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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평점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케빈 콴. 열린책들.
사실 이 책,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류의 소설인지 알았다. 엄청난 부자가 있고, 매력적인 여자가 있고, 엄청난 부자의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여자는 자연스럽게 그 집의 일원이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 신데렐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괜찮지 않나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토요일에 1, 2권 합산 812페이지의 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워!
이 책은 돈을 지배하는 사람 혹은 돈에 지배당하는 사람에 대한 군상극을 보여준다. 평생 쓰고도 남을 돈에 익숙해 매우 고고한 사람이 있고, 돈의 무게에 짓눌려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돈은 없지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위엄이 있는 사람이 있고. 돈이 준 마력에 취했다, 결국은 그 마력에 뒤통수를 맞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돈‘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소설의 모든 상황은 돈 때문에 일어나니까.
표면적으로는 연인인 레이첼과 닉 커플이, 닉의 친구 혼인식에 참여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기회에, 닉의 가족과 만나는 이야기. 하지만 이 소설은 레이첼과 닉 커플에 시선을 집중하기보다는, 닉의 주변 인물들의 화려함과 그늘에 초점을 맞춘다.
가문을 따지고 재력을 따지고. 어떻게든 자신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은 깎아내리고. 자신보다 못하다 싶으면 당연하게 무시하고. 자신보다 멋지다 싶으면 추켜세우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별히 잘난 ’인간‘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속물이다. 아니, 스스로 잘났다고 믿고 있기에, 다른 사람 이상으로 속물이다. 가장 구역질 나는 인간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나지 않기에, 오히려 그들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믿는 사람보다 더 썩어버린다.
표면적으로는 가장 화려한 사람들. 그만큼 악취도 강렬한 그 사람들은, 일반인으로서는 버티기 어렵다. 선택받은 일반인조차도 도망을 결심해 버린다. 차마 더는 싫다는 말은 하지 못해, 겉으로는 배신으로 보이는 수단으로.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오죽하면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 혼인은 서로 척지지 않아야 한다. 이 말이 왜 있는지 알겠더라.
명색이 박사 과정까지 밟고 스타트업에서 나름대로 나가고는 있는데, 처가에서는 기계공 취급이나 받고, 아내의 옷값만도 못한 돈 벌고 있으면 자괴감 안 느끼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다. 이 소설에는 신데렐라는 없다. 레이첼 역시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를 선택해 버린다. 닉과의 관계에 쉼표를 찍은 채. 이후 그 둘은 어떻게 될까. 아마 작가만이 알지 않을까. 다만 닉이 가문을 선택한다면 레이첼은 닉을 저버리겠지.
이래저래 상념이 들게 하는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그 상념에 얽매일 건 없다.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크레이지 리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에 매혹된 채 책을 읽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갈등은 어찌 되었든 그들은 최고급 요리를 먹고, 최고급 옷을 입고, 최고급 예술가를 불러, 하루하루를 유흥으로 보낸다.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전용기를 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갈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 설령 책을 덮으면 사라지는 환상일지언정, 읽는 동안은 그 화려함에 나 역시도 푹 빠져볼 수 있다.
10월 25일 개봉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원작 소설. 영화 속 화려함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도 좋지 않을까. 800장 정도의 두꺼운 책이지만, 영화 속의 화려한 모습들을 떠올리며 책을 넘기다 보면, 아마 아쉬운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