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죠. 그 과정에서 때론 오역을 하기도 하고 과한 의역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반드시 정역해야 하는 제 일과 달리 일상의 번역은 오역이면 오역, 의역이면 의역 그 나름의 재미가 있죠.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7

농아는 귀머거리 농(聾), 벙어리 아(啞), 그저 두 가지 장애를 결합해놓은 표현이라 장애만을 지칭할 뿐 장애인의 정체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20

노력과 성실도 재능이라는 걸 언제쯤 이해할는지.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29

농담 같겠지만 당신도 아이가 생기면 이 글이 생각날 거다. 그땐 일산 한구석에서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추리닝’ 바람에 헤드폰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주먹을 입에 물고 꺽꺽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위안삼기를.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33

매년 연말 마지막 작품을 번역할 때 SNS에 그해 작업 소감을 남긴다. 그때마다 꼭 쓰는 문장이 있다. "부디 내년엔 한국의 모든 영화 수입사가 50만 명 부근의 작품을, 더도 말고 한 편씩은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소박한 소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업계 사정을 아는 이들에겐 꿈같은 소원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42

그래서, 결론은 오역이고 뭐고 못 잡는다. 못 잡는다기보다 귀에 거슬리는 게 스쳐가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오역은 날파리와 마찬가지로 미스터리하게 자연 발생하는 존재라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기도 하고.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49

그래서 자막에 오역 시비가 있어도 제일 늦게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저도 자막 봅니다. 아니, 자막 없으면 영화 못 봅니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50

입학식을 하는 강당 의자에, 아담한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만 봐도 들뜬 기운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정말 그 시절 국민학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심정이 묘하다. 너무 기분좋은 날인데 희한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좋은 학부모가 되자.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60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즘 사람은 단순히 무례한 게 아니라 과민해서 무례해진다. 자극에 과하게 민감하다. 그게 어떤 자극이든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자극이면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반드시 시비를 걸어 싸우거나, 싸우는 게 피곤할 때라도 기어코 비아냥 또는 빈정대기라도 하고 지나가야 속이 편해진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62

이제 이견을 이견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견은 나에 대한 공격, 더 나아가 나의 존엄을 짓밟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맞붙어 싸우든 이죽거리기라도 한번 하고 지나가야 내 존엄이 회복된다. 특히나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는 온라인상에서는 이게 일상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62

아주 사소하게 거슬리는 일에도 ‘역겹다’란 말이 흔하다. 뭔가를 보고 욕지기가 날 정도로 혐오감을 느끼는 건 레벨 1부터 10까지로 치면 거의 10에 가까운 것 아니었나. 그 정도로 혐오스럽고 역한 것들이 그렇게 흔하고 많다는 건가.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63

과민성 이죽거림과 비아냥을 습관처럼 손가락과 입에 달고 살고, 남을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려 할 때 언어를 실체가 있는 무기처럼 점점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우린 갈수록 잔인해지고 과격해진다. 아니다, 그것만도 못하게 갈수록 비열하고 저열해진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64

미디어에 노출된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에(정말로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움이나 자괴감 느낄 것 없이 내 자리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 될 일이다. "어쩌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어찌 보면 그 어떤 사연보다도 훨씬 운명적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85

‘투명한 번역’이란 표현은 니콜라이 고골이 바실리 주콥스키의 『오디세이아』 번역에 보냈던 찬사—"투명한 유리 같은 역자라서 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를, 조르주 무냉이 『부정한 미녀들』에서 "투명 유리"로 인용하며 유명해졌다. 혹자는 이 표현을 번역문에서도 ‘원문이 그대로 보이는 충실한 번역’으로 해석하지만 여기서 조르주 무냉이 말하는 "투명"은 그 반대의 의미다. ‘유리(번역자)가 있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번역’이라는 뜻이다. 단어 대 단어, 표현 대 표현으로 정확하게만 옮기는 걸 ‘투명한 번역’으로 알고 있다면 고골과 조르주 무냉의 말을 완전히 오독한 것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87

고골의 투명처럼 도착어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의역을 지향하면 오히려 번역가의 냄새가 훨씬 진하게 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88

내 눈에 "번역가의 임무는 투명해지는 것"이란 명제는 이상향으로는 존재할 수 있어도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89

하지만 번역가라는 필터는 인성을 띄고 있어서 그 필터가 평생 겪어온 경험은 물론이고, 가치관과 언어 습관 등이 결과물에 반영된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90

고골이 주콥스키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런 말도 있다.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 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92

여기서 고골이 말하는 "투명"은 글의 서두에서 말한 ‘자연스러운 의역으로서의 투명’이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투명이다. 진정 훌륭한 번역은 번역문에서 인간적인 흠결이 보일 정도로 번역자의 인성이 느껴져야 한다는 뜻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93

여기서 고골이 말하는 "투명"은 글의 서두에서 말한 ‘자연스러운 의역으로서의 투명’이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투명이다. 진정 훌륭한 번역은 번역문에서 인간적인 흠결이 보일 정도로 번역자의 인성이 느껴져야 한다는 뜻이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93

내가 번역했다는 것 따윈 몰라줘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인생 영화, 누군가에게 소중한 영화를 내가 번역할 수 있었다는 감사함과 뿌듯함이면 충분하다. 영화 한 그릇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참 괜찮은 직업을 골랐다. - <번역: 황석희>, 황석희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52f2dd72554a73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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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텍스트 위를 헤매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서면, 공간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미지로 풀어내나, 하고 얼굴을 감싸 안았다. - <뭉우리돌의 바다>, 김동우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25b029326fa4f80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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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일반적 경향 중에 하나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그들의 끝없고 쉼 없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651)

-알라딘 eBook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중에서 - P6

저자가 강조하듯이 "이 책의 논점은 정치 지도자나 침팬지를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근본적인 유사성을 주장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성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알라딘 eBook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중에서 - P8

저자의 관찰대로라면, 침팬지 사회에는 권력탈취, 계급구조, 권력투쟁, 동맹, 분할 지배 전략, 연합, 조정, 특권, 거래 등이 만연해 있다. 인간 사회의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거의 모두 침팬지 사회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알라딘 eBook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중에서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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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번도 자신이 다이버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물은 그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19504b79f37490d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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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에 나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미국에서 두 번째 대학원을 졸업했고, 새 직장을 얻었으며, 7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방이 하나인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하나하나의 변화가 다 감당하기에는 너무 커서 어리둥절한 순간이 많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세금처럼 확실하게 흘렀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시간은 날마다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어서 기록된 마지막 음절에 다다른다는 『맥베스』의 대사를 일기 어딘가에 적어 놓고 잊어버렸다. 그때는 내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어떤 글자에 가닿을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맥베스』의 다음 대사가 이렇게 이어진다는 걸 몰랐던 것처럼.
소리와 분노만 가득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바보 천치의 이야기, 그게 바로 인생이야.


-알라딘 eBook <초급 한국어> (문지혁 지음) 중에서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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