺾지 않을 거야. 자네에게 상식을 가르쳐주지 않을거야. 오히려 자네 등을 떠밀 거야. 자네가 지금 가고 있는 길로 더 몰아붙일 거라고. 난 자네가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남아모르겠어? 한있도록, 아니 더 심각해지도록 만들 거야. ……………(후략)." - P135

"로크, 노력해보게. 한 번만이라도 이성적으로 행동해봐.
(중략). 그들은 오찬 연설에서는 나를 비웃을지 몰라도나한테서 훔칠 건 다 훔치고 있고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것도 알고 있어. 가이 프랭컨에게 소개장을 써주겠네. (중략). 처음엔 마음에 안 들겠지만 차차 적응이 될 거야.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내가 그리로 보내준 걸 고마워하게 될 걸세." - P136

"(전략). 자넨 자신의 일을 사랑해, 맙소사, 일을 사랑한다고! 그건 저주야. 모든 사람이 볼수 있는 이마에 찍힌 낙인이란 말일세. (후략)." - P136

로크는 벌떡 일어나 책상 위로 떨어지는 빛의 가두리를 등지고 섰다. "만일 제가 말년에 지금의 선생님처럼 된다면 전과분한 영광으로 생각할 겁니다."
"앉아!" 캐머런이 호통을 쳤다. "난 시위는 싫어하니까!"
로크는 자신이 서 있는 걸 보고 놀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어선 줄 몰랐습니다." - P137

"그래!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해야겠어. 자네가 들어야 하니까. 자네 앞날이 어떨지 알아야 하니까. 자넨 자신의 손을 보며 박살을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거야. 자네가 기회만 주었다면 그 손이 해낼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 그런기회는 다 물 건너간 것에 대해 그 손이 비웃는 것 같아서 말이야, (후략)." - P138

"그걸로는 부족한가?" 캐머런이 물었다. "좋아. 어느 날 자넨 정말이지 멋진 설계도를 그려내게 될 거야. 그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그런 설계도를 그려냈다는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한 설계도, 자넨 분명 그걸 해낼 거야. (후략)." - P140

"(전략). 누구든 그 설계도를 보자마자 돈을 대겠다고 달려들것이라고 굳게 믿고서 말이야. (중략). 건축주가 자네의 진심을 알면 그 건물을 짓게 해줄 것이기에 배를 갈라 속을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까지 들 거야. 하지만건축주는 이렇게 대답할 거야. 정말 유감이지만 방금 가이프랭컨에게 건축을 맡겼다고. (후략)." - P140

"집으로 돌아가게. 요새 일을 너무 많이 했어. 힘든 하루가기다리고 있고." 캐머런은 시골 저택 설계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실력 좀 보려고 시킨 건데 아주 훌륭해. 하지만 당장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진 못해. 다시 그려야해. 내일 내 의견을 말해주지." - P141

5

키팅은 프랭컨 앤드 헤이어에 몸담은 지 일 년 만에 가이프랭컨의 황태자라는 쑥덕거림을 듣게 되었다. 그는 일개 제도사에 불과했지만 프랭컨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았다. - P142

키팅은 제도실에서는 팀 데이비스에게 집중했다. 도면 작업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껍데기에 불과했고 그의 건축가경력의 첫 단계를 이루는 알맹이는 팀 데이비스였다. - P143

데이비스는 자신의 일을 거의 전부 키팅에게 맡겼다. 처음에는 밤일만 은밀히 맡기다가 나중에는 낮일까지 공공연히맡겼다. 물론 데이비스는 그런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 P143

처음에는 데이비스가 일을 맡아 와서 키팅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으나, 나중에는 제도실장이 데이비스의 일을 아예 키팅에게 직접 가져왔다. - P143

데이비스는 그해 봄에 일레인과 결혼한 후 지각이 잦아졌다. 그는 키팅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피터, 자네 노인네랑 친하니까 가끔 내 말 좀 잘해줘, 응? 그래야 내가 실수를 좀 해도 눈감아줄 거 아냐. 젠장, 지금 같은 때 일이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싫다!" - P144

(후략).
그 후로 키팅은 데이비스 생각이 날 때마다 훈훈한 쾌감을느꼈다. 그는 한 인간의 인생행로에 영향을 미쳤다. 한 길에서다른 길로 억지로 밀어냈다. 이제 그에게 팀 데이비스는 그저한 인간, 하나의 살아 있는 육체와 정신, 하나의 의식적인 정신에 지나지 않았다. - P145

키팅은 어머니에게 의무적으로 매주 한통씩 편지를 썼는데 그의 편지는 짤막하고 공손했다. 반면 키팅 부인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길고 자세하며 조언이 가득해서 아들이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물었다. - P146

"던롭 부인과의 점심식사 자리는 못 마련했지만 모레 모슨전시회에 함께 가기로 했어요. 이제 어쩌죠?" 키팅이 말했다.
그는 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소파 가장자리에 머리를얹고 있었다. 맨발이었고 가이 프랭컨의 헐렁한 연두색 파자마를 걸치고 있었다. - P147

스텐겔은 사귀기가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지난 2년간 키팅은 그와 친해지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번번이 그의 얼음 같은 안경에 부딪혀 좌절했다. 키팅에 대한 스텐겔의 평은 제도실내에서 쑥덕거림으로만 돌았고, 스텐겔의 말을 인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사실을 감히 입에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스텐겔만 그걸 당당히 말했다. - P149

스텐젤이 프랭컨 앤드 헤이어를 떠나 자기 사무실을 열고처음으로 따낸 일이 던롭의 집임을 알게 된 가이 프랭컨은 책상에 자를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개자식! 망할 놈! 은혜도 모르는 놈."
"뭘 바라셨어요?" 키팅이 프랭컨의 책상 앞에 놓인 낮은 안락의자에 널브러져 앉아서 말했다. "그게 인생이죠." - P153

"클로드 스텐겔요. 부인께선 그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없겠지만 누군가 그를 발굴할 용기를 낸다면 들으시게 될 겁니다. 사실 일은 그가 다 하죠. 무대 뒤의 진짜 천재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서명은 프랭컨이 하고 공도 그가 다 챙기죠. 어디서든 그런 식입니다."
"하지만 왜 스텐젤 씨는 그걸 참고만 있는 거죠?" - P152

"그가 뭘 어쩌겠습니까? 아무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데 세상 사람들이 어떤지 아십니까? 다져진 길로만 다니려고하죠. 같은 물건이라도 상표 하나만 보고 세 배는 비싼 값을치르죠. 용기, 던롭 부인, 그들은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략)." - P152

"당신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보기 드물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나와 스텐겔 씨의 만남을 주선해줘도 회사에서 곤란한 입장이 되지 않는 게 확실한가요?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 입을 떼기도 어려웠는데 화도 안 내고 선뜻 응해줘서정말 고마워요. 당신은 이기심이라곤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의 입장에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 P153

스텐겔이 프랭컨 앤드 헤이어를 떠나 자기 사무실을 열고처음으로 따낸 일이 던롭의 집임을 알게 된 가이 프랭컨은 책상에 자를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개자식! 망할 놈! 은혜도 모르는 놈."
"뭘 바라셨어요?" 키팅이 프랭컨의 책상 앞에 놓인 낮은 안락의자에 널브러져 앉아서 말했다. "그게 인생이죠." - P153

프랭컨은 조용하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조촐한 축하연을 열어주며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몇년 안에 결실이 있을 거야, 피터. 다 자넨 착한 청년이고 난 자네가 좋아. 자넬 확실하게 밀어줄 거야. 이미 밀어주고 있지 않나? 자넨 성공할 거야, 피터. ...... 몇 년안에......."
키팅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가이, 넥타이가 비뚤어졌어요.
그리고 조끼에 브랜디를 다 흘리고 있잖아요……………." - P154

. 하지만 키팅은 집이 땅 위에 우뚝 서는 모습이 아니라 땅 아래로 꺼지는 모습만 떠올랐다. 그것이 땅속 구덩이로, 자신의 마음속 구덩이로, 쓸데없이 데이비스와 스텐겔만 달그락거리고 있는 빈 공간으로 보였다.  - P155

키팅은 작업이 끝나자 불안한 눈빛으로 도면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이라는 평을 받을까, 아니면그 반대일까? 그 두 가지 평이 다 맞는 듯했다. 그는 확신이 없었다. 확신을 얻어야 했다. - P156

그날 밤 로크의 집으로 찾아간 키팅은 첫 작품의 평면도들과 입면도를, 투시도를 펼쳐놓았다. 로크는 양팔을 넓게 벌려탁자 양쪽 가장자리를 꽉 잡고 서서 말없이 한참이나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 P156

"하워드, 날 좀 도와주면 좋겠어. 조금만 내 첫 작품이고회사에서의 내 위상에 큰 영향을 미칠 텐데 확신이 없어. 어떻게 생각해? 하워드, 날 좀 도와주겠나?" - P157

키팅은 도면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그곳을 나서며 로크에게 고마움의 미소를 보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갈 때는 상처받고 화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흘을 매달려 로크의 스케치를 토대로 한 새 평면도들과 훨씬 단순해진 입면도를 그려내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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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피터, 내 조언을 원한다면 말해주지. 나한테 물은 것 자체가 실수야.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선 안 되지. 자신의 일에 관한 문제니까.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거야?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 수 있지?"
"하워드, 자네가 감탄스러운 게 바로 그거야. 항상 알고 있다는 거." - P66

"어머니, 하워드와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요." 키팅은 그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키팅 부인은 아들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키팅이 어머니를 따라갔다. - P67

"아, 젠장, 자네의 미친 이상들은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지금 내 상황에 대한 실제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이상은 잠시 접어두고......"
"내 조언을 원치 않는군." 로크가 말했다.
"아니, 원해! 그러니까 지금 묻고 있잖아!"
하지만 키팅은 관객이 하나라도 있는 한 로크와 단둘일 때와 같을 수가 없었다. - P68

키팅이 쏘아붙였다. "난 건축 일을 하고 싶은 거야. 그것에 대해 떠들고 싶은 게 아니고! 파리 미술학교는 커다란 명예를 주지. 자기들이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배관공 출신 어중이떠중이들 위에 설 수 있게 해주고. 그런데 한편으론 프랭컨과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졌어. 가이 프랭컨 자신이 스카우트를 제안했지!" - P69

"저어......." 키팅은 어머니를 지켜보며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제가 만약 미술학교에 간다면..…………."
"좋아. 미술학교에 가거라. 거긴 멋진 곳이지. 바다 건너에 있지만 말이다. 물론 네가 파리로 떠나면 프랭컨 씨는 다른 사람을 뽑겠지. 다들 그것에 대해 얘기할 거고. 프랭컨 씨가 해마다 스탠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을 뽑아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너 말고 다른 학생이 뽑히면 모양새가 어떨까? 하기야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사람들이 뭐라고 ・・・・・・ 뭐라고 말할까요?" - P70

"어머니, 제가 프랭컨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이길 원하세요?"
"피터, 난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다. 네 마음대로 하렴."
키팅은 자신이 진짜로 어머니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어머니였고 그 사실은 모든 이에게 자동적으로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에 자신이 어머니에게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사랑이리라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다. - P71

"예, 물론 그렇죠, 어머니....... 하지만예, 그건 저도 알지만......하워드?"
그건 도와달라는 애원이었다. - P71

"피터, 그 두 가지 기회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덜 나쁜 쪽을 선택해. 파리 미술학교에 가서 뭘 배우겠어? 르네상스 궁전이나 오페레타의 배경들에 대해서나 더 배우겠지. 그런 것들은 이미 자네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든걸 죽여버릴 거야. 자넨 이따금 제법 일을 잘해. 정말로 배우고 싶으면 일을 선택해, 프랭컨은 개자식에다 멍청이지만 그래도 거기 가면 건축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럼 그만큼 빨리 독립적으로 일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거야." - P72

"로크 군도 가끔 옳은 소리를 하는구나. 말하는 건 무식한트럭 운전수 같아도." 키팅 부인이 말했다. - P72

"하워드, 자넨 이제 어쩔 작정이야?"
"나?"
"내가 너무 생각 없이 굴었어. 계속 내 문제만 갖고 요란을떨었으니, 어머니 날 위해 그러는 거지만 어머니 때문에 돌겠어.
그 얘긴 집어치우고, 이제부터 어쩔 작정이야?"
"뉴욕으로 갈 거야."
"오, 멋진데, 일자리 구하러?" - P73

"이봐, 하워드, 자넬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그러는 거라면,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게. 프랭컨 씨와 일하게되면 연줄이……….."
"피터,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 이미 결정났으니까."
"그 사람은 뭐라는데?"
"누구?"
"캐머런." - P74

자기 방에서 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내던지던 키팅은 문득뉴욕으로 전보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종일 한 번도 떠오르지 않던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절박하고 다급해져서 지금 당장 전보를 보내고 싶었다. - P75

3

피터 키팅은 뉴욕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뉴욕 사람들은 아주 근사하게 잘 차려입고 있었다.
그는 프랭컨 앤드 헤이어 사무실과 출근 첫날이 기다리고있는 5번가의 건물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 P77

‘프랭컨 앤드 헤이어 건축사무소‘
프랭컨 앤드 헤이어 건축사무소의 응접실은 멋지고 분위기 있는 식민지풍 저택의 무도실 같았다. - P78

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누렇게 뜬 뺨과 이상하게 생긴 코, 움푹 들어간 턱에 난 사마귀, 탁자 모서리에 짓눌린 배가 보였다. 키팅은 그런 모습들이 좋았다. 그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는 더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었다. 피터 키팅에게는 동료가 필요했다. - P80

"노인네 것 치고는 꽤 괜찮군요." 키팅이 감탄하며 말했다.
"누구요?" 청년이 물었다.
"그야 프랭컨이죠." 키팅이 말했다.
"프랭컨은 무슨." 청년이 차분하게 말했다. "8년 동안 개집 하나 설계한 적 없는데."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어깨너머 유리문을 가리켰다. "저분이에요."
"뭐라고요?" 키팅이 돌아보며 물었다.
"저분이라고요. 스텐겔. 저분이 다 한 거예요." - P81

그는 키는 작고 받은 어찌나 긴지 발목까지 내려오는 것 같았다. 긴 소매 속에서 밧줄처럼 흔들리는 말에는 크고 효율적인 손이 달려 있었다. - P82

가이 프랭컨의 방은 반짝반짝 광을 낸 것 같았다. 아니, 광을 낸 게 아니라 니스칠을 해놓은 것 같았다. 아니, 니스칠이아니라 거울을 녹여 들이부은 것 같았다. - P82

가이 프랭컨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프랭컨의 얼굴은 누렇고 뺨이 늘어져 있었다. - P83

"오, 스텐겔." 그 이름을 말하는 프랭컨의 어조가 키팅의마음속 사진기에 찰칵 찍혀 나중에 써먹을 수 있도록 저장되었다. - P85

 프랭컨은 자조적으로 콧등을 찌푸렸다. "그런 만찬에선식사가 끝난 후 가벼운 연설을 하게 되지만 노골적이고 저속한 장사 얘긴 쏙 빼고 부동산업자의 사회적인 의무라든가 유능하고 인정받는 건축가를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엄선된 의견 몇 가지만을 얘기하지. 마음에 남는 멋진 슬로건 같은 것들 말일세." - P85

프랭컨은 키팅에게 그 슬로건을 다시 말하게 한 다음 앞에놓인 여러 색깔의 새 연필들 중 하나를 골라 메모지에 적었다. 바늘처럼 날카롭게 깎인 그 연필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준비되어 있었다.
프랭컨이 메모지를 옆으로 밀어놓고 한숨짓더니 매끄러운 곱슬머리를 어루만지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아, 그걸 봐줘야겠지." - P86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된다면, 4층과 5층 사이의 카르투슈(cartouche: 두루마리 모양의 테두리 장식-옮긴이)들이 이런 인상적인 건물에는 너무 소박한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돌림띠장식이 훨씬 더 어울릴 듯합니다."
"바로 그거야. 나도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어. 돌림띠 장식하지만…………… 하지만, 이보게, 그럼 창호가 축소된다는 뜻인데, 안 그런가?" - P87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토론을 벌일 때 쓰던어조에 망설임을 살짝 넣어서 말했다. "하지만 창문은 건물 정면의 위엄보단 덜 중요하죠." - P87

키팅이 천천히 대답했다. "전, 꼭 필요한 수정을 하는 것이스텐겔 씨가 설계한 대로 무조건 통과시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키팅은 프랭컨이 말없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걸 보고,
그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있는데 두 손은 힘없이 늘어져 있는걸 보고, 자신이 끔찍한 모험을 걸었고 결국 승리했음을 알 수있었다. - P88

"아, 키팅, 그런데 말일세, 내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 우리끼리 얘기고 악의 없이 하는 말인데, 그 회색 작업 가운에는 푸른색보다 진홍색 넥타이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자넨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맞습니다." 키팅이 선선히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진홍색 넥타이를 보시게 될 겁니다." - P89

다나 빌딩은 헨리 캐머런이 설계한 작품이었다.
1880년대에 뉴욕 건축가들은 업계 이인자 자리를 두고 다투었다. 일인자 자리를 탐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인자자리는 헨리 캐머런의 것이었다. - P91

일단 그에게 건축을 맡기면 고객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 P91

그의 건물들은 처음에는 그저 조금 달랐을 뿐 사람들을 기겁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따금 깜짝 놀랄 만한 실험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고 헨리 캐머런과 입씨름을 벌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 P92

당시 서른아홉 살이었던 그는 땅딸막하고 꾀죄죄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잠도 끼니도 거르고 미친 듯 일에 매달렸다. 술은 거의 안 마셨지만 마셨다 하면 폭음을 했고, 고객들에게 상스러운 욕을 해댔으며, 상대가 앙심을 품으면 그걸 비웃고일부러 부채질하기까지 했다. - P93

헨리 캐머런은 콜럼버스 박람회장 건설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으며 그 박람회에 대해 인쇄 불가능한, 하지만 숙녀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입으로는 옮길 수 있는 욕들을 해댔다. 그의 욕들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 P94

그가 오랜 세월 고군분투하며 달려와 드디어 목표에 다다른 순간, 이제야 비로소 그가 추구해온 진실을 구현하려는 순간, 마지막 장벽이 갑자기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 P94

하지만 고전주의에 탐닉하여 별안간 이천 년 전으로 돌아가 버린 나라에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 P95

이에 대항해 헨리 캐머런이 제시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신념밖에 없었다. 인용할 사람도, 거창하게 할 말도 없었다. 그는단지 건물의 형태는 그 기능에 따라야 한다고, 건물의 구조가아름다움의 열쇠라고, 새로운 건축 방식은 새로운 형태를 요구한다고, 자신은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건물을 짓겠노라고만 말했다. - P95

사람들은 열정을 싫어한다.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열정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헨리 캐머런의 실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 것이었다. - P95

캐머런은 사람들을 대할 줄 몰랐다. 그는 사람들에게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원래 건축 외에는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의 인생에도 관심이 없는 인물이니까. 그는 설명이란 걸 할 줄 몰랐고 명령만 내릴 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의 호감을 산 적이 없었으며 그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 P96

하워드 로크는 계단을 오르며 층계참마다 멈춰 서서 창문너머로 다나 빌딩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그는 헨리 캐머런의 사무실이 있는 6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 P97

"캐머런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로크가 말했다.
"그래요?" 노인이 도전도, 악의도, 의미도 없는 목소리로말했다. "무슨 일로요?"
"일자리 문제로요."
"무슨 일자리?"
"설계요." - P98

"캐머런 씨, 밖에 일자리를 구하러 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자 전혀 나이 들지 않은 강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뭐야, 순 얼간이 같으니라고! 내쫓아버려.. ・잠깐! 들여보내!" - P98

"아니, 나를 보러 온 건가, 아니면 그림을 보러 왔나?" 이윽고 캐머런이 물었다.
로크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둘 다입니다." 로크가 말했다.
그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로크 앞에서 존재감을 잃었지만 캐머런은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길 속에서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P100

"원하는 게 뭔가?" 캐머런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선생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로크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밑에서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어투였다.
"그래?" 캐머런은 자신이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은 말에 대답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가 뭔데? 더 크고 훌륭한 데선 자넬 안 받아주나?" - P100

"처음 시작하는 겁니다."
"그럼 뭘 했나?"
"스탠턴에서 3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응? 게을러서 졸업장도 못따신 분이신가?"
"퇴학당했습니다."
"대단해!" 캐머런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 P102

로크는 시키는 대로 했다. 캐머런이 굵은 손가락들로 설계도 뭉치를 두드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자넨 이것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나? 사실 이것들은 끔찍하네.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지. 죄악이야. 이보게." 그는 도면 하나를 로크의 얼굴에 들이댔다.

캐머런이 갑자기 말을 뚝 끊더니 설계도들을 옆으로 밀어놓고 그 위에 주먹을 얹으며 물었다.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게 언젠가?"
"열 살 때입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어. 자넨거짓말을 하고 있어." - P103

"(전략). 난 자넬 보고싶지 않아. 자네가 싫어. 자네 면상이 싫어. 자넨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자처럼 생겼어. 아주 건방지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20년 전이었다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자네 면상에 주먹을 날렸을 거야. 내일 9시 정각까지 출근해."
"예." 로크가 일어서며 대답했다.
"주급은 15달러야. 그것밖에 못 줘." - P105

4

"투히." 가이 프랭컨이 말했다. "엘즈워스 투히 참 괜찮은친구야, 안 그런가? 이걸 읽어보게, 피터." - P107

키팅은 기사를 다 읽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와!" 그가 경외감에 차서 말했다.
프랭컨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훌륭하지, 응? 다른 사람도 아닌 투히의 찬사를 받다니.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유명인사가 될 거야. 내 말 명심해. 유명인사가 될 거라고. (후략)." - P109

"사장님, 예술가를 해석하는 게 비평가의 일입니다. 예술가 자신도 그 해석을 통해 자신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수있고요. 특히 씨는 사장님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의미에대해 얘기한 것일 뿐입니다."
"오." 프랭컨이 모호하게 말했다. "오, 그렇게 생각하나?" - P110

프랭컨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기사를 다시 읽었다. 키팅은 그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P110

키팅은 푹신한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의첫 달은 성공적이었다. 그 자신은 말로나 행동으로나 아무런암시도 한 적이 없는데도 가이 프랭컨이 무슨 일이든 키팅을 올려 보내는 걸 좋아한다는 인식이 사무실 전체에 퍼졌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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