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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의 섬 (4종 중 1종 표지 랜덤) - 개정판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이정호 표지그림 / 알마 / 2018년 8월
평점 :
섬. 갇힌 대륙에서의 잔혹한 질병. 그리고 매혹적인 생물 관찰기록
식물을 사랑하는 의사의 섬 탐방기가 궁금한 사람을 위한 책
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 알마(alma)
서평단이벤트로 받은 책으로, 평소와 논조, 문투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색약만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색약 테스트 용지.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다니는 만큼, 본 사람이 은근 있을 듯하다. 색약 테스트를 보면서, 그들이 보는 세상은 어떨까 몇 번 궁금해 했었다.
이 책에 호기심을 가졌던 건, 그 때의 경험 때문.
‘색맹의 섬’은 크게 4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핀지랩과 폰페이에서 만난 색맹들 이야기. 핀지랩과 폰페이에서 만난 신기한 식물 이야기. 괌과 로타섬에서 만난 괴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야기. 괌과 로타섬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식물 이야기.
그렇다. 이 책은 섬 여행기에 좀 더 가깝다. 저자가 섬에 왜 갔고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것을 느꼈는지.
대륙과 분리된 섬이기에, 독자적인 식물이 많이 자란다, 식물을 좋아하는 저자에게는 꿈과 같은 곳. 제목이 ‘색맹의 섬’이다 보니, 색맹 이야기가 많겠거니 하고 읽었는데, 정작 식물 이야기가 반을 차지하고 있다. 식물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흥미 있을만한 책.
독자적인 식물만 판치면 참 좋을 텐데. 특이한 병까지 판을 치니, 그것이 문제. 색맹은 색이 보이지 않는 사람,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아예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밝은 곳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단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뜰 수가 없다나.
시력도 좋지 않고, 밝은 곳 나가기도 힘들다 보니, 공부하는 데도 제약이 따르고. 대신 밤은 잘 보인다고 한다. 색맹인 사람에게 밤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정말 환상적으로 보인다고.
그래도 색맹은 교정 도구를 이용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리티코-보딕이라는, 파키슨병과 비슷한 병은 진짜 끔찍하다. 일상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1950년도 더 전에 발발한 병인데, 현재 원인조차 알 수 없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은 더 이상 발발하지 않는다는 것. 그 원인 중 하나로 드는 것이, 독성이 강한 소철의 열매. 일본의 무자비한 압제로 먹을 것이 소철의 열매 밖에 없었고, 독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에 리티코-보딕에 걸리게 되었다고.
그렇다. 색맹의 섬에 나오는 섬들은, 지금은 미국령이지만, 일본 식민지 경험도 있다. 섬을 윤락촌 비슷하게 쓰면서도, 원주민의 접근은 아예 막았을 정도로 차별도 심했던 데다, 무자비한 학살도 꽤 있었다고. 어쩐지 우리 식민지 시절이 떠올라서 씁쓸해졌다.
사실 태평양 저 편에 있는 섬. 남의 이야기 이런 기분으로 읽었는데, 식민지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친근감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친근감보다는 비참한 역사를 같이 겪었던 동질감에 좀 더 가까운 듯하지만. 어찌 되었든.
기타 이 책의 특징 두 가지를 말해 보자면. 하나. 표지 자체는 회색이지만, 제목과 저자에는 색을 입혔다. 내 책은 초록색이지만 빨강, 노랑, 파랑 버전도 있다. 특이하다. 수집욕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걸까. 갸웃.
둘. 주석이 1/4를 차지한다, 여유가 있다면, 주석 부분에 책갈피를 넣어두고 주석과 본문을 왔다 갔다 해도 괜찮을 듯. 본문에 없는 일화가 주석에서 소개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만큼, 본문만 읽고 끝내면 아쉽다.
사실 본문만 다 읽고 와 하고 책 덮으려다, 응? 이 책 주석이 의외로 알차잖아, 이러며 열심히 읽은 것 절대 비밀이다. 어째 말해버린 기분이 들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원한다면 아쉬울 책. 섬이라는 매혹적인 장소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이야기. 이 정도로 읽으면 재미있을 책. “색맹의 섬” 여행기 정도로 생각하면 딱 적당하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