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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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싶은 상처를 드러낼 수 있을 때, 인생은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꽁꽁 싸맨 상처를 직시하고 싶은 사람에게, 조금의 용기를 주는 소설.

청귤. 김혜나. 은행나무.

 한국 소설, 좋아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며 읽으며, 그네들이 펼쳐내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읽지 않기 시작했다. 그네들의 작품은 여전히 좋아하는데, 사람을 좋아할 수 없어서. 그렇게 어느덧 거리가 멀어졌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소설은 거의 손도 안 대기 시작했다.
 좋고 싫음에 옳고 그름은 없겠지. 그렇더라도 벌이 싫다고 벌꿀까지 먹지 않는 건 어째 바보 같다. 일단 벌은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는데, 나 혼자 싫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요즘은 재활훈련 삼아 한국 소설을 천천히 읽고 있다. 사실 드디어! 이외수 소설을 빌렸다. 이외수. 진짜 예전에는 푹 빠져서 소설집 나올 때마다 읽고 그랬는데. 이외수가 디시에서 사고 친 뒤로는 어째 정감이 안 가다 보니, 이외수 소설까지 읽고 나면 한국 소설도 이제 무리 없이 읽을 것 같다.
 
 결론은. 제 재활훈련을 위해서 서평단 이벤트를 신청했습니다. 데헷. 귀여운 척.

 단편집.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다. 다만 우울하다. 지독하게 우울해서 페이지조차 넘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야기 곳곳에 씁쓸함이 감돌아,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작가의 학창시절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은 듯하다. 자신의 경험을 직접 소설로 쓴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경험을 허구와 버무린 만큼 확실하게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다지 돌이켜보고 싶은 기억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며 소설로 자아냈다.
 
 상처를 벌린다. 깨끗하게 씻는다. 소독약을 뿌린다. 아프다. 차라리 덮어둘 걸. 그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직시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다 보면 곪고 곪고 또 곪는다. 결국은 썩어, 도려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프더라도 상처를 깨끗하게 씻고 소독약을 뿌리는 쪽이, 상처가 빨리 아무는 방법일 수도 있다. 지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상처가, 슬픔이, 아픔이 빚어낸 소설. 우울하면서도 어쩐지 내 상처와 마주치는 듯한 기분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담담한 어조. 하지만 가끔은 솟구치는 감정들.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신입 작가인만큼 부족하거나 미진한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싶지만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읽어 보아도 좋지 않을까. 계속해서 상처를 끄집어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런 의도로 소설을 읽어도 괜찮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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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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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영옥의 마음을 울린 책 한 구절과 함께 하는, 그녀의 따스한 이야기.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즐겁게 읽은 에세이 애호가가 좋아할 만한 책

 

그냥 흘러 넘쳐도 좋아요. 백영옥. ARTE.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이었다. 한 챕터 읽고 멈추고. 그러다 다시 한숨과 함께 한 챕터를 다시 읽고. 사흘 간 정말 힘겹게 한 챕터, 한 챕터 읽어나갔다.
 그토록 말랑말랑한 에세이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 그때는 생각했다. 내가 두 번 다시 백영옥 에세이 읽으면 인간도 아니다. 하지만 여러 장르의 책을 탐독하며, 어느덧 에세이에 익숙해졌다. 백영옥의 말랑말랑함이 더 이상 거북하지 않게 되었다. 백영옥의 새 에세이 출간 기념으로 서평단 이벤트를 한다는 아르테의 포스트를 보고 신청한 이유다.

 아르테의 미리보기를 볼 때도 생각했지만 역시 말랑말랑하다.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까지 거북하지는 않다. 아니 그 말랑말랑함에 어느덧 적응되어, 편안하게 책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구절을 읽고, 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가끔은 그녀가 소개한 한 대목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끔은 왜 이 대목이 마음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마음에 들었다면 공감하며 읽으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신기해하며 읽으면 된다. 어느 쪽이든 백영옥의 “그냥 흘러 넘쳐도 좋아요‘가 내 마음에도 흘러넘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녀의 이야기. 그녀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것뿐. 같고 다르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에세이에서는 다양한 책이 언급된다. 내가 아는 책은 극히 드물었다. 약간 충격.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 책이 나오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갈 수 없으니. 무수히 나오는 책 중, 아마 상당수는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사라지겠지. 도서관에도 꽂히지 못한 채,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 좀 서글퍼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소개한 책을 읽어볼까도 생각했다. 12월에는 서평단 이벤트 신청은 그만두고, 읽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읽지 못했던 책들이나 쌓아놓고 읽을까. 이쪽도 나름 즐거울 것 같다.

짤막짤막하고 말랑말랑한 글들. 단숨에 읽어도 상관없고, 옆에 차 한 잔 놔두고 생각날 때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읽어도 괜찮다. 어느 쪽이든 당신 마음에 드는 대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책은 아니다. 어쩌면 읽고 난 뒤, 아무 것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책을 읽는 내내, 조금은 심장 부근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면.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면, 이 책은 충분한 효용이 있지 않을까.
 힘겨운 하루 속에서, 비록 한 순간의 위안일망정,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이 조금이라도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기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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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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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케빈 콴. 열린책들.
 
  사실 이 책,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류의 소설인지 알았다. 엄청난 부자가 있고, 매력적인 여자가 있고, 엄청난 부자의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여자는 자연스럽게 그 집의 일원이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 신데렐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괜찮지 않나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토요일에 1, 2권 합산 812페이지의 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워!
 
이 책은 돈을 지배하는 사람 혹은 돈에 지배당하는 사람에 대한 군상극을 보여준다. 평생 쓰고도 남을 돈에 익숙해 매우 고고한 사람이 있고, 돈의 무게에 짓눌려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돈은 없지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위엄이 있는 사람이 있고. 돈이 준 마력에 취했다, 결국은 그 마력에 뒤통수를 맞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소설의 모든 상황은 돈 때문에 일어나니까.
 
표면적으로는 연인인 레이첼과 닉 커플이, 닉의 친구 혼인식에 참여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기회에, 닉의 가족과 만나는 이야기. 하지만 이 소설은 레이첼과 닉 커플에 시선을 집중하기보다는, 닉의 주변 인물들의 화려함과 그늘에 초점을 맞춘다.
가문을 따지고 재력을 따지고. 어떻게든 자신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은 깎아내리고. 자신보다 못하다 싶으면 당연하게 무시하고. 자신보다 멋지다 싶으면 추켜세우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별히 잘난 인간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속물이다. 아니, 스스로 잘났다고 믿고 있기에, 다른 사람 이상으로 속물이다. 가장 구역질 나는 인간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나지 않기에, 오히려 그들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믿는 사람보다 더 썩어버린다.
 
표면적으로는 가장 화려한 사람들. 그만큼 악취도 강렬한 그 사람들은, 일반인으로서는 버티기 어렵다. 선택받은 일반인조차도 도망을 결심해 버린다. 차마 더는 싫다는 말은 하지 못해, 겉으로는 배신으로 보이는 수단으로.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오죽하면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 혼인은 서로 척지지 않아야 한다. 이 말이 왜 있는지 알겠더라.
명색이 박사 과정까지 밟고 스타트업에서 나름대로 나가고는 있는데, 처가에서는 기계공 취급이나 받고, 아내의 옷값만도 못한 돈 벌고 있으면 자괴감 안 느끼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다. 이 소설에는 신데렐라는 없다. 레이첼 역시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를 선택해 버린다. 닉과의 관계에 쉼표를 찍은 채. 이후 그 둘은 어떻게 될까. 아마 작가만이 알지 않을까. 다만 닉이 가문을 선택한다면 레이첼은 닉을 저버리겠지.
 
이래저래 상념이 들게 하는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그 상념에 얽매일 건 없다.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크레이지 리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에 매혹된 채 책을 읽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갈등은 어찌 되었든 그들은 최고급 요리를 먹고, 최고급 옷을 입고, 최고급 예술가를 불러, 하루하루를 유흥으로 보낸다.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전용기를 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갈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 설령 책을 덮으면 사라지는 환상일지언정, 읽는 동안은 그 화려함에 나 역시도 푹 빠져볼 수 있다.
 
1025일 개봉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원작 소설. 영화 속 화려함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도 좋지 않을까. 800장 정도의 두꺼운 책이지만, 영화 속의 화려한 모습들을 떠올리며 책을 넘기다 보면, 아마 아쉬운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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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필로테라피 4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지음, 이주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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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은 실존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것. 절망 전문 철학가의 철학 소개
 인간은 왜 절망하는지, 철학가의 대답이 듣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마디앵 크레르제-귀르노. 자음과모음.
 
고등학교 윤리 시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암기 과목은 전부 싫어하는 나답지 않게 고득점을 받았을 정도. 깊이 파고들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교양 측면에서. 이름 정도만 알고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키에르케고르. 이름 정도는 몇 번 들었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그 자세히 모르는 점에 끌려 자음과 모음 서평단을 신청했다. 책을 읽는다고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중간하게 알게 되어 곤란할 수도 있다. 다만. 읽어서 손해볼 건 없지 않나.
 키에르케고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여전히 몸부림치는 인간에게, 절망은 필연이라고 말한 철학자죠?‘ 한 마디만 할 수 있어도 있어 보이지 않을까.
 
프로이트를 비롯하여, 절망은 잘못된 감정이라고 말한다. 어떻게든 절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절망에서 벗어나 행복한 감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이때 키에르케고르는 질문한다. 정말로 절망은 잘못된 감정인지.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절망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고민하지 않으면 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신, 현실을 있는대로 받아들이고 타협하면 된다.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린 채, 지금 현재를 즐기면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다시 질문한다. 그렇게 사는 건 동물도 할 수 있다고. 인간이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키에르케고르에게 절망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영원히 짊어져야 할 숙명과도 같다.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든 채, 끝까지 함께 걸어야 하는 동반자다.
 
이 책의 화두 중 둘만 꼽으라면 열정과 종교. 둘 다 절망에서 비롯되어, 영원히 인간을 절망하게 만든다.
열정은 사실 매우 어두운 감정이다. 한번 얽매이면 그 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대상을 태워버릴 만큼 뜨겁게 타오른다.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질 정도로. 키에르케고르는 이 감정을 긍정한다. 아니 모든 일의 근원은 열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타오르고 타오르고 또 타올라야, 비로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깊숙이 파묻힐 수 있다고. 이런 열정이 없다면, 인간은 죽은 것과 다름없단다.
그리고 종교. 키에르케고르는 독실한 종교인이다. 그는 무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다운 삶을 고민한다. 인간다운 삶은 쉽게 성취할 수 없다. 그 계속된 구도, 이루고 싶지만 이루지 못하는 그 태도가 종교를 대하는 신도의 태도와 닮았다고. 고로, 무교 역시 종교의 일환이라고.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타인의 사상을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어렵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력을 포기하지 못한다. 노력이 절망을 더욱 부추기고, 그 노력 때문에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겠지.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 혼자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절망이 인간의 영원한 동반자라는 사실에 더 절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절망한 사람이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사족. 이 책은 단순한 해설서는 아니다. 군데군데 저자 나름의 질문이 이 책에 삽입되어 있다. 그 중 마음에 든 질문 두 개를 사진으로 첨부했다. 나름대로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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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오류 보고서 - 쓸데없는 뼈에서 망가진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온갖 결함들
네이선 렌츠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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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몸을 낱낱이 해부하여 설명하다
인간 진화의 신비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과학책'

 

우리 몸 오류 보고서. 네이선 렌츠. 까치글방.
 
웅진에서 나온 진화를 다 읽은 직후, 네이버 포스트에서 발견했다. 사실 진화에서도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해 몇 번이고 말했던 터라,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좀 더 잘 알고 싶어 서평단 이벤트를 신청했었다.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알고 싶다고 해야 할까.
 
인간이 얼마나 신기한 존재인지는 굳이 여기서 읊을 필요가 없을 터. 오죽하면 인간만큼은 창조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을까. 이 책은 인체의 신비에 대해 살짝 반기를 들어보는 책이다.
인간이 신기한 존재인 건 맞지만, 상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아. 봐봐. 인간의 이 터무니없는 모습들을. 다른 동물들은 다 할 수 있는 비타민 C합성도 못해 괴혈병에 시달리는 인간에 대해. 눈 구조의 오류로 근시와 원시에 시달려야 하는 인간에 대해서. 이미 죽은 바이러스의 정보까지 계속 복제하다 결국 암까지 만들어버리는 세포에 대해서. 이 책은 인간 몸의 오류들을 조목조목 찾아낸다.
하지만 인간 진화의 잘못됨을 들어, 인간종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책은 아니다. 이런 불합리함을 견뎌 내고 전 지구에 퍼진 채 살아간 인간이라는 종을 예찬하는 책이다.
그렇다. 공작의 꼬리라든지 소의 뿔이 그 종족의 강인함을 상징하듯, 인간의 무수한 오류 역시 인간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면, 또 다른 인간 찬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마저 들었다.
 
저자는 종종 기계와 비교해서 인간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설명한다. 손목과 발목 구조. 불필요하게 많은 뼈 때문에 오히려 유연함을 잃어버리고 부상 위험만 커졌다든지. 이족보행을 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인간은 아직도 이족 보행에 어울리는 몸 구조를 덜 갖추었다든지. 자기면역질환 등 스스로를 해하려 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든지. 심지어 다른 포유류들과 달리 인간 여성만 폐경기가 있고, 심지어 그 폐경기도 빠르다든지.
몸만 건드리는 건 아니고, 뇌도 건드린다. 기억도 불완전하고. 자기 위주로 판단하고. 이미 견해가 한 번 정해지면, 다른 쪽 견해는 아무리 들려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단다. 가령 종전협상은 불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종전협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해본들 씨알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인간의 가장 위대한 부분마저도, 사실은 별로 위대하지 않다는 이야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흥미진진한 내용을, 여러가지로 빗대어 설명하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체도 구어체로 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다. 과학책치고는 쉬운 편이다. 과학책치고는.
생물학, 특히 인간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 인간의 구조적 결함을 들여다보면서, 그래도 생존하고 있는 인간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면 나름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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