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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인생을 말하다 - 평범한 삶을 비범하게 바꾸는 한자(漢子)의 힘
장석만 지음 / 책들의정원 / 2018년 1월
평점 :
한자를 통해 보는 삶의 지혜
간혹 머리가 정말 복잡하면, 일본어로 마구 떠든다. 조악한 일본어로 할 수 있는 말은 한계가 있다. 한계 속에서 해결책을 찾다 보면,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각이 언어에 구속받는다는 좋은 예시다.
10주 과정인 일본어 회화 강의가 지난 주 종강되었다. 전화 일본어를 신청할까 고민한 끝에, 구몬 일어를 시작했다. 회사에서 무료로 상하반기 회화 강의를 제공해주는 만큼, 회화는 그 정도로 충분할 것 같고. 일본어로 게임을 하고 싶은 이상, 일본어 독해 공부도 해야 한다.
문제는 한자. 일본어는 좋아하지만 한자는 싫어한다. 일본어를 써야 할 때가 간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한자 때문에 식겁을 한다. 구몬 일본어와 중국어 신청하면서 한자까지 할까 5초 고민했는데, 일본어와 중국은 우리와 한자 다르잖아? 아름다운 핑계와 함께 고민을 마쳤다. 뭐, 왜. 하지만 한자 싫은 걸.
한자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부채감은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사실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쏙 빼온 건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부채감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직접 책을 만져보며 고른 것이 아니라, 신간 코너에서 발견한 뒤, 관외 대출 신청한 터라, 책 내용은 예상과 약간, 아니 많이 달랐다. 내가 예상한 건, 한자를 소개하고, 그 한자의 상형 방식이나 유래를 소개하며, 소소한 인생의 진리를 전달해주는 책이었는데.
저자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중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한자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책에 나오는 한자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독자를 배려했기 때문인지, 저자는 익숙한 한자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 책에서 중요한 건 한자가 아니다. 글을 시작하기 위한 화두 역할만 한 뒤 한자는 스리슬쩍 사라져 버린다. 저자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그 한자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쓴 뒤, 어울리는 한자를 찾은 건 아닐까, 그 생각마저 든다.
과하게 말하자면, 한자는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아마 건담에 나오는 ‘다리는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패러디가 아닐까 싶다. 건담은 시드와 데스티니라는 괴작만 봐서 자세히는 모른다. 난 재미있게 봤는데, 다들 괴작이라고 해서 슬프다. 내 사랑 아스란 커플이 아닌 키라 커플이 대세여서 더더욱.
‘도전과 성취’, ‘인간관계’. ‘위기와 성장’, ‘품격과 혜안’ 총 4가지 소주제에 대해, 관련 한자를 소개하고 저자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책 아무 곳이나 펼쳐, 읽고 싶은 부분을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책이니만큼, 세 줄 요약 같은 건 딱히 의미가 없을 듯하고. 마음에 들었던 문장 정도만 몇 개 인용해볼까.
여기서 막간 광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은 성향이 다르다. 블로그는 주로 장문 서평을 올린다면, 인스타그램은 짤막한 감상과 함께 인용구 위주로 올린다. 독서노트에 기록해둔 인용구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니, 책에 무슨 이야기가 있나 궁금하면 인스타그램을 찾아가도 좋을지도.
가장 마음에 든 건, “당장 결론을 내고자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이 동반되어야 한다.” 난 매우 성급하다보니, 자꾸 단기간에 결판을 내려고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인내심과 함께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거둔다. 그러면 안 된다고,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고, 스스로를 매번 토닥이고 있다.
“실수나 실패의 사례를 이용하면 효과적이다.” 실패에서 배운다는 말도 있고. 성공보다는 실패가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실수나 실패로는 부족하고, 그 실수와 실패에서 배워, 더 나은 무언가를 달성할 필요는 있겠지만.
‘엄마의 자존감 수업’에서, 저자가 자녀와 잘 지낸 이야기보다, 계속 벽에 부딪치고 고민했던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는지도. 아마 단순한 성공 이야기만 계속 했다면, 자랑으로 생각하고 적당히 듣다 말았을 텐데.
한자 공부도 하고 싶고, 교훈도 얻고 싶다면 좋은 책. 한자가 보릿자루인 건 아쉽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관을 보며 배우는 것도 있는 만큼, 읽어보아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 책에 나오는 마시멜로 실험의 경우, 현재는 그 실험에 오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인내심이 없어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게 아니라, 기다리면 하나 있는 마시멜로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믿었기에, 마시멜로를 먹은 것이라고.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책은 많은 사람이 보는 만큼 좀 더 알아보고 찾아본 뒤에 쓸 필요가 있는 듯하다. 이럴 때 나를 한 번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내 일에 치열함을 보이고 있는지. 갑자기 쥐구멍이 그리워졌다. 회사에 하나 몰래 파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